최악의 고용참사, ‘국가책임일자리’ 운동 시작한다

정당·교육·노동·학생단체, 노동시간 단축, 의료·돌봄·가사 사회화 요구

지난해 실질실업자가 5백만 명에 달한 가운데, 청년·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의료·돌봄·가사 일자리의 사회화를 통한 ‘국가책임의 좋은 일자리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당·교육·노동·학생단체들은 8일 오전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파산을 선고한다며 국가책임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여섯 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이들은 ‘지난해 실질실업자 약 5백만 명’이 문재인 대통령의 성적표라고 비판하며 ‘국가책임일자리’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지난 1월 일자리 100만 개 증발이 확인되자 정부가 취업자 수를 감추기 위해 공공부문 저임금·비정규직만 양산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이들이 말하는 실질실업자는 ‘실업자’(111만)를 비롯해 ‘일시휴직자’(84만), 비경제활동인구 중 ‘쉬었음’ (237만), ‘구직단념자’(61만)를 포함한 수치다.

국가책임일자리,
“청년 실업, 코로나 위기 극복 위해 필요하다”


김건수 청년시국선언원탁회의 집행위원은 “10년 사이 청년 우울증은 2.1배 증가했다. 청년들은 자신을 코로나19 세대라고 지칭한다. 그 이유를 묻자 청년의 51%는 실직·해고 때문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청년 실업률은 9%로 역대 최고치로, 이는 IMF 때보다 심한 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청년 여성들은 서비스직과 비정규직 일자리에 주로 배치돼 지난해 3월, 한 달에만 12만 명이 해고됐다. 청년 여성의 자살률이 급증하자, 이를 두고 ‘조용한 자살·학살’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건수 집행위원은 정부와 기업이 청년 일자리 문제에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적 기반이 없는 청년들을 일자리에서 쫓아내는 것은 사회에서 쫓아내고,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청년시국선언원탁회는 청년이 직면한 문제들을 청년 ‘세대’로 보는 시선이 청년들이 놓인 불안정한 노동의 상황을 은폐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시국선언을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재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국가가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며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이 작년 기준 9.5%로 선진국 평균 2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마저도 최저임금, 비정규직, 계약직 등 ‘저질 일자리’만 넘치고 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필수 위험업무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은 과로에 시달린다. 당장 인력을 충원해 노동자 건강권과 고용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정 부위원장은 최악의 고용 참사 등을 불러온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 방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필수서비스부터 국가가 책임지고 역할을 키워야 한다. 공공병원, 공공병상 확대, 사회서비스원 전 지역 설치, 대중교통 공영화 등이 즉각 실현돼야 한다. 지난 30년 동안 무분별하게 민영화 외주화된 공공서비스를 국유화·재공영화 해야 한다. 항공·에너지 등 국가 기간산업 국유화를 비롯해 민간위탁 비리와 예산 낭비로 얼룩진 지자체 민간위탁을 폐지해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나쁜 일자리 만드는 학교 돌봄 민간위탁 추진,
고사 상태인 문화예술노동자들의 안정적 일자리 창출 방향은?


성지현 교육노동자현장실천 공동대표(전국교육공무직본부 용인지회장)는 학교 돌봄의 민간위탁 추진을 비판하며 공적 돌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코로나19로 학교가 문을 닫아도 운영됐던 곳이 바로 학교 돌봄 교실이다. 그런데 이들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돌봄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것에 반대하며 지난해 파업을 했다”라며 “직고용으로 운영되던 돌봄교실을 지자체로 이관하면 민간위탁으로 넘어가는 길이 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민간위탁 일자리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 취지다. 그런데 학교 돌봄을 더 나쁜 일자리로 만들려 한다”라며 학교 돌봄 교실을 국가가 책임지는 일자리의 방향으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은 대표 직종 중 하나인 문화예술 노동자도 발언에 나서 문화예술 노동자의 안정적 고용을 요구했다. 미술 작가이자 예술 교육자인 적야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은 “문화시설이 휴관하고, 공연·전시·축제 등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문화예술계는 사실상 고사 위기에 처했다. 공연을 올릴 수 없게 되고 관객의 발길이 끊기며 많은 예술가는 활동을 멈춰야 했고 생계유지를 위해 편의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라며 “국가는 문화 예술 노동을 불안정 일자리로 방치하고 있다. 예술인의 3분의 2가 프리랜서이며 예술 활동을 통한 1년 평균 수입은 1,300만 원 미만”이라고 예술 노동자들의 실태를 설명했다.

적야 사무처장은 현재 이뤄지고 있는 예술인 파견 사업과 매개 사업 등이 월 120만 원 정도에 불과한 저임금과 단기간 일자리라 이를 통해서는 문화예술인들이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시립 극단, 시립 무용단 공연의 상시적 운영을 통한 안정적 일자리 마련이 필요하다. 또 지역의 예술 향유와 접근성을 넓히고 예술가 일자리 확대를 위해 지자체별 구립극단, 마을 극단 등으로 안정적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생활임금 이상의 정규직, 적어도 장기 계약직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의지 없는 ‘일자리 정책’과 노골적인 ‘기업 지원’

단체들은 문재인 정부가 노골적으로 기업을 지원하면서도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해고금지조차 강제하지 않았고 비판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서 비정규직의 태반은 사실상 정부가 설립한 용역회사인 자회사로 편재됐고, 34만 명 고용이 목표였던 ‘사회서비스공단’은 사회서비스원으로 격하됐을 뿐더러 고작 2305명만을 고용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정부는 기간산업안정기금 40조 원, 금융시장완화프로그램 73조 원 등 총 200조 원에 달하는 기업지원금을 편성했다. ‘한국판 뉴딜’도 마찬가지다. 단체들은 “56조 원을 투자한다는 디지털 뉴딜은 그 어떤 양질의 일자리도 창출하지 못하는 규제 완화 정책이자 ‘디지털 삽질’일 뿐이다. 73조 원을 투자한다는 ‘한국판 그린뉴딜’에는 ‘그린’도 없다”라며 “온실가스 배출량 ‘넷 제로’를 위한 구체계획은 온데간데없이 현대차 그룹을 포함한 재벌지원 정책으로 채워져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문재인 정부의 산업구조조정은 현대중공업 정씨 일가, 대한항공 조씨 일가 등 총수일가를 위한 기간산업 특혜매각으로 점철돼 있다”라고 덧붙였다.

정용재 부위원장 역시 “많은 나라가 고용을 유지하고 일자리 늘리고 생계지원을 위해 막대한 공공재정을 투입하고 있으나 한국은 코로나19 위기극복을 위한 재정 지원이 OECD 국가 중 꼴찌”라며 반면 “재벌 대기업 살린다며 기업에 준 지원금은 고용유지와 소득 지원을 위해 지출된 금액의 무려 13배”라고 비판했다.

국가책임일자리 방향,
“주 30시간 노동제 통한 200만 개 일자리 창출”


고근형 사회변혁노동자당(변혁당) 국가책임일자리사업팀 팀장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주 52시간 과로 업종이 넘치는 한국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이뤄져야 한다며 “주 30시간 노동제를 통해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만 노동시간을 20~30시간으로 단축하면 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이들은 △OECD 평균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공공의료 확대, 보건의료 인력 OECD 수준으로의 확대 △돌봄·가사 노동자 등 필수노동자를 위한 실질적 대책 마련, 사회서비스원 건설로의 국가 책임 복지 실현 △공적자금투입 기간산업 국유화, 사회적 통제 △생태적 산업재편 위한 실제 계획 제출, 에너지 민영화 중단과 전략산업통합공기업 설립으로 에너지 노동자 총고용 보장, 신규일자리 창출 △재벌 부담의 전국민고용보험제도 실시 등 국가책임일자리 창출을 위한 여섯 가지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단체들은 국가책임 일자리를 요구하는 행동을 벌일 예정이다. 노동절인 오는 5월 1일에는 변혁당이 오후 1시 서울고용노동청 앞부터 행진을 벌인다. 같은 달 12일에는 올해 사내유보금 현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며, 6월 초에는 변혁당 등 공동주최로 국가책임일자리 운동 확대를 위한 토론회가 개최된다. 또 학생들의 순회투쟁을 비롯해 오는 7월에서 9월 사이 국가책임 일자리를 요구하는 1만인 선언과 9월 대행진이 예정돼 있다.

이날 기자회견은 교육노동자현장실천,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변혁당 국가책임일자리사업팀, 청년학생시국선언원탁회의 등 4개 단체가 주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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