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5.18 항쟁 주먹밥을 만들던 양동 노점상 할매들

[기고] 5.18기념조형물 속 노점상의 빈자리

  5.18 진상규명 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광주 양동 노점상들 [출처: 최인기]

5월이 되면 노점상 단체 회원을 둘러싸고 들려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광주민주화운동과 양동시장 근처 노점상 할매들 이야기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일원에서 전두환 군사정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의 실현을 요구하며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된다. 곽미순 씨는 당시 20살로 주먹밥을 만들어 나르던 사람 중 가장 어렸다고 한다. 부모님과 광주양동에서 장사를 했던 그녀는 현재 노점상단체 광주지역장을 맡고 있다. 그녀는 5월의 목격담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계엄군이 총을 들고 광주에 쫘악 깔렸어요. 금남로 일대에 총격전이 벌어져 사람이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왔지요. 그때만 해도 설마설마했지요. 그런데 진짜로 리어카에 시신을 싣고 사람들이 울고불고 정말 아비규환이었지요. 세상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양동시장 노점상들이 장사를 접고 달려갔어요. 처음엔 쌀을 거두다가 나중에는 없는 주머니 사정에 한푼 두푼 거두어 주먹밥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고 도청으로 날라 보냈지요. 누구든지 남자든 여자든, 사람만 보이기만 하면 무조건 다 죽이고 때리고 하니까. 나는 그게 너무 무서웠어요. 같은 사람끼리 죽이면 어떡해요….”

곽미순씨에 따르면 주먹밥을 만들어 주던 노점상들은 이제 백발이 다 되었지만 이영애, 나채순, 박금옥, 염길순, 오옥순, 강선자, 오판심 할매는 지금도 여전히 광주양동시장을 지키며 노점상을 하고 계신다고 전했다. 노점상 이영애씨 그날의 참상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광주의 노점상은 거리에서 음식과 먹을 것을 파니께 장사하던 옷차림으로 몸빼에 전대를 두르고 처음에는 팔던 것을 신속하게 챙겨 광주시민에게 나눠 줄 수 있었당께. 이사람 저사람 따로 없이 누군가 쌀을 갖다 놓으면 팔을 걷어 부치고 밥을 지어서 그냥 먹으면 팍팍 하닝께 소금 넣어서 주먹밥을 맹기러 가지고 김치쪼가지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냥 나눠 줬지라….”

  14일 서구청광장 [출처: 최인기]

5.18 당시 노점상 할매들은 어려서 한국전쟁을 겪어본 세대들이라 이러한 활동이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인의 곤봉에 맞아 피범벅이 된 사람을 보고 가만히 장사나 하며 앉아 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노점상들은 가진 게 없으니 맨몸으로 밥을 짓고 나르는 일에 솔선수범했으며 그러면 차에 탄 시민군들이 음식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고 전한다. 무장한 군인에 맞서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끝까지 항쟁에 참여했다.

그 후 1986년 광주 양동지역 노점상이 단속을 받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간 노점상 양연수씨는 당시를 회상한다.

“착착 알아서 다 하더라고. 교육이고 뭐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정신무장이 다 되어 있었어. 집회를 한번 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드세던지 구청이고 경찰이고 절절매더라니까 서울에서 ‘5.18광주민중항쟁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과 군사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집회가 열리면 이들은 새벽부터 버스를 대절해 명동성당에 모여 참석하고, 또 노점상 단속 현장도 찾아가 함께 연대하고 그러면 서울의 시민들이 환호해 주고 그러면 반가워 어쩔 줄을 모르고 이렇게 밤늦게까지 투쟁하다가 관광버스를 타고 다시 광주로 내려가 다음날 장사를 하고 그랬으니까.”

이미 5.18때 시민들과 함께 주먹밥을 만들어 싸워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 따로 교육이 필요 없었다고 한다. 그날을 기억하는 양동 노점상 할매들은 지금도 수십 년 동안 단체의 활동을 하면서 양동시장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얼마 전 곽미순 씨에 따르면 최근 5월 18일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만들어졌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노점상이 표기에서 싹 빠지고 그냥 상인이라고만 해서 아쉬워한다.

매년 서울에서 내려간 노점상들은 5월 18일 이 다가오면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기념행사를 치루고 양동시장을 찾아 그날의 이야기를 물어보고 함께 감동의 시간을 갖는다. 올해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광주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광주 양동 시장도 이제 시간이 흘러 노점상 할매들도 조금씩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덧없이 ‘양동시장 노점상할매와 주먹밥’이라는 전설적인 추억만 남기 채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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