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의 십자가

[연정의 바보같은사랑](135) 대구 일원 도시가스 검침·점검·AS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 이야기 ⑧

대구시와 경북 경산시·고령군 등에서 도시가스 검침·점검 업무와 AS기사 업무를 하고 있는 노동자 (공공운수노조 대구경북본부 대구지부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소속) 300여 명이 넉 달 째 도시가스 검침 기간 파업을 하고 있다. 연장근로수당과 차량유지비 지급, 노동조합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는 대성에너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에게 문제 해결 촉구를 요구하기 위해 진행한 6월 상경투쟁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 <필자주>


부촌 1번지 명당 중의 명당에 사시는 회장님

6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덕빌딩 대성홀딩스 앞에 도착하니 기자회견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대성에너지 노동자들이 보이지 않는다. 경찰들만 건물 주위를 배회한다. 김학순 부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이 출근을 안 하시네요. 우리 오늘 여기 계속 있어야 할 거 같아요.”


서울 성북동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 집 앞에서 아침 선전전을 하고 대성홀딩스로 넘어올 예정이었는데, 김영훈 회장이 출근하러 나오질 않아 대성홀딩스 일정을 취소하고 좀 더 기다려 보겠다고 한다. 10분 거리라는 말에 김영훈 회장 집 앞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삼청동을 지나자 계곡과 숲길이 이어진다. 김영훈 회장은 매일 이 길을 오가며 몸과 마음을 충전할 것이다. 선전전을 잘 마치고 대성에너지 노동자들과 잠시 이 좋은 숲길을 산책이라도 하면 좋겠다 싶다.

  서울 성북동 330번지 대 정상에 있는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 자택 [출처: 연정]

김영훈 회장 집 앞에 도착하니 입이 떡 벌어진다. 사진으로 보던 것과는 또 다르다. 일명 대한민국 ‘부촌 1번지’인 ‘성북동 330번지 대’ 정상에 있는 김영훈 회장 집은 북한산을 등지는 이른바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정남향이고, 창문을 열면 시원하고 청정한 산바람이 솔솔 들어올 터이다. 풍수지리가들이 명당 중에 명당이라 하는 이유를 알겠다. 풍수지리가들은 이곳을 권력과 재물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담장 높이만 10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김영훈 회장 집은 성 같기도 한, 말 그대로 대저택이다. 김영훈 회장은 이사를 나간 옆집까지 매입해서 연결하여 이곳에 집 두 채를 소유하고 있다. 이 두 채의 가격이 5~6년 전 시세로도 120~130억 원 상당이라고 한다.

김영훈 회장은 1947년 대구에 연탄 제조회사인 대성산업공사를 설립한 고(故) 김수근 대성그룹 창업회장의 셋째 아들이다. 김영훈 회장은 미국 하버드대에서 신학 공부를 하며 목회자의 길을 꿈꾸었던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알려져 있다. 전광훈 목사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세계 최대 감기교회인 금란교회 故 김홍도 목사가 김영훈 회장의 장인이다. 목사가 되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까. 특이하게도 김영훈 회장 집 담장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있다. 그 옆에는 붉은 장미와 나무가 있다. 담벼락은 담쟁이로 곱게 덮여있다. 이 공간을 관리하는 노동자의 노동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집이 얼마나 넓은지 담장을 따라 걷기만 했는데도 다리가 아프다.

대성에너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울에 올 때마다 대성에너지와 대성홀딩스,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 직원들이 늘 따라다녔다. 그런데 이날은 노동자들이 ‘기습적으로’ 시간을 변경하는 바람에 사측에서 아무도 오지 못했다. 대신에 경찰이 상주하며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있다.

  서울 성북동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 집 담장 위에 있는 십자가 [출처: 연정]

직원들한테 주는 건 너무 아까우신가 봐요

“우리도 처음 왔을 때 십자가가 너무 커서 깜짝 놀랐어요. 일반 가정집에 저렇게 안하거든요. 우리 같은 서민은 감히 밟아보지도 못할 그런 집 같아요. 그게 부모 잘 만난 덕도 있겠지만, 우리 검침원들하고 기사님들이 거기에 일조 했다고 생각해요. 회장님이 우리가 한만큼만, 우리가 손해보고 있는 만큼만 우리한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시했으면 좋겠어요.”


대구에서 10년 동안 도시가스 검침·점검 업무를 해온 전명주 씨(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부지회장)는 벌써 다섯 번째 이 집을 오는데 한 번도 회장을 마주친 적이 없다고 했다. 뒷문이 있는지 아니면 지하 통로가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대성홀딩스 역시 마찬가지다. 전명주 씨는 고객의 시간에 맞춰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 까지 주말 공휴일 없이 일 해왔다. 요금이 많이 나왔다고 욕을 하는 고객부터, 악수하자며 손을 쓰다듬거나 옷을 벗은 상태로 문을 여는 고객, 앞에서 버젓이 포르노를 보는 고객 등 각종 악성 진상 고객들을 견디며 최저임금을 받고 일해 온 세월이다.

“우리가 처음 서울 올라올 때 회장님한테 면담 요청을 했어요. 그래도 대성에너지 사장님은 ‘당신들은 우리 직원이 아니다’라고 답변이라도 했는데, 김영훈 회장님은 우리가 우스운 건지 아예 깡그리 생 무시를 하네요. 처음에 와서 집 보고 진짜 놀랐어요. 김영훈 회장님은 하나님한테 십일조 바치는 건 괜찮고, 우리 직원들한테 주는 건 너무 아까우신가 봐요. 직원들 이렇게 다 죽어 가는데 하나님한테 그렇게 갖다 바친다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 같지 않아요. 저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10년 동안 대구 인근 경북 경산에서 도시가스 검침·점검 업무를 해온 김학순 씨(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부지회장)는 김영훈 회장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고 했다. 대성에너지는 검침·점검 노동자들이 도시가스 검침 기간 동안 파업에 들어가자 대체 아르바이트 인력을 채용해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의 2배를 지급하기도 했다.

“회장이라는 분이 어느 정도 살 거라는 예상은 했으니까 그렇게 놀랍지는 않았는데, 옥상에 저 십자가가 참…크리스찬인데 그런 종교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 우리 노동자들한테는 이렇게 야박하고 야속하게 하는지…교회에 헌금도 낼 텐데, 그 돈을 내면서 우리들에 대해서는 무슨 생각을 할지….”


1996년에 입사해 25년 동안 대성에너지 도시가스 AS기사로 일해 온 신원철 씨(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부지회장)는 김영훈 회장이 노동자들의 요구를 듣기나 하는 건지 모르겠다며 못 만난 게 못내 아쉽다고 한다. 처음에는 개인사업자가 운영하는 회사에 소속되어 근무를 했는데, 2013년 대성에너지가 법인 회사로 바꾸면서 신원철 씨는 신입사원이 됐다. 25년 근무했지만, 뒤에 법인으로 근무한 기간만 경력으로 인정받는다.

“우리는 어차피 8년 차나 1년 차나 월급이 거의 비슷하니까요. 오히려 신입사원들이 주말 같은 때 근무를 하면 수당이 나오니까 더 많이 받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 세대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토요일이고 일요일이고 다 나가서 일을 했습니다. 개인 센터 있을 때는 나도 팀장을 하면서 거의 사측이었어요. 점검원들 갈구고, 다치면 그만두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개인 센터일 때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걸 다행히 후배들이 해주어서 저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서울 성북동 대성그룹 김영훈 회장 집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대성에너지 비정규직 노동자들 [출처: 연정]

시민의 안전을 지키게 해줘야 되잖아요

신원철 씨는 박봉에 일이 힘들어도 큰 건물이나 공장 등 특정시설 도시가스 안전 점검 업무를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근무를 해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자부심은 점점 깨졌다.

“내가 어떤 자격이나 경륜을 갖고 있거나 경험이 많은 게 무시되는 거예요. 회사는 단순히 일로만, 돈벌이 수단으로만 우리를 이용하는 거죠. 시민의 안전을 담보로 우리가 투쟁을 한다고 하는데, 시민의 안전을 지키게끔 해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업무 가지 수가 점점 늘어나요. 도시가스 고객 민원 업무만 하는 게 아니에요. 다양한 종류의 일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자꾸 업무에 치이게 되는 거죠. 심지어 채권 회수(미납 요금 회수) 업무 까지 해야 돼요. 그거 정말 하고 싶지 않아요. 대성에너지에서 채권팀을 만들어서 해야 하는 일인데,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거죠.”


매년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는 대성에너지의 장기 체납 세대 채권을 사온다. 각 센터마다 장기 체납 세대 미납 금액이 적게는 몇 억부터 많게는 10억 원 이상 되는 곳도 있다. 이 미납 요금을 AS기사노동자들과 검침·점검 노동자들이 직접 회수를 하러 다니고 차단 업무도 한다. 대성에너지는 채권을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에 떠넘겨 서비스센터에 적자 구조를 만들고, 대성에너지는 흑자를 늘려 배당금 잔치를 한다. 올해 대성에너지 주주총회에서 결정한 주주 배당 총액만 69억 원에 달한다. 서비스센터는 적자라며 노동자들에게 연장수당도 차량유지비도 줄 수 없다고 한다.

대성에너지는 AS기사들의 (민원)업무 처리 건수가 2020년 기준으로 하루 22.4건이라며 이들의 업무가 과중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도시가스 사용 계약·해지, 가스레인지 개통·철거, 고장 수리 등의 민원 업무를 하지 않는 기사들까지 민원 담당 인원으로 넣어 평균치를 낸 것이라며 반박한다. 실제로는 민원 업무 처리를 하는 기사들의 하루 업무량이 60~70건에 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주장이다.

“저는 현장에서 기사들 사고 나는 것도 많이 경험했어요. 그게 다 일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 매뉴얼대로 하고, 안전수칙 지키라고 하는데, 실제 현장에선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저는 업무 환경개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신원철 부지회장)


회사는 모든 사고 경비를 기사 개인 돈으로 처리하라고 했기 때문에 AS기사노동자들은 여기에 대비해 곗돈 붓듯이 다달이 돈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

대성에너지 노동자들은 결국 김영훈 회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선다. 경찰 말에 의하면 노동자들이 오전 7시에 왔는데, 이들이 도착하기 40분 전에 김영훈 회장이 나갔다고 한다. 그 말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대구에 가서 쉬고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하기에 아쉽지만 돌아가기로 한다. 근처 식당에서 늦은 아침밥을 먹고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4백일 가까이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의 중식 선전전에 함께 하기 위해 서울지방고용노동청으로 이동한다.

  아시아나케이오 농성장이 있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중식선전전을 하고 있는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간부들 [출처: 연정]

누군가 앞장서야 할 사람, 그게 나라면…

“저는 2년 전에 그만두려고 했어요. 센터장의 언어폭력과 갑질이 너무 심했어요. 급한 결제 받을 게 있으면 근무시간 전에 오게 하고, 차렷을 한 자세에서 몸이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결제를 안 해줘요. 기계도 고장이 나면 고쳐 쓰잖아요. 근데 여기는 사람이 아프면 무조건 퇴사하라고 해요. 기계도 고장이 나면 고쳐 쓰는데, 기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것도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하고 그만둘까 생각을 했었죠. 처음 노동조합을 만든다고 했을 때, 누군가 앞장서야 한다면 그게 나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시작을 했던 거죠.” (이상환, AS기사노동자)


AS기사로 12년 동안 일해 온 이상환 씨(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사무국장)는 노동조합 만들고 월급은 깎였지만 개선된 점들이 많다고 했다. 무급병가라도 쓸 수 있게 됐고, 직장 내 갑질도 줄어들었다. 예전엔 회사 마음대로 하던 일들이 노동조합의 의견을 물어보고 진행되기도 한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투쟁에 기꺼이 십자가를 진 이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들이다. 이상환 씨는 이런 게 노동조합의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도와주는 분들도 많고 더 열심히 해서 노동자 권리를 찾고 싶다고 했다.

파업투쟁을 하면서 대성에너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존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투쟁, 경주시청 연대투쟁, 경북 칠곡 쿠팡 선전전 등에 이어 서울 아시아나케이오 까지 연대투쟁을 오게 됐다.

  각자의 투쟁 상황 공유를 하고 있는 최규태 지회장(왼쪽)과 김계월 지부장) [출처: 연정]

대성에너지서비스센터지회 최규태 지회장과 아시아나케이오지부 김계월 지부장이 피켓팅을 하며 서로의 투쟁 상황을 공유한다. 저녁 주말 휴일 다 일해도 최저임금도 안 되고, 일하다 다쳐도 산재처리는커녕 퇴사를 종용하는 대성에너지. 역시 다르지 않은 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해고되어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다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으나 해고기간 임금도 안주고 김앤장 변호사를 수임하여 행정소송을 하고 있는 아시아나 케이오. 할 말이 많다. 아시아나케이오의 100% 지분을 갖고 있는 아시아나케이오 해고노동자들의 진짜 사장인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 박삼구 이사장은 얼마 전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로 구속되었다.

  아시아나케이오 중식선전전을 마치고 대성에너지와 아시아나케이오 노동자들이 함께 찍은 단체사진 [출처: 공공운수노조 대구경북본부 대구지부]

대성에너지 노동자들은 “그래도 우린 일도 하고, 작지만 월급을 받고 있다”며 해고노동자들을 볼 때마다 많이 안쓰럽다고 했다. 중식 선전전이 끝나고 마음을 담은 투쟁기금 봉투도 전달한다. 멀리서 온 노동자들이 고맙고 애잔한 김계월 지부장은 잠깐 앉아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한다. 갈 길이 먼 대성에너지 노동자들이 마신 거나 다름없다며 차에 오른다.

‘부촌 1번지 성북동 330번지 대’ 대저택 하늘을 향해 걸려있는 회장님의 십자가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는 땅으로 내려와 이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손 내밀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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