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 X 차별금지 O

[리아의 서랍]


1.
능력주의와 공정 담론을 지켜보면서 너무나 의아한 부분이 있다. 뭐가 그렇게 자신 있을까? ‘능력’을 무엇으로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도 의문이지만, 정말 철저하게 ‘능력’을 측정해 1등부터 꼴등까지 우열을 가리는 일이 가능해진다면 본인이 어떤 자리로 재배치될지 몰라서 저러는 걸까?

능력 있는 사람이 없는 사람보다 잘사는 게 당연하다고 믿는 가치관은 인류의 자기객관화 부족에서 비롯된 착각이다. 당신은 공정하게 매겨진 개개인의 차등에 승복할 수 있겠는가? 피나는 노력 끝에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 마침내 이 자리까지 온 우리는 평범하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췄지만 황당하고 부당한 이유로 저평가되거나 뒤 순번으로 밀렸을 뿐인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그들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내가 운 좋게 얻었던 것들을 잃게 돼도 좋은가?

나는 싫다. 무슨 기준으로든 괜히 급을 나누지 말자고, 차별 없는 평등 사회 만들자고 하는 편이 좋다. 누구도 누구보다 ‘못한 취급’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것만이 고만고만한 우리네 인생이 살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불안하고 어려운 동료 시민에게 능력주의 대신 평등 운동을 권하고 싶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함께하자. 특히 요새 주목받고 있는 남성차별!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문제로, 고용, 교육, 재화・용역, 행정서비스 네 개의 공적 영역에서 성별에 따라 차별하는 행위를 제재하는 차별금지법이 해답이다.

2.
차별 금지를 반대하는 쪽의 입장은 다음의 세 주장 사이를 오간다. 첫째, “0차별은 없다.” 둘째, “0차별은 자연스럽다.” 셋째, “0차별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00이/가 아닌 집단에 피해를 준다.” 상대가 아무리 현란한 미사여구를 갖다 붙인다 해도 알맹이를 추려보면 거의 비슷한 소리다.

차별금지법이 항목화한 00에는 성별, 장애, 나이, 언어, 출신 국가, 출신 민족, 인종, 국적, 피부색, 출신 지역, 신체조건, 혼인 여부, 임신·출산, 가족 가구 형태와 상황,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학력, 고용 형태, 병력 또는 건강, 사회적 신분 등이 있는데, 나 같은 페미니스트들은 여기서 주로 “충격! 성차별 진짜 있음!”부터 설명을 시작하는 일을 맡고 있다.

“성차별은 없다”라는 첫 번째 주장은 아마 이런 형태로 꾸며져 던져질 것이다. “성차별은 윗세대 얘기다. 지금 남녀차별 같은 게 어디 있느냐. 이미 성평등은 이루어졌다.”

성차별은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지 34년이 지난 2021년인 오늘날까지도 동아제약 채용 성차별 사건과 같은 취업 과정에서의 여성 배제 행태는 멈추지 않고 있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1994년 이후 ‘여성의 정조’에 관한 죄가 사람에 대한 폭력을 다루는 죄로 변한 지 오래지만, 2021년의 여성 피해자들은 가해자는 남자, 피해자는 여자인 경향이 압도적인 현실 속에서 여전히 ‘정조가 더럽혀진’ 여자라는 유구한 편견과 싸우고 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1위인 나라고, 서울시 직장인 10명 중 8명은 직장생활 중 성차별적인 언행을 경험하며, 맞벌이 가구임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하루 평균 2시간 13분 더 많이 가사노동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어떤 사람에 대한 대우가 성별에 따라 현저하게 차이 나는 사례는 지면이 부족해 나열하지 못할 만큼 사방에 널렸다. 여자는 이래야 하고 남자는 저래야 한다는 근거 없는 성별 고정관념 자체가 어찌나 탄탄하고 건재한지 모른다.

두 번째 주장, “성차별은 자연스럽다”는 이 탄탄한 기반을 딛고 이어진다. 성차별이 있는 건 알겠지만, 그래서 뭐? 라는 거다. 남녀의 특성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게 자연스럽다, 여자는 사냥 활동을 하는 남자의 보조적 역할을 하도록 진화했다는 식의 유사 과학이 등장하는 지점도 여기다. 이런 주장은 남성에 의한 여성 폭력 문제를 일컬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약한 여성이 폭력을 당하는 게 당연하다는 쪽으로 흐르기도 한다.

남녀 간의 신체적 차이가 실제로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신체적으로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을 해치기 수월하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는 가치 판단은 단순한 사실에서 도출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군사력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침공하는 게 당연한 일인지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쉽다.

심지어 여성 대상 폭력 문제를 남성 특유의 ‘공격성’, ‘성욕’ 탓으로 돌리려는 의견도 있는데, 나는 이렇게 남자들을 싸잡아 가해자화 하는 논리에 반대한다. 만약 이 가설이 사실이라면,
우리 사회는 가해자성을 타고나는 남성 집단 전체를 철저하게 규율해야만 할 것이다. 모든 남자가 그렇지 않다면, 평화를 사랑하는 선량하고 무고한 남성들이 있다면 너무 억울한 일 아닌가.

똑같은 사람은 없다. 남자라고 다 ‘남자답지’ 않은 것처럼 여자도 각자 다르다. 그리고 그 개인 간의 격차는 남성 집단과 여성 집단 간의 격차라고 여겨지는 틈새보다 훨씬 클 수 있다. 남자 1보다 사냥을 잘하는 여자 2가 있을 수 있고, 여자 2보다 육아를 잘하는 남자 3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다양성을 품고 태어난 동물 종으로, 몸에서 비롯된 특질과 사회문화적 요인이 뒤섞여 사람으로 구성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들의 차이와 그 차이에 따라붙은 차별적인 문화적 의미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다.”

드디어 마지막이다. 세 번째 주장, “00차별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00이 아닌 집단에 피해를 준다”를 살펴보자. 듣고 보니 성평등도 나쁘진 않을 것 같지만, 평등해지는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다. 많은 함의를 가진 큰 주장이지만, 일단은 꾸준히 자주 들리는 여성할당제 얘기 정도만 짚고 넘어가겠다.

만약 어떤 조치로 ‘피해’ 입는 집단이 생긴다면 그 내용을 시정하는 게 맞다. 그러나 지금은 피해의 정체조차 명확하지 않다. 애초에 왜 여성 할당제가 생겼는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여성 할당제가 있으나 없으나 일반 남성들의 구직 상황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것이다. 여성을 채용하도록 법적으로 강제하는 할당 제도는 의외로 없다. 민간 기업 일반 채용과는 아예 해당 사항이 없고, 특정 성별의 선발 예정 인원을 30% 이상으로 맞추는 공무원 양성평등채용 목표제도 또한 현재는 남성할당제로 기능하고 있다.

그 밖에도, 여성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 정책들이 마치 남성에게 손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처럼 회자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술인 대상 지원 정책은 회사원을 피해자로 만드는가? 농촌 대상 지원 정책은 도시 사람들이 역차별받고 있음을 뜻하는가? 여성 집단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분명히 있고, 특정한 지원이 필요할 때가 있다. 정책을 설계하는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 긴 설명을 구구절절할 필요 없는 세상으로 향하는 길목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있다. 나는 세 개의 주장 밖으로 나가고 싶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