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후 운동이 더딘 이유

[녹색 스트라이크]


기후 운동을 하다 보니 심심찮게 듣게 되는 소리가 있다. 한국인의 기후 의식이 낮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은 종종 급진적이고 활발한 해외 기후 운동에 비해 한국 기후 운동이 뒤떨어진다는 이유로 지목되기도 한다. 한국 기후 운동의 발전이 더디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한국인의 기후 의식이 낮다는 판단은 동의하기 어렵다.

지난해 봄 코로나19 감염병이 한국을 덮쳤을 때,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한국 시민 84.6%가 코로나19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기후변화라는 지적에 동의했다. 역시 지난해 봄 총선을 앞두고 그린피스가 진행한 ‘기후 위기에 대한 유권자 인식 조사’에서는 84.9%의 응답자가 총선에서 기후 위기가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응답했다. 또 유권자의 77%는 기후 위기 대응 공약을 한 정당이나 후보에 투표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 자체를 부정하는 인구가 절반에 육박하는 미국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기후 인식이다.

이런 결과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국제여론조사네트워크 윈(WIN)이 34개국 3만 명의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한 기후 위기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구온난화가 인류에 심각한 위협인가라는 문항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34개국 평균 85%였던 것에 비해 한국은 94%였다. 또한 개인의 행동으로 문제 극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응답은 세계 평균 81%였고, 한국인은 71%였다. 반면 세계 평균 67%보다 훨씬 높은 86%의 한국인은 개인보다 기업과 정부가 더 큰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세계 평균 66%보다 높은 81%의 한국인이 자신의 행동이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결과를 두고 <한겨레신문>은 “한국인 기후 위기 인식 선두”라는 제목을 뽑기도 했다.

물론 설문 조사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가변적인 생각을 (그것도 불완전하게) 측정할 수 있을 뿐, 설문 결과와 실제 행동이 모순되는 경우는 쉽게 발견된다. 설문 문항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결과도 상당 부분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설문 결과들이 한국인의 기후 인식 수준이 절대 낮지 않음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런 높은 기후 위기 인식이 어떤 방향성을 띠는지 혹은 어떤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다.

6월 초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발표한 ‘국민 환경 의식조사’는 여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높은 수준의 기후환경 의식을 보여줬다. 과반의 응답자는 친환경적인 행위를 하지 않았을 때 죄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환경 보전 책임 주체로는 ‘일반 국민(37.5%)’, ‘중앙정부(30.9%)’ 순으로 꼽았는데, 기후변화 대응에 기업 또는 정부가 더 노력한다면 나도 노력하겠다는 의견을 밝힌 응답자가 80% 가까이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응답자 10명 7명이 우리나라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로 쓰레기(폐기물) 처리 문제를 꼽았다는 점이다. 대기오염과 미세먼지(61.7%),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55.1%)가 그 뒤를 이었다.

결과들을 종합해보자. 한국인은 대체로 환경과 기후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에 동의하고 있으며 자신을 변화의 주체로 여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는 편이다. 자신의 행동이 부족하다고 여기기도 하고 이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는 시민도 많다. 개인은 이처럼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부나 기업이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도 상당하다. 자신이 아무리 열심히 실천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아 기후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례도 많아지고 있다. 그런데 많은 시민은 기후 위기를 플라스틱이나 쓰레기 문제를 통해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도 텀블러 사용, 분리수거, 일회용기 덜 쓰기나 전기 사용 줄이기 등 지극히 개인적인 실천으로 제한하는 경향이 강하다. 왜 이렇게 됐을까?

삶의 경험을 통해 직접적으로 느끼는 부분이 큰 탓도 있겠지만, 마치 플라스틱이나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면 기후 위기도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정부 캠페인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실제 환경부는 여러 차례 SNS를 통해 탈 플라스틱 챌린지를 했다. 지구의 날이었던 4월 22일에는 ‘기후변화주간’을 선포하며 “바로 지금, 나부터! 2050 탄소 중립”이라는 슬로건 아래 전기절약, 탈 플라스틱, 대중교통과 전기·수소차 사용, 재활용, 나무 심기 등의 ‘기후 행동’을 홍보했다. 이러한 캠페인에 지자체와 기업들도 합세해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해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는 홍보가 홍수를 이루고 있다. 심지어 한국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가장 많이 하는 기업이자 잦은 산업재해 등으로 지탄을 받는 포스코 최정우 회장까지 지자체의 ‘고고 챌린지’에 참여해 일회용기 사용을 줄여 탄소배출을 줄이겠다고 나선다.

개인적 실천이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실천이 어떤 계획 속에서 배치되느냐의 문제는 중요하다. 지금처럼 플라스틱 제품이나 용기를 마음대로 생산하고 유통하는 경제구조를 유지하면서 시민들에게 탈 플라스틱 실천을 요구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이나 부으라는 것과 다름없다. 시민에게는 개인적 실천을 요청하면서 기업에는 산업 전환이니 재생 에너지 확대니, R&D니 하면서 각종 사업권과 이득을 챙겨주고 있는데, 이는 기업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시민에게 불편을 감내하라는 이야기밖에 안 된다. 이 와중에 국내외 석탄발전소는 계속 건설되고, 가덕도, 제주도, 새만금 등에서의 신공항과 새로운 산업단지를 비롯해 기업의 배를 불리고 엄청난 온실가스를 배출할 토건 개발 프로젝트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한국의 탄소 중립 전략의 근간에는 정부가 계획을 세우고 기업이 그 계획을 집행하며 시민이 이들의 하위 파트너로서 일상에서의 ‘친환경 실천’을 통해 정부와 기업의 실천을 측면 지원하는 역할분담 체계가 있다. 철저히 위로부터 내려오는 이 체계에서 시민은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문제는 기후 위기가 개인의 실천을 넘어 산업과 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라는 의식이 있는 기후환경 단체 중에도 이와 같은 하위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들은 ‘시민사회’의 이름을 걸고 거버넌스 기구에 참여하고 중앙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다양한 사업을 외주 받아 수행한다. 작은 단체들은 정부나 정부 지원으로 운영되는 거버넌스 기구의 사업 공모를 통해 정부 캠페인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이런 위계적 구조에 익숙해지다 보니 많은 기후 활동가들은 기후 위기가 개인의 실천을 넘어서는 구조의 문제라 말은 하면서도 정부가 만들어놓은 판 안에서 그들을 별로 신경 쓰지도 않는 이들과 밀당을 하려 한다. 그 판 자체가 구조적 문제들을 재생산하고 있는데도 판을 깨야 한다는 생각은 없다. 현장에서 직접 시민을 만나 무언가를 도모해야 하는데 이건 주로 일회성 강연들로 대체된다. 열심히 활동은 하는데 성과는 보이지 않아 힘들어한다. 그러면서 시민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아쉬워한다. 이렇게 활동가들조차 정부 프레임에 갇혀 혼란을 겪고, 의식과 실천의 괴리를 경험한다. 상황이 이럴진대 우리는 한국 기후 운동이 더딘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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