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점령은 탈레반 못지않게 나빴다

[이슈3] 아프간 20년 전쟁, 알리바이 여성 해방과 아프간 민중의 고통

차례

① 미국의 점령은 탈레반 못지않게 나빴다
② 아프간의 여성과 소수자, 그들의 이름은 어디에 있나요?
③ “아프간 여성들은 더 이상 족쇄에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④ 아프간 국가인권위원회를 지키기 위한 한국의 역할


2012년 아프가니스탄 남서부 헬만드에 파견된 미 육군 조지 버클리(Gregory Buckley)의 아버지는 아들과의 마지막 통화를 똑똑히 기억한다. 조지는 아프간 경찰이 기지에 데려온 소녀, 소년을 성적으로 학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괴로워했다. 그러나 상관은 이에 개입해선 안 된다고 명령했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지는 사르와르 얀이라는 이름의 아프간 경찰 장교와 함께 17세 소년이 쏜 라이플총에 맞아 사망했다. 얀은 아동 납치, 탈레반 지원, 비리를 이유로 2010년 아프간 당국에 체포된 바 있으나 불과 2년 뒤 조지가 일했던 기지로 복직했다.

또 다른 특수부대 대위인 댄 퀸(Dan Quinn)은 미군이 지원하는 아프간 민병대 장교가 자신의 침대에 한 소년을 묶고 성노예로 삼은 것을 알게 된 뒤 그를 구타했다가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면직 처분됐다. 댄 퀸 대위는 〈뉴욕타임스〉1)에 “우리가 여기에 온 이유는 탈레반이 저지른 끔찍한 일들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 장로들은 우리가 탈레반이 했던 것보다 더 나쁜 일을 할 사람들을 권좌에 앉히고 있다고 말했다”라고 밝혔다. 2014년 아프간의 유엔지원대표부는 “아프간 현지 경찰의 무차별 학대가 일부 지역에서 탈레반에 대한 지지를 증가시킨 것으로 보인다”라며 “탈레반을 점점 덜 악한 존재로 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탈레반은 미국이 9.11 20주년을 앞두고 철수를 시작한 지 몇 주 만에 아프간을 다시 점령했다.

최근 탈레반을 피해 탈출을 시도하는 아프간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매일 절박한 사연이 타전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프간에서 20년 전부터 되풀이되고 있는 비극의 가장 최신 장면일 뿐이다.

2001년 9.11 사건 직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오사마 빈 라덴을 위시한 알카에다를 사건의 주동자로 지목하고 탈레반이 이들을 비호하고 있다며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전쟁의 목표는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고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며 민주 공화국을 수립하는 것이었다. 서구의 일부 여성단체들은 이 같은 전쟁을 ‘여성을 위한 십자군 전쟁’이라며 환호했다. 전쟁 2개월 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로라 부시도 “최근 우리 군의 선전 덕분에, 수많은 아프간 여성들이 더 이상 집에 구속돼 있지 않게 됐다”라고 축하했다. 그러나 아프간 페미니스트들은 처음부터 이 전쟁을 반대했다. 아프간에 첫 번째 폭탄을 투하한 지 3주 뒤, 혁명적아프가니스탄여성연합(RAWA) 대표는 미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많은 아프간인들은 미국이 우리 국가와 민간인을 침략하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정치 상황은 훨씬 더 위태로워졌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이것이 여성과는 상관없는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단적으로 2019년 기준,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7780억 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했는데, 이는 여성의 권리를 지원하기 위해 지출한 비용의 약 1천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2) 지난 3월 RAWA 역시 미국이 “민주주의, 여성의 권리와 조국의 독립과 진보”를 가로막는다고 규탄하며 아프간 여성들은 그 어떤 외국의 점령자에게도 의존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미 정부의 이러한 배신”에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큰 대가를 치렀지만, 우리는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여성의 권리, 그리고 아프간을 포함한 그 어느 나라의 진보도 명백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3)라고 선언했다.

미국이 후원한 탈레반과 꼭두각시 정권

미국과 20년 동안 전쟁을 치른 탈레반은 사실 미국의 발명품이었다. 파슈툰어로 ‘학생’이라는 의미의 탈레반은 파키스탄 이슬람 정치 세력이 아프간 난민들을 상대로 운영하던 신학교에서 생겨나 미국의 자금으로 성장했다. 1980년대 냉전 시절 미국이 소련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친소 정권에 반발하던 아프간 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세력 무자헤딘에 막대한 자금과 무기를 대며 개입하고 있던 때였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자 아프간에선 무자헤딘 세력 간의 내전이 벌어졌고, 탈레반은 아프간 남서부에서 영향력을 빠르게 확장하며 주도권을 쥐었다. 결국 탈레반은 1994년 아프간 주요 도시 칸다하르 장악에 이어 1996년 9월에는 카불을 점령했다. 전국을 장악한 탈레반은 여성과 성소수자, 소수 종교를 잔인하게 박해했다.

  2013년 2월 아프간 어린 소녀들이 한 난민 캠프에 모여있다. [출처: 미 해군(https://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War_in_Afghanistan_(2001%E2%80%9314)#/media/File:130209-N-IE116-052_(8467894833).jpg)]

그러나 탈레반은 미국에 저항보다는 타협을 원했다. 미국이 탈레반에 오사마 빈 라덴의 신병을 요구하자 탈레반은 그가 9.11 사태와 관련된다는 증거를 원했고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탈레반은 또 빈 라덴을 중립국에 넘겨 재판을 받도록 하자고 미국에 여러 번 제안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이 또한 무시했고, 대신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인 집속탄 투하를 포함해 잔혹한 공격을 감행했다. 이번에도 미국은 작전 초기 단계에서 ‘북부동맹’으로 알려진 반 탈레반 단체를 조직하고 무장시켰다. 전후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아프간 권력 구조를 쌓았다. 미국이 아프간을 점령한 뒤 탈레반은 항복의 대가로 아프간 권력 구조에 낮은 수준에서 재통합되길 원한다고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 또한 거절했다.

표면상 미국은 전쟁의 명분으로 아프간 여성의 권리와 민주화를 내세웠다. 하지만 미국에 중요한 것은 애초 지정학적 이해였다. 미국은 1998년부터 탈레반이 유노칼이라는 미국 에너지 회사와 손잡고 추진한 가스파이프라인(TAPI) 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이 사업은 인근 유전지대인 카스피해의 석유와 가스에 통제권을 확보하고 이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파키스탄과 인도로 수송하는 파이프라인 건설 사업이다. 이는 지역 내 최대 규모의 에너지 프로젝트로 이란이나 중국을 따돌릴 수 있는 사업이었다. 또 중국이나 이란을 상대로 지역 내 영향력을 정비하는 일 역시 미국에 중요한 문제였다.

미국은 아프간 전에서 승리한 후 한국4)을 비롯해 세계 40여 개국의 지원을 받으며 현지에 꼭두각시 정부를 세워 깊숙이 개입했다. 아프간 신정부는 CIA가 훈련한 옛 관료들과 우익, 미군이 훈련한 북부동맹5)이 차지했다. 그들의 민주주의는 아프간 특권층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됐다. 군대 역시 부패가 만연했다. 대표적으로 2019년 3월과 5월 사이 미국이 병력집계를 지휘관의 보고가 아닌 생체 인식으로 전환하면서 4만2천 명의 ‘유령 군인’이 발생했다. 이 수치는 부패한 상급자들이 급여를 빼돌리기 위해 부풀린 군인의 수였다. 2012년에 이미 아프간은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 지수’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그 사이 아프간 사회의 민주주의는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정치 활동이 보장됐지만 전시에 정치 활동을 하기는 어려웠다. 야권이나 진보정당은 탄압을 받았다. 파업권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조직된 파업은 드물었다. 언론의 자유도 형식적이었을 뿐 실제로 자유로운 언론과 출판의 기회가 보장되지 않았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자본에 의존하는 사회 기반이 만들어졌다. 그 속에서 아프간 사회의 양극화는 극단으로 벌어졌다. 현재는 아프간인의 90%가 빈곤선 아래에 살고 있을 만큼 심각한 상황이다. 2010년에 이 수치는 80%였다.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아프간 시민들. [출처: DemocracyNow!]

미군의 점령 기간 아프간 여성의 지위도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신정부가 만든 2004년 헌법에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특정 조항과 여성 정치인 할당 비율이 포함됐다. 여성은 군대와 경찰에 입대하거나 의사, 판사, 검사 등 요직에도 진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프간 특권층을 제외하면 극소수의 여성만 이러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아프간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모 사망률을 보이는 국가 중 하나로, 여성의 약 90%가 일생 동안 학대를 경험한다고 답했다. 사법제도 역시 강간, 구타, 강제 결혼, 여성의 재산 취득 제한, 등교 금지의 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6)

미국의 점령은 탈레반 못지않게 나빴다

미국은 한편에선 끔찍한 전쟁 범죄를 자행했다. 탈레반은 미국의 대대적인 화력에 6개월도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지만 점차 지역을 중심으로 다시 세를 늘렸다. 미국은 이 같은 탈레반을 제어하기 위해 철군 일정을 계속 미루며 악명 높은 전투와 보안 작전을 실시했다. 미국에 우호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조차 미군과 동맹국들의 잔학행위가 침공 초기부터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연합군은 탈레반을 검거한다는 이유로 무고한 마을 사람들과 아이들을 체포하거나 위협하고 구타, 모욕, 살해했으며 재산을 강탈했다. 심지어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병원이나 결혼식 파티에 폭탄을 투하해 수많은 민간인을 살해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탈레반을 겨냥한 조치로 정당화됐다.

탈레반 포로에 대한 충격적인 고문 사건도 되풀이됐다. 관타나모에 수감된 아프간 포로의 고환을 구타하거나 단식 투쟁을 한 수감자들에게 강제 급식을 실시해 만성 치질과 항문 균열 증상을 포함한 직장 탈출증을 야기했다. 국제형사재판소는 2017년 미군과 CIA가 아프간 수감자들에게 “고문, 학대, 개인의 존엄성 침해, 강간 및 성폭력을 저질렀다”라는 증거를 제시하며 기소했다.

미국은 심지어 아프간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드론 폭탄을 투하했다. 드론 폭탄으로 탈레반 조직원 1명이 사살될 때마다 평균 6명의 민간인이 함께 목숨을 잃었다. 아프간 정부조차 반대한 야간 비밀 작전에선 15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이는 미군이나 연합군의 실수 때문만이 아니었다. 일부는 재미 삼아 고문이나 살인을 저질렀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전쟁범죄로 기소되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육군 장교 2명 등 3명을 2019년 11월 사면 조치했다. 연합군도 극악무도한 전쟁범죄를 빈번하게 일으켰다. 호주 국방부는 2009~2013년 사이에 포로, 농민 등 민간인을 살해한 혐의로 19명의 전·현직 특수부대원들을 기소했다. 조사에 따르면, 호주군은 ‘피 흘리기(blooding)’라는 훈련의 일환으로 포로를 쏴 살해했고,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시신 근처에 무기 등 물품을 심었다. 이 부대원들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무엇을 했든 미국과 영국이 훨씬 더 나빴다. 연합 특수부대가 미국 특수부대의 가학적인 문화를 흡수했다”7)고 말했다.

아프간 여성과 청년들의 목숨 건 투쟁

  탈레반 반대 시위 장면 [출처: 알자리자 화면캡처]

결국 아프간 민간인들에게 전쟁범죄와 부패, 극심한 빈곤을 안겨준 미군과 나토 그리고 그들의 정부는 탈레반보다 나을 게 없었다. 더구나 끼니와 일자리를 찾는 많은 아프간 청년이 탈레반으로 빠져들었다. 아프간군으로도 수많은 청년이 입대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민중을 향해 싸울 의지가 없었다. 미국은 결국 탈레반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트럼프 시절 탈레반과 협상해 5천명에 가까운 조직원을 석방하며 탈레반의 전세를 강화해줬다. 대신 탈레반은 가스파이프라인 사업은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과적으로 지난 20년간 최대 15만 명까지 배치됐던 미국과 연합국은 수많은 희생자를 뒤로하고 철수했다. 특히 미군과 연합군은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연평균 582명의 민간인을 살해했으며, 이 수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1100명 이상으로 늘었다. 2016년 이후 공습 사상자의 40%는 어린이였다.8)9)

한편, 미국은 지난 20년간 아프간 침략과 점령을 위해 2조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이 돈은 철군당시미군보다 7배가 많은 민간군계약업체를 포함해 무장, 공급, 장비 및 건설 등 다양한 기업으로 흘러갔다. 또한 미국 정부가 전쟁을 치르기 위해 빌린 차입금은 미국 공공부채 다수를 소유하고 있는 자본가들을 더욱 살찌웠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전쟁 차입금으로 지불한 이자는 5천억 달러에 이른다.10) 그런데도 미국은 질서 있는 철군을 할 능력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미국 전쟁광들은 탈레반의 인권 침해를 지적하며 미군이 아프간에 다시 돌아가기를 바라고 있다.

이제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아프간은 또 다른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거리로 나온 여성과 청년들이 탈레반에 맞서는 용기를 보이며 다른 질서를 세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프간에서 가장 오래된 페미니스트 단체 ‘RAWA’는 8월 21일 입장을 내고 “여성들은 더 이상 족쇄에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 저항을 계속하고 세속적인 민주주의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들은 또 세계 민중에게 “정부의 전쟁 정책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항의하고, 이 야만인들에 반대하는 아프간 민중의 투쟁을 강화할 수 있도록 지지하길 원한다”라고 덧붙였다.

1) https://www.nytimes.com/2015/09/21/ world/asia/us-soldiers-told-to-ignore- afghan-allies-abuse-of-boys.html
2) https://www.thenation.com/article/ world/afghanistan-feminist-foreign-policy/
3) http://www.rawa.org/rawa/2021/03/08/ let-us-no-longer-mourn-but-make-the- enemy-weep.html
4) 한국은 2010년 5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아프간 재건 지원단(오쉬노 부대)을 파병했다.
5) 구 무자헤딘 세력으로 탈레반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목적으로 결성된 아프가니스탄의 정치·군사 조직.
6) https://www.bloomberg.com/news/ articles/2021-08-18/the-up-and-down- history-of-afghan-women-s-rights- quicktake
7) https://www.theguardian.com/australia- news/2021/jun/02/how-the-good-war- went-bad-elite-soldiers-from-australia-uk- and-us-face-a-reckoning
8) https://www.aljazeera.com/ news/2021/5/7/afghanistan-nearly-1600- children-killed-in-the-past-five-years
9) 미국 브라운대학의 왓슨연구소가 집계한 통계에 따르면, 2001년부터 2020년까지
미군 2500명을 포함해 연합군은 3500명이 사망했으며, 아프간군은 6만6천 명, 민간인은 7만8천 명 사망했다. 탈레반 측에선 8만4천 명 등 모두 17만 명이 사망했다. 사망자의 수는 전선이 확대된 파키스탄까지 포함하면 24만 명이 넘는다.
10) https://www.jacobinmag.com/2021/08/ afghanistan-war-united-states-biden- administration-taliban-military

[참고]
http://www.rawa.org/rawa/2021/08/21/ rawa-responds-to-the-taliban- takeover.html
https://www.jacobinmag.com/2021/08/ afghanistan-war-taliban-us-military-war- crimes-human-rights
https://www.jacobinmag.com/2021/08/ afghanistan-war-joe-biden-taliban- pakistan-refugee-crisis
https://www.jacobinmag.com/2021/08/ afghanistan-war-united-states-biden- administration-taliban-mili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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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정령군 치하에서 아프간인들의 사정은 탈레반 치하 못지 않게가 아니라 탈레반 치하보다 훨씬 더 참혹했습니다. 탈레반이 마치 악의 기준인 것처럼 악마화하는 것은 참된 실상을 보도하는 기자의 본분에 걸맞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