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한 노동전환에 가려진 함정

[요즘 경제] 산업재편과 사회적 대화


정부는 8월 22일 열린 뉴딜관계장관회의에서 산업구조 변화 대응을 위한 내연차, 석탄발전 분야 10만 명의 직무 전환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대략적인 내용은 기업에는 선제적 사업재편을 위한 지원, 근로자에게는 공정한 노동전환 지원, 전환될 산업이 집중된 지역에는 대체 산업 유치로 압축된다. 기업에 제공되는 선제적 사업재편의 주된 내용은 늘 언급되는 기술개발, 세금, 자금지원 외에 노사협력지원이라는 것이 들어가 있다. 이는 인력구조조정에 대한 노사합의를 달리 포장한 말이다. 그래서 여기에 소위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개입된다.

그러나 지난 4년간 노사정 대화라는 것이 신뢰를 상실한 채 정부 정책의 병풍 역할만 했던 터라, 과연 여기서 ‘공정한’ 노동 전환을 이룰 수 있을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왜냐하면 ‘공정’이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갖다 붙이면 노사가 뭔가 하나씩 양보해 타협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벌써 사용자 단체를 대변하는 보수 경제일간지는 노동 전환보다 시급한 게 노동 개혁이라고 주장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대체 근로 허용, 임금체계 개편(직무급제) 등을 언급하며 기존 노사 갈등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다. 사회적 대화에서 노조가 양보할 목록을 미리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배경엔 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자하고 있는 ‘디지털-그린 경제’와 산업재편이라는 화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라는 ‘노사정 합의’의 틀이 또다시 악용되고 있다. ‘디지털(반도체)-그린(전기차) 경제’의 축을 담당하는 기업이 바로 삼성과 현대를 비롯한 10대 재벌이다. 그들의 산업재편 전략에 노동이 빠질 수 없다. 리모델링한 공장과 새로 깐 컨베이어 벨트에도 여전히 노동자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재생산과 계급대립

한국경제 취약요소였던 자영업 구조조정은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인해 강제 정리되고 있다. 이와 반대로 제조업 부문의 매출과 이익은 급증했다. 재택근무가 늘고 사회적 이동이 줄면서 전 세계적으로 가전 및 내구재 수요가 폭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대면 서비스업의 증가와 미국의 대대적인 산업정책의 부흥 등으로 IT 산업을 필두로 한 제2의 부흥을 꿈꾸고 있다. 한편 기후 위기 대응에 대한 탄소중립정책의 국제적 확산은 새로운 글로벌 경제 규범의 틀로 자리 잡으며 세계적인 산업정책의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이런 산업재편은 어찌 보면 지구적 차원의 자본의 재생산의 거대한 흐름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전환은 교과서식의 자연스러운 수요 공급의 변화로 치환되지 않는다. 기존의 수요가 줄고 새로운 수요가 늘어나는 현상을 숫자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거기에는 삶의 터전을 뿌리박고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재생산이 급격히 이뤄질 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모습은 순탄하지 않았다. 강제 정리해고될 석탄발전소 노동자들에게 재취업의 교육 프로그램 지원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이지 책임진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조의 입장을 경시하고 현장노동자들의 의견청취 노력 없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대화를 고집하는 정부의 독선을 보며 과연 정의로운 전환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건 당연하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논란, 중대재해법 누더기 논란 때처럼 기계적 중립을 앞세워 노동자의 양보를 관철시키고 사용자의 손을 들어줬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재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대립을 없는 것처럼, 혹은 없어져야 할 무엇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야 말로 이 사라지지 않는 계급대립과 갈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들이 왜 항상 노사협력과 산업평화를 이야기하겠는가. 현실이 전쟁 같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경제매체가 동원돼 한 줌도 안 되는 노조를 악마화한다. 20년 넘게 사회적 갈등이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마저 ‘MZ 공정론’으로 뒤엎는다. 노조가 청년의 취업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호도한다. 여기에 대선 후보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정치적 선동을 보태며 갈등과 불신을 더욱 키워나간다. 이렇게 자본의 재생산 속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은 자본가집단이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롭지 않다.

자본의 재생산과 사회화에 대한 요구

이렇게 노사정 틀이라는 ‘2:1 게임’에서 항상 지는 싸움에 말려들어야만 할까? 그렇다면 이런 일련의 산업재편과 자본의 재생산 과정에 대해 그냥 바라만 보고 무시해야 하는 걸까? 여러 고민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과거 60~70년대 스웨덴이 노사정 합의 틀로서 자신들의 경제모델을 만들었던 상황을 보면 우리처럼 수세에 몰리는 ‘2:1 게임’이 아닌 역전된 ‘2:1 게임’이었다. 당시 사민당 정부는 노조와의 정치적 연대 속에서 전국단위의 연대임금 틀을 만들고 사용자에게 스웨덴식 경제모델을 강제했다. 물론 이것도 자본의 효율적인 재생산과 거대 재벌의 육성으로 귀결됐지만, 계급대립의 한복판에서 국가가 차지하는 역할은 매우 지대하다는 걸 이 사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화에 대해 다시금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사회화라는 말을 그 말대로 풀어서 이해하면 이렇다. “개인이 알아서 그냥 하는 뭔가 비가시적인 무엇이 아닌 집합적 관계를 통해 나를 비롯한 타인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사회와 관계 맺는 것.” 사회화를 이렇게 사전적으로 이해한다면, 자본주의의 역사발전은 사회화의 중단 없는 진전이었다. 그리고 자본은 국가에 자본의 재생산을 위한 끊임없는 사회화를 요구했고, 때론 국가가 직접 이를 담당했다. 가령 현대화된 중앙은행의 발전은 개별 자본이 감당하기 힘든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확대되고 제도화됐다. 요즘 다시 회자되는 산업정책이라는 말 자체가 국가에 의한 자본의 재생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 역사발전에서 자본의 재생산 과정은 개별 자본의 영역에서 다뤄질 수 없었다. 국가 단위의 또는 국제적 규범 차원의 제도화를 통해 만들어졌다. 소위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라는 이분법의 틀은 불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공공의 영역이다. 법적인 작동 메커니즘이 각기 다를 뿐이다. 노사가 있는 민간부문을 정부가 중재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항상 지는 ‘2:1 게임’을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는 국가를 향해 자본 축적의 효율성과 재생산을 위한 사회화에만 멈추지 말고, 모든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을 담보하는 사회화로 진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일자리 지원에만 머물게 아니라 일자리 보장으로 한발 전진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코로나 경제위기 국면에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감내한 ‘손실의 사회화’에 멈추지 말고,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이익을 환원하는 ‘이익의 사회화’로 진전시켜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국가에 대한 계급정치

정부가 내건 공정한 노동전환이라는 화두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대선을 거치면서 다음 정부의 경제정책의 하위개념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 이름이 무엇으로 바뀌든 앞으로 다가올 산업재편과 전환은 자본의 재생산을 위해 중단 없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때 시민사회 운동진영에서 유행했던 ‘사회적 경제’나 ‘협동조합’ 담론에서도, 이제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는 시민사회라는 ‘제3항’을 적극 강조하지 않는다. 이렇듯, 작금의 위기에 대항하는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해선, 더 이상 미시적이고 개별적 영역에서 머무는 것이 아닌 국가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절실하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적극적인 개입과 진정한 계급정치의 모습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을 던져준다. 유력 대선후보 캠프에 들어가서 노동특보 자리를 맡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계급정치일 수 없다. 이번 정부를 보며 너무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다음 대선에서 이런 실기를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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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자본의 재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급적 대립을 없는 것처럼, 혹은 없어져야 할 무엇처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용자들이야 말로 이 사라지지 않는 계급대립과 갈등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다. 그들이 왜 항상 노사협력과 산업평화를 이야기하겠는가. 현실이 전쟁 같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경제매체가 동원돼 한 줌도 안 되는 노조를 악마화한다. 20년 넘게 사회적 갈등이었던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마저 ‘MZ 공정론’으로 뒤엎는다. 노조가 청년의 취업 사다리를 걷어차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호도한다. 여기에 대선 후보 정치인들까지 가세해 정치적 선동을 보태며 갈등과 불신을 더욱 키워나간다. 이렇게 자본의 재생산 속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은 자본가집단이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평화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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