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재부의 교육 걱정, 30년 정치인의 노동운동 걱정

[1단 기사로 본 세상] “오지랖도 퍼시픽이다”

[편집자주] 주요 언론사가 단신 처리한 작은 뉴스를 곱씹어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한다. 2009년 같은 문패로 연재하다 중단한 것을 이어 받는다. 꼭 ‘1단’이 아니어도 ‘단신’ 처리한 기사를 대상으로 한다.

한국 국회는 제헌의회부터 지금까지 판사와 검사, 변호사를 지낸 법조계 인사가 심하게 과대 대표되고 있다. 법을 만드는 입법부라서 그렇다 해도 너무 많다. 전국에 변호사는 3만 여명 수준이고, 판사는 3천명, 검사는 2천명에 불과하다. 세 직업군을 모두 합쳐도 3만 5천명이다. 전체 인구에서 법조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0.07%에 불과하다. 0.1%도 안 되는 법조인이 21대 국회엔 46명이나 당선돼 15.3%나 차지했다. 사법개혁은 이들이 다 가로막고 있다.

그래서 나는 기회 있을 때마다 국회의원은 추첨으로 뽑자고 주장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국회의원 60명과 자영업자 국회의원 48명이 국회에 들어가면, 최소한 지금처럼 개싸움만 하며 허송세월 보내는 정치보다는 나아질 거라 확신한다.

이들이 전문가주의를 내세워 나라를 망치는 사례는 정치권에만 있는 게 아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위한 확장재정 정책은 기획재정부 앞에서 늘 막혔다. 급기야 지난 1월 정세균 총리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볼멘소리까지 했다. 당시 정 총리는 기재부를 향해 자영업 손실보상제에 대한 법적 제도 개선을 공개 지시했지만 기재부는 나라 곳간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곤란하다고 했다.

9개월이 지난 지금 버티다 못한 자영업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상황에 내몰렸는데도, 언론은 기재부 책임은 쏙 빼고, 문재인 정부 욕만 해댄다. 근본은 기재부를 통제하지 못한 무능한 정권 탓이지만, 아무도 기재부에게 그런 권한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교육재정 교부을 재설계해야 한다며 이젠 교육에까지 개입하고 있다.(한국일보 9월10일자 16면, “기재부 ‘교육재정교부금 재설계 시급’”) 국민의 공복이면 공복답게 국민이 시키는 일이나 잘 하면 될 일이지 교육까지 돈으로 재단하려는 기재부를 보노라면 한숨이 나온다.

급기야 기재부의 재정 만능주의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반박하고 나섰다. 조 교육감은 최근 페이스북에서 “학생 수가 감소하니, 교육재정을 축소하자는 입장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군인 수가 감소하니 국방비도 줄여야 합니다”라고 썼다. 학생 수는 줄었지만 OECD 수준으로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이고 있어 교사 수는 정체되거나 늘고 있다. 2019년부터 고교 무상교육을 실시했고, 베이비붐 세대가 학령기를 보낸 70~80년대에 집중해 지은 학교 시설이 낡을대로 낡아 위험한 상황이라 교육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국일보 9월 10일 16면

조 교육감은 “물론 (교육재정을) 영구히 확대해야 한다거나 모든 종류의 재조정이 불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피상적으로 학생 수 감소와 교육재정 축소를 연결시키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계산기만 두들기는 기재부 눈엔 이런 게 보일 리가 없다.

민주노총이 ‘양아치’라는 그 분은

  조선일보 8월 9일 1면

조선일보가 지난 8월부터 한 달 동안 민주노총을 ‘양아치’라고 몰아붙이며 공격했다. 조선일보는 1985년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을 지낸 김준용 씨의 입을 빌어 3번의 기사를 썼다. 첫 번째는 지난 8월 9일 1면과 4면에 걸쳐 실렸고, 두 번째는 8월 11일 8면에, 세 번째는 9월 6일 30면 전면 인터뷰 기사로 실렸다.

조선일보는 8월 9일자 1면에 “민노총 10월 총파업 대한민국 정체성 공격 뒤집기 한판 준비중”이란 제목을 달아 김 씨 주장을 일방으로 실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 작은 제목을 ‘민노총 출범 이끈 김준용 폭로’라고 달았다.

김 씨의 살아온 이력을 보면 결코 민주노총 출범을 이끌 수 없었다. 조선일보는 민주노총이 언제 출범했는지 정확히 모르는 것 같다.

김 씨는 1958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에서 미싱 시다로 일하다가 군에 갔다 온 뒤 구로공단에서 일했다. 김 씨는 85년 대우어패럴 노조 위원장으로 구로동맹파업에 참여한 뒤 구속됐다가 서노협을 거쳐 90년 출범한 전노협 사무차장을 맡았다. 이후 함께 구로공단에서 노동자 생활을 했던 고려대 학생회장 출신 신계륜이 91년 평민당과 재야세력을 흡수할 때 들어가 1992년 총선에서 당선되자 그의 보좌관으로 4년을 일했다.

  조선일보 8월 11일 8면

김 씨는 전노협이 한창이던 1992년 신 의원 보좌관을 시작으로 줄곧 정치권에 줄을 댔다. 김 씨는 1996년 총선에 안양시 만안구에 통합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7.9%를 얻고 낙선했다. 2년 뒤 1998년 지방선거에선 한나라당으로 말을 갈아타고 같은 지역에서 도의원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2002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당선되자, 김 씨는 2004년 서울형 노사정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갔고, 2007년 이명박 대선캠프 땐 한나라당 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을 지냈다.

김 씨는 2007년 연말 대선 때는 정연수 서울지하철 노조위원장과 오종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 이동건 전 한통노조 위원장, 황명진 전 민주노총 조직쟁의실장 등과 함께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2009년 오세훈 서울시장 시절엔 서울지하철노조 정책전문위원을 지냈다.

김 씨는 2013년 초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활약하다가,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김 씨는 2016년 총선 땐 새누리당 금천구 예비후보로 출마하려다가 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2020년에도 자유한국당 금천구 예비후보였는데 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조선일보는 이런 김 씨를 민주노총 출범의 산파였다고 명명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8월 11일 8면 머리기사에 “민노총은 양아치 같은 노동귀족 주사파”라는 제목을 달았다. 이 역시 김 씨가 토론회에서 내뱉은 말이다. 만민토론회가 지난 8월 10일 개최한 토론회 제목은 ‘끝없는 타락 노동운동, 해묵은 숙제 노동개혁’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이 인사말을 하고, 이명박 정부 때 타임오프-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를 이끈 김태기 전 단국대 교수와 국민의힘 원희룡 대선 주자 등이 참석했다.

조선일보는 한 달쯤 지난 9월 6일자 30면 전면에 걸쳐 김 씨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에서도 김 씨의 입을 빌어 “민노총, 이해관계 반하면 표적, 약자 행세하며 기득권 유지, 사회 대전환 10월 총파업은 대한민국 정체성 공격”이란 긴 제목을 달았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도 김 씨를 “전노협 사무차장을 맡아 민노총이 설립되는 데 역할을 했다”고 했다. 1992년에 민주당 의원 보좌관으로 간 뒤 줄곧 정치권에 머물렀던 김 씨가 95년 11월에 세워진 민주노총 창립에 어떤 역할을 했다는 건지.

기재부와 김 씨에게 슬의생2 10화에서 김준환(정경호 분) 교수가 했던 대사를 전한다. “오지랖도 퍼시픽이다.”

  조선일보 9월 6일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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