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촬영물 삭제에 왜 돈을 지불해야 하나

[리아의 서랍]


드넓은 인터넷 공간 어딘가에 내 촬영물이 유포돼 있지는 않을까? 이젠 동영상 합성까지 간편하게 할 수 있다는데, 누군가 내 얼굴을 합성한 동영상을 만들어 올린 적은 없을까? 디지털 성범죄를 걱정하고, ‘예방’을 시도하거나 포기하고, 언젠가 겪게 될지 모를 피해를 각오하는 과정 전부가 이 시대 젊은 여성의 일상이다. 대형포르노 사이트와 남초 커뮤니티 성인 게시판에서 영상을 찾고 삭제 과정까지 안내해 준다는 앱, 인공지능 앨리스의 앱스토어 카테고리가 ‘라이프스타일’인 것은 그래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 같다.

해당 앱에서 영상 검색 결과를 1회 조회하려면 4,900원을 결제해야 한다. 검색된 영상 URL과 삭제요청 가이드, 실시간 알림 등을 매일 제공해주는 구독 서비스는 6개월에 2만1000원 선이다. 법적 대응을 위해 앱과 파트너십을 맺은 법무법인과 연계할 시, 변호사 상담 비용을 50% 할인해 준다. 기존 디지털 장의사 BM(Business model, 수익모델)에 신기술을 접목한 형식인 것이다.

공익을 위해 짚고 넘어가자면, 유포된 촬영물 삭제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에 맡기는 편이 가장 효율적이다. 200만여 개의 이미지와 동영상들이 존재하는데 이 정도 검색 기술로는 못 찾는 촬영물이 많기 때문이다. 몇몇 사이트의 삭제 창구를 안내받는다 해서 쉽게 삭제를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삭제 요청 방법에도 꽤 디테일한 노하우가 있다. 본격적인 삭제가 필요할 때는 신원이 보증된 전문가집단,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로 전화하자. 02-735-8994/무료삭제/☆365일 24시간 상담 가능☆

게다가 이 앱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검색 결과를 조회해 보면 사용자와 비슷하게 생긴 여러 여성의 영상 URL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영상들이 불법촬영물이 맞다면 다른 피해자의 피해 규모를 확대하는 꼴이 되고, 불법촬영물이 아니라면 사용자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된다. 선의로 만들어진 앱이라고는 하지만,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서비스는 선함과 조금 거리가 있지 않나 싶다. 국내법상 불법촬영물 시청은 형사처벌 대상이기도 하다.

앨리스 앱 출시를 알게 된 지 이틀째 되던 날 저녁, 나는 친애하는 페미니스트 동료 안담-성이 안, 이름이 담이다-과 함께 영업 마감 직전인 카레 전문점 구석에 앉아 야채 카레를 먹고 있었다. 우리는 앨리스 앱을 결제한 여자가 몇 명인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불안감을 덜기 위해 기꺼이 4,900원을 내놓을 여성 집단의 크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비밀로 하고 싶었다.

어떤 사건의 끔찍한 부분이 끔찍한 것도, 두려워하도록 짜여 있는 것들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때론 그깟 일 따위 전혀 끔찍한 게 아니라고, 나는 하나도 두렵지 않다고 큰소리를 치고 싶은 마음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2017년, 매달 낸 보험비로 영상삭제 비용을 지급하는 보험 아이템이 불법촬영물 삭제 지원 활동가들의 비판을 받고 구상 단계에서 무산된 적이 있다. 2018년에는 한 디지털 장의사 업체가 웹하드 카르텔의 연결고리로 드러났다. 몇몇 디지털 장의사들은 돈만 받고 삭제는 하지 않거나, 재유포하거나, 얻어낸 영상으로 피해자를 협박했다. 또 불법촬영물 사이트와 결탁해 언제 어떤 영상이 올라올지 미리 파악하고 사업에 활용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2021년인 지금, 앨리스 앱이 개발 의도대로 좋은 방향으로만 사용돼 별문제 없이 넘어간다 해도, 나는 그 다음에 올 시도와 이보다 더 나쁜 버전의 자본을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피해자 수가 많을수록, 피해 규모가 커질수록 더 많은 돈을 얻게 되는 시장의 굴레 자체를 으스러뜨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불법촬영물 유통 시장 규제 및 공적 피해회복 시스템 개발이 중요한 것이다.

담은 만약 누군가 자신의 영상을 봤다고 말해 온다면 “그것보다 더 잘한다”고 대답할 거라고 했다. 멋진 상대와 끝내주게 잘하는 영상을 새로 찍어서 이걸로 보라고, 뭘 그런 걸 보냐고 직접 뿌릴 생각도 있다고 했다. 담과 나는 주거니 받거니 그 이후의 계획에 살을 붙여가며 열심히 밥숟가락을 떴다. 주변을 정리하던 종업원이 우리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마부여, 나는 당신 수레에 올라탔어,
동네를 지나며 내 맨팔을 마구 흔들어 댔지,
최후의 환한 길을 배우며, 생존자여,
그 길에서는 당신 불꽃이 아직도 내 허벅지를 물어뜯고
내 갈비뼈는 당신 바퀴들이 도는 데서 부서지고,
그런 여자는 죽는 것도 부끄럽지 않아.1)


여상하고 즐거운 식사 시간이었다.

1) 앤 섹스턴, 〈그런 여자(Her kind)〉,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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