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y Go

[프리퀄prequel]

*오니고는 “가자”라는 뜻의 불어 “On y Va”에서 프랑스 젊은이들이 “Va” 대신 영어 “Go”를 붙여 쓰며 생겨난 은어이다.


직군과 성별,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제공받는다. 커피 한 잔, 햄버거 하나도 편하게 시켜 먹는 시대, 그야말로 배달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제는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인 식욕을 채우는 방식도 마치 YouTube처럼 일종의 스킵(skip)이 기능한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식사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가게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생략되었다. 유사 이래 가장 성의 없는 식(食) 문화이다.


배달 플랫폼이 영향을 미친 것은 식(食) 문화뿐만이 아니다. 배달 과정에 AI를 도입함으로써 “플랫폼 기술을 소유한 기업인->AI->단순노동자(프레카리아트) 계급 구조”를 실현시킨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나 배달의 풍경은 그대로다. 달라진 것은 그들을 통제하는 인공지능, 핸드폰을 꽉 쥐고 있어야 한다.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시간에 자유로운 이 일은 나 같은 프리랜서에게 꽤 매력적인 시스템이라 느껴진다. 일이 없을 때 불안해하는 대신 거리로 나가 땀을 흘리는 것이 훨씬 나았기 때문이다. 일은 간단하다.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주소로 가서 음식을 픽업하고 고객에게 전달하면 수입이 올라가는 방식이다. 픽업을 제외하고는 딱히 사람을 만날 일이 없던 것도 좋다.


그들의 시선은 늘 핸드폰 또는 신호 지시등을 향한다. 혹여 좋은 콜이 들어올까 핸드폰을 보고 신호가 바뀌면 곧장 내달리기 위해 신호 지시등을 보는 것이다. 나 또한 다를 바 없다. 10년이 넘도록 양보 운전을 하며 특별히 위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클랙슨을 누르는 일이 없던 나는 이제 조금의 위협만 느껴도 경적을 울리고 다른 운전자와 말다툼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10시간, 12시간씩 도로 위에 있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슬아슬한 상황이 연출된다. 필요 이상으로 예민해지는 것이 썩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핸드폰 화면에는 시간을 통제하는 창이 적색으로 바뀌며 시간을 재촉한다. 기업이 개발한 AI(인공지능) 자동 추천 배차는 직선거리로 계산한 배달시간 10분을 요구하지만 실제 돌아가야 하는 거리는 20분여, 교통법규를 지키며 운전을 하니 주어진 시간은 금세 지난다. 시간은 고객 평가와 직결되고 고객의 평가는 곧 성적표가 되기에 눈치껏 신호를 위반하고 과속을 해야 배달 시간을 지킬 수 있다.


누군가는 불공정을 토로하지만 그들은 AI를 핑계로 숨어버린다. 그럼 대체 누구를, 또 무엇을 탓해야 하는 것일까. 헛웃음 날 일이다. 나에게 겨우 주어진 선택권은 불공정을 참거나, 참지 못해 그만두거나, 둘 중 하나이다. 누군가의 입맛에 맞추어 개발된 인공지능 시스템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고 기업의 중앙집권화를 유도하고 있다.


신호 대기 중인 차 사이를 비집고 갓길을 달려 아슬아슬하게 차선에 걸쳐있는 이들의 모습이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처지와 다름없어 보인다.


누군가는 하등으로 여기는 이 일에 누군가는 목숨 건다는 것이 애달프게 느껴진다. 정녕, 그들이 이 넓은 하늘에 내뿜을 수 있는 것은 짧은 휴식을 취하며 피우는 담배 한 모금이 전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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