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 운동은 ‘사회적 대화’를 통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슈④] 탄소중립위원회 해체 투쟁이 필요한 까닭

차례

① 탄소중립위원회 청소년 위원은 왜 사퇴를 선언했나
② 민주주의의 위기와 기후위기
③ 기후위기, ‘막아내는’ 것이 아닌 ‘함께 겪는 것’
④ 기후정의운동은 ‘사회적 대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⑤ ‘기후정의 선언’에서 ‘기후 총파업’ 까지
⑥ [워커스 사전] 탄소중립
⑦ 기후위기, 세상을 멈추는 노동자

[출처: 은혜진 기자]

탄소중립 휘발유를 가능케 하는 힘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연일 탄소중립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정책을 내고 있다. 8월 17일에는 SK에너지가 ‘탄소중립 휘발유’ 판매 계획을 발표했다. 원유 정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만큼 탄소 배출권을 매입해 탄소중립을 이룬 휘발유를 출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SK에너지는 7월 말 맥쿼리 그룹과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및 상쇄 관련 협정을 포함하는 탄소배출권 조달 계약을 체결했다. 맥쿼리를 통해 조림·산림 황폐화 방지 프로젝트 등에서 발행한 배출권을 구입해 일부 휘발유 제품에 탄소중립을 이룬다는 구상이다. SK에너지는 확보한 탄소배출권을 선박 및 비행기용 연료에 적용해 올 하반기부터 기업을 대상으로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또한 SK주유소에서도 시민들이 구입할 수 있는 탄소중립 휘발유를 판매한다고 한다.

조경목 SK에너지 사장은 “탄소중립 석유제품 출시는 지구 온난화 방지와 탄소 제로화에 SK에너지는 물론 석유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이 동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라며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그룹의 넷제로 목표 조기 달성을 위해 SK에너지가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SK에너지의 탄소중립 휘발유 사업은 기후위기 시대에서 자본의 대응을 잘 드러낸다. 기업은 기후위기와 높아진 환경 의식을 외부환경의 변화로 파악한다. 이는 다른 외부환경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기업이 응전해야 할 하나의 위기이자 기회 요소이다. 화석연료 판매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탄소중립 휘발유 제품의 출시와 같은 능동적인 전략으로 석유제품마저 탄소중립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탄소중립에 필요한 온실가스 배출권은 맥쿼리와 같은 초국적 금융 그룹을 통해 측정되고 조달된다. 거대한 금융·회계·법률 자본은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과 마찬가지로 탄소시장에서도 핵심 역할을 하며 탄소중립의 매개자이자 평가자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들이 온실가스 배출권을 위해 추진하는 조림·산림 황폐화 방지 프로젝트(REDD+)가 저개발국의 환경과 농민의 삶을 파괴한다는 악명은 가려진다.

이런 과정을 통해 초국적 금융자본 맥쿼리는 탄소중립 실현에 빠질 수 없는 녹색 금융 기관이 되고, 화석연료 기업인 SK에너지는 탄소중립 휘발유를 파는 녹색 기업이 된다. 더 높은 가격을 감수하며 탄소중립 상품을 사는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녹색 소비자가 실천적인 ‘기후 시민’의 모델이 된다. 별다른 갈등과 희생 없는 이런 게임에서는 누구나 승자가 된다. 신자유주의 금융 세계화, 화석연료 자본주의를 이끈 대기업의 지위는 유지되거나 더 강화된다. 시민은 이 체제 내에서 상품이나 투자를 선택하는 녹색 소비자로 주체화되고, 저개발국과 환경에 대한 착취는 지속한다.

즉, 기후위기와 불평등을 불러왔던 권력 관계는 변하지 않고, 디테일이 조금 변화할 뿐이다. 초국적 금융과 화석연료 기업의 사업 내용은 바뀌지만, 이들의 지위는 그대로다. 인간과 자연의 착취에 기반해 이윤을 뽑아내고 더 많이 생산・소비하는 체제는 유지된다. 탄소중립 휘발유 방식의 기후 정책이 우리 눈을 홀리고 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출처: 은혜진 기자]

탄소중립위원회를 둘러싼 입장차

탄소중립 휘발유는 기후위기에 대한 자본의 새로운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변화와 연계된 탄소중립 정책은 기업의 이슈일 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월 말 ‘녹색성장 및 2030 글로벌 목표를 위한 연대’, 일명 P4G 회의에 맞춰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를 급하게 출범시켰다. 국무총리와 장관 18명, 민간위원장과 민간위원 77명으로 구성된 탄중위는 기후정책 수립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8월 31일 통과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은 탄중위를 정부의 탄소중립 정책·목표 수립 및 이행점검 등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로 규정했다. 즉, 탄중위는 정부가 탄소중립 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핵심 기구다.

탄중위가 문재인 정부의 그린워싱을 정당화하는 기만적인 기구이므로 참여를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은 일찍부터 나왔다. 올 5월 12일 멸종저항서울과 인권운동사랑방, 전북녹색연합, 민주노총 등은 ‘그린워싱 정당화하는 기후 거버넌스 참여를 거부한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탄소중립위원회 보이콧과 P4G 반대행동을 제안했다. 정부가 △삼척 블루파워 등 신규석탄화력 발전소 건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등 해외 석탄화력발전소 투자 △가덕도, 제주도, 새만금 등의 신공항 추진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약속은 거짓말에 불과하다는 비판이었다. “탄소중립위원회가 그린워싱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라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시민사회에서는 탄중위를 둘러싼 입장이 갈렸다. 탄중위에 대한 비판과 우려에도 환경운동연합 김춘이 사무총장, 녹색당 녹색전환연구소 이유진 연구원 등 약 20명의 시민사회단체 인사가 탄중위에 참여했다. 정부는 이들을 시민사회 대표 인사로 포장했고, 시민사회 내에서 논란이 벌어졌으며, 탄중위 위원 사퇴 요구가 나왔음에도 이들 대부분은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8월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탄중위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이 발표되면서 문재인 정부의 기후정책과 탄중위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또한 같은 달,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이상 높아지는 시점을 10년 이상 앞당긴 2040년 즈음으로 예측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평가보고서>의 일부가 발표됐다. 그러나 탄중위가 발표한 세 개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실질적인 탄소중립 방안이 제외됐고, 시장과 기술에 대한 낙관적 전망으로 가득 찬 2050년 현상 유지 방안이 담겼다.

탄중위는 두 달 동안 ‘사회적 대화와 합의’ 과정을 거쳐 정부 정책을 수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들은 11월 초에 열리는 26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 총회(COP26)에 제출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도 10월 중에 심의, 의결하게 된다. 즉 사회적 대화와 합의라는 정당성을 부여받은 탄중위가 두 달 새에 국내 온실가스 감축 과정 전반에 대한 주요 의사결정을 완료하는 것이다.

이런 기만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무산시키고 기후정의에 입각한 대안적 기후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탄소중립위원회 해체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9월 2일 출범했다. 탄중위 해체 공대위에는 노동, 농민, 인권 등 다양한 사회운동을 대표하는 50여 개 단체와 1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반면 우리나라 최대의 기후 운동 연대체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탄중위 해체 요구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결국 탄중위 참여 인사에 대한 사퇴 여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입장, 기업과 시장 중심의 기후정책 등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지 못한 채 이견만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몇 가지 쟁점을 톺아봐야 한다.

거버넌스와 숙의가 기후위기 시대의 민주주의?

탄중위 해체 요구를 꺼리는 이들은 해체 후에 구성될 대안적인 거버넌스 기구를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탄중위는 기후위기 시대에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부와 자본의 전략적 논의 틀이어서, 그것을 땜질 보완하는 것은 근본적인 개혁의 방법이 아니다. 기후정의 운동이 요구하는 체제 전환은 결국 자본주의 권력 관계의 전환을 의미하고, 이는 강력한 투쟁과 사회적 압박이 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기득권이 스스로 자신의 권한을 양보하는 일은 없다. 포스코, SK, 삼성 등 대기업이 추진하는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을 정부가 중단시킬 수 없다는 윤순진 탄중위 위원장의 발언이 그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은 어떤 대안적인 거버넌스 구조를 제안하기보다는, 기득권 구조를 흔들 수 있는 투쟁을 조직하면서 기후정의운동 자체의 힘을 키워나가야 할 때이다.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조건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출처: 은혜진 기자]

다른 문제는 사회적 합의와 숙의이다. 많이 참조하는 독일의 석탄위원회(경제성장, 구조변화 및 고용위원회)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8년 독일 석탄위원회가 만들어진 까닭은 기민당과 사민당 간의 대연정 과정에서 탈석탄 정책에 대한 견해차가 컸기 때문이다. 이견은 정당 사이에서 발생했을 뿐만 아니라 기민당과 사민당 과정에서도 지역과 산업적 이해관계에 따라 크게 나뉘었다. 즉, 독일 정부가 정치적으로 책임지고 합의하기 어려운 사안을 이해관계자 간 합의 기구를 통해 결정함으로써 정치적 책임을 외주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공약과 정부 정책의 책임을 외주화한 방식과 유사한 것이다.

물론 석탄위원회에는 노동조합과 환경단체 등도 포함됐다. 31명의 구성원 중에 노동조합 3인과 환경단체 3인이 포함됐다. 그러나 다수는 석탄 기업(5인)이나 에너지 산업(4인), 석탄산업 지역(7인)을 대표하는 이들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 구조에서는 기존 체제와 산업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최소공약수의 결정이 이루어지기 쉬웠다. 석탄위원회의 결론은 2038년까지 단계적인 석탄발전소 폐쇄와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후한 보상이었다. 이는 서유럽에서 가장 늦은 탈석탄 계획이었다. 또한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보상은 정의로운 전환이 아닌 손실의 사회화였다. 노동자와 지역에 대한 일부 보상이 포함됐으나, 기존의 화석연료 자본주의를 지탱해온 경제적 권력 관계에 대한 변화는 없었다. 독일 석탄위원회 사례는 우리가 이상화하는 숙의 또는 합의 민주주의의 현실 형태가 기후위기 시대의 민주주의, 즉 체제 전환을 위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탄중위 산하에 탄소중립시민회의와 같은 방식으로 숙의 또는 합의 민주주의의 겉모습을 만들려고 한다.

탄소중립시민회의는 인구학적 기준에 따라 무작위로 뽑힌 500명으로 구성되는데, 정부는 한 달간의 논의를 통해 이들에게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에 대한 의견을 받고자 한다. 그러나 무작위로 뽑힌 500명은 누구이고, 누구를 대변하는 존재인가? 기후위기와 기후재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 노동자, 농민, 빈민, 주민들은 탄소중립시민회의에 참여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은 통계학적인 무작위 추출을 통해서 뽑힌, 인구학적으로 해체되고 원자화된 개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기후정의 운동의 원칙 중 하나는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시민과 영역(MAPA: Most Affected People and Areas)이 기후위기 해결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최전선 시민과 영역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것이 기후위기 해결의 첫걸음이지만, 탄소중립시민회의와 탄중위는 이들을 철저히 배제하고 있다.

경사노위를 통한 정의로운 전환?

문재인 정부가 7월에 발표한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한 공정한 노동 전환 지원방안>도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정부가 발표한 노동 전환의 두 기둥은 ‘직무 전환 교육’과 ‘재취업 지원’이다. 그러나 과거 구조조정 시기마다 발표된 이 정책은 작동한 적이 없다. 일자리가 곧 생존권인 노동자들에게 아무런 보장 없이 일자리 상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대책이 될 수 없다. 기업 이윤을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는 노동 착취 구조, 민주노조를 탄압하는 노동 배제 구조를 그대로 두면 정의로운 전환은 불가능하다. 한국의 노동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정의로운 전환을 다루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런 비전 없이 사회적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불평등한 노동체제를 전제로 한 대화, 즉 무의미한 대화로의 초대다. 더군다나 정부는 민주노총이 참여하지 않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해 사회적 대화를 하겠다고 밝혔다. 현상 유지라는 그릇된 대안에 절차적 정당성을 얻으려는 것이다. 경사노위가 꾸린 ‘기후위기와 산업·노동 전환 연구회’에는 형식적으로 정부, 노동계, 재계, 공익위원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최대 노총이자 자본과 권력에 독립적인 노조를 대표하는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의 한계를 비판하며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런 기구를 통해 노사정 합의를 하겠다는 구상은 기만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기만적 행태는 탄중위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탄중위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수렴이라는 명목으로 다양한 단체를 만나왔다. 여기에는 탄중위에 참여하지 않은 민주노총이나 농민단체, 청년기후운동단체도 포함돼 있다. 탄중위 내부 문서에 따르면 이들 단체도 탄소중립 시나리오 참여단체로 포함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의견수렴이라는 명목으로 회의 한번 해놓고서는 개별 단체들이 동의하지 않는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참여했다고, 거짓 선전을 하는 것이다.

허구적인 틀을 박차고, 기후정의 운동을 키우자

대안적인 기후정의 공론장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기후정의 운동 자체를 키우는 일이다. 기후위기 최전선의 당사자이자, 기후정의 운동 최전선의 주체이기도 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야 한다. 기후정의 공론장은 체제변혁을 논의하는 공론장이기도 하다. 공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9월 24일 벌어진 글로벌 기후 파업의 슬로건이 바로 ‘체제를 전복하라’(Uproot The System)였다. 정부와 자본에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는 투쟁이 벌어지고, 민중의 힘과 주권으로 탈탄소 사회의 상을 그릴 수 있을 때 기후정의 공론장은 탄생할 수 있다. 기후정의 운동은 자본이나 현 정부와 같은 현상 유지 세력과 평화롭게 타협해서 건설할 수 없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자. 기후정의 운동은 기존 권력과 가장 첨예하게 갈등하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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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기후위기 최전선의 당사자이자, 기후정의 운동 최전선의 주체이기도 한 노동자, 농민, 빈민 등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와야 한다. 기후정의 공론장은 체제변혁을 논의하는 공론장이기도 하다. 공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9월 24일 벌어진 글로벌 기후 파업의 슬로건이 바로 ‘체제를 전복하라’(Uproot The System)였다. 정부와 자본에 기후위기의 책임을 묻는 투쟁이 벌어지고, 민중의 힘과 주권으로 탈탄소 사회의 상을 그릴 수 있을 때 기후정의 공론장은 탄생할 수 있다. 기후정의 운동은 자본이나 현 정부와 같은 현상 유지 세력과 평화롭게 타협해서 건설할 수 없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자. 기후정의 운동은 기존 권력과 가장 첨예하게 갈등하는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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