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언론사들, 오늘도 수고가 많습니다.”

[미디어택] 언론의 ‘기준’


“기준”

“양팔 벌려 좌우로 나란히”


어린 시절 체육 시간은 늘 저 구령으로 시작했다. ‘기준점’으로 지목된 친구를 중심으로 흩어져 국민체조를 했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기준”을 외치는 일은 사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국민체조도 자연스럽게 단순 스트레칭으로 바뀌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교과과정에는 “양팔 벌려 좌우로 나란히”를 비롯해 “앞으로 가”, “발맞춰 가”, “뒤 돌아가” 등의 구호에 맞춰 대형을 맞추는 게 포함돼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기준’이다. 그 사람에 따라 대형의 위치와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언론피해’를 구제하겠다고 추진하다 본회의 상정이 불발된 <언론중재법> 개정을 보면서 이 ‘기준’이란 걸 생각하게 됐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해도 달라질 게 없다는 사람들

언론피해가 심각하다는 말을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의 언론 피해자인 유우성 씨의 억울한 사연은 눈물겹다. 영화 촬영 과정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고발했다가 ‘꽃뱀’으로 몰렸던 반민정 씨는 또 어떤가. 이뿐인가. <언론중재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거론되는 대부분의 사건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언론 피해를 구제받기란 쉽지 않다.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한 결심이 필요하다. 소송에 들어간다고 해도 이길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설사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손해배상액은 들인 시간과 돈보다 턱없이 부족하다. <언론중재법> 찬성 여론이 높았던 이유다. 그런 상황에서 ‘언론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것은 이기주의 행보로 비치기도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더라도 ‘공익보도’는 충분히 보장된다고 주장한다. 언론의 ‘고의·중과실 요건’을 엄격하게 할 거고, 손해배상액만 높아지는 거라고. 거기에 ‘공직자와 대기업’은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제외될 뿐 아니라, ‘공익보도’로 인정되면 그마저도 제외된다고 말이다. 법이 개정되더라도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말들도 나온다. 일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 말에는 전제가 따른다. KBS·MBC·SBS 그리고 TV조선·JTBC·채널A·MBN, 조선·중앙·동아일보를 포함한 중앙일간지 정도라면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두 가지다. 언론이 항상 갑의 위치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법적 대응력을 갖춘 대형 언론사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삼성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언론과의 관계에서 ‘을’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삼성그룹에 부정적인 기사를 작성했다가 광고 보복을 당했던 경향과 한겨레의 사례가 있다. 물론, 삼성은 대기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 말은 대기업이 아니라면 가능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성기업의 사례라면 달라진다. 유성기업은 현대자동차 엔진 부품을 만드는 하청업체로 2011년부터 노사갈등이 깊어지며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그 유성기업이 언론사를 상대로 무더기 제소했던 때가 있었다. 타깃이 된 매체들은 대체로 소규모 언론사들이었다. 이유는 명확하다. 소규모 매체들은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사안에 접근한다. 유성기업에서 발생한 노동조합 탄압 사건도 마찬가지다. 사업장에서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면 곧바로 취재해서 기사가 나오고, 또 여러 각도로 분석한다. 그러다 보니 연속적으로 기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 독자들이 바라는 것도 같다. 그러다가 타깃이 된다. 그런 유성기업과 제소를 받았던 언론매체들에 <언론중재법> 개정안이란 어떤 의미일까.

언론사보다 큰 권력을 가진 집단 혹은 개인들은 무수하다. 대형 교회가 될 수도 있고, 다국적 기업, 정당, 하물며 노동조합들이 ‘갑질’하는 사례를 옆에서 지켜본 적도 있다. 무엇보다 ‘갑과 을’의 관계는 고정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을’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갑’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무수한 갑으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언론사들이 사회에 꼭 필요한 언론사라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매체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줄 수밖에 없는 매체라면 말이다. 소규모 매체들에 ‘공익보도’로 인정되면 괜찮지 않으냐고 쉽게 말해선 안 된다. 소송이 제기되는 순간부터 실질적인 위축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성기업의 사례가 특수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는 한 줌의 권력을 쥔다면 ‘갑질’하기 바쁜 사회라고 하지 않던가. ‘갑질’이 영어로 ‘Gapjil’인 이유다. 그런데, 이런 꼭 필요한 질문들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과정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유는 사람들의 인식 그리고 미디어 정책 과정의 기준에 그들이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 정책의 ‘기준’은 늘 대형 언론사였다

한국의 미디어 정책 ‘기준’이 늘 그래오긴 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는 5인 미만 인터넷신문을 ‘강제 퇴출’하는 <신문법 시행령>을 추진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미디어스를 비롯해 참소리, 평화뉴스 등 20여 곳의 인터넷신문 그리고 1인 미디어 활동가들이 헌법소원까지 갔던 이유다.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던 지난한 싸움이었다.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에서 비마이너 하금철 전 편집장은 “주류매체들이 관심 두지 않는 영역에서는 작은 매체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이 사회에 좋은 씨앗을 뿌리고 있다. 이런 매체들을 ‘5인 미만’이라는 경제적 논리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를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마이너가 ‘올해의 장애인 인권상’을 수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언론사들은 원치 않는 이유로 ‘소규모화’되기도 한다. 미디어스 김민하 전 편집장의 발언은 어떤가. “편집국에 열 명 이상의 기자들이 있었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기업과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여러 조건이 나빠지면서 현재는 4명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어려움에도 올바른 언론환경 정착을 위해 노력해왔는데, 인제 와서 정부가 ‘너희는 언론이 아니다, 사이비 언론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안타까운 건, 한국 사회 인식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최근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정치공작을 하려면 잘 준비해서 제대로 좀 하라. 인터넷매체 말고 우리 국민이 다 아는 메이저언론을 통해서 하라”고 발언한 바 있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의 ‘언론관’부터가 이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용주 상근부대변인의 “어떻게 작은 언론매체는 제대로 된 언론이 아니라고 표현할 수 있느냐”라며 큰소리친 일 또한 재밌기는 마찬가지다. 그 정당이 추진하고 있는 게 바로 <언론중재법> 개정이니 말이다. 결국 여야는 공방을 이어가다 지난달 29일 국회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올해 연말까지 <언론중재법> 개정안 등을 추가 논의키로 했다.

<언론중재법> 개정, 그동안 가졌던 ‘언론’이라는 이미지를 버리고 다른 여러 기준으로 바라볼 때다. 그리고 오늘의 끝은 응원으로! “규모가 작다는 이유만으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매체들이여, 오늘 하루도 수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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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말은 생각을 먹고 산다....말을 굶기면 생각이 바르게클 수 없음은 당연하다....이제 한국은 선진국이라 한다....무엇이 선진국다운 정치인가? 묻고 싶다.....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