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을 분류하고 감별하는 ‘배타적 환대’

[INTERNATIONAL2] 아프간 난민, 이집트 난민, 내 친구 모나

  2016년 1월 그리스 레스보스 섬 인근의 난민선 [출처: 위키피디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철수하고 탈레반이 돌아오면서 서방언론과 주류언론은 난민 문제에 관한 여러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쉬쉬하는 것이 있다. 난민 문제는 2001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년간의 점령 및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 존재하던 문제라는 것이다.

구소련에 이어 미국까지 정복에 실패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프가니스탄을 ‘제국의 무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의 본질은 아프가니스탄이 ‘죄 없는 민중의 무덤’이 됐다는 것이다. 자원 확보와 지정학적 패권을 노린 강대국들의 침공, 폭격, 점령, 전쟁으로 수십만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죽었다.

미군은 마을을 폭격하고, 주민을 습격하고, 사람을 고문했다. 미군 폭격 사망자 중 40%가 아동이었다. 어떤 미군은 아프가니스탄 사람의 두개골과 절단된 손발을 수집해 트로피 삼았다. 어떤 미군은 테러리스트라며 잡아간 남자의 항문에 막대기를 꽂았다. 어떤 미군은 총기 난사로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다. 그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서방언론과 주류언론은 지금과 같은 관심을 보내지 않았다.

지난 8월 26일 카불 공항에서 벌어진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의 자살폭탄 테러와 며칠 뒤 미국의 보복 폭격은 지난 20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일들의 축약판과도 같았다. 미군의 폭격으로 살점과 뼈들이 사방으로 날아가며 찢겨 죽은 9명(6명이 어린이)은 이슬람국가도 테러리스트도 아닌, 무고한 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주류언론들(1)은 IS-K의 야만성을 규탄하며 미군의 첨단무기가 얼마나 신속하고 정밀하게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했는지 찬양하기 바빴다. 나중에 이런 진실이 밝혀졌지만, 관심도 없고 모른 척하고 있다. 이렇게 아프가니스탄 민중은 그것이 누구의 폭탄이고 미사일인지도 모른 채 계속 죽어갔고, 난민이 됐다.

바로 이런 끔찍한 현실이 탈레반을 부활시켰다. 무자비한 공중폭격과 처참한 난민수용소는 극단주의 세력이 힘을 키우는 텃밭이 됐다. 따라서 미군은 단지 철수만 할 것이 아니라 전범을 처벌하고, 20년 동안의 피해를 배상하고, 난민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마땅했다. 물론 미국은 그러지 않았다.

지금 전 세계 난민의 압도적 다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강대국들이 전개한 ‘테러와의 전쟁’이 만들어냈다. 그리고 이 때문에 지중해에서는 매년 수많은 아랍인이 지옥으로 변한 중동을 탈출해 유럽으로 가려다 바다에 빠져 죽는다. 지난 6년간 리비아와 이탈리아의 시실리섬 사이에서만 1만6천 명이 허름한 배로 바다를 건너다 죽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을 돕기 위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중동 난민에 대한 책임을 생각해봐야 한다. ‘미라클 작전’의 성공에 자부심만 느끼기엔 중동의 난민 문제가 너무나 심각하다. 물론 난민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무사히 데려올 수 있어 기뻐하는 마음 역시 의미가 있다. 그들을 환대한 진천 주민들의 태도도 칭찬받아 마땅하다.

특히 2018년, 5백 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로 왔을 때 ‘난민 반대’ 청와대 국민청원에 70만 명이 서명했던 것과 비교하면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에도 8월 22일부터 ‘난민 반대’ 청원이 시작되긴 했지만 한 달 동안 3만 명에 그쳤다. 그럼에도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이고, 예외적이며, 자족적인 ‘환대’에 그치지 않으려면 한국 사회는 더 많은 것을 살펴보고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의 난민 관련 예산은 총예산의 0.001%도 안 된다. 난민심사관은 전국을 통틀어 4명뿐이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 정도에 불과하며, 99%가 거부된다. 난민 신청이 거부된 사람은 이의신청을 할 수 있지만, 1994년부터 2020년까지 이의신청을 통해 난민을 인정받은 경우는 0.7%에 불과하다. 이의신청도 기각되면 남는 것은 행정소송인데 여기서 인용되는 비율도 고작 1% 정도다.

이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난민 신청의 문턱을 높이고 ‘가짜 난민’을 걸러내겠다는 난민법 개악을 추진했다. 결국 한국에서 난민이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하는 셈이다. ‘그래도, 누군지도 모르고 우리와 인연도 없는 낯선 이들을 무조건 다 받아들여서 먹여 살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위험이 될 사람은 거르고 무해하거나 도움이 될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이것이 난민을 가로막는 중요한 심리적 장벽이다.

정부가 이러한 장벽을 피하고자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을 ‘특별기여자’라고 분류한 것은, 고육지책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벽을 더욱 높이고 강화할 위험이 있다. 이것은 고향을 떠나 꿈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계속 스스로 증명하도록 만들 것이고, 우리는 계속 그들을 ‘진짜’인지 ‘가짜’인지 감별하게 될 것이다.

말 잘 듣고 일 잘하는 사람만 받아들이는 ‘고용허가제’, 출산과 육아를 잘할 여성만 받아들이는 결혼이주제, 우리와 인연이 있거나 도움이 될 ‘진짜 난민’만 받아들이는 난민제도. 이것은 보편적이고 진정한 환대가 아닌 ‘배타적 환대’이다. 위험을 피해 정든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희망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벽을 세우는 것은 정말 불가피한 것일까?

“오늘날 인간의 이동을 제한하는 군사화 된 국경은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화나 역사의 토대가 아니다. 유럽인들이 자기 나라를 에워싸는 국경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세기 전부터다. …(중략)… 국경이 열려 있거나 닫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2)

지금 한국 사회에는 3만1797명의 난민 신청자와 2140명의 인도적 체류자가 함께 살고 있다.(2020년 3월 31일 기준) 난민 신청자 중에는 7백여 명의 이집트인들도 있다. 그들 중에는 다가오는 게 희망인지 절망인지 알 수 없는 불안한 시간의 늪에서, 지난 5년 동안 고통스럽고 막막한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는 내 친구 모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최근에 모나를 위해 탄원서를 작성해 제출했다. 더 많은 이들이 모나를 위한 탄원에 함께 하길 기대한다.(3)

  난민인권네트워크

내 친구 모나의 난민 신청을 받아주십시오

제가 모나 모하메드Mona Mohmmed를 처음 만난 것은 2018년 9월입니다. 당시에 모나와 남편 왈리드, 그리고 두 사람의 딸인 비산은 청와대 인근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공정한 난민 심사를 촉구하는 이집트 난민들의 노숙·단식 농성에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연대하던 저에게, 어린 딸을 데리고도 몸을 살피지 않고 열심히 농성에 함께하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그 후 우리는 서로를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한국에서 외로웠던 모나는 친구가 생겼다고 좋아했습니다. 저는 모나가 몸이 아파서 입원해 있을 때 병문안을 갔었고, 동두천의 집으로 놀러 가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SNS로 서로 안부를 묻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모나가 어떤 삶을 살았고 지금의 자리로 오게 됐는지 알게 됐습니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난 모나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카이로의 의과대학을 다니면서 미래를 꿈꾸었습니다. 2011년 이집트의 무바라크 독재 정부를 무너뜨린 ‘아랍의 봄’은 그런 모나에게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당시 22살이던 모나는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에 열심히 함께했습니다. 특히 모나는 동료들과 ‘이집트의 빛’이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어 나일강에 있는 와라크 섬(Warraq Island)에서 주민들을 위한 의료·교육 지원과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에 나섰습니다.

그런 활동을 인정받아 모나는 2012년 ‘국제여성운동’(Women’s campaign International)(4)에서 표창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모나는 당시에 무슬림이면서도 콥트 기독교도인들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하기도 했는데, 콥트교도들이 고립된 소수 종교로서 박해받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었습니다. 2013년까지만 해도 모나에게 미래가 보이는 듯했습니다. 무바라크 퇴진 이후에 세워진 무르시 정부는 몇 가지 개혁 조치를 취했고 민주주의도 보장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7월에 쿠데타가 일어나 알 시시 군부독재 정부가 등장하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모나는 저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이 국가의 정치 및 경제 문제를 관리할 수 있도록 이집트 회의를 개최했고, 대규모 정당 및 비영리 단체들과 함께 논의를 계속했다. 그러나 쿠데타가 일어났고 군부정권이 들어섰다. 2015년 나는 왈리드와 결혼해 비산을 낳았다. 우리는 알 시시 대통령을 학살자라고 비판했고, 퇴진하고 민간에 권력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군부정권이 와라크 섬을 아랍에미리트에 매각하려는 것에 반대했고, 티란·사나피르(Tyran and Sanafir)섬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넘기는 것도 비판했다. 2016년 한 시위에 참가했다가 집에 돌아온 후 경찰이 우리를 공격했고 나와 남편을 경찰서로 데려갔다. 체포는 45일 동안 지속됐다. 우리는 보석으로 나왔지만 법원은 우리에게 5년 형을 선고했다. 우리는 2017년 4월에 한국으로 탈출했다. 그리고 2017년 9월에 내 오빠는 경찰에 납치되어 고문 받아 죽었다. 아버지와 언니도 얼마 전 경찰에 연행됐다가 가까스로 풀려났다.”

모나의 오빠가 경찰에 고문 살해당했다는 것은 이집트 정부가 발행한 증명서에서도 인정되는 사실입니다. 아버지와 언니가 경찰에 연행됐을 때도 모나는 걱정과 불안으로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한국에서 지난 5년간 모나 가족의 삶도 매우 힘들었습니다.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모나는 일자리를 얻기 어려웠고, 왈리드도 파트타임 임시직을 전전하며 일하다가 허리를 다쳤습니다.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돈으로 삶을 근근이 이어가고 있고, 이런 악조건 속에서 모나는 2019년 가을에 임신 2개월 만에 유산을 했습니다. 올해 초에 태어난 둘째 아들 아산도 ‘미등록 체류’ 상태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도 모나는 교회 한글 교실에서 한글을 공부하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나는 한국에서도 용기 있게 이집트의 군부독재 정권과 폭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있습니다. 고통 받는 아랍 민중에 대한 연대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SNS나 유튜브에 그러한 주장과 제안들을 계속 공개적으로 올리고 있습니다. 올해 5월에도 모나는 이스라엘의 폭격을 규탄하며 팔레스타인 민중과 연대하는 집회를 공개 제안했고 조직했습니다. 저는 모나의 제안으로 5월 19일 열린 이 연대 집회에 참석했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며 이런 용기 있는 연대에 앞장서는 모나를 보면서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모나의 고국인 이집트의 상황은 참혹합니다. 2013년에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알 시시 정권은 2014년부터 민간인들도 군사법원에서 재판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해에 무려 5백여 명의 무르시 정부 지지자들이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2015년에는 테러방지법을 통해 정부 발표와 어긋나는 정보 공개를 처벌 대상으로 만들었습니다. 2016년에는 160여 개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폐쇄했고, 2017년에는 500여 개의 웹사이트를 차단했다고 합니다. 또 정부 기관의 통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시민단체를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악했습니다. 2019년에는 대통령이 ‘사법 기관의 모든 수석 판사와 검사를 임명’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대통령을 ‘모욕’하거나 미승인 된 시위에 참가만 해도 체포될 수 있고, 고문 수사와 불공정한 재판 끝에 사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지난해에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100건 이상의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보안군(security forces)과 내무부 국가안보국(National Security Agency)이 계속 사람들을 체포, 구금, 고문하고 있습니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현재 이집트에 6만 명 이상의 정치범이 구금돼 있다고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알 시시를 학살자라고 부르고 퇴진을 주장해 온 모나와 그 가족들이 이집트로 돌아가서 안전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내 친구 모나가 희망대로 안정적인 신분을 얻어서 다른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의학 공부를 계속하면서 코로나와 같은 신종바이러스의 백신 등을 연구하고 싶다는 꿈을 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모나의 난민 신청을 반드시 받아주시길 부탁하며 탄원합니다.


<각주>

(1) <조선일보>, ‘6개의 칼날로 콕집어 때렸다…美, IS보복에 ‘닌자 미사일’ 사용’, 2021.8.29.
‘미군이 IS 보복에 투입한 무기는 ‘하늘의 암살자’ 리퍼’, 2021.8.28.
(2) 소니야 샤, 《인류, 이주, 생존》, 메디치, 378p
(3) https://forms.gle/W1Pz6QMqbgnD9JEG8
(4) https://www.womenscampaigninternational.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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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뚜띠

    돈버는 사람은 한정되있는뎌 거기다. 남의나라 사람까지 먹여 살리라는건 배승선 인원 한정인데 더 태워서 지금 같이 가라 앉자 죽자는 건 아니쥐요~~~~ 세금으로 막대하게 지출돼는데 거기다 떠 안아 달라고 너무들 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