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 청년을 존속살해자로 만든 국가의 가사‧돌봄 정책

[가사‧돌봄 사회화②]PCP(Public Community partnership): 공공-지역사회협력 공급 모델이 필요하다

쌀 살 돈이 없던 청년의 ‘존속살해’

“쌀이라도 살 수 있게 2만원이라도 빌려주시면 안 될까요? 월급 나오면 바로 갚을게요.”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의 간병을 도맡던 22세 청년. 주변에 도움을 받지 못한 채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하여 ‘존속살해’혐의로 1심에서 징역4년을 선고 받은 청년이 주변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다.

처음 이 청년은 ‘아버지를 굶어 죽게 한 패륜아’로 묘사됐다. 하지만 그가 홀로 ‘간병노동’을 감당해 왔고, 2천만 원이 넘는 수술비와 간병비를 감당하다가 막판에는 쌀을 살 돈도 없어 2만원을 빌리려 했다는 사건의 이면이 알려졌다. 이로써 ‘간병 살인’이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됐고, 그에 대한 2심 재판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관심이 집중됐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2심 재판부에 탄원서를 제출해 ‘국가와 동료 시민들이 그의 곁에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어야 할 때’라고 언급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국가가 자신들에게 다가온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지 못한 것은 저희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죄송하다’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의 탄원과 정부의 책임인정, 사과표명에도 불구하고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 결과와 똑같이 지난 11월 10일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서두에 이 사건을 거론하는 것은 ‘간병살인’에 대한 사법적 판단의 적용과 그 판단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비극적 사건의 이면에는 한국의 빈곤문제, 복지의 사각지대 문제가 있다. 22세의 청년이 아버지의 간병과 생활을 전적으로 감당하고 책임져야 했던 ‘간병 돌봄’의 문제가 있다.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일을 할 수 없게 된 아버지는 병원비와 간병비를 감당하지 못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국의 건강보험제도를 비롯한 복지제도는 이러한 현실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아버지 간병은 아들인 22세 청년이 오롯이 감당하게 됐다. 그는 라면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고, 편의점 알바를 하며 ‘간병’을 홀로 감당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국가의 간병정책을 비롯한 돌봄 정책은 이 청년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국가 정책은 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까?

국가의 정책은 홀로 아버지를 간병했던 22세 청년에게 어째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을까? 이렇게 질문을 던졌을 때에야, 우리는 비극적 사건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부터 이명박, 박근혜, 현재의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간병, 요양, 보육 등의 돌봄 정책을 주요한 국정과제로 선정해 여러 정책을 펼쳐왔다. 그 결과 한국의 돌봄 예산은 GDP대비 1% 수준으로 올라왔다(OECD 평균은 1.5%).

요양서비스의 경우 2020년 시장규모는 10조300억 원 정도다. 이 중 노인요양보험재정규모는 2019년에 7조5000억 원으로 공적 재정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영유아 돌봄을 비롯한 아동 돌봄도 정부 재정지원이 대부분이다. 정부의 재정지원을 비롯한 공적지원이 상당함에도 왜 대부분의 국민은 이러한 돌봄 서비스를 체감하지 못할까.

우선 간병, 보육, 요양 등의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나 시설 대부분은 민간과 시장시스템에 맡겨져 있다. 정부와 공적 재정이 이들 민간 돌봄서비스기관의 운영을 보조하는 데에 집중되는 것이 일차적 원인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국민들이 직접 알아서, 자신이 부담해 돌봄 서비스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도 ‘커뮤니티 케어’, ‘지역사회 통합 돌봄체계 구축’, ‘치매 국가책임제’,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구축’ 등 돌봄 관련 온갖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민간과 시장중심의 제공시스템에는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정부 초기에는 ‘사회서비스원’을 설치해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애초의 ‘공공성 확대’와는 거리가 먼, ‘또 하나의 위탁기관’을 설립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렇듯 간병, 요양 등의 공급이 대부분 민간으로부터 제공되고, 정부와 국가의 역할은 재정지원 등의 최소한으로 머무르는 상황에서 간병, 요양 등은 오롯이 개인과 가족, 그리고 주로 여성이 감당해야 일과 책임으로 맡겨진다.

‘청년 간병살인’의 비극은 이런 구조가 만든 것이다. 이는 빈곤층이 절반 정도에 이르는 한국사회 65세 이상 노인에게는 자기 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가난한 노인들은 고독사하거나, 조금 나은 사정이라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홀로 지내다 쓸쓸히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런 현실은 남은 가족이나 사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없다.

민간과 시장이 아닌 가사‧돌봄 사회화가 필요하다:
공공-지역사회협력 가사‧돌봄공급체계모델을 제안하며


요양·간병 같은 돌봄에는 청소, 식사 등 가사서비스도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특히 가사‧돌봄 서비스의 중요성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더욱 두드러졌다. 이른바 ‘필수서비스’, ‘필수노동’이란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필수서비스‧노동이란 가사‧돌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제공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두가 가사‧돌봄을 제공하는 동시에 모두가 받는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제공자/받는 자 모두에게 적정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그러할 때 가사‧돌봄은 평등을 기반으로 공유되고 사용될 수 있으며 보편적 권리로 실현될 수 있다.

모두를 위한 가사‧돌봄이 이뤄지려면 사회구성원들 간의 상호의존 및 관계형성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각각의 역량발전을 통해 ‘사회적 역량’의 발전을 이뤄나가야 한다. 이는 전적으로 ‘연대와 협력의 원리’가 실현돼야 가능하며, ‘경쟁과 효율’이라는 시장 논리 속에서는 이뤄질 수 없다. 즉, 이것은 ‘지역사회’ 속에서 ‘공적인 공급체계’가 작동돼야 가능하다. 우리는 이를 ‘공공-지역사회협력공급체계(‘Public-Community Partnership’이하 PCP모델)라고 부르려 한다.

가사‧돌봄의 사회화, 모두가 보편적 권리를 누리며 평등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삶

PCP모델이 실현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가사‧돌봄의 공적‧사회적 공급체계 구축이다. 이제까지 개인과 가족, 여성이 부담하고 책임져왔던 가사‧돌봄 공급체계를 국가와 사회, 지역이 책임지는 공급체계로 전환해 누구나 자유롭게 권리를 누리고, 연대와 협력을 통해 질 좋은 가사‧돌봄의 실현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PCP 모델에서는 가사‧돌봄 제공의 보편성, 이용자 및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권리확보, 그리고 가사‧돌봄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사회서비스 이용자 간의 연결 강화, 사회서비스 수급자의 자기결정권 확보, 사회서비스 제공노동자의 노동권 확보는 그 자체로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 지역사회 공동체간의 수평적인 연대와 연결을 확보하는 것은 이 사회의 민주주의를 심화하는 데에 기여할 수가 있다.

PCP모델은 “지역사회에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보편적 권리를 누리며 평등하게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목표로 한다. △공공주도–사회적 역량과의 협력 강화 △사회적 권리로서의 돌봄권 보장-보편적 적용 △이용자의 존엄과 자기결정권 존중 △통합성 △성별분업의 철폐 등을 원칙으로 삼는다.

또한 △‘지역’공간이 중심(기초단위 지자체가 핵심주체이자 역할) △지방정부와 공적 서비스 공급기관의 주도와 지역사회 공동체의 자발적 참여 △이용자와 노동자의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협업 모델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돌봄 유형별로 분절적이 아닌 통합적 모델 지향 △코어(혹은 앵커)기관으로서의 ‘사회서비스원’과 ‘통합가사돌봄서비스센터’ △‘의료와 돌봄 통합모델’: ‘병원-시설’에서 ‘지역-재택’으로 △돌봄서비스 기획, 의사결정, 종합 소통기구로써 ‘지역돌봄위원회’ 등을 주된 내용으로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PCP모델을 구축하고 제대로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 어린이집, 요양병원 등 돌봄시설의 재공영화 △공공돌봄서비스기관의 확대 △풀뿌리 지자체에 ‘통합가사/돌봄 센터’의 설립 및 통합 △앵커기관으로써 ‘사회서비스원’의 위상 확보 △가사‧돌봄 노동자의 조직화 및 조직적 역량 강화, 지역 주민, 이용자의 조직화 △‘공공사회서비스법’ 제정 △공공의료 확대와 더불어 주치의제도의 도입 등의 과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주당 노동시간이 40~50시간에서 20~30시간으로 줄어들면서 사람들은 지역사회와 돌봄과 삶의 예술에 몰두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모든 이들이 높은 수준의 공중보건과 교육을 이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더 오래, 더 행복하고, 더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 《적을수록 풍요롭다》, p65, 제이슨 히켈 지음


위 인용문은 PCP모델이 목표로 하는 ‘더불어 함께 하는 좋은 삶’의 모습에 매우 가깝다. 이러한 삶을 현실로 만드는 것이 단지 꿈은 아닐 것이다. 아니 이런 삶을 모두가 꿈꾼다면, 그 삶은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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