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이 가정으로 무사히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연정의 바보같은 사랑](144) 대성산업 본사에서 고용승계 요구 단식농성 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④

따뜻하고 좋은 회사의 정리해고

대성 계열사가 한국게이츠 부지를 인수한다는 소문은 올해 초부터 있었지만, 그 주체가 대성산업이라는 게 밝혀진 건 최근이다. 대성산업은 대구 연탄 제조회사 대성산업공사(창업회장 김수근)를 모태로 하는 회사다. 하지만 대구 지역 도시가스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대성에너지를 주요 계열사로 둔 대성그룹과 달리 대구에 기반이 거의 없다. 한국게이츠 부지 인수는 야심찬 계획으로 시작한 사업이었을 텐데, 대성산업은 이 사실을 어디에도 얘기 할 수 없었다. 지역 공단에 새 업체가 입주하면 고용창출 운운하는 지역신문 기사들과 환영 현수막 부착 등이 일반적일 텐데, 대성산업의 대구 달성산업단지 입주는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됐다.

처음에는 한국게이츠 부지를 대성그룹(김영훈 회장, 대성산업 김영대 회장의 동생) 쪽에서 인수한다는 말도 있었다. 올해 상반기에 대구도시가스 검침·점검 노동자들과 AS기사 노동자들이 대성에너지를 상대로 시간 외 근무수당과 주유비 등을 요구하는 투쟁을 했다. 이 투쟁에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열심히 연대했고, 그 과정에서 대성의 인수설도 알려지게 된다. 대성에너지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휴일도 없이 실질적으로 최저임금도 안 되는 임금을 받으며 4천 세대를 담당하는 노동자들을 위탁 업체 직원이라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대성산업은 부지를 인수한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찾아오자 관련 없는 사람들이라며 식사와 의약품 마스크 반입도 하지 못하게 했다. 이처럼 대구에서 만들어져 대구 시민들 덕분에 성장한 대성은 자신을 찾아온 대구 시민조차 홀대했다.

  서울 구로구 대성산업 본사 앞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현재 대성산업은 여러 면에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대구 산업단지에서 예정된 사업을 진행하기 어려워 보인다. 대성산업이 한국게이츠 부지 인수를 비밀리에 추진해온 시기에 대성산업 내부 정리해고 문제도 있었다. 대성산업은 한국게이츠 부지 입주 계약 승인을 앞두고 쉐라톤 서울 디큐브시티 호텔을 1,300억 원에 매각했다. 정리해고 이틀 전인 10월 29일 대성산업의 한국게이츠 부지 인수 승인이 났고, 10월 말에 100명의 노동자가 희망퇴직으로 떠났다. 룸어텐던트, 세탁, 주차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포함하면 더 많은 수의 노동자가 정리해고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공식적인 기록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대성산업 측은 이 과정에서 아무 문제도 없이 매끄럽게 해결이 됐는데, 왜 다른 회사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었다. 코로나19로 인한 호텔업계 어려움 속에서 연차소진과 유급휴직, 무급휴직 등으로 고통분담을 해온 노동자들이 위드코로나를 목전에 둔 시점에서 정말 웃으면서 일터를 떠날 수 있었을까. 회사가 어렵다며 희망퇴직을 요구했던 회사가 다른 곳에서 공장 부지 인수를 추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웃을 수 있을까.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이 대성산업의 한국게이츠 부지 인수 사실을 조금 더 일찍 알고 더 빨리 상경투쟁을 했다면 결과가 조금은 달랐을까.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대성본사 점거농성 기사 글에 ‘대성산업 정리해고 100인 모임’ 명의로 ‘정리해고 과정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고, 대성산업은 직원을 위하는 따뜻하고 좋은 회사였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올라왔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투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던 대성산업 호텔 정리해고 노동자들의 존재를 드러나게 했다. 댓글에는 대성산업이 고용을 한다면 디큐브시티 호텔 희망퇴직자들이 먼저여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대성산업 해고노동자들도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도 부디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한다.

  12월 1일, 대구시청 앞 천막농성장 모습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고용승계를 하든지 인수를 하지 말든지

게이츠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Gates는 직원들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들의 노력과 성공에 대하여 보상합니다’ 라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그 결과는 147명 대량해고였다. 사모펀드 블랙스톤이 운영하던 한국게이츠는 대구 달성산업단지에 입주하면서 고용 창출·유지의 대가로 취득세와 재산세 면제 등 각종 세제 혜택을 받아왔다. 그리고 31년간 투자 대비 30~40배가 넘는 수익을 회수해갔다. 한국게이츠는 일방적인 폐업 공고를 하면서 ‘동종업계 최고의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고 했다. 사측의 일방적인 폐업으로 정리해고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퇴직을 신청하라고 했다. 노동자의 생계를 걱정해 희망퇴직 위로금을 주겠다는 게 아니었다. 이후 모든 법적인 책임과 재가동시 고용승계 의무의 싹을 잘라내기 위함이었다. 19명의 노동자들은 이를 거부하고 ‘먹튀자본’의 책임을 묻고 공장재가동과 고용을 요구하는 투쟁을 선택했다.

대성산업은 사회적 책임 이전에 한국게이츠 해고 문제의 당사자이다. 대성산업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대성산업이 한국게이츠 부지를 인수하면서 500일 넘게 공장 재가동을 요구하며 투쟁해온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의 희망이 좌초될 위험에 처했다. 대성산업의 입주 승인을 앞두고 한국게이츠가 공장에 있던 장비들을 빼갔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대성산업은 한국게이츠의 ‘먹튀’를 도와준 셈이다. 대성산업이 한국게이츠 노동자 해고 문제와 무관할 수 없는 이유다. 대성산업은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투쟁 상황을 다 알고, 심지어 공장 앞에서 이들이 천막농성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공장 부지를 둘러보고 인수를 결정했다. 본사 안에서 점거농성을 했던 채붕석 지회장(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은 대성산업이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샀을 때는 노동자들의 고용문제까지 수용할 의사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다.

“그걸(고용승계) 안고 헐값에 샀을 거라 판단하기 때문에 대성산업이 고용 승계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그럴 의사가 없다면 공장 부지를 사지 않으면 되거든요. 그럼 우리하고 대성산업하고 관계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저희들의 요구는 한국게이츠 부지를 사지 말든지, 살 경우에는 고용 승계를 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겁니다.”


대성산업은 한 임원의 발언을 통해 한국게이츠 부지를 “헐값에 샀다”는 것을 인정했다. 달성산업단지관리공단 관계자는 한국게이츠 부지가 입지가 좋은 편이라 폐업 이후 인수 욕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고 했다. 워낙 극비리에 진행해서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쉽게 팔리지 않은 데에는 노동자들 농성도 관련이 있지 않겠냐고 했다. 인수하는 입장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대성산업은 노동자들의 투쟁 덕분에 좋은 부지를 ‘헐값’에 살 수 있었다. 노동자들의 투쟁이 없었다면 대성산업에게 그 땅을 인수할 기회가 주어졌을지 알 수 없다. 이에 대한 답례로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들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라도 한 번 했다면 이번 같은 점거농성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2020년 7월, 폐업하기 전 대구 한국게이츠 공장 안의 모습 [출처: 연정]

먹튀 자본을 제재할 수 있는 법과 제도

채붕석 지회장은 이번 대성산업 본사 농성에 들어가면서 노동자들의 고용과 함께 외국 투기자본의 횡포를 제재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게 가장 큰 목표 중 하나라고 이야기했다.

“한국은 외국 투기자본에게는 천국이에요. 돈벌이 할 거 다 하고 나갈 때는 한 달 치 월급만 주고 해고하면 끝이잖아요. 한국게이츠 문제를 계기로 먹튀 자본을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나 규제가 만들어지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야 다시는 저희들 같은 상황이 나오지 않을 거잖아요.”


국내 생산시설을 폐쇄한 한국게이츠는 판매법인 GUKC(게이츠유니타코리아)을 국내에 버젓이 남겨두고, 중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현대·기아·GM자동차 등에 계속 공급해오고 있다.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이 현대·기아자동차에 한국게이츠 제품 구매를 거부해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현대·기아자동차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국게이츠의 ‘먹튀’를 도와준 현대자동차의 책임을 묻기 위해 상경투쟁도 했지만, 국정감사에 나온 현대자동차 임원은 그 어떤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 외에 질의를 하는 국회의원조차 없어 한국게이츠 문제에 대한 국정감사는 3분 만에 끝이 났다. 한국게이츠의 ‘먹튀’는 한국 정부와 현대·기아자동차·대성산업 등 한국 기업의 공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경남 창원시 마산자유무역지역 한국산연 공장을 일방적으로 폐업하여 16명의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고 LG그룹과의 공조 속에 서울영업소를 유지하며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는 일본 산켄전기 역시 비슷한 사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점거농성 초기에 ‘보식 마치고 이제 밥 먹을 수 있는데, 굶고 있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던 채붕석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실려 나가는 모습을 보며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다고 했었다.

“우리 조합원들이 가정으로 무사히 잘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채붕석 지회장은 대성본사 단식농성장에 방문한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와의 간담회 자리에서 이 한 마디를 하고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진보당 진보TV>, 2021. 11. 17) ‘먹튀 자본’에 의해 억울하게 쫓겨난 일터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슬픔이, 살기위해 올라온 조합원들이 단식농성으로 한 명 두 명 실려 나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지회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얼마나 무거웠을까. 이틀 뒤에 채 지회장은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

  대성산업 본사 단식 농성장에서 흐느끼고 있는 채붕석 지회장 [출처: 금속노조 대구지부 한국게이츠지회]

12월 2일, 한국게이츠 노동자들의 미국 게이츠와의 화상 교섭이 예정된 날이다. 전날까지도 노동자들의 고용 문제와 함께 3억 5000여만 원의 손해배상청구 문제 등에 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대성산업은 노동자들이 본사 점거농성을 해제한 이후에도 5천만 원 배상을 요구하는 업무방해 가처분 소송을 취하하지 않았다. 여전히 대구시청과 한국게이츠 공장, 서울 대성산업 앞에서 투쟁하며 교섭을 기다리고 있을 19명의 노동자들을 생각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것을 이 노동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2020년 7월, 폐업 전 한국게이츠 공장 입구에 걸려있던 한국게이츠의 2020년 슬로건 [출처: 연정]

폐업 전에 방문했던 한국게이츠 공장이 떠오른다. 한국게이츠 공장 입구에는 ‘당신이 지킨 것은 가족입니다’, ‘2020 내 인생 최고의 게이츠’ 라는 2020년 한국게이츠의 슬로건이 붙어있었다. 생산의 온기가 남아있는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이 작업 현장과 기계를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라인 사이에 놓여있던 벨트를 만드는 고무 원료와 자동차 엔진에 사용될 타이밍벨트 완성품들, 정적 사이로 이따금씩 들려오던 노동자들의 목소리, 무심하게 울리던 휴식시간 점심시간 벨소리, 구내식당에서 먹었던 밥. 잠시 후에 불이 켜지고 기계 전원 스위치가 올라가고 다시 기계가 돌아갈 것만 같은 그저 평범한 어느 날 공장의 일상들. 그 시간 속으로 작업복을 입은 19명의 한국게이츠 해고노동자가 걸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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