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놀음은 이제 그만, 불평등 체제를 바꿔야 한다

[녹색 스트라이크]


글래스고 총회에서

지난 10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는 각국을 대표하는 이들이 모여 중간 과제(2030년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했다. 자본주의가 초래한 경제 불평등·노동착취·환경파괴·자연재해 등의 피해를 입고 있는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대표들의 속내는 심란했다. 한 번은 회의장이 술렁였는데 인도의 부펜더 야다브 장관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화석연료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라며 작심한 듯 외쳤기 때문이다. 옆에서 눈치 보던 중국,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표들도 야다브 장관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그들은 뒤늦게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급속히 경제성장 중인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5국 멤버들이었다. 발언 이후 북반구 선진국 언론들은 온실가스 세계 배출량 3위 국가인 인도가 할 얘기가 아니라며 ‘기후 악당’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타전했다.

‘뭐? 자기들은 100년 넘게 써먹을 대로 다 써먹고 우리더러 석탄 발전을 폐지하라고?’ 야다브 장관 눈에 저들은 ‘글로벌 사우스’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해 제국주의적 생활을 누려온 ‘글로벌 노스(Global North)’들이었다. 저들이 입고 있는 와이셔츠는 인도의 가난한 농민이 딴 목화로 방글라데시 노동자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저들이 타고 온 전기자동차, 경비행기는 브라질 광산에서 채굴한 철광석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파리협약 이후 2016년부터 경제약소국들이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선진국들이 매년 1천억 달러씩 재원을 모으겠다는 약속은 뻔뻔스럽게도 5년째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장관은 침몰해가는 조국의 영토를 보여주기 위해 허벅지까지 차오른 바닷물에 들어가 녹화한 연설을 틀었다. 회의장 구석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관망하는 한 사람이 있었으니 최근 유엔으로부터 선진국이라고 인정받은 대한민국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다. 글래스고 총회에서 그의 주된 관심은 자랑스러운 조국 대한민국의 국익이 최대한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었다.1) 총회는 석탄 화력발전 폐지도, 지구 온도 상승 1.5도 이내 억제를 위한 경로도 확실하게 만들지 못하고 끝났다.

탄소중립이라는 함정

요즘 대한민국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하기’라는 유엔이 내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인 듯하다. 어느 샌가부터 탄소중립이라는 말은 TV, 라디오 광고의 단골 메뉴다. 교육청 사업에도, 기초자치단체 정책에도 탄소중립이 유행처럼 붙어있다. 탄소중립은 국민실천 운동으로서, 새로운 경제도약의 발판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처럼 보인다.

‘탄소중립’은 부문별로 책정된 탄소배출량을 기준으로 덧셈, 뺄셈을 해서 2050년 시점에 ‘0’으로 맞추면 끝나는 (과학자들이 지어낸) 게임이다. (아, 세계가 차라리 수학 공식이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술 관료들로 구성된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와 대부분 국가는 기후위기를 마치 수학 문제처럼 풀고 있다. 유엔은 각 나라에 ‘어떻게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만들래?’라는 수학 문제를 내고 각자의 계산 결과를 받고 있다. 당연히 현실은 행과 열, 숫자로 이루어진 매트릭스 세계가 아니기에, 각자 답이 안 나오는 계산 결과를 갖고서 어정쩡하게 앉아있다. 머리 깨나 쓴다는 관료들은 공문서에서 많이 해왔던 것처럼 ‘그럴싸한 말’들을 지어내 본다. 예컨대 CCUS(탄소포집·활용·저장기술)라든지, 그린수소2), 블루수소3) 등은 언제 상용화될지도 모르는 기술이고 ‘해외 감축’은 눈속임일 뿐이다.

국가별 탄소중립 과제는 국경 너머 작동하고 있는 착취구조를 은폐한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2021, 다다서재)의 저자 사이토 고헤이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심화한 글로벌 노스와 글로벌 사우스 사이의 지배 종속 관계를 강조한다. 풍요롭고 안락한 제국주의적 생활양식은 글로벌 사우스로 온갖 위험과 결핍을 전가하며 외부화했기에 가능했다. 인도네시아 열대우림 난개발로 추출한 야자수 기름에 튀긴 스낵을 먹으며, 침대에 누워 중국인 노동자가 월급 1,400위안(한화 약 26만 원)4)을 받으며 만든 아이패드로 넷플릭스 영화를 감상하는 누군가는 나 자신이거나 이웃이다. 선진국들이 ‘과감하게’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것도 온실가스 배출, 폐기물 처리, 밤샘 노동 등의 위험을 글로벌 사우스에 온전히 전가했기 때문이다.

글래스고 총회에서 인도 장관의 발언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국제적 착취 고리를 굳건히 하려는 선진국과 초국적 기업에 대한 비판과 같은 수준이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숫자놀음은 그만두고 불평등한 체제, 구조를 드러내고 뒤집어야 한다.

어떤 구조를 바꿔야 할까


불평등 체제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기후위기 문제를 다루다 보면 한정애 장관처럼 ‘메일 한 통 지우면 탄소가 자그마치 4g 감축된다’라는 부류의 헛소리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면으로 다뤄야 할 체제는 무엇일까. 먼저 경제체제다. 사이토 고헤이는 앞서 소개한 책에서 ‘소비’의 변화로는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하며, 기후위기를 실질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생산 체제의 전환이 필수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본의 이윤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체제에서, 우리 삶에 필수적인 식량, 돌봄, 의료, 주거, 에너지 등을 필요한 만큼 생산하고 풍요롭게 향유할 수 있는 체제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이를 위해 민주적인 참여 속에서 지역 사람들이 생산수단을 수평적으로 공동 관리하는 체제, 즉 ‘커먼’을 만들어볼 것을 제안한다. 그가 제안하는 노동자 협동조합, 노동자 자주관리기업, 지방자치주의5)는 기존 노동조합 중심의 운동과 더불어 깊이 논의돼야 한다.

두 번째로 도시의 구조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도시는 상품화된 공간으로 전락한다. 토지와 건물, 도로는 공공성에 복무하기보다 자본가, 개발자의 이익에 복무하며 이용되고 지어진다. 자동차와 부동산 소유 여부에 따라, 장애 여부에 따라 우리는 너무나 다른 도시를 경험한다. 불평등한 도시 구조는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을 방해한다. 반대로 누구에게나 평등한 도시는 거주민에게 행복을 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대표적으로 콜롬비아 보고타를 예로 들 수 있다. 공원, 광장, 도서관, 자전거 도로와 같은 공공 공간이 넓어지자 성별, 직업, 소득수준 등과 관계없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세련된 디자인에 편리하고 저렴한 ‘트랜스 밀리오네 버스’는 공공 교통의 지향점을 잘 보여준다. ‘평등’한 도시를 만드는 것에 중심을 둔 보고타의 정책은 뜻밖에 국제적 찬사를 받는데, 이와 같은 정책으로 엄청난 온실가스 감축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불평등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비롯됐다고 분명히 말해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은 불평등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부대 효과일 뿐이다. 구조는 가만히 두고 효과만 얻으려고 하다 보니 이상한 기술에 의존하는 꼼수를 부리거나, 윤리적 실천에 목매는 억지 코미디가 연출된다. 위기가 오더라도 평등한 경제체제, 상호부조가 굳건한 사회에서는 지금처럼 불행하진 않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대하는 도시에서 산다면 절망하진 않을 것이다.

1)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 폐막” 외교부 보도자료
2)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에서 나온 전기로 물을 수소와 산소를 분해해 생산하는 수전해수소를 말한다.(네이버 지식백과)
3) 석유화학 공정 부산물을 개질해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저장(CCS) 또는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을 적용해 보관함으로써 탄소배출을 최소화한 공정을 통해 생산된 수소를 말한다.(네이버 지식백과)
4) 제니 첸 등 연구자 세 명이 기록한 《아이폰을 위해 죽다》(2021, 나름북스)는 2010년 여름부터 2019년 12월까지 애플 납품 업체 폭스콘의 노동실태를 조사한 내용을 다룬다.
5) 자본의 전제에 맞서서 국제적으로 연대하는 혁신 자치단체의 네트워크 정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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