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우)와 문재인 대통령(좌) [출처: 청와대] |
코로나 19, 그리고 해외 한국기업 노동자들
2020년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지구적 확산은 노동자에게 큰 고통을 안겼다. 특히, 열악한 의류 산업으로 대표되는 동남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은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실제로 세계적인 의류봉제산업을 감시하는 시민사회 네트워크인 클린클로즈캠페인(Clean Clothes Campaign)의 보고서1에 따르면 의류 브랜드들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납품업체의 주문을 대량으로 취소하고 대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에게 전가됐다. 그런데도 의류봉제업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 진출한 한국기업 노동자들의 피해실태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알려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한국기업뿐 아니라 산업 전반이 타격을 입은 영향도 있겠지만 현지 노동단체들의 활동이 위축된 것도 원인으로 보인다.
국제민주연대는 ‘인권재단 사람’의 지원을 받아 2020년 말부터 코로나19 기간 동안 동남아시아 지역 한국기업 노동자에 대한 조사를 기획했다. 그동안 한국기업 노동자 인권침해 문제에 대응해온 현지 단체들과 협의를 거쳐, 미얀마 영치우 노동자연합과 필리핀 가비테 공단지역의 노동자지원센터와 함께 코로나19에서의 미얀마·필리핀 한국기업 노동자 인권침해 문제를 조사하기로 했다. 영치우 노동자연합과 노동자지원센터는 모두 지학순 정의평화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을 정도로, 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기간 노동자 권리를 위해 활동해온 단체들이다. 또한 국제민주연대가 속한 ‘기업과인권네트워크’는 꾸준히 미얀마와 필리핀의 한국기업 인권침해를 조사하고 대응해온 경험이 있었다. 지난해 1월부터 조사가 시작됐지만, 같은 해 2월 1일 미얀마에서 군부 쿠데타가 발생했다. 미얀마 현지 단체도 쿠데타의 폭풍에 휘말렸고, 조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지만, 현지 단체 활동가의 안전마저 우려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다행히 8월경 미얀마 현지 단체의 조사가 진행됐지만, 당초 계획처럼 충분한 작업이 이뤄지기는 어려웠다. 필리핀 역시 조사를 담당했던 활동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며 조사에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2022년 1월, 실태조사 보고서2가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존재했던 노조 탄압
열악한 의류 봉제업에서 노조 탄압 문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필리핀에선 두테르테 정권 이후 노조 활동에 대한 지속적인 공격이 가해지고 있다. 사실 두테르테 정권 이전부터 군경 및 정부 측 민병대가 활동가들을 살해하는 초법적 살인(extra-judicial killings) 문제가 심각한 인권 문제로 지속돼 왔다. 그리고 두테르테 정부가 집권한 후 실시한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 이후로 활동가들에 대한 살해는 더욱 빈번해졌다. 특히, 초법적 살인뿐 아니라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도 극심해져서 노조 활동 자체에 대한 공포가 형성된 상황이었다. 노동자지원센터가 한국기업 노동자에게 실태조사를 위해 설문을 하려고 하면, 노조 조직 활동으로 오해하고 답변을 기피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도 필리핀뿐만 아니라 미얀마의 한국기업 노동자들은 단체행동권은 물론이고 노조결성의 권리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노조를 겨냥한 표적 정리해고도 빈번하게 벌어졌다. 파업 참여 노동자는 해고는 물론이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도 어려웠다. 이러한 열악한 노동환경이 지속되는 가운데 코로나19 팬데믹까지 덮치며 노동자의 삶은 더욱 힘들어졌다.
코로나19, 누구도 보호하지 않는 노동자들
미얀마 8개 한국기업 노동자 실태조사 결과, 현장에서는 정부가 정한 방역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미얀마 정부는 현장 작업 시 노동자 간에 6피트(183cm) 간격을 띄워야 하고, 기업은 깨끗한 식수를 비롯해 아픈 노동자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조사에 참여한 노동자 76%는 이런 방역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한 대부분의 노동자는 회사가 일주일에 단 한 장의 마스크만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미얀마 의류 봉제업 노동자의 열악한 임금수준을 고려할 때, 노동자가 자비로 치료를 받고 방역물품을 구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기업 뿐 아니라 한국기업이 납품하는 의류 브랜드들은 이에 대한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 미얀마섬유노동자연합회(FGWM) 노동자들이 현지 ILO 사무소 앞에서 해외 기업들이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출처: FGWM] |
폐업 혹은 구조조정에 들어간 필리핀 한국기업 노동자들 역시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실질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봉쇄 조치 기간 동안 노동자들은 출퇴근 교통편을 제공받지 못해 비싼 교통비를 지불해야 했다. 백신 접종을 받지 못한 노동자는 출근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유급휴가와 회사의 지원은 제한적으로만 이뤄졌고, 비정규직을 포함한 대부분의 노동자는 그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해외 진출 한국기업의 피해실태를 조사할 때, 노동자의 피해는 별도로 조사하지 않는다. 그동안 국제사회는 기업이 코로나19를 이유로 노동자를 정리해고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와 원청 기업의 역할을 강조해 왔다. 이와 함께 코로나19를 핑계로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것에 각국 정부의 각별한 주의와 관심을 촉구했다. 특히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의 경우 한국기업에 일하는 노동자가 쿠데타 및 반대 시위 과정에서 어떤 인권침해를 당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책 마련도 시급하다.
이번 조사에서는 예상대로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해외 한국기업 노동자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팬데믹이 끝나면 더욱 많은 증언과 실태가 드러날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한국기업의 노조 탄압 문제에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여전히 남은 과제다. 공급망까지 한국기업의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 있는 관련 법제의 도입 또한 시급한 숙제다.
[각주]
1.https://cleanclothes.org/file-repository/underpaid-in-the-pandemic.pdf/view
2.http://www.khis.or.kr/spaceBBS/bbs.asp?act=read&bbs=p_file&no=898&ncount=620&s_text=&s_title=&pageno=1&basic_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