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잘 마른 나뭇가지에 빨간 불꽃이 내려앉습니다.
타닥타닥. 어느새 빨간 불꽃은 검은 재로 남습니다.
타닥타닥. 타닥타닥. 추운 겨울 유하네 마당을 가득 채우는 소리입니다. 메주와 청국장을 만들기 위한 소리입니다.
겨울이 시작되면 유하네는 유기농 콩을 삽니다. 유하네가 콩을 직접 키워야 하지만, 유하네 집 주변에는 고라니가 너무 많아 콩을 키울 수 없습니다. 동네 선배 농부들도 모두 콩 농사를 포기할 정도입니다. 다른 지역 선배 농부가 정성껏 키운 콩을 깨끗이 씻어 커다란 솥에 담습니다. 적당히 물을 붓고 뚜껑을 닫으면 유하 파파가 말려놓은 나뭇가지를 들고 와 불을 붙입니다.
유하 파파는 불을 붙일 때면 우유갑 하나를 준비합니다. 우유 대장 유하 세하가 우유를 먹고 난 후 한쪽에 모아놓은 것입니다. 유하 파파의 우유갑 예찬론이 시작됩니다. “아무리 마른 나뭇가지라도 나무에 직접 불을 붙이는 건 어렵거든. 신문지 같은 종이를 넣으면 너무 빨리 타고 재가 많이 날리는데 우유갑은 화력도 좋고 금방 타지도 않고 불붙이는 데는 최고인 거 같아.” 최근에 화덕을 마련한 대추나무밭 삼촌에게 우유갑을 잔뜩 가져다줍니다.
마술이 일어나는 시간
이렇게 불을 붙이고 나면 인고의 시간이 기다립니다. 손가락으로 슬쩍 눌러도 뭉그러져 버릴 정도로 콩을 푹 삶으려면 5시간 이상이 걸립니다. 화력이 약해지려고 하면 나뭇가지를 넣고, 넣고, 넣고…. 밭에 햇볕이 드리우는 것을 가려 잘라놓은 커다란 나무를 통째로 태웁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난 후 잘 삶겨진 콩을 커다란 대야에 담습니다. 유하 세하와 방망이를 하나씩 들고 쿵더쿵쿵더쿵 콩을 빻습니다. “엄마 우리가 달나라 토끼가 된 것 같아.” 콩알을 주워 먹던 세하가 말합니다. 잘 빻아진 콩을 메주 틀에 넣고 꼭꼭 누르면 세상에서 제일 예쁜 메주가 완성됩니다.
▲ 잘 띄워진 유하네 메주와 청국장 [출처: 이꽃맘] |
메주는 50일 정도 시간여행을 떠납니다. 따뜻한 방에 지푸라기를 깔고 메주를 올려놓습니다. 매일 메주를 들여다보며 굴리다 보면 메주 위에 하얀 곰팡이꽃이 핍니다. 쿰쿰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웁니다. 지푸라기에 있던 고초균이 메주에 들어온 겁니다. 느리게 지나가는 겨울의 시간이 메주 속에서 신기한 마술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발효입니다. 이렇게 잘 익은 메주는 정월에 소금물을 만나 맛난 된장과 간장이 됩니다.
겨울에는 시간의 마술을 담은 청국장!
잘 삶긴 콩을 작은 소쿠리에 담고 지푸라기를 꽂아 방 한구석에 이틀 동안 이불을 덮어 두면 콩들 사이에 거미줄 같은 실이 생깁니다. 방 한구석 이불 속에서 무슨 일이 생기는지 딱 이틀의 시간이 지나면 쿰쿰하고 구수한 냄새가 유하네 작은 집을 가득 채웁니다. 청국장입니다. 잘 뜬 청국장에 유하네의 여름을 담은 고춧가루와 천일염을 넣어 빻습니다. 한 알 한 알 손으로 뭉쳐 놓으면 먹기 좋은 청국장이 완성됩니다.
“세하는 겨울이면 뭐가 제일 맛있어?”하고 묻습니다. 세하는 뭐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청국장”이라고 말합니다. 잘 익은 김치 조금, 고기 조금 넣고 시간의 마술을 담은 청국장 한 알을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청국장찌개가 완성됩니다. 마지막에 두부를 넣어주면 더 맛나죠. “청국장은 한국식 패스트푸드라니까. 다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되니 짧은 시간에 이렇게 구수하고 맛난 맛을 낼 수 있는 청국장이 신기해.” 오늘도 유하 엄마는 유하 세하가 좋아하는 청국장찌개를 끓입니다.
유하 세하에게도 온 시간의 마술
이제 막 한 달을 넘긴 강아지들과 놀아주고 온 유하가 방으로 들어서며 “우와 맛있는 냄새”합니다. 유하는 여름내 열심히 키운 아주까리 밤콩과 수수를 넣어 지은 밥에 청국장 한 숟가락을 올려 먹으며 “맛있어. 맛있어”합니다. “유하야 청국장도 콩으로 만드는 거 알지?” “당연하지.” 크게 밥 한술을 떠 입으로 가져가던 유하에게 “너 근데 콩 싫어한다며?” 하니 “그러네. 히히” 유하는 어느새 콩밥에 청국장을 즐기는 언니가 되었습니다.
“나도 잘 먹어.” 청국장에 든 커다란 두부를 밥에 비벼 언니만큼 크게 떠 입에 넣으며 세하가 말합니다. “그럼 우리 세하도 이제 일곱 살이니까 뭐든지 잘 먹지” 칭찬합니다. “나 이제 숫자도 셀 줄 알아. 일 이 삼 사 오 육….” 세하가 밥을 먹다가 갑자기 숫자를 셉니다. “백!” 세하는 100을 완성하고 나서야 다시 밥을 먹습니다. 엄마와 눈빛을 주고받던 유하가 “우아 대단해. 이제 밥 먹어”하고 웃습니다. 여섯 살, 두 살에 원주로 왔던 유하 세하에게도 시간이 마술을 부린 듯합니다.
봄이 옵니다
봄이 오려나 봅니다. 동풍이 불고, 얼음이 풀리며, 겨울잠을 자던 벌레들이 깨어난다는 입춘이 지나니 해도 길어집니다. 일찍 꽃을 피우는 블루베리도 뚱뚱한 꽃눈을 올리고 쪽파의 파란 잎이 얼핏 보이는 게 식물들도 깨어날 준비를 하나 봅니다. 유하네도 잠깐 들었던 겨울잠에서 깨어납니다. 집 주변을 정리하며 밭에 나설 준비를 합니다.
대추나무밭에도 가봅니다. 여름내 키운 대추나무 가지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습니다. 가지치기를 합니다. 마음대로 자란 가지를 정리하고 대추 열매를 따기 좋은 만큼만 가지를 남겨 놓습니다. “대추나무야. 올해는 좀 더 힘내줘”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는 유하 엄마 스스로에게 하는 기도이기도 합니다. 각종 씨앗과 싹을 심을 봄, 풀과의 한판 싸움을 벌일 여름, 대추가 익어가는 가을을 지나 다시 빨간 불꽃을 만날 겨울까지 또 한해를 농부로 살아가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유하네가 농부로 산 지 4년이 꽉 찼습니다. 아직 초보 농부 이름표를 달고 있는 유하네에게도 시간이 마술을 부려주길 바라봅니다. 더 신나는 맛을 내는, 더 따뜻한 맛을 내는 유하네가 되었으면 합니다.
*잠시 광고! 유하네가 더 힘차게 농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유하네 꾸러미 시즌 5의 새 식구가 되어주세요. 자세한 내용은 페이스북에서 ‘유하네 농담’을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