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이 안 보인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들의 고민

민주노총, 20대 대선 평가토론회 열어

지난 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정당 후보의 득표는 전체의 2.51%에 그쳤다. 진보정당의 부진과 함께 민주노총 다수 조합원조차 민주노총 지지후보를 지지하지 않으면서 민주노총의 존재감 문제도 떠올랐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은 지난 대선을 ‘최악의 대선’으로 칭하면서도, 돌파구를 찾기도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대선의 부진한 성적이 바닥이 아닐 것이란 불안이 진보진영을 휩싸고 있다.


민주노총은 4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민주노총 12층 중회의실에서 ‘20대 대통령선거 평가토론회’를 개최했다.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 등 진보정당과 진보대선후보 단일화 논의를 함께한 한상균노동자대통령후보 선거대책본부(한상균 선대본)가 참석해 토론에 나섰다.

발제를 맡은 장현술 민주노총 대협실장은 이번 대선에 대해 “이슈, 쟁점은 없고 갈등만 부각됐다. 노동은 없었고 젠더 및 세대 갈등이 부각되고 지역구도가 부활한 역대급 비호감 선거였다”라며 “민주당이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 세 번의 전국선거에서 압도적 승리에도 촛불혁명을 배신하고 적폐청산과 사회 대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에, ‘묻지마 정권교체’가 대선을 주도했다”라고 평가했다.

민주노총의 한계에 대한 반성도 있었다. 장현술 대협실장은 “보수정당 후보의 치열한 접전에 따른 유권자의 사표방지심리도 영향을 미쳤지만,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도 불구하고 교육사업, 선전사업 등 체계적이고 중장기적인 기획들이 부족하고, 선거 현안이 있을 때만 정치사업에 대해 고민하는 관성과 한계가 있었다”라고 밝혔다.

진보후보 단일화 실패에 대해선 “진보정당을 견인하고 강제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주동적인 노력이 부족했다. (단일화 논의가) 상층중심으로 이뤄져 단위사업장이나 현장 조합원들의 힘으로 진보정치의 단결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부족했다”라며 “한차례 진보진영 원탁회의 등이 추진됐으나 제한적이었고, 논의과정이나 내용에 대해서도 현장까지의 공유가 부족해 대선에 대한 현장의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라고 자평했다.

장 실장은 “대선결과에서 확인되듯 진보진영의 단결을 실현하지 않으면 진보정당이 의미 있는 정치세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라며 “민주노총이 진보정당들의 중재자 역할을 넘어 하나의 주체로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 가능하며 노동자 정치 운동이 노동운동의 핵심과제임을 인식하고 보다 조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구 보수 양당체제에 파열구를 내고 진보정치가 꿈과 희망이 되도록 대중적 선전전을 적극적으로 배치하고, 정치개혁 의제를 전면화하는 등 민중 진보진영의 공동 대응 사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라고 과제를 제시했다.

민주노총, 절박한가? 대선 평가에 비판 이어져

20대 대선에 대한 민주노총의 평가와 핵심 과제에 대해선 비판도 제기됐다.

노동당 장혜경 집행위원장은 민주노총이 꼽은 진보정치의 분열 문제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기했다. 장 집행위원장은 “민주노총은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당의 저조한 득표율에 대해 진보정치 분열을 문제로 꼽았지만, 이는 핵심이 아니다”라며 “이러한 관점은 진보정치운동이 분립돼 온 역사적 과정과 그 근거를 간과하는 것이다. ‘진보정당운동의 역사적 결과’와 ‘민주노총운동의 결과물’을 들여다봐야 한다”라고 밝혔다.

우선 장 집행위원장은 진보정치가 다수 대중의 선택을 받지 못한 것은 진보정치 전반의 무능에 있다고 지적했다. 장 집행위원장은 “진보정치 내 최대 정당인 정의당은 진보정당이 가져야 할 정체성에서 이탈, 이른바 ‘민주당 정부를 왼쪽에서 추동하는 전략’으로 문재인 정부와 차별성 있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라며 “MB정권 등장 이후 진보정치와 민주노총 내에 확산된 민주대연합론(야권연대)의 연장선상이자 의회주의 정치세력화 노선의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진보당과 녹색당에 대해서도 “2020년 총선 당시 민주당 주도의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통해 국회 입성을 시도했는데, 두 정당의 비례위성정당 참여가 불발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의 거부 때문이었다. 야권연대의 잔재이자,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에 기인한 결과였지만 이에 대한 반성적 평가도 없었다”라고 비판했다.

자성도 이어졌다. 장 집행위원장은 “정치적으로 통합된 노동당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좌파세력 역시 민주대연합론과 의회주의를 비판했지만, 한국 사회를 진보적으로 재편할 동력을 만들지 못하고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정치적인 전망을 만들어 오지 못했다”라며 “많은 사회주의-좌파세력이 정당운동-정치운동에 대해 비판적, 관망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밝혔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사업을 소홀히 해온 민주노총에 대해서도 쓴소리가 이어졌다. 장 집행위원장은 “노동자 정치의 필요성과 그 내용 및 방향에 대한 민주노총 차원의 교육과 선전사업이 실종된 지 오래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급박하게 진행하는 사업으로 조합원들의 진보정치에 대한 지지를 갑자기 끌어올리기는 불가능하다”라며 “또한 사회적 합의주의, 실리주의, 조합주의의 확산으로 한국자본주의를 포함한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장기적 침체기에 맞선 운동, 노동의 위계화된 분할공세를 뚫어나가는 운동으로 발전해 나가지 못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남정수 전 한상균선본 대변인은 민주노총의 대선 관련 평가에 대해 “안일하고 관성적인 제3자적인 평가”라고 비판했다. 남 전 대변인은 “110만 조합원으로 양적성장을 했다고 하나 대선 결과는 민주노총의 정치적 힘에 대한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라며 단일화 방안 합의가 무산된 것에 대해서도 “민주노총의 노동정치세력화 사업을 진보정당들과의 사업, 특히 진보정당을 잘 단결시키면 되는 것으로 한정하는 듯한 내용의 평가에 대해선 매우 우려스럽다”라고 밝혔다.

이어 “단결이 통합으로 읽히기도 하고, 단결 혹은 단일화만 되면 현장은 따라온다는 오판을 심어줄 수도 있는 내용이라 민주노총의 신중한 평가가 필요하다”라며 “현장을 주체로 세우는 노동자정치세력화 방침, 광장의 정치, 투쟁의 정치와 선거와 제도권-의회정치를 제대로 결합시키는 전략과 방침 등 풍부한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또 “민주노총,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무너진 것이 확인되는 상황에서 실제 후보단일화를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의미와 별개로 질적으로 다른 투표 결과가 나왔을지도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한상균선본은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대선 후보로 내세워 민주노총 주도의 민중 경선을 요구했지만, 진보 대선후보 단일화 논의가 무산되자 대선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남 전 대변인은 “지난 대선에서 정책경쟁과 실질적 단일화 성사를 위한 방안으로 노동자-민중경선을 통한 단일후보 선출을 제안했고, 1백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경선이 성사된다면 약소한 체급인 노동/진보/좌파 정치세력이 대선판에서 일주체로 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으나 결국 무산됐다”라며 “충분히 실행 가능한 전략이었으나 시기도 놓치고, 대선공동대응기구에서의 논의도 합의되지 못함으로써 최소한의 무기조차도 갖추지 못하고 전장에 나선 것에 대해서도 평가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대선 후보 낸 진보정당 ‘초라한 성적’ 속 ‘소중한 성과’는

김종민 정의당 전 대선선대위 전략기획본부장은 “대선 결과 2.37% 득표율은 지난 대선 대비 절반 이상 득표율이 감소한 것으로, 3% 지지율이 무너진 패배한 선거”라고 지난 대선을 규정했다. 김 본부장에 따르면 정의당은 대선에 대한 정식 평가문서를 채택하지 않았다. 평가에 대한 정치적 이견이 있는 상태에서 정의당은 지방선거 후 대선을 포함해 당의 정치활동 전반을 평가하기로 했다. 전당적인 토론을 위해 전국위원회를 통해 정식 토론문을 채택했고, 이날 김 전 본부장도 이 토론문에 기반해 대선 평가와 과제를 밝혔다.

김 전 본부장은 “전통적 지지층, 새로운 지지층 모두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2020년 총선 이후 정의당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누적돼 결과적으로 기존 지지층은 붕괴되고, 2030여성들마저 선거 종반 최종적으로 이탈했다”라며 “중기적으로 확고한 지지층 구축 정치조직 전략이 필요하다. 2030 여성, 새로운 노동청년, 전통적 조직 노동의 지지 복원을 위한 토론을 열 것이다”라고 밝혔다.

정태흥 진보당 정책기획위원장은 “진보정당 중 가장 많은 8만7천 명의 당원을 보유했음에도 당원 수에 한참 못 미치는 3만7366(0.11%) 득표는 충격적 결과”라며 “거대 양당 구조와 원외정당이라는 어려운 한계를 감안해 오로지 당원의 힘으로 정면 돌파하자는 기조를 가졌음에도 당원 수에 미치지 못하는 득표 결과는 당의 현 상황에 대한 냉철한 진단과 함께 철저한 혁신을 요구하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이어 “당원들의 헌신적 활동으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당원의 양적 확대를 이뤘으나 진보당 당원으로서 정체성과 자부심을 확고히 가질 정도의 질적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무엇보다 진보당 당원으로서 정체성과 자부심을 확고히 가질 정도의 질적 전환은 이뤄지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성과에 대해선 “‘노동중심 진보정당’으로서 확고한 정체성, ‘성평등 정당’으로서 당의 이미지를 제고했다. 진보단결을 실현하려는 진정성 등에서는 대내외적으로 긍정적 평가도 받았다”라며 “김재연이라는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진보의 차세대 정치인을 발굴했고, 이는 향후 당의 소중한 성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라고 했다.

과제에 대해선 “진보정당 후보의 전체 득표율이 과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의 최저득표율인 3.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는데, 진보정치세력 모두의 자성이 필요한 대목”이라며 “진보의 혁신과 단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밝혔다.

장혜경 노동당 집행위원장은 노동당의 선거 운동에 대해 “완주 자체가 성과”라고 말했다. 그는 “대선 완주 여부에 대해 당 안팎의 우려나 전망에도 불구하고 완주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정치세력이 있음을 알려내고, 사회주의 정치를 대선공간에서 하나의 선택지로 등장시켰다”라며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불온시 돼 온 ‘사회주의 정치’를 대중 앞에 등장시켰다. 득표율을 통해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 정도를 객관적 수치로 확인했고, 사회주의 대중정치활동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당의 취약한 지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선후보를 내지 않은 녹색당에서도 위기를 맞은 진보정치에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밝히며 이에 대한 고민을 공유했다.

김지윤 녹색당 대협국장은 “정치 주체이자 시민으로서 ‘연대’, 상호 ‘연결’과 ‘공존’의 감각을 어떻게 재건할 것인가가 진보정당의 과제에서 중요해 보인다”라며 “이번 대선에서 가장 치열한 전선이자 정권 교체 이외에 사실상 유일한 전선은 젠더였다. 20대 여성은 여성 의제뿐 아니라 경제, 노동, 복지, 환경 등에서 일반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우리’를 확장하는 더 큰 전선을 어떻게 그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체성, 다양성, 소수자, 페미니즘, 기후위기 같은 신진보 이슈와 분배, 노동, 계급 같은 구진보 의제를 연계해 확대하고 증폭하는 고민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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