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성적 권리를 지키는 군대

[레인보우]


한국에 동성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2008년 청계광장에서 처음 배웠다. 성소수자 단체에서 배포한 전·의경 인권에 관한 유인물을 통해서였다. 1962년 제정된 군형법 제92조는 “계간 기타 추행을 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했다. 인권단체뿐 아니라 국가인권위원회나 UN의 여러 위원회가 폐지 의견을 냈지만, 이 조항은 여전히 남아 있다. 힘을 잃은 것도 아니었다. 인권 침해라는 비판에도 국회는 “동성 간의 성행위를 비하하는 ‘계간’이라는 용어를 ‘항문성교’라는 용어로 변경하는” 개정(2013, 개정 이유서)을 하면서까지 이 조항을 지켰다.

개정 직후, 군사법원장 출신인 민주당 민홍철 의원은 한술 더 떴다. “[군에 소속된] 사람에 대하여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한 사람”이라는 현행 규정이 남성 간의 성행위에 한정되는 데다 성행위 쌍방을 다 포함하지 못한다며 재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그는 결국 항의에 부딪혀 (이성 간의 경우도 모두 처벌하겠다는 시도까지 한 후에야) 포기했지만, 비슷한 시기에 같은 당의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폐지안 역시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이어 2017년에는 장준규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라고 지시한 사건이 벌어졌다. 육군은 함정수사와 협박, 무단 수색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결국 동성애자 군인을 찾아내 구속까지 했다. 무조건적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은 세간의 비판을 막는 전가의 보도였다. (이제는 제92조의 6 ‘추행죄’가 된) ‘계간죄’를 알게 된 후 지난 10년간, 인권을 말하는 이들은 줄곧 폐지를 요구했지만 국가는 군대의 특수성과 군사의 사기를 운운하며 버텼다. 군형법의 서슬은 늘 시퍼렜다.

군인의 성적 권리

그리고 다시 5년이 지났다. 이 5년은 2017년의 색출 사건으로 기소된 두 명의 남성 군인이 법정 싸움을 벌인 기간이다. 직업군인인 둘은 개인적으로 알게 된 다른 부대 소속의 상대와 영외 숙소에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 하지만 군은 해당 조항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이들을 기소하고 끝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4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군사법원의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사회의 일반적인 관념에 비추어 볼 때 동성 간의 성행위를 무조건적 ‘추행’으로 치부할 수 없을뿐더러 “현행 규정의 보호법익에는 ‘군이라는 공동사회의 건전한 생활과 군기’라는 전통적인 보호법익과 함께 ‘군인의 성적 자기결정권’도 포함된다”(다수의견)라고 본 것이다.

군대가 정말로 이 땅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조직이라면, 그 삶은 당연히 군대 안에서부터 지켜져야 한다. 부대에서 서로의 성적 권리를, 나아가 인권 전반을 지키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군인이 군대 밖에서 누구의 삶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더욱이 여전히 징병제를 고수하고 있는 한국에서 스스로 차출해 간 병사들을 성적 지향을 빌미로 처벌하는 건 이들을 파괴하는 일이지 않은가. 단순히 동성 간의 성행위를 범죄시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군인의 성적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이번 판결은 대법원의 자평대로 “합의에 의한 동성 간 성행위에 관하여 그 자체로 처벌 가치가 있는 행위라는 평가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선언”한 것이지만, 동성 간의 성행위는 이성의 경우와는 달리 여전히 군기를 저하하는 것일 수 있다는, 따라서 필요시에는 처벌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둔 판결이기도 하다. 김선수 대법관 역시 별개 의견을 통해 군기를 해한다는 이유로 이 규정의 적용 여지를 남겨둔 해석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들은 무죄 판결을 받았고 판례 또한 공식적으로 바뀌었지만, 군인의 성적 권리를 지키는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군형법 제92조의 6을 폐지하라

헌법재판소, 정부, 국회 모두 할 일이 남았다는 뜻이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2011년, 2016년 세 번에 걸쳐 군형법 제92조의 6은 강제성 여부 등을 따지지 않고 동성 간의 성적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이며 이것이 헌법적으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2017년, 2020년 등 일선 법원의 위헌 제청이 여러 차례 있었다. 현재 계류 중인 이 사건들은 헌법재판소가 전향적인 판결로 시대에 부응할 더없는 기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는 새 정부의 ‘원칙과 소신’을 보여줄 기회다. 윤 당선인은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 성소수자를 빌미로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2019년 검찰총장 후보자 시절에는 성소수자 인권과 군형법에 대한 질의에 “인간의 존엄성과 행복추구권이 보장돼야 한다”라며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라고 답한 바 있다. 국회에는 민홍철 의원이 여전히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지만 대법원 판결 이튿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대표 발의로 제92조의6을 삭제하는 군형법 일부개정안이 접수됐다.

군형법을 지키고 개악하려는 시도가 있던 2013년은 민주당 김한길 의원과 최원식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가 이내 철회한 해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요구는 문자 그대로 국회 문턱까지 차올라 있다. 군형법 추행죄 조항은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의 전파매개행위죄 조항과 함께 성적 지향에 대한 제도적 차별의 중심에 있다. 군 내 동성애가 허용되면 국방력이 무너진다는 주장과 차별금지법이 시행되면 에이즈가 창궐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닮았는지. 지난 역사를 씻어낼, 이런 유언비어에 단호히 대처하고 군 안팎에 평등의 원칙을 확립할 최적의 시기다. 바로 지금이, 군형법 제92조의 6을 폐지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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