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집회’를 금지하면 나쁜 행동이 사라질까?

[질문들]


양산 집회가 윤석열 대통령 집 앞 집회로 확산하고, 서초동 주민들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보복 집회 또는 맞불집회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집회 앞에서 그동안 주장해왔던 집회의 의미와 가치가 허물어지는 허망함을 느낀다. 허망함에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 어려운 질문들이 뒤따르고, 이 질문들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집회의 권리가 정말 무너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집회로 피해를 받는 사람들이 있는데 해결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질문, 집회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문제가 있다면 집회를 제한/금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냐는 질문. 맞다. 집회라는 형식으로 나쁜 행동이 표출되고 있다. 그런데 그 해결을 위해 ‘나쁜 집회’를 콕콕 집어내 금지하자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 집시법 개정으로는 문제가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해결책이 뭐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집회가 문제인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나쁜 행동이 문제인가? 어떻게 이런 나쁜 행동이 가능한 것인가? 누가, 무엇이 이런 행동을 지속하게 만드는가?

성소수자 혐오 선동 집단이 퀴어축제를 방해하려고 조직적인 행동을 하고 인근에 반대 집회를 열었을 때, 단식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를 조롱했을 때, 30년을 이어온 수요집회 장소를 극우단체가 선점하고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모욕하는 말로 가득 채울 때, 이슬람사원 건축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협박과 혐오에 무슬림 가족들이 고통받을 때, 나는 이런 집회를 금지하거나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없었다. 분명 나쁜 행위이기 때문에 분노의 말이 튀어나오면서도 피해자의 고통을 해결할 빠르고 강력한 방법을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사회적 소수자, 피해자들의 집회를 막으려고 장소를 선점하고 침범할 때도, 반대 집회의 월등한 성능의 스피커가 이들의 집회 진행을 삼켜버리고 거짓과 혐오의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을 때도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대응은 경찰에게 집회를 방해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요청뿐이었다.

이런 순간, 내게 간절한 것은 ‘나쁜 행위를 하는 집회’의 금지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는 혐오와 배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선언,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으며 우리는 모두 존엄하다는 약속,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정치, 혐오와 적대가 거리낌 없는 사회를 성찰하는 여론, 이런 목소리들이 만드는 사회의 힘이 필요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키우는 것은 오래 걸리는 반면,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빠르고 강력한 효과를 낼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언제나 만능일 수 없으며, 사회적인 힘과 연대는 소수자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 당당하게 불의의 공격에 맞설 힘을 갖게 한다. 나는 당사자들의 힘과 사회적 연대로 나쁜 행위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힘을 약화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더불어민주당의 집시법 개정안에 대해 진심이냐고 묻는 이유는 이런 상황을 오랫동안 방치해온 채, 혐오 표현에 대한 사회적 논의(혐오 표현이 무엇이고 규제가 필요한지, 규제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만들지도 않은 채, 혐오 표현과 모욕하는 집회만을 금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혐오 표현이 사회적 문제라는 진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면 단지 집시법이 아니라 혐오 표현 일반, 혐오 표현이 등장하는 다양한 행위에 대한 논의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단지 문 전 대통령 집 앞에서 벌어지는 행위를 금지하고 싶으니 집시법을 개정하는 것이고, 집회만 금지하면 혼자 하는 행위는 또 통제가 안 될 테니 1인시위도 금지하겠다는 발상으로 이어진다. 이 개정안은 평산마을 주민들을 위한 것도, 혐오에 고통받는 소수자들을 위한 것도, 집회의 권리를 위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문 전 대통령만을 위한 것이다.


시민의 권리보다는 대통령 지키기에 여념 없는 정치

올해 4월 처음 집시법 개정안이 발의된 뒤, 6월 20일까지 총 7개 개정안이 발의됐다. 단 한 개의 개정안을 제외하고는 모두 특정 집회를 금지하자는 내용이다. 2개는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용산 대통령 집무 공간 주변 집회 금지 개정안이고, 4개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혐오 표현, 모욕 등 표현과 소음, 상업적 목적의 집회 금지와 전직 대통령 사저 앞 집회를 금지하는 개정안이다. 결국 여당은 현 대통령과 관련한 집회를, 야당은 전 대통령과 관련한 집회를 금지하려는 것이다. 이미 집시법은 불필요하고 지나친 규제로 채워져 있고, 특히 절대적 집회 금지 조항은 유엔(UN)에서도 지적된 문제다. 더 많은 규제와 금지를 추구하는 것은 집회의 권리를 보호해야 할 국가의 책무, 입법기관의 역할을 망각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시민의 고통을 앞세워 자신들만의 정치를 하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페이스북에 “문재인 대통령 사저 주변에서 정치적 표현을 하는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권리”라면서 집회의 권리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하지만 그 권리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경찰에 의해 막히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없었다. 그리고 이어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타기 투쟁을 공격했던 이야기를 반복하며 다수의 불편을 야기하는 집회는 문제라는 비판을 했다. 이 논리도 역시 나쁜 집회와 좋은 집회를 구분하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불편함을 주는 집회는 규제/금지돼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여야가 자신의 이익에 몰두해 기본권을 침해하는 정치를 벌일 때, 시민은 연대의 실천으로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지키고 집회에 대한 공격을 버텨낼 힘을 생산하고 있다. 최근 전장연 시위로 지각한 시간만큼을 근무 시간 기록 플랫폼에 ‘연대’로 표시하고, 직원 당사자의 근무 시간으로 인정하는 회사(1)가 있다는 기사를 봤다. 이런 연대의 장면을 확인할 때면 나쁜 말과 행위를 금지하고 처벌하고 싶은 분노의 마음이 가라앉는다. 금지와 처벌이 과연 최선일까, 또는 그것으로 과연 사라질까, 라는 질문과 함께 우리가 함께 만들 수 있는 법보다 더 큰 힘의 가능성, 문제의 본질을 가리키는 사회적 시선이 이끌 미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각주
(1) “지각한 시간도 근무 인정”...전장연 시위 ‘지각 연대’ 합니다, 한겨레, 202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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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경락

    이런 순간, 내게 간절한 것은 ‘나쁜 행위를 하는 집회’의 금지가 아니었다. 우리 사회는 혐오와 배제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선언,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으며 우리는 모두 존엄하다는 약속, 차별금지법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정치, 혐오와 적대가 거리낌 없는 사회를 성찰하는 여론, 이런 목소리들이 만드는 사회의 힘이 필요했다.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키우는 것은 오래 걸리는 반면,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빠르고 강력한 효과를 낼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언제나 만능일 수 없으며, 사회적인 힘과 연대는 소수자와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을 넘어 이들이 당당하게 불의의 공격에 맞설 힘을 갖게 한다. 나는 당사자들의 힘과 사회적 연대로 나쁜 행위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힘을 약화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