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가비테 노동자들의 곁에서 영원히

[INTERNATIONAL1] 세실 동지를 추모하며

세실 동지의 죽음

7월 초,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가비테(Cavite) 수출자유지역에서 노동자를 위해 헌신해왔던 세실(Cecil) 활동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소식에 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세실 활동가는 아직 젊은 나이(1962년생)였을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연락하며 함께 일을 해왔기 때문이다. 건강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너무나 믿기지 않는 부고를 들은 지 한 달이 지나가고 있다. 세실 활동가의 부재는 지금도 믿어지지 않는다.

세실 동지는 필리핀 국립대학 재학시절부터 학생운동과 인권 활동을 해오다가, 1996년부터 가비테 수출자유지역 노동자들을 위해 설립된 노동자지원센터(Workers Assistance Center, WAC)에서 활동해왔다. 이 가비테 수출자유지역은 거대한 공단으로 수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으며, 이 공단 기업의 상당수가 한국기업들이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과도 마찬가지로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수출자유지역(혹은 경제특별구역)은 노동 3권을 정부가 제약하면서 노동자의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는 곳이다. 특히, 한국기업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1990년대 후반만 하더라도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세를 떨칠 정도였다. 노동자지원센터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맡은 세실 동지의 주 활동은 한국기업을 상대로 한 대항이었다.

  지난 7월 31일에 열린 세실 동지 추모식 [출처: 국제민주연대]

이런 연유로 세실 동지가 일하던 노동자지원센터와 국제민주연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많은 교류를 하게 됐다. 노동자지원센터와 국제민주연대는 홍콩의 아시아노동정보센터(Asis Monitoring Resources Center) 등과 함께 아시아 지역 다국적기업의 자본이동을 감시하고 대응하기 위한 아시아 다국적기업 감시네트워크(Asian Transnational Corporation Monitoring Network) 결성에 앞장섰다. 이 과정에서 국제민주연대와 노동자지원센터는 가비테 지역 한국기업 문제에 대해 2000년대 초반부터 공동의 조사 사업 및 캠페인을 펼쳐왔다. 그런 만큼, 세실 동지는 국제민주연대를 포함해 필리핀 내 한국기업 문제에 관심 있는 한국 활동가들에게 익숙한 동지였고,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지역 활동가들에게도 신뢰받는 활동가였다.

세실 동지와의 추억

세실 동지를 처음 만난 것은 2003년 겨울이었다. 당시 국제민주연대에서 자원 활동을 하던 필자는 겨울방학 인턴십 프로그램을 해외 노동단체에서 하고 싶었고, 국제민주연대의 소개로 노동자지원센터에서 한 달 동안 인턴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필리핀에 도착하고 첫날부터 우여곡절을 겪었다. 마중 나온 활동가와 어긋나 혼자 마닐라에서 밤을 보내고 겨우 길을 물어 가비테에 있는 노동자지원센터에 도착했을 때, 날 걱정하며 밤새 기다리다 반갑게 맞이해주던 세실 동지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휴일 없이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일하던 세실 동지를 비롯한 노동자지원센터 활동가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노조 결성을 방해하는 한국기업이 위치한 공단에도 들어갔는데, 갑자기 필리핀 경찰이 들이닥쳐서 필자를 연행하려 하자, 활동가들이 나를 긴급히 빼내서 도망쳤던 날도 생각난다. 그리고 공장 앞에서 찍힌 필자의 사진은 공단 출입구에 출입금지라는 안내와 함께 게시됐다. 어쩌면 가비테에서의 그런 기억 때문에 필자는 국제민주연대 상근활동을 결정했을지도 모른다.

세실 동지를 다시 만난 것은 2007년 9월이었다. 가비테 공단에 있는 한국기업 청원패션과 필스전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려 하자 회사는 용역과 경찰을 동원해 탄압했다. 세실 동지를 비롯한 노조 활동가 두 명은 직접 한국에 찾아와 OECD 가이드라인 한국연락사무소에 두 기업에 대한 진정을 제출하고 민주노총과 함께 필스전 본사 앞에서 집회도 개최했다.(1)

이 필리핀 활동가들은 영화 〈카트〉의 배경이 됐던 이랜드 계열 매장 점거 투쟁에도 함께 했다. 필리핀 노동자지원센터가 2008년 지학순 정의평화상을 받으면서, 세실 동지는 다시 한국을 방문해 두 기업이 벌이는 노조 탄압에 대한 해결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농성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괴한에 납치당하는 일까지 벌어졌음에도 한국정부는 방관했고, 세실 동지는 이를 두고 분노했다. 하지만 세실 동지는 동지들에겐 언제나 온화한 미소로 다가오던 분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꼭 경복궁에 가보고 싶었다면서 경복궁을 함께 갔던 기억도 난다. 그렇게 세실 동지와의 추억은 지난 20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갔다.

세실 동지의 빈자리

지난해 국제민주연대는 인권재단 사람의 후원으로 노동자지원센터와 함께 코로나19 상황에서 가비테 지역 한국기업 노동자의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를 수행했다.(2) 올해 3월 필자가 《워커스》를 통해 소개한 이 조사를 보면, 가비테 지역 노동자들의 상황뿐만 아니라 활동가들의 상황도 갈수록 악화했다. 필리핀 정부의 지속적인 노조 탄압과 노동단체에 대한 공격으로 인해, 노동자들이 노동자지원센터의 활동 자체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생겼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세실 동지가 얼마나 많은 부담을 갖고 활동해 왔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갑작스럽게 세실 동지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이후에, 노동자지원센터 활동가들은 정말 큰 충격에 빠졌다. 세실 동지를 추모하는 시간조차 세실 동지가 세상을 떠난 후 2주가 지난 7월 31일에야 열렸다. 150명이 넘는 노동자들과 활동가들이 모여, 세실 동지의 헌신적인 활동을 되돌아보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노동자지원센터 활동가가 추모식 사진을 공유해줬지만, 여전히 필자는 세실 동지의 부재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독재자 마르코스에 맞서 학생운동을 해왔던 세실 동지가, 독재자의 아들이 다시 필리핀의 대통령이 되는 해에 동지들 곁을 떠나게 되었음을 떠올리면 안타까울 뿐이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필리핀의 인권과 노동자들을 위해 싸워온 세실 동지의 삶을 떠올리며, 부디 세실 동지가 평안한 안식을 갖길 소망한다. 세실 동지가 없더라도 계속해서 필리핀 한국기업 노동자들을 위해 연대해 나갈 것이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세실 동지. 만나면 반갑게 꼬옥 안아주던 모습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야 작별 인사를 드립니다. 편히 쉬세요.

(1)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3421
(2)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6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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