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의 죽음과 통일교 스캔들이 가져온 자민당의 위기

[INTERNATIONAL2] 통일교 세력 약화와 자민당 지지율 하락으로 예상되는 변화들

지난 7월 8일 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가 살해당했다. 범인은 통일교 때문에 인생이 파괴된 야마가미 테츠야. 아베 전 총리는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그리고 기시다 총리는 아베 전 총리의 국장(國葬)을 거행하겠다고 밝혔다.

기시다 총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아베 국장을 결정했다고 설명했지만, 실은 정치적 의도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 내 계파 중 기시다가 소속된 코치카이는 비둘기파로, 아베가 소속돼 있던 매파인 세이와카이보다 세력이 작다. 코치카이는 기시다파, 세이와카이는 아베파로 불리는데,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된 기시다 정권은 정치력 강화를 위해 아베파의 지지가 필요했고, 이를 아베 국장을 통해 도모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시다의 속셈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아베 국장은 아베파로부터는 지지받았지만, 일본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아베 정권과 대립해 온 야당 세력과 진보적 재야 조직은 기시다 총리의 아베 국장 결정에 대해 즉각 반대를 표명했다.

  9월 19일 일본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반대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 [출처: 레이버넷]

국장이란 전 국민이 고인에게 조의를 표하는 국가적 장례다. 그러나 일본에는 국장 실시에 관한 법적 근거가 없다. 국장에 관한 법률은 과거 일제시대의 유물로서 2차 대전 패전 후 없어졌다. 예외적으로 패전 후 일본의 부흥에 진력한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가 국장에 부쳐진 적은 있었지만, 당시 여·야당 모두 요시다의 국장 이후에는 국장을 실시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절차적 문제 이전에 “내가 왜 아베에 대한 조의를 강요받아야 하지?”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적지 않았다. 정부는 아베 국장을 치르는 근거로 최장 재임 기간, 후쿠시마 부흥, 경제 회생, 외교적 성과, 해외에서 일어나는 조의 표명 등을 꼽고 있지만 이것이 왜 국장으로 연결돼야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현실을 살펴보면 후쿠시마 부흥은 갈 길이 멀고, 일본 경제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인 납치 문제나 영토 문제 등 중요한 외교 과제에 실패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아베 재임 중 양극화 심화, 출산율 저하, 복지 감축 등으로 일본 사회가 후퇴하고 있다는 게 서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감각이다.

야마가미 데쓰야의 범행 동기가 된 통일교 문제도 심각하다. 아베 사후, 언론은 하루가 멀다고 통일교가 벌인 반사회적 포교 활동을 전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자민당 의원의 상당수가 통일교와 관련돼 있다. 통일교는 한국에서의 활동과 일본에서의 활동이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에서 통일교는 신자들에게 고액의 헌금을 요구해 문제가 됐다. 10억 엔에 달하는 헌금을 내고 파산하는 개인, 가정이 붕괴하는 문제들이 수면 위로 올랐다. 아베를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도 통일교 때문에 가정이 파괴된 피해자였다.

한편 자민당 의원들과 통일교의 관계는 순수한 신앙의 문제는 아니다. 통일교가 반공을 기치로 내세우며 만든 국제승공연합은 박정희 정권에서 급성장했는데 이와 같은 위험한 정치단체가 지금도 일본에서 통일교를 통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또 가부장적인 통일교 교의가 어린이와 가정에 관한 입법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일본에선 날이 갈수록 아베 국장에 반대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9월 10일부터 11일까지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전 총리의 국장에 대한 찬반은 반대가 56%로, 찬성 38%보다 높게 나타났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국장에 부정적인 상황에서 아베 국장을 강행하는 기시다 총리의 지지율도 급락하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이 9월 17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기시다 총리를 지지한다는 답변은 29%, 지지하지 않는다는 답변은 64%를 차지했다.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자민당의 지지율 하락이 보였다. 지지통신이 9월 9일부터 12일 사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민당의 지지율은 지난달에 비해 1.9%p 떨어진 22.4%를 기록했다. 일본에선 내각 지지율과 정당 지지율의 합이 50% 이하가 되면 정권이 붕괴한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만큼 현재 정권이 매우 위험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베 정권 말기 지지율이 50% 안팎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아베 국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야당 지지자나 아베에 비판적인 사람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아베 정권을 지지했던 국민들도 아베 국장에 반대하고 있으며, 국장을 강행하는 기시다 총리를 지지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9월 이후 일본 곳곳에선 국장 반대 시위나 집회가 열리는 등 비판 여론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소속 의원들이 통일교에 관여한 것으로 확인된 자민당은 당의 위기에 대해 반박할 기력도 없어 보인다. 자민당 장로이며 아베 내각 막후 실력자였던 니카이 토시히로 의원은 국장 반대 목소리에 대해 “입 다물고 손을 모아 보내라”라고 발언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기도 했다. 지금은 복지부동으로 그저 여론이 가라앉기를 기다리겠다는 자세를 취하는 자민당이지만 아베라는 구심점을 상실한 데 이어 국장에 대한 강한 비판이라는 위기 상황을 맞이한 지금 조용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당내 최대 계파인 아베파는 아베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교와 관계를 맺은 의원들도 많아 당내 발언력은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민의에 반해 국장을 결정하고,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장을 강행하고 있는 기시다 총리의 기시다파 역시 흔들림이 감지된다. 더욱이 아베라는 ‘중석(重石)’을 잃었기 때문인지 지난 도쿄올림픽을 둘러싼 뇌물수수 사건이 부상했다. 자민당 원로 모리 전 총리가 이 사건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기도 하다. 자민당의 리더십이 약화하면 숨겨져 있던 사건들이 앞으로 더 부상할 수도 있다.

위기에 빠진 정권에 최후의 수단은 의회 해산이다. 여당 의석수는 줄어들지만 과반을 확보하면 “신임을 얻었다”라며 정권의 위기에서 일단 벗어날 수는 있다. 그러나 결과에 따라서는 개선 후의 수반(총리) 지명으로 라이벌에게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는 해산 시기를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 해산은 이르면 국장 이후 10월 임시국회에서, 또는 내년 지방선거 이후라고 보는 사람이 많지만 향후 상황에 따라 언제 해산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9월 19일 일본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아베 전 총리의 국장 반대 시위에 참석한 시민들 [출처: 레이버넷]

문제는 위기에 처한 자민당을 무너뜨리지 못하는 야당일 수도 있다. 2012년 정권을 잃은 옛 민주당은 당내 내분으로 여러 차례 분열-재편을 거듭하면서 유권자의 신뢰를 잃어버렸다. 더구나 분열된 옛 민주당 세력 가운데 우파인 국민민주당은 당론으로 국장 참석 의사를 밝혔고, 입헌민주당도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등 실세들이 국장 참석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런 상황에선 해산 후 총선이 치러져도 야당이 정권을 탈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 국정에 있어 자민당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세력이 크게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통일교와의 불편한 관계가 표면화함에 따라 일본 정치는 어느 정도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통일교에서 벌어진 고액 헌금 강요와 사기적 고액 상품 판매 같은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사회적 감시가 강해지며, 정치인들은 통일교와의 관계를 끊을 것이다. 이에 따라 통일교는 적어도 일본에서의 자금 획득은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며, 통일교 산하의 반공주의 정치조직은 활동을 대폭 축소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동안 통일교는 유력 정치인들에게 로비하면서 입법 과정에 개입해 왔다. 통일교의 영향력 약화로 변화가 기대되는 것은 가정에 관한 법률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결혼한 부부가 남편 또는 아내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남편의 성을 선택하고 있다. 여성이 사회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던 시절엔 몰라도,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진 지금은 이름 변경에 따른 사회생활상 불이익이 크다. 이 때문에 부부가 서로 다른 성을 따를 수 있도록 민법을 개정하는 논의가 1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가부장적 가족의 형태를 바꾸는 것에 저항하는 보수파의 반대로 좌초를 거듭해 왔다.

결혼해도 성이 변하지 않는 한국에서 탄생한 통일교가 왜 일본의 부부별성(夫婦別姓)에 반대하는지 이해가 안 가지만, 적어도 일본에서 통일교 산하 정치조직은 보수적인 일본의 가족제도 개혁에 저항하며 정치권을 압박해 왔다. 그리고 이들은 동성결혼, 성교육, LGBT(성소수자), 여성의 권리와 관련한 정책에도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는 앵무새 진리교의 무차별 테러 이후 사이비 종교에 대한 규제를 논의해 왔는데, 신교의 자유 역시 중요하기에 그 사이의 양립을 고심해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프랑스의 ‘반컬트법(Anti-Cult Law)’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구체적인 법안은 앞으로 검토하겠지만 종교의 이름을 빌린 반사회적 행위에 대한 규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또 종교 세력이 정치에 관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감시가 강해질 수 있다.

다음으로 아베 사망에 따른 정치 역학 변화 가능성도 살펴볼 수 있다. 아베의 사망으로 구심을 잃은 보수정치가 침체함에 따라 자민당 내에서 상대적으로 리버럴한 정치가 부상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그래도 어차피 자민당 내 리버럴이다. 정책 전환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앞서 언급한 가정제도에 관한 정책이나 교육 관련 정책 등이 다소 나아질 수 있어 보인다.

일본 보수정치의 토대인 헌법 개정, 미국 추종, 자위력 강화, 민영화 추진 등의 큰 방향성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다만 아베가 추진했던 헌법 개정에는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헌법을 개정해도 별 이익이 없는데, 실패하면 피해가 크다는 이유이다. 다음 지도자에 달려 있지만, 현재로서는 차기 총리로 지목받던 거물급 정치인 상당수가 통일교와의 관계가 지적돼 소극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통일교에 대한 반감과 국장 역풍으로 당분간 신중한 국정운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자민당 정치 흐름 자체는 크게 달라질 게 없다고 봐야 한다.

여권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 앞으로 변화는 야당의 몫이다. 그러나 여당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야당 지지율이 오르는 것은 아니다. 정당 지지도는 조사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자민당이 30% 정도이고, 야당은 어느 정당이나 5% 이하로 나타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약 60%나 된다는 점이다.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는 독특한 정책을 내세우는 이른바 신선조, NHK당, 참정당 등 소수 정당이 의석을 얻기도 했다. 기존 정치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런 절망적인 정치 상황에 대한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둔하다. 각 지역에서 국장 반대의 데모나 집회는 행해지고 있지만, 정권 타도를 향한 압력은 약하다. 그 이유로는 국장에 반대하는 사람 중에는 아베를 지지했던 사람도 적지 않다는 점, 옛 민주당계 정당이 아베 국장에 대해 계속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아울러 일본 최대 노총인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렌고)에선 회장이 국장에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국장이 그 이유도 불충분하고, 절차적으로도 부적절하고, 일반 국민적 감정에도 어긋나는 일이지만 아베 국장 강행이 반드시 정권 비판으로 향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국장도, 통일교 사태도, 아베 정치의 산물로 정치적 접근을 하는 세력은 진보 성향의 공산당이나 사민당 지지자들 정도다.

변하지 않는 일본. 진보 진영의 고민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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