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기료 폭등, 러시아 아닌 전력 민영화 문제

[99%의 경제] 유럽연합의 자승자박, 미친 에너지 가격


유럽연합(EU)과 영국의 에너지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평균 4배 올랐고, 지난 2년 사이에 10배가 올랐다. 특히 북해에 가스전까지 보유해 가스 공급의 42%를 자급하고 있는 영국의 에너지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높게 치솟았다. 10월부터 적용되는 영국의 전기, 가스요금은 한국 대비 각각 6.8배, 3.6배에 이른다.

게다가 가스와 석유 등 원료비 상승은 에너지 생산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금속에서 비료에 이르기까지 제조업의 산업 생산량을 감소시켰다. 특히 유럽 경제는 침체 직전까지 내몰려 가스와 전기 가격 인상은 올여름 내내 유럽을 강타했다. 그 결과 유럽 각국에서 인플레이션은 수십 년 만에 최고로 치솟았고, 생활비 위기는 심화해 정부는 고통 완화를 위한 개입에 나서야 했다.

알려진 대로 유럽의 전기요금 대란과 인플레이션은 천연가스와 석유의 공급 가격 인상으로 촉발했다. 이 때문에 EU와 영국 정부는 전기요금 폭등과 인플레이션 급등을 러시아 정부 탓으로 돌렸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러시아가 유럽에 저렴하게 공급해온 천연가스의 공급을 정치적 목적으로 축소 내지는 중단시켰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천연가스 공급 중단은 천연가스 대금의 러시아 루블화 결제 금지와 유럽의 러시아 경제제재로 인해 자초한 바가 크다. EU가 대안도 없이 러시아 가스와 석유 거래를 축소, 중단시키면서 가스 공급량이 줄어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또한 EU는 러시아 가스 공급이 줄어든 상태에서 겨울용 에너지 수급을 위해 선박으로 수입되는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의 저장률을 평시보다 더 늘려야 했다. EU는 10월까지 LNG 재고율을 80%까지 높이기로 하고 열심히 LNG 현물을 사들였다. 러시아로부터 가스를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페인, 미국 등 다른 LNG 생산국가에서 수입을 대폭 확대했고 그 여파로 국제 LNG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유럽이 LNG 선점에 나서자 한국 등 다른 나라에서도 LNG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고, 글로벌 LNG 수요는 한층 더 팽창해 국제 LNG 가격은 더 뛰어올랐다.

전기요금 폭등, 전력 민영화와 시장경쟁이 원인

유럽의 에너지, 전기요금 폭등 문제는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가스와 석유 등 전기요금과 연동된 에너지원의 수급 부족, 특히 가스 가격의 폭등이 초래한 것은 분명하지만, 전기 가격은 가스 공급 가격 인상 폭보다 최소 2배 이상 더 올랐다. 전기 가격은 사실상 가스 가격과 연동돼 있어 가스 가격이 오르면 전기 가격도 오른다. 그런데 가스 발전 비중은 전체 전력 생산의 20% 수준에 불과하다. 산술적으로 보면, 가스 가격이 두 배(100%)가 돼도 전기 가격은 20%만 인상돼야 한다. 그런데 가스 가격이 세 배, 네 배 오르는 동안 전기 가격은 종전보다 많게는 10배가 인상됐다. 실제 발전 비용(발전 단가) 인상 폭에 비해 전기 가격이 무려 20~30배 더 오른 것이다. 이러한 전기 가격 폭등의 문제는 유럽과 영국이 전력 생산을 민영화하고 시장경쟁체제를 도입하면서 민간 원료 공급사와 민간 발전사의 이윤을 보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 프랑스와 독일 등 EU 국가는 전력 생산과 송·배전을 담당하는 국영회사, 공기업 등 국가별 운영 주체를 갖고 있었고, EU 차원의 통합 그리드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EU 국가들은 1990년대 들어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바람 속에서 전력부문을 민영화했다. 우선 발전과 송·배전 부문을 분리해 발전소를 대부분 민영화했다. 이에 따라 전력시장이 개방돼 민간 발전업체들이 대량 양산됐다. 민간 시장은 EU 그리드에서 서로 경쟁하면서 공급 가격을 결정하게 됐다. (송·배전 부문은 영국 등 일부 국가에서 에너지 소매업체로 민영화하기도 했지만, 상당수 국가에선 여전히 공공부문으로 남아 있다.)

민영화 이후 현재까지 전기 가격은 시장경쟁으로, 신자유주의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각 발전사업자는 보유 중인 발전기를 가동하는 데 드는 연료비 등을 고려해 발전기별 입찰가를 낸다. 풍력과 태양광은 연료비가 거의 들지 않으므로 가장 낮은 입찰가를 낸다. 그 위로 수력과 원자력, 석탄, 가스 등의 순으로 입찰가를 제시한다. 이렇게 가장 싼 발전기부터 비싼 발전기 순으로 발전용량을 쌓아 올린 다음 실제 예상되는 전력 수요가 채워지는 지점에서 전기 도매가격이 결정된다.

가령 풍력, 태양광, 원자력, 석탄, 가스가 각각 10GW(기가와트)씩 발전용량을 입찰했고, 이때 수요가 30GW라면 원자력의 입찰가격으로, 50GW라면 가스의 입찰가격이 도매가격이 된다. 이때 가스보다 낮은 원료비를 가진 풍력, 태양광 등의 전기 판매가격도 같은 도매가격으로 형성된다. 수요에 따라 도매가격이 결정되면 발전원에 상관없이 모두 같은 도매가격으로 전기가 판매된다. 이처럼 현물시장의 가격은 전기의 수요 공급의 조정에 의해 결정된다. 전력 공급이 모자란 상황에서도 전력 공급을 제한하기보다는 가격을 상승시켜 전력 수요가 조정되는 식이다.

하지만 전력 생산과 공급이 매 순간 균형을 이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낭비가 된다.) 따라서 가장 협력적으로 작동해야 할 때 발전소들이 어떻게 가격 경쟁에 나서게 할 수 있을까? 민영화 이전에는 공공화된 전체 전력 부문 그리드가 부하와 수요의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했다. 전력 공급이 부족할 때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소스 발전을 늘리거나 미리 기저 전력의 예비 공급을 늘려서 대응했고,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발전 단가가 높은 부문의 발전 출력을 줄이거나 끄면서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시스템에선 전력 수요가 줄어들면 발전 단가가 높은 발전사들이 알아서 출력을 줄이거나, 심지어 입찰 참여와 상관없이 적자를 감수해야 한다. 입찰에 들어가도 발전 단가에 미치지 못하는 도매가격이 형성되기 때문에 전기를 판매하든 아니든 적자를 보게 된다. 발전량이 줄거나 낮은 도매가격으로 수익이 줄고 적자를 보게 되면, 발전사는 그만큼 발전 단가를 더 높이게 된다. 그리고 수요가 높을 때 더 비싼 도매가격으로 수익을 보전하려 하기 때문에 전기 도매가격은 지속해서 더 올라가게 된다.

지난해 여름, 풍속이 줄어들어 유럽에서 풍력발전이 줄었다. 게다가 코로나19 회복 수요로 인해 전기 수요까지 증가하면서 전기 도매가격이 가스 가격에 의해 결정됐다. 가스와 석유 공급회사들은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마크업까지 더 붙여서 상상을 초월하는 이익을 거뒀다. 또한 가스 이외의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발전사들, 특히 풍력과 태양광의 경우 발전량 축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초과이윤을 얻게 됐다. 이들이야말로 전기요금 폭등의 가장 큰 원인이자 인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송·배전 민영화, 화를 더 키웠다

EU와 영국은 이렇듯 시장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가격 결정 체계를 구축하면서 송·배전 등 에너지 소매 부문까지 민영화해 화를 더 키웠다. 특히 영국은 1999년 전기, 가스 등의 소매 부문까지 민영화했다. 이제 전기의 도매가격은 물론 소매가격까지 민간 업체에서 좌우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고, 민간 업체들이 전기요금을 마음대로 올릴 수 있게 됐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영국은 소매 부문을 민영화하면서도 민간 업체들이 가스와 전기료를 마음대로 인상하지 못하도록 에너지시장 규제기관인 가스전력시장규제청(오프젬, Ofgem)을 두고 가격을 관리해 왔다. 오프젬은 상하반기에 한 번씩, 1년에 두 번, 가격 상한액을 설정해 발표했다(최근 연료비가 연일 폭등하자 분기별 1회로 상한액 설정 주기를 단축했다.).

전력 생산 비용이 급증할 경우 소규모 소매업체들은 전기와 가스료를 마음대로 인상하지 못해 파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영국에선 천연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급등으로 28개의 에너지 소매업체가 파산했다. 그리고 이 소매업체들의 파산 비용과 그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분이 그대로 소비자들에게 전가됐다. 영국 의회감사원(NAO)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오프젬의 ‘특별 관리’에 들어간 벌브 에너지(Bulb Energy) 운영 비용 외에 2021년 6월 이후 파산한 에너지 공급업체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약 27억 파운드(4조 2,900억 원)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유럽과 영국의 에너지 가격 폭등은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 공급을 가로막으면서 스스로 자초한 것 외에, 에너지 가격의 시장주의적 결정 방식과 발전과 송·배전 등 전력 부문 민영화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적인 전기 가격 결정 방식은 전기 가격 결정권을 민간 발전사들에 넘긴 것이며, 민간 가스와 석유 등 원료(에너지원) 공급회사, 민간 발전사에 전기요금의 폭리를 취하도록 허용한 방식이다.

현행 영국의 전기 상한액(소매가격) 1,971파운드에는 도매가격 1,077파운드, 네트워크 비용 371파운드, 운영비 185파운드, 부가세 94파운드, 이익 35파운드 등이 녹아 있다. 이 가격은 발전사와 원료 공급사인 빅 오일 기업, 네트워크 서비스 독점기업 그리고 소매회사 등 크게 4개 부문의 기업들에 분배된다.

오프젬에 의해 에너지 소매회사의 이익률은 총비용의 2%로 제한된다. 위의 상한액에서 35파운드가 소매회사의 이윤이다. 소매회사는 여기에 파이프와 라인으로 가스와 전기를 가정에 분배하는 비용의 일부를 보전받는다. 사실 네트워크 서비스 공급은 소매회사보다는 별도의 기업체들이 독점적으로 공급하며, ‘Big Six’라 불리는 네트워크 서비스 독점업체들이 네트워크 및 운영비의 약 40%를 가져가고 있다. 이는 전체 소매가격의 약 7~10%를 차지한다.

무엇보다 소매가격의 가장 큰 부분은 도매가격으로 발전사의 발전비용과 이윤 그리고 원료비로 구성된다. 그중에서도 글로벌 에너지 회사가 부과하는 가격, 원료비가 소매가격의 가장 큰 부분이다. 발전 단가가 높은 발전원일 경우 즉, 원료비가 비쌀수록 원료 공급사의 가격 비중이 더 높다. 가스, 석유 등 연료비 폭등에 따라 올 상반기 동안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셸(Shell), 엑손모빌(ExxonMobil), 셰브론(Chevron) 등 5대 에너지 기업들은 거의 1000억 달러(약 135조 원)에 달하는 이익을 달성했다.


EU의 대책, 고통 분담과 빨간약

EU와 영국은 가스 공급 가격을 안정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지금처럼 신자유주의적인 에너지 가격 결정 방식과 에너지 부문의 민영화를 유지한다면 결코 가격 폭등을 막을 수 없다. 무엇보다 EU는 가스 수요와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전기 도매가격이 가스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전기-가스비(연료비) 연동 체계를 시급하게 손봐야 했다. 이는 사실상 전기 가격의 시장결정 방식 포기를 의미했다. 전기-가스비 분리, 발전용 가스 가격 상한제, 가스 가격 상한과 최고 시장가격 차액 보장제, 러시아 수입 가스 가격 상한제 등 유럽 내 국가 수만큼이나 다양한 방안이 쏟아졌다. 그러나 가스 가격 상한제 등은 러시아 가스를 수입하거나, 가스를 직접 생산하는 관련 국가들의 반대와 가스 가격 상한제에 반발한 러시아가 유럽으로의 가스 공급을 차단하겠다고 밝히면서 무산됐다. 결국 EU는 전력 부문 민영화와 시장결정 방식을 그대로 둔 채, 에너지 가격 대책으로 ‘수익 재분배 및 전력 수요 감소 조치’를 마지막으로 택했다.

최근 EU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석유·가스 가격 상승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긴 에너지 기업을 상대로 1400억 유로(약 195조 원) 규모의 ‘횡재세’를 걷겠다고 밝혔다. 앞서 설명대로 가스 외 에너지원으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업체들은 생산원가보다 훨씬 비싼 값에 전력을 팔아 엄청난 이윤을 올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9월 14일(현지 시각) EU 의회 정례연설에서 “이번 제안이 실현되면 회원국들이 1400억 유로를 마련할 수 있어 에너지난 완화에 투입할 여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책에는 원유·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기업(빅 오일)의 초과이익에 ‘연대 분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화석연료 기업의 올해 이익이 지난 3년간의 평균 이익보다 20% 이상 많을 경우, 그 이익의 33%를 연대세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됐든, EU가 에너지 기업의 독점이윤을 환수한다는 것은 나름 진일보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1400억 유로(약 195조 원) 수준으로는 유럽 전체로 보면 새 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유럽연합 인구 1인당 약 40만 원 수준이라 2~3인 가구당 연 1천만 원이 넘어가는 전기요금 인상분에 턱없이 모자란다. 또한 전기 도매가격의 시장결정 구조는 그대로 두고 가스 외 발전업체의 요금 수입 상한을 정한 것이고, 가스 발전은 기존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격 인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EU는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 소비를 줄여 에너지 가격을 낮추자는 ‘고통분담론’을 대책으로 꺼내 들었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불가피한 대가로서 이 또한 연대의 의미라며 전력 소비를 줄여 나가자고 강조한다. 스위스 정부는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오븐을 예열하지 않고 케이크 굽기’, ‘따뜻한 물 대신 찬물로 입 헹구기’, ‘여럿이 함께 샤워하기’ 등을 권고하고 나섰다.

EU의 이러한 정책은 전쟁 승리를 위한 ‘고통분담론’이면서 동시에 에너지 가격 폭등의 피해를 부분적으로 지원하는 ‘빨간약’ 정책이다. 가격 결정의 신자유주의 구조와 전력 부문 민영화 문제는 그대로 두고 에너지 가격 폭등을 방치하면서 민간 에너지 기업 초과이윤의 일부를 걷어 수십 배나 뛴 에너지 가격으로 생계가 곤란한 취약계층의 일부를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고통 분담과 빨간약으로 이번 겨울을 견딘다고 끝날 상황이 아니란 점이다. 유럽발 국제 가스대란은 러시아 가스를 LNG로 대체하려는 유럽이 미국 셰일가스 공급자들로부터 장기계약 물량을 도입하기 시작하는 2026년까지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6월 독일 전력회사인 이앤비더블유(EnBW)가 미국의 가스공급업체와 체결한 20년 장기계약(연간 150만 톤)의 최초 LNG 물량은 2026년에 공급된다. 미국의 LNG 수출을 확대하려면 항만에 전용 터미널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 대규모 LNG 수출터미널이 없기 때문에 터미널 공사에 최소 4년이 소요된다. 앞으로 최소 4년간은 유럽과 아시아가 한정된 세계 LNG 공급물량을 두고 계속 경쟁해야 하기에, LNG 가격 고공행진이 지속된다는 의미다.

전기요금 폭등에도 전력 민영화 선택한 한국

지난 4월 윤석열 정부의 공식 출범을 앞두고 인수위가 전력시장 개방과 전기요금 인상 방안을 밝히자 SNS에서 전기 민영화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자 인수위는 입장문을 통해 “한전의 민영화를 논의한 적 없다”라며 “한전의 독점적 전력 판매시장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전 민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새롭고 다양한 전력 서비스 사업자가 등장하는 것이 필요하기에 전력시장이 경쟁적 시장 구조로 바뀌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인수위가 밝힌 전력 부문에 대한 계획은 “경쟁과 시장원칙에 기반한 에너지 시장구조의 확립”을 목표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PPA(전력구매계약) 확대, 전기요금 원가주의의 확립, 전력시장 다원화 및 경쟁 기반 전력시장 강화를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민영화가 소유 지분을 민간에 매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공부문을 민간자본이 참여하도록 개방하고 시장화하는 것도 포함한다면 윤석열 정부의 계획은 다름 아닌 민영화다.

현재 국내 전력시장의 구조는 한전과 발전사들이 민영화돼 있지만 완전히 독립된 형태가 아니라 여러 가지로 정부에 의해 구속받는, 부분 민영화 형태다. 발전 부문의 민영화와 시장화는 상당 정도 진행돼 있지만 송·배전은 여전히 한전이 지배적인 위치에 있다. 시장경쟁과 가격결정도 유럽과 거의 동일한 구조를 갖추고 있지만, 유럽과 달리 발전사에 대한 정부의 영향력이 여전히 존재해 매 순간 발전사들과의 협력 속에서 전력 수요에 맞게 출력 조정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제 LNG 가격의 폭등과 발전 원료비 상승에도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유럽에 비해 상대적이긴 하지만 크지 않다.


한편, 한국 전력시장에 아직 공적부문이 남아 있다는 것은 이미 상당 수준 민영화돼 있고 시장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전력은 열량단가가 저렴한 순서대로 공급되고 전력 도매가격은 공급된 전력 중 열량단가가 가장 비싼 에너지원 기준으로 정해진다. 여기까지는 유럽과 같다. 그런데 한전이 전력을 사들이는 전기 도매가격에는 상한선이 없다.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는 민간업체가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해 폭리를 취할 것을 우려해 가격 상한제를 운용하고 있고 독립적인 시장규제기관도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그런 규제 장치가 없어 민간 업체가 입찰가격을 올리면 그대로 결정된다.

반면, 소매 부문이 한전에 있기 때문에 소매가격은 원가연동제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한전의 적자가 커지면서 2021년부터 원가연동제를 시행했지만, 국제 조정단가가 ±5원/kWh(킬로와트시) 초과 시 상하한 ±5원/kWh을 적용해 전기요금 변동 폭이 크지 않다. 게다가 현재까지 원가연동제를 시행한 바도 없기 때문에, 국제 LNG 가격과 연료비 폭등 속에서도 국내 소비자들은 가격 인상 폭이 크지 않은 수준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민간 발전사로부터 전기를 구매하는 도매가격과 국내 소비자들이 최종 구매하는 소비 가격은 심각하게 역진적으로 차이가 날 수밖에 없고, 한전이 이 차액을 보전하는 식으로 적자를 확대해 왔다. 한전은 올해 1분기 평균 킬로와트시(kWh)당 181원에 전력을 구매해 전기소비자에게 110원에 판매했다. 비싼 가격으로 민간 발전사에서 전기를 구매해 이보다 싼 값으로 소비자에게 팔았다. 그 결과 국제 연료 가격 폭등 속에 한전은 사상 최대의 적자 위기에 처했다. 한전의 올해 상반기 영업손실은 14조 3,033억 원에 달했다. 영업 적자가 많이 났다는 지난해 영업손실이 5조 8,601억 원임을 고려할 때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국제 연료비 인상에 따라 증권가에서는 올해 한전의 영업손실이 4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현재 한국의 전기요금은 한전의 적자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전의 적자는 민간 발전사의 흑자와 국민 전기요금 부담 최소화로만 나타날 뿐이라서, 한전의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민간 발전사의 흑자를 축소하거나 전기요금 인상으로 국민 부담을 늘리는 방안 외에는 대책이 없다.

정부는 지난 5월 새 정부 출범 기간임에도 한전의 재무위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으로 ‘전력시장 긴급정산 상한가격제도’(SMP 상한제)를 도입하려고 했다. SMP(전력도매가격) 상한제는 SMP가 급등하는 경우 SMP 상한을 일정 수준으로 제한함으로써 발전사업자에 대한 정산액을 낮추는 것이다. 한전의 비용(SMP)에 제한을 둬 적자 폭을 줄이는 대신 발전사의 수익(SMP)도 줄어드는 구조다.

국제 연료 가격 급등에 따라 전력시장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오를 경우 평상시 수준의 정산가격을 적용하도록 하는 게 SMP 상한제의 골자다. SMP 상한제가 시행되면 10만여 개 발전사와 사업자가 적용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민간 발전사와 관련 사업자는 과도한 이익 침해라며 법적 소송까지 불사하겠다며 반발했다. 결국 정부는 이에 굴복해 이 사업을 중단시켰다.

유럽이 한국의 미래일 수는 없다

이처럼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시행 중인 가격 상한제를 한국만 못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전기 가격 인상 외에 한전의 알짜 자산 매각으로 적자를 메우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다시 민영화인 것이다. (가격 상한제를 도입했더라도 극적인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연료비와 연동을 확대하고 이와 연동되는 기준 가격을 대폭 올려 적자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의 민간 발전사 확대, 전력시장 개방, PPA 확대를 통한 송·배전 민영화 확대 조치들은 전력시장에 그나마 남아 있는 공적부문의 역할을 해체해 전력시장을 완전한 민영화, 신자유주의 체제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발전사 완전 민영화 및 민간 발전사의 확대를 통해 전력시장을 개방하고 전기 가격 결정구조를 유럽과 같은 시장적, 신자유주의적 구조로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런 조치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는 오늘날 유럽의 현실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에너지 부문의 민영화와 시장화는 가격 폭등으로 발전비용 부담을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민간 에너지 자본에는 폭리, 상상을 초월하는 초과이윤을 안겨주는 일이다.

국제 연료비가 폭등하는 상황에서 물량 수급이나 수요조절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한전의 적자 폭이 기하급수로 늘어나게 용인하거나 민간 발전사의 이윤만 좇는 것도 지속 불가능하다. 신자유주의화 된 가격결정 질서와 민영화, 시장화된 에너지 공급체계를 공적, 사회적 체계로 바꾸는 것이 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이자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대책의 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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