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 근골격계질환 산재 신청 나서

쿠팡 3사, 산재 신청 10위 이내…노조 "쿠팡, 산재 신청 막고 있다"

쿠팡물류센터 노동자들이 근로복지공단에 근골격계질환으로 인한 산재 요양신청서를 21일 제출했다.

이날 물류센터의 노동실태 고발에 나선 노동자 3명은 공공운수노조 소속 쿠팡물류센터지회 조합원이다. 공공운수노조·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쿠팡대책위)는 이날 오전 서울 송파구 쿠팡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을 시작으로 "근골격계 예방대책을 포함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요구하며 투쟁을 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고용노동부에도 쿠팡이 산업안전보건법을 잘 지키는지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은 제한된 시간 내 물건 발송을 위해 하루에도 수만 보씩 물류센터를 걷고, 10kg가 넘는 도트(바구니)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들어 옮긴다. 상품의 출납을 위해 손가락으로 수만 번씩 PDA(휴대정보단말기)를 누르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쿠팡의 물량이 늘었고 자연스레 노동강도와 작업량도 늘었다는 것이 노조의 설명이다.

하루 2만5천 보, 300~400회 숙이고 쪼그려 앉아

기자회견에는 근골격계로 산재 신청을 진행한 당사자들이 발언에 나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의 노동 과정에 대해 고발했다. 경북 칠곡 쿠팡 대구물류2센터의 출고 포장·집품 작업 노동자인 이창율 씨는 "집품 작업의 경우, PDA의 작업지시에 따라 작업용 카트에 제품들을 싣고 오게 된다. 0.5g부터 20kg을 초과하는 중량물에 이르는 제품들을 모아서 밀거나 끌어서 포장 준비 공간까지 이동시킨다. 1일 평균 3~5시간 동안 300회에서 400회에 걸쳐 허리를 숙이거나 쪼그려 앉아서 물품을 끄집어내거나 들어서 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 씨는 포장 작업의 경우 "집품된 제품들을 기준에 맞게 종이박스와 PB라고 부르는 비닐봉지에 포장해 바구니에 담아 지역별로 나눠 컨베이어에 올린다"라며 이 과정에서 "무게감·부피감이 있는 제품들과 중량 물품들을 반복적으로 들고 내리는 작업을 매일 반복하다 보니 손가락, 손목, 팔꿈치부터 발목에 이르는 근골격계 질환을 겪고 있다. 하루 8시간 기준 평균 1만3천보에서 1만9천보까지 걷게 됨으로써 발바닥에도 족저근막염 등의 질환을 앓고 있다"라고 전했다.

이러한 고강도 노동에도 불구하고 쿠팡 물류 자회사 쿠팡풀필먼트서비스가 현장에 설치한 안전보건팀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 이 씨의 설명이다. 관련해 그는 "지난여름, 크기가 큰 제품들을 반자동으로 포장하는 기계가 도입되자 한 달도 안 돼 담당 노동자들이 손목과 팔꿈치 어깨에 통증을 호소했다. 이를 안전보건팀에 얘기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스트레칭 실습, 설문조사 실시, 중량물 포장 개수 축소 등이 전부였다"라고 지적했다.

부천신선센터에서 2년 동안 일했다는 권경숙 씨도 집품 작업 담당이었다. 그는 "식사 시간 이후 6시간의 연장근무를 하면 아침 8시에 퇴근하는데 어떠한 간식도, 휴식도 없이 걷고 또 걷고 열심히 일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깨와 발바닥, 발목이 아파지고 온몸 여기저기가 아파졌다. 7일 중 5일은 열심히 일하고 2일은 병원 다니는 게 나도 모르게 일상이 돼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가벼운 물건부터 10kg가 넘는 쌀까지 바구니에 담고, 이를 레일 위에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몸에 무리가 온 것이다. 권 씨는 하루 2만5천 보 이상을 걸었다고 했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24시간 근골격계 질환 발생 위험에 노출"

양은정 건강한노동세상 사무국장은 "쿠팡에서 이미 근골격계질환이 다수 승인된 바 있는데 계속해서 근골격계질환 유소견 노동자가 확인되고, 산재 신청이 이어진다는 것은 물류센터 작업 과정이 노동자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양 사무국장은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매일 24시간 내내 근골격계질환 발생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꼬집었다. 근골격계질환이 개인적 요인(성별·나이), 사회경제적 요인(직무 스트레스·고용 안정성), 직업적 요인(불편한 작업 자세·과도한 힘의 사용·반복성이 높은 작업·부적절한 휴식·작업장 온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는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전체적으로 주간·야간 근무 모두 고강도 노동을 견디고 있으며 여름에는 폭염, 겨울에는 한랭에 노출돼있다. 온전하게 주어진 휴식 시간도, 제대로 된 휴식을 취할 휴게시설도 없다. 노동자에 대한 감시·통제는 이미 높은 노동강도를 더욱 높일 뿐만 아니라 직무 스트레스와 직장 내 갑질로도 이어졌다. 높은 노동강도·야간 근무는 퇴근 후에도 온전히 신체적·정신적 휴식을 누릴 수 없게 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진행된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노동환경·건강수준 평가 국회 토론회'에서는 이미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태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 356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해당 조사에서 43.8%는 '하루 총 2시간 이상 쪼그리고 앉거나 무릎을 굽힌 자세에서 이루어지는 작업' 등 불편한 자세로 일한다고 응답했다. 56.7%는 '하루 총 2시간 이상 지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4.5kg 이상의 물건을 한 손으로 들거나 동일한 힘으로 쥐는 작업' 등 과도한 힘을 사용한다고 답했다. '하루 총 2시간 이상 목·어깨·팔꿈치·손목·손을 사용해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는 응답자는 무려 91.9%에 달했다.

양 사무국장은 이날 쿠팡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에 따라 근로복지공단은 재해조사를 통해 신체 부담 업무 등 사업장 유해환경을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근골격계질환으로 업무상 질병을 인정받은 경우 수시 근골격계 유해 요인 조사를 실시하고, 위험 제거 및 개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에서는 쿠팡이 산재 건수를 낮추기 위해 불안정한 고용관계를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병조 쿠팡물류센터지회 지회장은 "쿠팡이 산재 보험료율을 낮추거나 산재 건수 증가를 막기 위해 고용관계를 이용 노동자를 압박해 직장 단체보험이나 개인 부담 등으로 처리하게 하고 있다. 또 작업장의 안전장치 미비, 강도 높은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집중력 저하에서 오는 사고 등을 개인의 실수·잘못으로 압박해 사실관계 증명서·개인 각서 등을 받는 등의 행위를 하고 있다"라며 뿐만 아니라 "산재를 신청했거나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높은 노동자들에겐 재계약에 불이익을 주고 있다"라고 했다. 올해 한국 전체 기업의 산재 신청 건수 순위에서 쿠팡주식회사·쿠팡풀필먼트·쿠팡이츠서비스 등 쿠팡의 3개 계열사가 모두 10위권 안에 들었는데, 쿠팡이 산재 신청을 막는 것을 감안하면 상황이 더욱 심각한 수준일 수 있다.

관련해 김영애 공운수노조 부위원장(공공운수노조 노동안전보건위원장)은 쿠팡이 올해 8월 기준 그동안 산재가 많이 발생한 조선소•건설사 등을 제치고 산업재해 기업 1등을 차지했다면서 "쿠팡은 이윤만큼 기업의 도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겨울은 핫팩, 여름엔 선풍기 몇 대로 (산업안전보건법상) 쾌적한 작업환경조성 의무를 다했다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쿠팡대책위 공동대표 권영국 변호사는 "쿠팡은 근골격계 질환 실태에 즈음해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보호할 방안을 먼저 강구해야 한다"라며 "쿠팡은 노동자 참여권을 보장하기 위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노동조합 대표를 참석시키고 노동조합과의 실질적인 교섭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은혜진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