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님, 제게 광장을 언제 돌려주실 셈인가요?

[질문들]

시장님, 저는 광화문광장 재개장 이후 첫 집회를 주최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걸러내겠다는 서울시에 분노한 시민들이 ‘광화문광장 집회의 권리 쟁취 공동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광화문광장에서 집회금지하는 오세훈 시장 규탄 집회’를 광장에서 열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광화문광장에서의 집회는 우리의 권리라는 것이고, 광장은 여가와 문화의 공간이자 시민들의 공론장이라는 것입니다.

지난 9월 19일 종로경찰서에 집회신고를 했습니다. 신고 접수 후에 경찰은 서울시가 조례에 따라 관리 중인 곳이니 서울시의 광장 사용 승인이 필요하다고 안내했습니다. 절차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에 따른 집회신고 이후에 추가 허가 절차를 거처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법이 집회에 대한 허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변호사이기도 한 시장님이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죠? 헌법 위의 조례가 참 이상하지만 일단 9월 29일에 광화문광장 사용 허가를 신청했습니다. 무려 10장이나 되는 신청서류에는 사용 허가 일반조건이라는 내용이 있더군요. 사용 면적, 소음, 기간과 함께 사용 목적이 모호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우리 집회는 기준을 초과하는 해당 사항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시장님을 규탄한다는 목적이 분명했으니, 사용 허가가 안 될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회 이틀 전인 10월 11일 「공유재산법 및 물품관리법」 제20조(사용 허가) 및 「서울특별시 광화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제1조(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사용 허가 신청서를 반려한다는 공문을 받았습니다. 100명 규모의 두 시간 집회를 위해 광장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인지 설명은 없었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는 그 어떤 집회도 못 하게 하겠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장님을 규탄하는 집회라서 그런 것일까요?

  시민·인권 단체들로 구성된 광화문광장 집회의 권리 쟁취 공동행동이 지난 10월 13일 저녁, 광화문광장 놀이마당에서 '광화문 광장에서 집회 금지하는 오세훈 시장 규탄 집회'를 개최했다.

[출처: 광화문광장 집회의 권리 쟁취 공동행동]

시장님, 저는 시장님의 거짓말을 알아버린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사용 불허를 통지한 다음 날 ‘광화문광장 집회 가능해진다’는 여러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 기사들은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시장님이 “광화문광장 사용, 집회·시위 등 목적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하루 만에 입장을 이렇게 밝힐 거면 왜 우리에게는 사용을 불허했는지 유감이었지만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읽어보니 제목과 달리 대체 변한 것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기사들을 종합하면 시장님은 ‘처음부터 오해였고 집회라고 무조건 사용 금지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건전한 여가 활동과 문화 활동을 위한 공간의 목적에 맞게 운영하기 위해서는 광화문광장 자문단의 허가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는 의미로 말했습니다. 국감 전과 뭐가 달라진 것인가요? 우리 집회가 광장의 목적이 맞지 않아 자문단의 허가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잖아요? 시장님의 언변에 기자들까지도 헷갈린 거 같은데요, 집회라고 무조건 금지하지 않겠다는 시장님의 말을 한번 확인해보기 위해 다시 집회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시장님, 저는 집회의 권리 행사가 불법이라고 경고받은 범법자입니다. 10월 13일 집회를 진행하러 광장으로 갔더니 종로경찰서 담당 정보관과 광화문광장 담당 공무원이 차례로 찾아왔습니다. 경찰은 자신들과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협조가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했습니다. 근데 담당 공무원은 좀 화가 난 것 같더라고요. 우리 집회가 불법이라고 경고하시길래 집회신고도 마친 집회가 왜 불법인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목적에 맞지 않는 행사라는 판단을 받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설명을 좀 해달라고 하니 안 해주시더군요. 그건 자기들이 알아서 판단한 것이라면서요. 집회의 주최 측과 장소의 관리자가 서로 협의 못 할 일도 아닐 텐데 설명도 없이 통보만 하니 서울시 행정이 참 일방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광화문광장 자문단이 광장 사용을 불허한 덕분에 ‘광화문광장에서 집회 금지하는 오세훈 시장 규탄 집회’는 불복종 행동이 됐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첫 집회가 불복종 시민행동으로 기록돼 의미가 커졌습니다. 자유발언과 노래 공연, 도깨비 굿이 함께 한 집회는 정치적이며 문화적이었고, 무엇보다 시민 주체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시민들의 주옥같은 자유발언을 시장님이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네요. 집회하는 동안 옆에서는 다른 공연도 있었고 서울시의 어반 러닝 크루에 참가한 사람들이 달리기도 하고 가을밤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이 도깨비 굿을 흥겹게 구경하기도 했습니다. 진정 광장다운 공간으로 만드는데 우리 집회가 기여한 것 같아 뿌듯했습니다. 집회가 마무리되자 담당 공무원은 평화롭게 마무리돼서 다행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웃으며 집회는 원래 평화적이라고 알려드렸습니다. 그렇게 잘 마무리된 듯했는데 며칠 전 서울시가 우리 집회에 변상금을 부과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시장님에게 또 실망하네요. 이래서야 어떻게 집회의 권리도 존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시장님, 저는 시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던 그 광장을 돌려받지 못한 시민입니다. 아니면 저는 시장님이 말하는 시민에서 제외된 시민일까요? 광화문광장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궁금해져서 홈페이지와 기사를 뒤져서 정리해봤습니다. 아래 표는 지난 9월 한 달 동안의 광장 사용 목록입니다.


세상에! 21개 행사 중 두 개를 제외한 모든 행사가 서울시 주최였습니다. 시민의 품으로 돌려준다는 말은 서울시가 행사하고 시민들은 와서 구경이나 하라는 의미였을까요? 시장님은 오해라 했지만, 서울시가 광장에서 집회를 걸러내겠다고 한 이후에 여러 단체에서 집회 신고하기를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알아서 집회 신고를 포기하니 자문단을 통하지 않아도 걸러지는 효과를 내게 됐네요. 이런 것을 ‘위축 효과’라고 하지요. 그 효과를 알기 때문에 우리 집회에도 변상금을 물리기로 한 것일 테고요. 그러고 보니 시장님은 과거 시장 재임 시절에도 광장에서 집회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서울광장을 허가가 아닌 신고로, 집회·시위의 장소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서울시민 10만여 명이 조례개정 청구를 해 서울시의회가 조례를 개정했습니다. 그러자 시장님은 자신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시의회에 재의결을 요청했습니다. 시의회가 개정조례로 다시 재의결하자 개정조례가 무효임을 확인해 달라고 대법원에 소를 제기했습니다. 시장님은 2010년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광장을 시장님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참! 최근에는 서울광장에도 나무를 심는 계획을 검토 중이시더라고요. 시장님, 자꾸 광장에 나무를 심고 공원으로 만드시려는 것 같은데요, 공원은 공원대로 늘리시고, 광장은 광장답게 관리하시는 게 어떨까요? 광장다운 광장을 위해 다음 집회도 준비 중인데 시장님도 한번 와 보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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