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세계 경제에 가장 큰 충격을 준 사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본격화한 전쟁은 미국과 유럽, 중국과 러시아 등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패권을 놓고 대결하는 패권 경쟁의 전장이 됐다. 미국과 유럽 등은 우크라이나에 직접 무기와 정보를 제공하고 군사훈련과 각종 군수품을 실어 나르고 있다. 중국과 인도, 사우디, 튀르키예 등은 미국과 유럽연합이 부여한 러시아 경제제재와 봉쇄를 무력화하고 러시아와의 교역을 확대하며 직간접적으로 전쟁을 지원하고 있다.
전쟁은 지도상의 영토획득과 수복만이 아니라, 산업전환 등 축적구조의 재구성, 공급망 재편, 세계시장의 분할과 무역 질서의 재구성을 목표로 한 자본주의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과 직접 맞물려 있다. 미국의 인플레감축법(IRA)에서도 나타나지만 ‘미국 중심 생산’이라는 공급망 재편은 미국에 ‘한정’하는 것만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안 된다는 ‘배제’가 들어 있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 미국의 가치동맹국이 아닌 소위 독재국가에서 생산된 부품 또는 광물을 사용한 자동차는 아예 배제 대상이 된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 강화와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IPEF)’에서 중국 배제라는 공급망 재편의 목적을 솔직히 밝히고 있다. 미국, 한국, 일본, 대만 등 반중국 반도체 동맹인 ‘칩4(Chip 4) 동맹’도 중국의 반도체 의존을 줄이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대체할 수준의 계획을 하고 있다.
이런 배제는 생산지만이 아니라 소비지의 변경, 봉쇄를 낳게 돼, 궁극적으로 시장의 분할로 나타나게 된다. 중국과 러시아 등은 미국의 이러한 배제 전략에 반발할 수밖에 없으며, 자국 내 미국 생산품의 소비를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대체 생산으로 나아가게 된다. 결국 이 과정에서 시장재편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으면, 생산과 소비가(시장이) 완전히 분리되거나 봉쇄된, 냉전 시기와 같은 이중경제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미국의 공급망과 시장재편 계획은 이런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원료 생산지를 포함한 재편을 추진하려고 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 재편을 더욱 재촉하고 주요 광물과 자원을 안보 자산화했다. 리튬·니켈·흑연·코발트·망간 등 배터리 핵심 원료에 대해서는 국방물자생산법(DPA)을 발동했고, 반도체 생산은 국방수권법에 포함했다. 이로써 배터리 핵심 원료와 반도체는 국방물자, 군수물자가 됐다. 그만큼 공급망 재편, 시장 재편 등 경제질서의 재편이 군사화·안보화해 군사적 긴장과 대결로까지 상승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처럼 2023년 세계 경제가 직면한 현실은 세계자본주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대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제재와 반제재(countersanctions)라는 경제전이다. 이미 에너지 가격 급등, 공급망 중단, 대규모 시장 변동으로 이어져 많은 국가를 괴롭히는 인플레이션을 악화시켰다.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식량 위기로 아프리카와 남반구 주민들은 기아와 생존의 위기 속에 하루하루 삶을 연장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금리 인상 그리고 스태그플레이션
코로나 봉쇄와 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폭등, 비용 인상을 빌미로 한 독점 대기업들의 이윤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각국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는다는 이유로 기준금리를 올려왔고 2023년에도 금리 인상 기조는 변하지 않을 모양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꺾기 위한 금리 인상은 실업률 증가를 직접적인 정책 목표로 한다. 금리 인상의 목표가 실업의 증가가 되는 이유는 바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임금인상을 억제할 수단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업 당한 가계의 소득은 줄어 소비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실업을 당하지 않은 노동자라도 높은 실업률 때문에 임금인상을 억제하게 돼 임금인상률이 정체되거나 감소한다. 그러면 노동자 가계의 실질 임금, 실질 소득이 줄기 때문에 소비수요가 줄어들어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다.
이것이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자본주의의 방식이다. 임금 소득 저하가 구매력 저하로 이어지고 소비수요의 감소가 직접적으로 인플레이션 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가정함으로써 실업 증가와 임금 감소를 정당화한다. 그리고 이번 인플레이션뿐만 아니라 과거에 발생했던, 또는 미래에 발생할 모든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도 이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강제함으로써 금리 인상의 불가피성(=실업 발생과 일자리 축소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처럼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의 부담과 책임을 인플레이션을 일으킨 주요 원인이자 수혜자에게 묻지 않는다. 그 수혜자들은 금융시장과 금융대자본, 비용 인상보다 더 높은 마진을 붙여 물가(가격)를 올리고 덕분에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얻고 있는 독점시장의 대기업이다. 금리 인상은 약해빠진 중소자본인 한계 자본과 실질임금 저하와 실업률 증가를 통해 주로 노동자와 일반 서민들에게 인플레이션의 부담을 지우고 책임을 묻는 것이며, 노동자 계급의 희생 아래에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고 위기를 극복하려는 자본의 시도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금리 인상에도 자본주의 세계 경제는 2023년 중반기 본격화할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세계가 두 번째로 직면한 경제적 현실이다.
금리 인상은 임금 상승 억제와 과잉자본을 청산하는 효과가 일부 있지만 금리 정책으로는 인플레이션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수요 측 문제보다도 공급망 교란에 따른 에너지 및 원재료, 부품 가격 인상과 기업의 이윤 인상에 따른 가격 인상 등 공급 측 요인이 인플레이션을 이끄는 주요 동인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위기로 추락한 수요가 회복세를 보이는 현재 국면에서 특히 독과점시장에서 거대 독점기업들이 비용 인상에 따라 마크업률을 맞추기 위해 이윤을 인상해 가격을 올리는 구조(이윤-가격 인플레이션)를 막지 못한다.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아래에서도 코로나19 회복수요와 공급 지체에 따른 대기수요가 유지되는 동안 독점시장의 대기업들은 사상 최대의 이윤과 흑자를 이어 나간다. 특히 재벌 등 수출 대기업들은 킹달러 현상에 따라 환율 효과까지 보면서 최대 이윤을 누릴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정책적으로 유도됐든, 인플레이션 효과에 의해서든 노동자 임금과 가계 소득이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기 때문에 대기수요가 끝나면 머지않아 전반적인 수요 축소 국면이 전개될 것은 자명한 현실이다. 수요가 축소하면 기업은 다시 이윤율을 맞추기 위해 줄어든 수요에 따라 (가격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생산량을 줄이는 것으로 대응할 것이며, 경기침체는 바로 그 상황에서 발생하게 된다. 생산을 늘려 이윤량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생산은 축소하는 대신 개별 상품의 이윤량을 더 늘려(가격 인상) 투자 대비 이윤율을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산이 줄어 경기침체가 확산하고 제품 가격도 인상돼 인플레이션이 유지 확대하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한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또한, 금리 인상은 이자 부담을 가중해 전반적인 경기침체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역사상 최고점에 오른 기업과 가계 부채 속에서 부채위기를 유발한다. 기업부채의 부실은 곧바로 채권시장과 증권회사의 위기로 현상한다. 가계부채의 부실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와 같이 은행과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져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시점이다. 또한 생산 부문에서의 경기침체 이전에 가중된 부채 부담과 미국의 킹달러의 지속으로 채권시장과 외환시장의 불안이 증폭되면, 외환위기가 먼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기후와 전환 위기의 심화: 노동의 위기
2019년~2020년까지 호주의 초대형 산불과 산불이 양산한 거대한 연기로 뒤이어 대홍수가 발생했다. 호주 산불로 호주의 국내총생산(GDP)에 큰 손실을 보이지 않았지만, 한반도 면적만 한 산림이 소실됐고 주택 1,300채를 포함해 건물 5,700여 채가 전소됐고, 야생동물 5억 마리가 불에 타 죽었다. 또한 2022년 3월부터 파키스탄은 51℃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폭염에 시달리다가 같은 해 6월 대홍수가 발생했다. 세계에서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 중 하나인 파키스탄은 안 그래도 비가 많이 오는데, 폭염 때문에 평년의 2배~3배가 넘는 비가 내렸다. 파키스탄의 154개 행정구역 중 75%인 116곳이 폭우 피해를 봤고, 이재민이 무려 3천만 명이나 발생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예측대로 기후위기는 시간이 갈수록 정도와 강도를 더해 가고 있고 당장 GDP 감축보다 근본적인 생산능력을 파괴해 나가고 있어 문제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IPCC에 따르면, 호주 산불, 파키스탄 대홍수, 미국 토네이도와 같은 기후재앙은 강도를 더하고 더 반복적으로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다. 탄소중립의 실패로 1.5℃ 이상 기온이 더 오를 경우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기후재앙과 함께 공급망 교란, 축소 등 경제위기의 심화와 마주한다. 그렇게 세계적인 기아와 빈곤, 사망률의 확대 속에 더 큰 위기를 반복적으로 경험할 것이다. 2022년에도 파키스탄 대홍수를 포함해 전 세계에 산불과 홍수 등 기후재앙이 끊이지 않았고 인류가 관측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온도가 높은 7월을 보냈다.
이처럼 불가피하고도 시급한 생산과 소비의 탈탄소 전환은 엄혹한 현실이다. 또한, 탄소 포집 등 신기술 개발과 재벌·독점자본의 시장형성 중심의 시장 솔루션으로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조차 실현할 수 없는 엄중한 현실 앞에 있다.
시장 솔루션 중심의 탈탄소 전환과 그것이 야기한 산업재편은 기업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외국인 투자기업의 글로벌 구조조정과 함께 금융 부문의 대형 구조조정과 자동차 등 제조업은 물론이고 유통과 서비스업 전반의 구조조정이 준비되고 있다. 공급망 재편, 시장재편과 함께 어우러져 더욱 거대한 글로벌 구조조정으로 현상하고 있다. 그런데 기업의 탈탄소·산업 전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포함한 구조조정은 탈탄소 전환과 산업재편의 부담과 비용을 결국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방식이다. 전환 속에 발생하는 실업은 필연적이며, 산업재편 또한 기존 생산방식을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업과 노동시장의 구조 개편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또한, 윤석열 정부는 탈탄소 전환, 인플레이션 대응, 기업 이윤율 회복을 위해 노동착취도 증가를 목적으로 한 노동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근로 시간 연장, 임금체계 개편 및 노동조합의 약화를 목표로 한 노동기본권 개악과 노동조합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를 예고하고 있다.
요컨대, 2023년 한국과 한국 노동자가 직면한 경제적 현실은 전환과 인플레이션 비용을 노동자에게 부담을 지우고 기업 이윤율 회복을 위해 노동착취도를 증가하려는 정부의 노동 개악 시도다.
전환과 인플레이션 대응, 노동자의 희생을 넘어
2000년 닷컴 위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2020년 코로나19 위기 등 새로운 세기에 들어 세계 자본주의는 이미 세 번이나 심하게 쓰러졌다. 자본주의에 내재해 있고 자본주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불안정성 때문이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는 특정한 글로벌 경제 체제를 지배하고 유지했지만, 미국, 유럽연합,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 안팎의 단기적 불안정과 장기적 추세가 정점에 이르면서 미국 패권의 흔들림도 진폭을 더해가고 있다. 아직 분명히 떠오르지 않은 ‘새로운 세계 질서’와 자본축적구조를 형성하기 위한 투쟁이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재편은 결코 미국의 구도대로 흘러가기 어렵게 됐다. 전쟁의 과정에서 미국의 핵심 동맹세력인 유럽연합은 분열됐고, 에너지 가격 폭등 등 인플레이션으로 오히려 쇠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시기와 유사하지만, 특히 지난 수십 년 동안 부와 소득은 아래에서 위로 역주행하며 재분배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피해를 본 노동계급의 저항은 신자유주의 시기 특히 드물었다. 그러나 현재 많은 국가의 노동계급은 역주행하며 누적된 재분배의 여파로 더 이상 저항을 연기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노동자 투쟁, 노조 결성, 파업은 미국과 유럽연합 등 1세계 국가에서 모두 놀라운 에너지와 열정으로 재개되고 있다. 오랫동안 부진한 사민주의 정부와 중도 우파 정부와 정당이 현대 자본주의의 심화하는 불평등, 불안정, 불의를 변화시키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할지 여부를 이제는 기다리지 않으려고 한다.
중남미에서도 제2차 핑크타이드의 새로운 파고를 보이면서 중남미 곳곳에서 좌파 또는 중도좌파 성향의 정부가 들어서고 있다. 의회 쿠데타로 좌파 정부가 전도된 곳, 페루에서는 민중들의 저항과 투쟁이 거세게 일고 있다. 강대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의 출현과 재편성은 2022년에 이어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중국, 이란, 러시아 등 독재와 자본주의의 희생자들은 점점 더 다양한 곳에서 재발견되고 비판자들과의 동맹을 재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 노동자들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의 결과가 경제 회복이 아니라 스태그플레이션과 노동착취의 강화임을 점점 더 현실로 깨닫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세계질서 헤게모니 세력이 2023년 직면한 가장 아찔한 정치적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