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근조 리본을 다는 것만이 진정한 애도인가

[미디어택] 언론이 이태원 참사를 진심으로 추모하는 방법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49재였던 16일, ‘우리를 기억해 주세요’라는 이름으로 추모문화제가 열렸다. 시민분향소에 들르기 위해 일찍 출발한 덕에 무대 가까이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가 정쟁의 대상으로 흐르고, 애도의 목소리들이 한군데로 모이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내심 걱정이 컸다. 어느 때보다 ‘언론’이 중심을 잡아주길 간절히 바랄 때였다. 특히, 유가족과 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마련한 시민분향소 설치는 큰 의미가 있었음에도 언론에서 주목받지 못했다는 평가들이 있었기에 더 많은 신경이 쓰였다. 습관처럼 어느 매체들이 추모제를 취재하고 있는지 주변을 둘러본 이유다.

MBC와 SBS 취재진이 무대 앞쪽에서 스탠딩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기록한 날이었다. 기자가 원고를 읽을 때마다 피어오르는 입김이 날씨를 대변하는 듯했다. 방송사들이 이태원 참사를 기억하고 취재하러 왔다는 사실에 고맙다고 생각할 즈음, 바로 앞 한 무리에서 “SBS는 나가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추모제에 함께 간 지인이 물었다.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 SBS가 뭐 잘못 보도했어요?”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왜? ‘근조’ 글씨가 없는 검은 리본을 달아서 그랬을까? 그 이외의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지인에게 어떠한 답도 줄 수 없었다.

이태원 참사, 언론에 쏟아진 다양한 질문들

언론은 이태원 참사를 경유하며 또다시 다양한 질문들을 받고 있다. 참사 초기 언론들은 애도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앞장섰다. 물론, 이 과정에 전혀 문제가 없진 않았다. 참사 현장을 그대로 보여주거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생존자에 부적절한 질문을 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재난보도준칙을 지켜라’라는 요구와 함께 ‘집단 트라우마 가능성’이 제기됐고, ‘희생자와 유가족의 개인정보 등 인권의 문제’가 거론되면서 차츰 자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공개한 ‘이태원 참사 보도와 관련한 일반 국민들의 인식 조사’를 보면, 56.2%의 응답자들이 “믿을 만하게 보도하고 있다”고 답했다. ‘지상파TV’는 이태원 참사 뉴스에서 신속성과 정확성, 심층성, 신뢰성, 과학적 접근 등의 지표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격세지감이라 했던가. 세월호 참사 당시 ‘기레기’라는 오명을 받았던 때를 생각하면 언론보도는 조금씩은 개선되고 있음을 통계는 말해주고 있었다. 또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속에서 레거시 미디어들이 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는 여론조사이기도 했다.

‘이태원 참사 보도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인가’라고 묻는다면, ‘여전히 부족하다’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면에서는 달라진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자체를 부인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이태원 참사를 놓고 ‘언론’은 또다시 끊임없이 욕을 먹는 중이다. 이 같은 일련의 상황을 보며, ‘언론이 참사를 추모하는 방법’에 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론이 근조 리본을 다는 것만이 진정한 애도인가

이태원 참사에서 ‘언론’이 제대로 추모하지 않는다며 가장 먼저 심판대에 오른 것은 ‘근조 리본’ 때문이다. KBS와 SBS 앵커들이 ‘근조’ 글자가 쓰여 있지 않은 검정 리본을 달았다는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10월 30일 각 중앙부처 등에 ‘글씨 없는 검은색 리본으로 착용하라’라는 공문을 보낸 것과 맞물려 이들 방송사가 ‘정부 지침에 따른 게 아니냐’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 궁금하다. 언론인들이 ‘근조’ 글씨가 쓰여 있는 검정 리본을 다는 게 진정한 추모일까? 그것만이 애도일까?


언론이 그다음으로 논란이 됐을 때는 민들레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이름을 전면에 공개하면서 시작됐다. 곧바로 언론 노동 및 시민단체들 중심으로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부적절하다”라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 비판은 또 다른 질문을 가능하게 만든다. 언론은 반드시 유족이 동의해야만 명단을 공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개인적으로 민들레의 희생자 이름 공개는 부적절했다고 보는 편이다. 다만,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은 공개이기 때문은 아니다. 언론은 윤석열 정부의 인식대로 ‘국익’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다. 다만, ‘공공’의 이익이 있을 때는 그 어떤 경우에라도 독립적으로 판단하고, 보도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언론의 책무다. 민들레가 정말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여기에 있다. 희생자 명단 공개가 ‘공익’만을 위한 것이었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유가족 동의’ 논쟁은 희생자 얼굴을 ‘흐림 처리’한 언론을 향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11월 22일, 34명의 유가족이 참여한 가운데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입장발표 기자회견’이 진행됐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고인의 사진을 직접 들고나왔으나, KBS와 SBS은 희생자의 얼굴을 흐림 처리해 보도했다. 이 논쟁은 시민분향소에 있는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의 노출 여부로 언론을 가르고 비난의 기준으로 확장돼갔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짚어야 할 게 있다. 이태원 참사 초기 많은 사람이 “언론은 ‘재난보도준칙’을 지켜라”라는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재난보도준칙’의 제19조(신상공개 주의)는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해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희생자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언론사들은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얼마 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하나의 사건이 보도됐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사진을 포함한 음란한 내용의 글을 커뮤니티 등에 올린 3명이 정보통신망법 상 음란물 유포 혐의로 불구속기소 됐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KBS는 앞서 “(피해자에) 명예훼손이나 2차 가해가 될 수 있어서 공개하지 않았다”고 희생자 사진을 흐림 처리한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KBS의 결정이 틀렸던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언론이 참사를 진심으로 애도하는 방법

애도는 수학 공식이 아니다. 언론이 참사를 애도하는 방법 또한 ‘근조 글씨가 쓰여 있는 리본을 다는 것’ 그리고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 ‘희생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 등 도식화된 양식으로 나타날 수 없다. 언론사들이 댓글 창을 닫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댓글 창을 닫는 것’은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댓글들도 사라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댓글은 굳이 따지면, 언론의 ‘관리’ 영역으로 봐야 한다. 그렇기에 댓글을 닫는다는 건, 언론사들이 비난을 피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편인지도 모른다.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앞서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를 비롯한 ‘책임자 조사와 문책’, ‘진상 규명 과정에 동참’, ‘유족·생존자 간 소통 창구 마련’, ‘희생자 추모시설 설치’, ‘정부의 책임 공식 발표’ 등을 요구했다. 언론이 참사를 진심으로 추모하는 방법은 이 안에 있다. 그리고 참사를 기억하는 일이다. 그 이외의 것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다만, 유족들은 언론의 작은 행보에도 상처받을 수 있기에 ‘소통’의 폭은 지금보다 넓혀야 한다. 희생자 얼굴을 ‘흐림 처리’한 것으로 끝낼 게 아니라,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설명책임까지 이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태원 참사 49재 추모제에서 “SBS는 나가라”라고 외쳤던 시민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동안 켜켜이 쌓여온 불신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그 내부에 노력하는 언론인들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그것이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길이 아닐까. 2022년 12월, 더 나은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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