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반의사불벌죄’와 헤어질 결심

[워커스 상담소]

"취하하지 않으면 체불임금을 받을 수 없는 건가요?”

노무사 일을 하며 듣게 되는 가장 말문이 막히는 질문 중 하나다. 임금은 노동자의 노동력 제공의 대가이며,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 원천이다. 임금체불로 인한 노동자의 피해는 이루 말로 다 하기 어렵다. 당장 주거비, 식비, 공과금과 대출이자 등이 막막하다. 받아야 할 돈을 제때 정확히 지급받지 못한 데서 따르는 스트레스와 자괴감도 만만찮다. 급전을 막기 위해 대부업체에 발을 들여 빚의 수렁에 빠지는가 하면, 가정불화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듯 임금체불은 한국 사회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불행들의 실마리가 된다.

2021년까지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임금체불액은 무려 1조3,505억 원이다. 쉽게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수치다.1) 사실 우리나라의 임금체불 규모는 2009년 처음 1조 원을 넘어선 이후 현재까지 1조 원대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게다가 이는 고용노동부에 신고된 임금체불 사건만을 집계한 것이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에 신고 되지 않은 임금체불까지 더하면 그 액수는 1조 원대를 훨씬 상회할 것이다. 미국, 일본은 임금체불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0.2%~0.6% 수준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1.7%에 달한다.2) 외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임금체불 규모는 상당한 편이다.


이렇듯 임금체불은 우리 사회의 고질적 문제다. 임금노동자 비율이 75%에 이르는 사회에서 해마다 노동자들이 받지 못하는 임금이 1조 원을 넘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토대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적확한 표지다. 단순한 사인 간의 권리분쟁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럼에도 임금체불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노동자의 기본적 생활보호를 위해 마련된 근로기준법 역시 마찬가지다. 임금체불죄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다르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이른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된다(근로기준법 제109조 제2항). 2005년 근로기준법 개정 당시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불벌죄가 도입돼 형사책임이 완화된 것이다.

당시 노동부는 반의사불벌죄 도입으로 체불임금의 조기 청산, 임금체불 사건에 대한 무분별한 형사 사건화 방지, 근로감독관의 업무 부담 경감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홍보했다. 글쎄, 근로감독관 업무 부담이나 임금체불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건수의 급격한 감소 효과는 분명히 있었을 게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한편 반의사불벌죄가 정말로 체불임금의 조기 청산에 도움이 되는지도 의문이다. 임금체불 사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행정지도에 의한 해결 비율이 2009년 이후 해마다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2009년 57.9%→2018년 44.3%).3)

체불임금의 합법적 ‘할인’ 수단, 반의사불벌죄

오히려 고용노동부 임금체불 신고 사건 처리에서 반의사불벌죄는 체불임금의 ‘할인’ 수단으로 톡톡히 기능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임금체불을 신고해도 사업주가 나 몰라라 하고 버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럴 때 근로감독관은 ‘여기(고용노동부)는 돈 받아주는 곳이 아니’라는 관용구 같은 말로 노동자를 불안케 한다. 고용노동부에서 체불임금이 청산되지 않으면 사업주는 검찰에 송치된다. 하지만 검사가 기소해도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벌금액도 전체 체불액의 10%~20% 수준에 불과하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는 사용자를 상대로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비용과 시간 부담이 만만찮다. 이쯤 되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지위는 역전된다. 체불임금의 일부라도 받고 싶으면 취하서(처벌불원서)를 가지고 오라는 으름장이 통하게 되는 것이다. 취하서(처벌불원서)와 체불임금의 ‘일부’는 이렇게 거래된다.

임금체불 노동자의 생활보호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제도가 한국에도 없는 것은 아니다. ‘대지급금(구 체당금)’이라는, 체불임금 지급 능력이 없는 사업주 대신 국가가 체불임금의 일부를 신속하게 지급해주는 제도가 있다. 국가가 체불임금을 대신 지급하고 나중에 사용자에게 환수하는 구조다 보니, 사용자와 노동자의 짬짜미에 따른 부정수급도 왕왕 발생한다. 2022년 11월 고용노동부는 대지급금 부정수급 의심 사업장에 대한 기획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대지급금 부정수급을 근절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 고용노동부는 임금체불에 대한 사업주 조사에서 사업주가 체불 사실을 ‘전부 인정’하지 않으면 ‘대지급금 청구용 체불임금 등 사업주확인서’를 발급해주지 않겠다는 지침을 새롭게 발표했다. 대지급금 제도와 관련한 법 규정인 임금채권보장법과 같은 법 시행규칙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내용이다. ‘대지급금 청구용 체불임금 등 사업주확인서’가 없으면 노동자는 말 그대로 대지급금을 청구할 수 없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이 다시 반의사불벌죄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취하해주지 않으면 체불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노동자의 대지급금 청구를 가로막을 수 있다. 이쯤 되면 피해자와 가해자의 지위는 또다시 역전된다. 노동자는 사용자 처벌과 대지급금 중 단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 취하서(처벌불원서)와 체불임금의 ‘일부’인 대지급금이 이렇게 또 거래되는 것이다.

이러한 업무처리는 고용노동부의 대지급금 부정수급 근절 의지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업주를 처벌하겠다는 노동자야말로 사업주와의 짬짜미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고용노동부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부정수급을 근절하겠다는 것인지, 체불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사업주 형사처벌만큼은 기필코 막겠다는 것인지, 결국은 근로감독관 업무 부담을 줄이기 위한 필사적 자구책인지.

‘처벌할래, 돈 받을래?’라는 양자택일에서 득을 보는 이는 사업주와 근로감독관이요, 해를 보는 이는 오직 체불노동자다. 하지만 이는 전형적인 ‘잘못된 딜레마의 오류’이다. 딜레마 상황이 아닌데도 ‘반의사불벌죄’를 끼워 넣어 인위적으로 양자택일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노동력에 대한 갈취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심각한 범죄이므로 마땅히 처벌하여야 하며, 체불된 임금은 그것대로 지연이자와 함께 당연히 변제돼야 한다. 노동관계 종료 시 사직서 작성을 강요하는 사장님처럼, 진정 사건 종료 시 취하서 작성을 종용하는 근로감독관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법이 바뀌어야 한다. 반의사불벌죄와의 헤어질 결심을 촉구한다.

<각주>
1) 고용노동부 e-고용노동지표(http://eboard.moel.go.kr/indicator/detail?menu_idx=49) 참고, 2022년 9월까지의 임금체불 규모도 이미 1억 원에 육박하고 있다.
2) 고용노동부, 「“임금체불 청산제도 개편방안” 수립·시행」, 2019.01.17.
3) 고용노동부, 『체불임금 발생 및 처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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