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예산' 무려 1조 3천억 원의 마땅함에 대하여

[이슈] 기재부에 끈질기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


대체 그 돈이 뭐길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면서 ‘평온한 사회’에 돌을 던졌다. ‘감히’ 출근길 지하철에 올라 시민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전장연은 지하철 행동으로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를 예산으로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2023년 예산안에 반영된 장애인권리예산은 0.8% 수준에 불과한 106억 8,000만 원 증액에 그쳤다.

상임위원회(상임위) 회의가 파행된 교육위원회를 제외하고 국토교통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액 중 6,653억 원의 예산을 증액했다. 상임위에서 증액한 예산이 최종 예산 의결 과정에서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가 거의 드물기 때문에 그 예산이 다 반영되리라 전망하지는 않았지만 기획재정부와 예산결산위원회가 최종 확정한 예산에 반영된 금액은 고작 106억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장애인의 끊임없는 호소에 각 상임위 국회의원은 증액으로 화답했지만, 결국 대한민국 예산 편성에 막대한 권한을 발휘하는 기획재정부(기재부)가 모든 희망을 깨어 부숴버렸다. 헌법과 각종 법률에 명시된 권리가 실제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예산이 반드시 수반돼야 하고 예산을 편성하는 권한은 기재부에 있기에 우리는 또다시 기재부에 끈질기게 매달릴 수밖에 없다.

전장연이 지독하게 지하철을 타고, 막고, 지하철 바닥을 기고, 삭발을 하고, 차로를 막고, 장관의 집에, 국회와 대통령실에 찾아가 기를 쓰고 요구했던 그 1조 3천억 원. 대체 그 돈이 뭐길래.

[출처: 비마이너]

그럴 거면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2014년 한 장애인이 화재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집에 불이 났는데 대피할 수 없었다. 24살에 뇌출혈로 장애를 갖게 된 그는 언어장애가 있었고 오른팔과 다리를 쓰지 못했다.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 그는 장애 3급 판정을 받은 터라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등급 재심사를 받으면 2급으로 조정될 거라 기대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2014년 4월 11일 그는 활동가들과 함께 장애등급제의 문제를 알리고 활동지원서비스 긴급지원이 필요하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집에 불이 났다. 그의 이름은 송국현이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활동지원사가 없는 사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수많은 이들이 있다. 활동지원사가 없을 때 호흡기가 떨어져서, 화재에 대피하지 못해서, 보일러가 동파돼 흘러나온 물 때문에 체온이 떨어져서 수많은 송국현이 세상을 떠났다. 이는 오래되고 낡은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해 5월 추경호 기재부 장관 집 앞에서 장애인권리예산에 대한 기획재정부의 책임을 촉구하고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를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했다. 거기서 한 활동가가 발언했다.

“저는 뇌성마비고, 시설에서 나와 살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물 한 모금 먹기 위해서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똥이 마려워도 볼일을 볼 수 없습니다. 먹고 싶은 것도 있지만, 이거 먹으면 화장실에 가야 할까 무섭고, 물을 먹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살고 싶은데,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저를 죽여 주세요.”

중앙정부는 장애인에게 하루 최대 16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제공한다. 2022년 6월 30일 기준 대한민국에서 하루 최대 16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사람은 활동지원서비스 수급자 11만 명 중 단 12명뿐이다. 하루 24시간 중 그 8시간의 공백 때문에 사람이 죽고 존엄을 훼손당한다. 수급자 중 84%는 하루 최대 2~5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구간에 머물러 있다. 이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이 전장연이 요구한 장애인권리예산 1조 3천억 원의 절반을 차지한다. 활동지원서비스 평균 시간과 대상자를 늘리기 위해 2023년 정부안 대비 6,539억 원의 증액을 요구했던 것이다. 최종적으로 편성된 예산을 살펴보면 활동지원서비스 시간당 수가가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소폭 상승했지만, 월 평균 지원 시간은 지난해와 동일하게 동결됐다.

여기,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다 자기가 사는 세상에 산다.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 착각한다. 자신의 시야를 확장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더욱 협소한 틀 안에 갇힌다.

얼마 전 믿기 힘든 기사를 접했다. 쓸개를 채취하려고 불법으로 곰을 사육하던 ‘곰 농장’에서 곰이 탈출했고 농장을 운영하던 주인은 곰의 공격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상상해본 적 없는 사회의 단면을 마주하는 일이 당혹스러웠다. 누군가에게는 당면한 현실이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까맣게 모르는 일이 있다. 지금 이 시각에도 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고 있다. 정신장애인을 포함해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인원도 6만 명에 달한다. 이들을 고려하면 3만 명보다 더 많은 이들이 장애를 이유로 사회로부터 격리된 시설에서 관리‧통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 시민’이라고 일컬어지는 우리가 지긋지긋하거나 시시껄렁한 하루를 보내고 연애나 늘어나는 뱃살 따위를 고민할 때 자기 통장이 없고, 휴대폰을 소유하지 않으며 짜인 일과대로 먹고 자며 ‘연명’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설에 살고 있다고 해서 사람의 존엄을 얄팍하게 후려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설에 사는 이들은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사소한 것에서부터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고, 예측할 수 없는 지역사회에서 좌충우돌 새로운 경험을 하며 결국에는 나답게 살아갈 권리로부터 철저히 배제돼 있다.

[출처: 비마이너]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한 방에 4.7명이 생활한다. 아무리 친밀한 친구나 가족이라도 한 방에서 부대끼며 지내기가 쉽지 않다. 시설에서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지내야 한다. 갈등이 있거나 잘 안 맞아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장애인들은 거주시설에서 평균 18.9년을 살아왔다. 무려 20년의 시간이다. 사람이 태어나 말을 익히고 목을 가누고 몸을 뒤집고 기고 걸음마를 하고 친구들을 사귀고 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사회인이 될 만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누군가는 수많은 일들을 겪고 성장하고 좌절하면서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는 20년의 시간 동안 누군가가 ‘돌보기 어렵다’고 해서 하루 종일 이쪽 벽을 보고 누웠다가 지겨워서 반대쪽 벽을 보며 시간을 죽이는 존재들이 있다.

2021년 보건복지부는 장애인 정책의 시대적 패러다임인 탈시설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2022년부터 탈시설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 내용과 지원기준은 UN이 제시하는 국제적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엉터리다. 이미 10년 넘게 진행 중인 지자체의 탈시설 사업보다도 빈약하다. 누군가 시설에서 살다가 지역사회로 자립할 때는 보다 집중적이고 섬세한 지원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전장연은 시범사업으로 탈시설하는 이들에게 활동지원서비스를 추가로 지원하고 자립정착금을 지급하며, 자립을 지원할 인력을 보강하라고 2023년 정부안 대비 142억 원의 증액을 요구했다. 자립정착금은 수포로 돌아가고 활동지원서비스는 월 60시간에서 80시간으로 조금 늘었다. 하지만 24시간 공백 없는 지원을 위해 필요한 월 240시간의 1/3 수준이다.

탈시설을 왜곡하고 공격할 때 정작 탈시설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다고, 장애인이 의사 표현을 어떻게 하냐고, 의사 표현을 확실히 해서 탈시설 의사를 밝힌 사람들만 탈시설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애초 시설에 자발적으로 입소한 비율은 14.3%에 불과하다. 비자발적으로 입소한 비율은 67.9%다. 비자발적으로 입소한 사유는 ‘가족들이 나를 돌볼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44.4%)’, ‘잘 모르겠다(21.5%)’, ‘다른 시설에 살고 있었는데 이 시설로 보내졌다(12.9%)’는 응답 순으로 많았다. 한 편, 전체 응답자의 21.3%가 시설 입소 당시 사전 설명을 듣지 못했고, 30.1%는 입소 당시 계약서에 직접 서명하지도 않았고 한다. 자발적으로 입소한 이들은 ‘가족들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36.8%), ‘나를 돌봐준 사람이 없어서’(24.6%) 시설에 들어갔노라고 응답했다.

“시설에서 나는 짐승처럼 남은 반찬을 비벼서 개밥처럼 먹어야 했고, 마실 물을 주지 않아 목욕탕으로 기어가 대야에 받아 있는 물에 얼굴을 담그고 먹어야 했다. 장애인 시설은 산 채로 죽어 묻혀야 하는 무덤이었다. 장애인 시설은 죽음이 보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감옥이었다. 시설은 반드시 폐쇄되어야 하며, 장애인들은 반드시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 일원으로 인간답게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에서 활동하는 탈시설 당사자의 편지 중 일부다. 이분은 언어장애가 있어 직접 발화하는 말이 아니라 AAC라는 보완대체의사소통 기구를 이용해 소통하신다. 글을 입력하면 휴대폰에서 글을 읽어주는 형태다. 세상에 목소리 없는 자는 없지만 그 목소리를 듣지 않거나 들으려 하지 않는 자가 있을 뿐이라는 고병권 선생님의 말은 참 소중하다. 여기에, 시설에 ‘사람’이 있다.

[출처: 비마이너]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장애인권리예산에는 활동지원서비스, 탈시설 예산뿐 아니라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을 보장할 수 있는 예산이 담겨 있다. 철저히 비장애인 중심으로 설계된 사회에서 장애인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수없이 남겨져야 했다. 형제들이 학교에 갈 때 집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배우지 못했으니 일을 할 수 없었다. 가족들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고 대안이 없다고 느낄 때 시설을 선택했다. 저상버스가 아닌 계단버스는 수차례 떠나보내야 하고 지하철을 타도 엘리베이터를 찾아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경조사가 있을 때도 이동과 접근이 어려워 함께하지 못한다. 비장애인들은 기차나 버스를 타고 휴가를 떠나거나 명절에 친지를 방문하지만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고속버스는 전국에 단 두 대뿐이다.

2020년 장애인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장애인의 절반 이상이 중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다. 그마저도 37.6%는 초등학교 이하의 학력이고, 9.2%는 교육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비경제활동인구’란 만 15세가 넘은 인구 가운데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사람, 곧 일할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일할 의사가 없거나, 전혀 일할 능력이 없어 노동공급에 기여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전체 국민의 37.4%가 비경제활동인구인데 경증장애인은 56.7%, 중증장애인은 76.2%다. 고용률의 경우 전체 국민은 60.4%, 경증장애인은 40.3%인데 중증장애인은 34.6%다.

비장애인은 학교에 다닌다는 것, 일을 한다는 것이 권리임을 얼마나 실감할까. 대부분 평소에는 학교나 일터에 가기 싫다거나 힘들거나 쉬고 싶어 한다고 짐작해본다. 허나 처음부터 그 권리로부터 분리되고 배제된 이들에게는 그것이 다른 무게일 거다. 학교에 간다는 것은 단지 공부하는 일 외에도 사람을 만나고 갈등을 접하고 해결해보고 추억을 만들거나 경험을 쌓는 일도 포함된다.

2021년 발간된 ‘서울형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사업 평가체계 연구’에 따르면 연속 또는 신규 참여자 대부분은 최근 4년 이내 권리중심 일자리 외 공공이나 민간일자리에 참여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 연속 참여자 중 6%, 신규 참여자 중 9% 정도만 다른 유형의 일자리 경험이 있었다. 최중증장애인은 일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았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는 UN장애인권리위원회의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권고에 따라 중증장애인이 직접 UN장애인권리협약의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인식을 제고하는 캠페인을 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구직을 단념했던 중증장애인이 적극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삶을 꾸려나간다.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하고 자기를 찾고 발현하는 총체적인 일이다. 평생토록 단 한 번도 일해보지 못한 누군가는 항상 자신이 가족들의 짐과 부담이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을 거다. 하지만 처음 벌어본 돈으로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을 때 조금은 다른 기분과 관계의 변화를 느꼈을 거다.

투쟁하다 죽는 게 나을 때, 우리는 나섰다

돈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돈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존엄과 일상의 마땅함에 대한 것이다. 지면을 빌어 동지들에게 안부를 묻고 싶다. 어떤 밤 갑자기 서러웠던 적이 있다. 우리가 너무 ‘맨몸’인 것이다. 권력도 권위도 권한도 없이 그저 몸뚱이 하나로 거대한 권력, 자본과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우리가 보였다. 이렇게 살아온 것이 억울해서, 어차피 더 잃을 것이 없어서, 이렇게 사느니 길거리에서 투쟁하다가 죽는 것이 나아서 무서울 게 없는 장애인들은 살아오는 내내 잘못됐다고 규정되고 부끄러웠던 그 몸을 드러내며 이 사회에 균열을 내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 운동이 무섭다. 대단한 권력이나 돈을 바라지 않는다. 장애인의 투쟁은 그저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뜨거운 외침이다. 투쟁을 멈출 이유보다 투쟁을 해야 하는 이유가 훨씬 많다. 때로는 권력자들이 사실을 왜곡하고, 무정차, 무관용 원칙으로 언제나처럼 우리를 겁박하고 외면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23년 새해에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를 내어주시기를 시민들에게 간곡히 호소한다. 전장연은 권력이 아닌 권리를 향한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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