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 권리에 자본주의 체제를 묻는다

[인터뷰] 반격의 페미니즘, <검은 시위> 저자 정은희

“왜 여성은 성적인 폭력과 차별에 시달려야 하는가? 여성은 출생에서 사망까지, 채용에서 해고 또는 퇴직까지 압도적인 비중으로 스토킹 당하고, 얻어맞고, 살해되고, 낮은 임금을 받는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우리는 국가에 그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당시 페미니즘 운동의 무수한 영감과 연대와 도약에도, 우리는 신당역에서 다시 촛불을 들어야 했다. 국가는 책임을 다하지 않았고, 여성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면 그러한 국가는 과연 누구를 위해 봉사하는가? 또는 그 국가는 도대체 누구의 알리바이인가?”

1월 23일 출간된 <검은 시위>의 답은 ‘자본주의 체제’다. 유산계급의 이윤창출을 위해 가부장제를 유지하며, 여성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통제해 온, 착취와 수탈을 강화하는 형태로만 발전하고 있는 그 체제 말이다. 그런데 이런 책을 필자는 “임신중지를 고민하거나 한 친구에게 전해주세요”라고 한다. 과연 임신중지와 체제는 어떠한 연결고리가 있을까?

국제 기자로 활동했던 <검은 시위>의 저자는 2016년 폴란드에서 시작된 검은 시위를 취재한 이후 전 세계로 확산하는 임신중지 합법화 목소리를 쫓기 시작했다. 폴란드를 비롯해 미국, 아르헨티나, 아일랜드에서 벌어진 가두시위와 여성파업은 결국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뤄내고 일부에선 의료서비스의 무상화까지 쟁취했다. 이 통쾌한 서사를 따라가다 보니 임신중지한 여성을 처벌하는 “‘낙태죄’는 자본주의 체제의 산물이었으며, 임신중지 권리는 계급 투쟁과 그 역사, 운동의 지형과 직결된 정치적 이슈”였음이 명확해졌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저자는 여성의 몸과 권리를 억압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밝히면서, 이 억압을 끝내기 위한 방법으로 ‘노동계급의 무기’인 파업을 제안한다. 체제가 억압해온 여성 노동계급이 반격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반격이, 남은 생의 목표가 됐다는 <검은 시위>의 저자 정은희 작가를 만났다. 함께 기사를 쓰고 잡지를 만들던 막역한 동료를 인터뷰이로 만난다는 건 어색한 일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진지하게 응했다.



-‘무산여성’이라는 출판사 이름이 인상적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최초로 열린 3.8 세계 여성의 날 행사 이름이었던 ‘국제무산부인데이’가 모티프가 됐다. 세계 여성의 날이 여성노동자의 계급 투쟁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이런 맥락이 지워진 채 ‘여성의 날’로 불린다. 그런데 식민지 조선에서 여성의 계급적인 위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여성 노동계급의 입장에서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 여성 노동계급의 삶을 드러내는 책을 만들고 싶다. 이런 마음을 담아 출판사 이름을 무산여성으로 정했다.

-처음 출간한 책에서 임신중지 주제를 다뤘다. 여성에게 성과 재생산 문제는 무척 중요한 화두지만, 특별히 ‘검은 시위’에 천착한 이유가 있나?

국제 기자로서 취재했던 폴란드 검은 시위는 여성의 문제가 체제와 연결돼 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낀 첫 번째 사건이었다. 여성에 대한 억압이 체제의 문제라는 점을 알고 있었지만,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체화한 과정이랄까. 폴란드의 경우 공산주의 시절엔 여성의 임신중지권이 보장돼 있었다. 그러다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낙태죄’가 도입됐는데, 그 배경에 대한 궁금증이 들었다. 자세하게 알고 싶었고, 그러면서 낙태죄에 체제가 직접 연루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안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었다.

-폴란드에 낙태죄가 도입된 배경 외에도 임신중지 권리가 체제 문제와 직결된 이슈라는 점을 증명하는 또 다른 근거가 있는가?

예를 들면, 한국에 ‘낙태죄’가 도입된 때가 일본제국에 의해 자본주의가 이식된 식민지 조선 시절이었다. 일본 형법을 모방한 것이었다. 일본이 ‘낙태죄’를 도입한 것 역시 메이지 정권 시절 서구 자본주의 제국을 추종하며 그들의 성과 재생산 제도를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와 영국, 미국에서도 자본주의 발달 과정에서 ‘낙태죄’가 도입됐다. 한국 외에도 대만을 비롯해 제3세계에 낙태죄가 도입된 배경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제국주의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2016년 폴란드의 검은 시위는 여성파업으로 발전했다. 책에서도 설명했듯 “폴란드 역사상 최초의 ‘스트라이크 코비에트(Strajk Kobiet, 여성파업)”였고, 결국 수십만 규모의 시위로 확대된다. 파업으로 나아갈 수 있었던 전개 과정이 궁금하다.

당시 폴란드 페미니스트들은 1975년 아이슬란드 여성파업의 사례를 모델로 여성파업을 제안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움직이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왜 우리의 목소리는 사회에 반영되지 않나, 그럼 우리가 없는 사회를 지켜보라, 하면서 파업을 진행했다. 이러한 파업에는 ‘낙태죄’로 가장 고통받는 지방 여성들이 대거 참여했는데,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 열악한 공공서비스, 무급 돌봄과 가사노동 모두로부터 고통받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임신중지란 박탈당한 사회경제적 권리의 일부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에게는 ‘파업’을 통해 자신에게 떠맡겨진 노동을 거부하는 것이 중요한 전술로 받아들여졌다.

비슷한 시기 아르헨티나에서도 여성들이 파업에 나섰다. 여성 살해 사건으로 촉발된 아르헨티나 최초의 대규모 여성파업이 2016년 10월 19일 벌어졌다. 당시 구호 중 하나가 ‘부자는 임신 중지하지만, 가난한 여성은 죽는다’다. 경제적 격차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계급적 이슈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빠르게 여성파업이 조직될 수 있었던 이유는 뭔가?

아르헨티나는 여성 노동계급이 일어날 수 있는 토대가 역사적으로 구축돼 왔다. 아르헨티나에선 군부독재가 종식된 이후인 1980년대 중반에 전국여성회의라는 이름의 여성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매년 3일간 진행되는 이 대회에는 수만 명의 다양한 페미니스트 그룹, 성소수자, 좌파 활동가들이 참여했다. 2000년대 초엔 신자유주의 광풍과 경제 위기 속에서 여성 실업자 운동 ‘라스 피께테라스’(Las Piqueteras) 운동이 급격하게 성장하고, 이 운동이 전국여성회의에 대거 참여하게 됐다. 여성 의제가 계급적 의제로 바뀌는, 확장되는 계기였다.

특히 불평등한 임신중지 권리 속에서 여성이 살해된다는 생각들이 공유되면서 임신중지 의제에 더욱 힘이 붙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임신중지 중 사망하는 사례도 많았기 때문에 이를 국가 폭력으로 규정하는 것에 큰 동의를 얻을 수 있었다. 여성 노동자들은 다양한 현장에서 여성살해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하고, 임신중지권을 노동 운동 의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임신중지를 보편적인 재생산 권리로 만들었다. 한계(14주 이상의 임신중지는 여전히 불법이다)는 있지만, 2020년 ‘자발적 임신중지 접근법(IVE)’이 통과되고 이에 따라 아르헨티나는 임신중지를 필수 의료서비스의 하나로 제공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으로 의료비 전액을 지원한다는 이야기다. 우리 역시 임신중지권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고, 계급을 드러내는 운동을 조직해야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권리를 계급적 관점으로 재조직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좀 더 강조하고 싶은데, 최근 활동하고 있는 전진(사회주의를향한전진)에서 변혁적 여성운동 네트워크를 제안하며 한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여성 CEO가 아니라, 여성 노동자의 해방을 원한다는 이야기다. 능력 있는 여성 CEO가 있다고 해도, 여성 노동계급의 해방과는 관계없는 일이라는 거다. 여성 사장이 돼서 여성 노동자를 착취하게 되는 그 구조 자체가 문제다. 단적인 게 덕성여대 사례 같다. 여성이 총장이 됐지만 여성 청소노동자들의 시급 400원 인상 요구도 외면하고 있지 않나. 1억 6천 원 이상의 연봉을 받으면서, 연봉 2천만 원이 조금 넘는 청소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다. 즉, 우리는 이 체제 문제에 돌파구를 내야 여성의 권리를 증진할 수 있다. 그래서 전진은 변혁적 여성운동을 제안하고 있다.

[출처: 무산여성]

-<검은 시위>는 임신중지 권리 투쟁과 관련한 다양한 사례가 담겨 있다. 그중에서도 추천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것인가?

우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낙태죄’를 비범죄화했는지 그 이야기를 상세하게 다뤘다. 또 그 운동의 한가운데서 싸웠던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나영과 셰어 에브리바디 플레져랩 팀장이자 전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나영정, 민주노총 여성국장 김수경,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성실이 그들이다. 또 미국에서 임신중지가 불법이던 시절, 시카고 언더그라운드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직접 수행한 ‘제인 콜렉티브’의 이야기가 있다. 장애나 피부색을 이유로 강제 불임수술을 받아야 했던 여성들의 투쟁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아일랜드에서 임신중지 시술을 했다가 교수형을 받은 여성의 이야기도 나온다. 유산유도제 도입을 위해 이 알약을 공개적으로 삼키거나 세관에 스스로 체포된 여성을 비롯해 임신중지 반대 세력의 체계적인 폭력, 그리고 그 때문에 방탄조끼를 입고 출근해야 하는 미국 산부인과 의사들의 이야기도 주목해볼 수 있다. 원가가 5천 원도 되지 않는 유산유도제가 수십만 원에 유통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추천하고 싶다.

-<검은 시위>를 보면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그리고 한배를 탄 국가권력이 있다. 그래서 임신중단 합법화 촉구 시위는 불법촬영 등 산업화한 성착취, 재생산 권리의 자본화와도 연결돼 있다. 이 구조 속에서 ‘사회화’는 어떤 의미인가.

정책은 규제와 지원으로 구성된다고 본다. 가부장적 자본주의 사회에선 여성 노동 계급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면서 지원은 하지 않는다. 임신중지를 중심으로 보면 ‘낙태죄’는 있지만, 권리 보장은 없었다. 지금은 ‘낙태죄’가 폐지됐어도 권리보장에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이것을 역전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여성 살해나 여성을 억압하는 가해자들에 대한 규제는 강화하고 여성 당사자들에겐 지원을 보장하는 거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권리 박탈로 이득을 누리는 게 민간 산업이다. ‘낙태죄’가 있었을 땐 수많은 산부인과가 암암리에 임신 중지 시술을 하면서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받았다. 세계보건기구(WTO)가 말하는 필수 의료 서비스를 우리는 아주 비싼 값을 치르면서 받아야 했던 거다. 이러한 권리 보장의 제한은 산업적 이해와 관련이 될 수밖에 없고, 결국 지금 그 산업적 이해 때문에 유산유도제 역시 도입이 지연되고 있다. 재생산과 관련한 산업의 사회화, 즉 공적 서비스의 공적 보장이 수반돼야 여성들의 임신중지 권리가 보장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이해와 충돌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건드릴 수밖에 없다.

-10%를 겨우 상회하는 노조가입률을 생각하면 여성노동자 조직은 쉽지 않아 보인다. ‘계급’ 문제를 주요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페미니즘 내부의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80년대 여성노동자 조직률은 거의 20%에 가까웠다. 계속 낮아져 지금은 5% 남짓으로, 전체 노조 조직률 중에서도 여성 노동자의 조직률은 더욱 낮다. IMF 시기 도입된 정리해고제, 노동유연화 조치에 의해 더욱 많은 타격을 받은 계층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계속 후퇴해 왔던 것이다. 여성의 노동권이 악화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할 노력은 너무도 부족했다. 일단 민주노조도 여성이 다수인 비정규 사업장 투쟁을 주요 투쟁 사안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일터의 성차별·성폭력 문제를 조직적 운동의 의제로 충분히 세워내지 못했다. 그런 현실에서 일단 여성 노동자들에게 민주노조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싶다.

여성운동의 경우, 이전에는 사실 계급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다. 여성평우회나 대표적 여성 운동 조직도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조직됐는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 노동 계급 문제는 많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성 노동계급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운동은 고립돼 있었고, 이런 상황에서 여성 노동자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이런 조건에서 첫 번째 대중적인 여성운동이었던 페미니즘 리부트가 있었다. 굉장히 중요한 순간이었고, 그 의미와 성과가 유실됐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 그 흐름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대안을 보여주지 못한 많은 운동이 책임을 공유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정치 운동을 보면 정의당의 경우 이슈를 반영하려고 했지만, 당내 페미니즘 논란이 지속되면서 에너지를 역동적으로 받기 힘들었고, 민주당과의 차별되는 대안을 내기도 어려워 보였다. 좌파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여성들이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못 살겠다고 일어난 건데, 개입하고 연대할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평가한다. 오히려 이에 거리를 두는 좌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의 동력은 터프 문제라든가, 백래시의 문제로 흩어졌다. 리부트된 페미니즘 지형 내부에서도 이행 전략에 관한 토론이 부족했다고 본다. 그러면서 개딸 현상까지 나타났다. 그러나 여성 문제는 곧 체제 문제이고, 이는 이 자본주의를 떠받쳐온 주류 정당에 대한 도전일 수밖에 없다. 최근 여가부 폐지 문제도 주요 당사자는 여성 노동계급이다. 즉, 국민의힘이 여가부를 폐지하려 한다고 민주당에 의존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여성운동은 더 고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층 여성 노동계급의 힘을 조직하기 위한 운동이 필요하다.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를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지름길은 없고, 지속적인 노력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성 살해, 스토킹, 성차별, 여성의 노동 환경 등 여성이 겪는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발언하면서 이를 계급적 문제, 체제와 연관 짓고 저항을 조직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 책을 찾아준 예비 독자분들에게도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나는 임신중지 경험이 있고, 그 경험은 상당 기간 상처가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애초에 상처받을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 피임 조치였을 뿐이다. <검은 시위>엔 그런 말이 있다. 만약 당신이 임신 중지로 눈물을 흘렸다면, 그것은 당신이 아니라 체제의 문제 때문이라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더불어 임신중지 권리를 억압하는 사회에 대한 처방전은 여성 노동자의 계급 행동이라는 말도. 이 싸움을 다 같이 시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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