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중지에 대한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존중돼야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오랜 시간 임신중지가 불법인 상태로 존재했다. 그러다 지난 2019년 4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2021년부터 형법상 ‘낙태죄’가 폐지됐다.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 규정은 사라졌지만 임신중지의 허용 범위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고 임신중지와 관련된 의료체계 등을 규정하지 않아 여성의 실질적인 자기 결정권은 보장되지 않고 있다.
오랫동안 임신중지는 경제 문제가 아닌 문화, 종교, 개인적 문제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2022년 8월 미국 대법원이 연방 차원의 임신중지 합법화를 이룬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을 번복한 이후 ‘낙태죄’ 문제를 시급한 경제 문제로 인식하고 분석하는 시각이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임신중지 금지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abortion bans, Asha Banerjee, 2023.1.18. EPI)은 임신중지 문제가 근본적으로 경제 발전과 계층 이동성에 얽혀 있는 경제적 문제라고 주장한다. 특히, 임신중지가 금지되거나 제한된 미국의 주(state)에서 임신중지 제한은 여성 및 노동자와 시민의 지속적인 경제적 종속과 권리 제한 프로젝트의 일부분을 구성한다.
아래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요약, 재구성했다.(1)
임신중지와 경제
2022년 8월 미 대법원에서 ‘로 대 웨이드’ (Roe v. Wade) 판결 번복이 확정된 이후 임신중지 문제는 개별 주(state) 차원에서 결정됐다. 현재 미국 50개 주 전체와 워싱턴 DC를 임신중지 보호 및 금지 여부에 따라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캘리포니아주, 뉴욕주, 펜실베이니아주, 워싱턴DC 등 25개 주가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한다. 반면, 플로리다주, 텍사스주, 앨라배마주 등 26개 주에선 임신중지를 제한 또는 금지하고 있다.
임신중지 서비스에 대한 접근과 거부(제한/금지)가 개인, 특히 여성의 노동 시장 경험과 경제적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임신중지는 경제적 문제이다. 임신과 출산 여부, 자녀를 가질 것인지 여부와 시기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직업과 생활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결정요인이다. 임신중지 당사자 중 약 절반은 가구 소득이 빈곤 수준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간의 재정적 고통에서 저임금 직업에 갇히는 것에 이르기까지 임신중지 금지로 인한 부정적인 경제적 결과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동안의 현실이 보여준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번복되기 전에도 임신중지 당사자는 빈곤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미국 주의 절반 이상이 임신중지를 금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직면한 불평등은 더 심화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여성은 이미 노동 시장에서 임금 및 수입 격차에 이르기까지 심각한 경제적 차별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차별적 현상은 일하는 여성 전체가 직면한 가파른 성별 임금 격차로 인해 더욱 악화한다.
임신중지가 경제적 문제인 이유는 또 있다. 임신중지를 원하는 사람들이 직면하는 의료 및 건강관리 시스템, 정부의 사회 서비스 및 보험 프로그램, 투옥 및 형사 사법 시스템을 포함한 주요 시스템 및 기관이 경제와 교차하기 때문이다. 경제, 건강, 사회안전망, 투옥 등의 시스템과 그 속에 있는 결함과 불평등은 서로 중첩되고 상호작용한다. 임신중지는 이러한 경제적 교차점의 중심에 존재한다.
임신중지 금지/제한은 소득 감소, 노동력 참여 감소, 교육 수준 저하 등 부정적인 경제적 파급 효과를 야기한다. 또한 임신중지 금지는 노동 시장에서 여성의 권리를 약화한다. 임신중지 금지의 조건에서 학교 교육, 직업 훈련, 지리적 이동과 같은 경제적, 개인적 성취를 위한 다양한 경로는 여성에게 훨씬 더 불확실해질 것이다. 임신중지 금지로 인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입는 잠재력에 대한 손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최저 임금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주는 평균적으로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주 및 미국 전체보다 최저임금이 훨씬 더 높다.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주(state)는 임신중지를 제한 또는 금지하는 주보다 평균 최저임금이 시간당 3.75달러 더 높다. 이 임금 격차는 시급이 기준인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연간 약 8,000달러(990만 원)에 가까운 차이를 낳는다. 한편, 임신중지가 보호되는 주의 평균 최저임금 11.92달러도 자신이나 가족을 적절하게 부양하기에 너무 낮다. 임신중지를 제한하고 금지한 주에서 8.17달러로 매겨진 최저임금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수준이다. 의료, 교육, 주택 등의 비용 상승을 감안할 때 확실하게 빈곤 수준의 최저임금이라 할 수 있다.
임신중지 서비스 거부와 낮은 최저 임금은 모두 빈곤과 무력화를 위해 고안된 국가 정책이다. 최저 임금을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하면 많은 사람과 가족이 생계비를 충당하고 빈곤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한다. 또한 포괄적인 임신중지 금지는 신체의 자율성을 박탈하고 경제적 고통을 가중한다. 임신중지가 거부된 사람이 최저 임금을 받는 직업을 갖고 있다면 부정적인 경제 효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노조 지위와 교섭력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주는 임신중지 제한이 있는 주보다 노동조합이 있을 가능성이 두 배 이상 높다.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권리와 경제적 복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다.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주의 평균 노동조합 조직률은 다양한 수준의 임신중지 제한 및 금지가 있는 주보다 2배 더 높다.
노동조합은 노동자 권리 부여와 경제적 이동성에서 중요한 중개자 역할을 한다. 임신중지 제한 주(남부와 중서부의 다수)는 수십 년 동안 반노조·반단체교섭 정책을 시행해 왔다. 노동자의 권리와 단체행동을 억압하는 이러한 법률은 오늘날 극도로 낮은 수준의 노조 조직률로 이어졌다. 최저임금과 마찬가지로 노조를 반대하는 주에서도 대부분 임신중지가 제한된다.
이처럼 노동조합 가입과 임신중지 서비스에 대한 접근은 모두의 경제적 자유와 이동성을 위한 메커니즘이다. 직장, 고용, 임신 및 출산, 자녀 양육에 관한 경제적 관심과 정책은 모두 연결돼 있다.
실업 보험
실업 보험은 고용주 세금을 통해 자금이 조달되기 때문에 많은 주에서 실업 급여와 수입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고용주에게 더 높은 세금을 부과하기보다는 실업 급여 지급 기간과 급여 수준을 제한하는 식이다. 기본적으로 주 정부는 실업 보험을 노동자에게 중요하고 필요한 지원으로 생각하고 이를 강화하기보다는 축소하고 있다.
2021년 미국 실업 급여 수급률은 36%였으며, 이는 실업자 10명 중 4명 미만이 실업 급여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혜택 수준과 마찬가지로 수급률은 사우스다코타주의 최저 16%에서 미네소타주의 71%까지 전국적으로 다양하다.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주에서 실업 노동자는 임신중지를 제한한 주의 실업 노동자보다 12%포인트 더 높은 비율로 실업 수당을 받았다.
실업 보험 제도는 다른 사회 보험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국가 투자와 경제 정책 결정을 직접적으로 반영한다. 이 시스템은 전국적으로 비효율적이며 연방 개혁이 실업 보험을 공평하게 만드는 유일한 수단일 가능성이 높지만, 주별로 차이는 극명하게 나타난다. 실업 보험 효과와 임신중지 서비스에 대한 접근 가능성은 노동자 권리 부여의 핵심이다. 사회 보험에 대한 국가의 철회(축소)와 임신중지 금지 정책은 노동자를 빈곤하게 만들고 노동자의 권리를 앗아가고 있다.
메디케이드(medicaid) 확장 및 의료 보장
메디케이드(medicaid)는 매우 낮은 소득을 가진 사람들에게 건강 보험을 제공하는 중요한 공공 보험 프로그램이다. 2018년 기준으로 메디케이드 등록자의 약 40%가 어린이였으며, 20%는 노인 또는 장애인이었다. 많은 저임금 직업이 의료 서비스 혜택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메디케이드 확장은 경제적으로 가장 취약한 노동자에게는 생명줄과 다름없다. (주별로 메디케이드를 보장하는 소득 기준이 상이하다. 메디케이드의 너무 낮은 소득 기준 때문에 더 많은 가구가 메디케이드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메디케이드 보장의 소득 기준을 올리는 것을 ‘메디케이드 확장’이라고 부른다.)
메디케이드를 확대하지 않은 주들은 기본적으로 수백만 명이 경제적으로 취약하고 빈곤한 상태가 되었다.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25개 주는 모두 메디케이드를 확대했고, 임신중지를 제한한 26개 주 중에선 14개 주만이 메디케이드를 확장했다. 이들 주 중 절반은 2014년 초기 가입 기간 이후 메디케이드를 확대했으며, 미주리와 같은 일부 주는 아주 최근인 2021년에 확장했다. 선거 시기 성공적인 투표를 통해 메디케이드를 확장했고, 과거의 주 정책에 대해 대중적인 거부와 반발이 존재했음을 보여줬다.
수감
주별 수감률(인구 십만 명당 수감된 사람 수)을 분석하면 주 경제 정책(임신중지 및 수감 포함)과 인종 차별 사이의 연관성을 가장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흑인은 백인보다 거의 5배 더 높은 비율로 감금된다. 수감은 경제적 안정 및 경제적 성과와 반비례하는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임신중지를 제한한 주와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주의 수감률을 비교해보자. 임신중지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주의 수감률(432)은 임신중지를 보호하는 주의 수감률(279)보다 1.5배 이상 높다.
투옥과 임신중지에 관한 국가 정책은 확실하게 처벌, 통제 및 무력화를 추구한다. 감금 및 임신중지 금지는 국가가 승인한 반흑인 인종차별주의의 오랜 유산과 얽혀 있다. 감금과 임신중지는 경제적 예속을 위한 두 가지 메커니즘일 뿐만 아니라, 이 보고서에서 검토한 모든 범주 중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상호가 연결돼 있다. 감금과 임신, 임신중지의 범죄화는 역사적으로 존재해 왔으며 현재 이 문제가 부활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임신중지를 “돕거나 방조”한 것으로 의심되면 의료 전문가, 지인, 가족, 심지어 자동차 공유 앱 운전자까지 포함해 투옥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임신중지권의 회복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대법원 판결의 장기적인 결과는 중요한 경제적 문제로 볼 수 있다. 노동 시장에서 임금과 소득안정, 그리고 신체 자율성에 대한 기본권에 이르기까지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은 여성이 자신의 경제적 궤적을 결정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임신중지를 금지한 주는 수십 년 동안 취약한 노동 기준, 임금과 소득 부족 및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공공 서비스, 높은 수준의 수감률로 나타나는 경제적 통제 구조를 구축했다. 주 수준의 임신중지 접근 상태와 경제적 안정을 나타내는 5가지 지표(최저 임금, 노동조합, 실업 보험, 메디케이드 확장, 수감)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일반적으로 임신중지 금지 정책을 제정하는 주가 경제적 통제 구조를 가진 주와 동일함을 발견했다. 경제적 안정과 연결되는 5가지 척도는 그 전반에 걸쳐 유사한 연관성과 패턴을 보였다. 즉,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주에서는 대체로 최저 임금, 노조 조직률, 실업 보험 및 메디케이드 확대에 대한 접근성이 낮았고 수감률은 더 높았다.
이처럼 임신중지가 경제적 결과를 수반하는 경제적 문제임을 인식하고 전국적으로 임신중지 접근성을 즉시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여러 세대 동안 노동자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준 통제적 경제 정책들을 해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각주>
(1) The economics of abortion bans, Asha Banerjee, 2023.1.18. EPI. https://www.epi.org/publication/economics-of-abortion-b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