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의 빵과 장미

[기고] 역사를 함께 바꿀 페미니스트를 찾습니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점심 시간을 이용해 선전전 중이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시급 400원 인상!”
“샤워실 설치, 휴게실 개선”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1년째 외치고 있다. 사회는 청소노동자들의 노력에 의존해서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을 제공 받고 있음에도 정당한 임금과 처우를 제공한 적이 없다. 불과 두 해전 서울대학교 청소노동자가 직장 내 괴롭힘과 과로로 사망했다. 그 직전에는 폭염 속, 창문도 에어컨도 없는 곰팡이 핀 휴게실에서 청소노동자가 사망했다.

연이은 죽음 속에서도 노동환경은 낡고 견고하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청소 노동은 대표적인 필수노동으로 인식되고, 정부는 필수노동자의 처우개선을 강조했으며 여론도 호응했다. 언론은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보도했고, 올바르고 지당한 말씀들이 넘쳤다. 그러나 시급 4백 원 인상이나, 노동 속에서 적절한 휴식과 위생으로 건강과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휴게실 개선이 필요하다는 청소노동자들의 외침은 지속적으로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 겨울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새벽부터 종일 일하고도 퇴근하지 못하고, 다시 농성장으로 출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점심시간을 쪼개서 열악한 청소 노동 현실을 알리는 선전전을 정문 앞에서 진행하고, 퇴근 이후에는 총장실 앞 농성장에 모여서 이 현실을 변화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학교 측은 법정 최저시급을 지키고 있는데 뭐가 문제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치거나, 시급을 인상한다면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청소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학교를 향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었다. 학내 여론도 사회적 시선도 무심하기만 했다.

#건강은 헬스장이 아니라 연대 속에서 좋아진다

연대의 마음으로 농성장에서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북토크를 하기로 했다.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에 마음은 있지만, 선뜻 농성장을 찾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찾아주길 바랐다. 다행히 학생, 교수, 지역 주민 그리고 긴 싸움에 지친 청소노동자들도 눈을 반짝이며 농성장 복도까지 가득 메웠다. 나는 이런 말로 북토크를 시작했다.

  농성장 북토크에서 강연 중인 조한진희 활동가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건강은 헬스장보다 부당함에 맞서는 싸움과 연대 속에서 형성됩니다.” 이 말은 은유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사회는 건강을 개인의 노력으로 관리 가능하고, 성취해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지만 이는 사실상 거짓이다. 과로, 나쁜 노동 환경, 기후위기, 관리되지 않는 독성물질 안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건강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적절한 휴식이 가능한 안전한 휴게실, 땀과 먼지를 씻을 수 있는 샤워실, 좋은 음식과 적정한 주거를 유지할 수 있는 생활임금은 건강을 위한 최소 조건이다. 나쁜 노동환경을 그대로 둔 채 혼자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 보다, 부당한 현실 앞에서 동료들과 힘을 합쳐 싸우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행위는 그 자체로도 몸에 이롭다. 실제 북토크 한 달 전 농성장에서 만났던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한원순 님은 말씀하셨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한원순 님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2005년에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로 입사했을 때는 정말 너무 심했어요. 관리소장이 키 큰 남자였는데, 그가 계단을 쿵쾅거리며 내려오면 저희들 심장도 쿵쾅거렸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트집 잡고, 말도 험하게 막하고, 게다가 성희롱도 있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힘을 합쳐서 뭐라도 하자고 했죠. 아무것도 몰랐지만 일단 노조를 만들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때 노조 만들어서 싸우고 바꿔내지 않았다면, 화병 났을지도 몰라요”

그는 2007년에 노조를 만든 뒤 문제가 심각했던 관리소장을 경질시키고, 걸레처럼 너덜하던 청소복도 교체했다고 말했다. 열악했던 노동환경을 하나씩 바꿔 나갔다. 그런데 올해 시급을 400원 인상해 달라는 요구에서 싸움이 막혔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은 1인당 700평을 청소하고, 환풍기도 제대로 없는 휴게실에서 잠시 쉬었다가 먼지와 땀이 범벅이 된 채로 대중교통으로 퇴근한다. 임금은 180만 원 정도로, 2023년 서울형 생활임금 233만 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한원순 님은 지난 15년간 해왔던 싸움 중 가장 길고 어려운 상황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이 싸움이 1년이 되도록 끝나지 않을 줄 몰랐다고. 청소노동자 대부분이 빈곤한 중고령 여성들인 만큼, 그저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청소노동자는 누구일까

청소노동자는 대표적으로 성별화된 직종으로 주로 50-60대 중고령 여성으로 구성돼 있으며 성차별, 연령차별, 학력차별, 고용차별, 직업차별 등이 작동하는 복합차별 현실에 놓여 있다. 『2019년 고용형태별 근로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청소원 및 환경미화원 평균 연령은 59.7세, 여성 비율은 70.5%, 평균 근속연수는 3.4년, 월간 노동 시간은 150.1시간, 월 급여는 187만 5천 원이다.

청소노동자 중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20% 정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조사가 있다. 이는 여성은 실내 청소, 남성은 건물 외벽이나 실외 청소로 성별 직무분리를 통해 임금을 더 적게 주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또한 여성이라면 따로 기술을 익히지 않아도 꼼꼼하고 청결하게 청소를 잘할 것이라는 인식은 청소 노동의 기술이나 숙련도를 인정하지 않으며, 저임금에 기여한다. 그래서 10년을 일해도 호봉을 주는 경우가 거의 없다. OECD 성별임금격차 부동의 1위는 이렇게 곳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강고히 자리한다.

그리고 이렇게 숫자로 된 현실에 다 담기지 않는 것도 생각하게 된다. 일부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공부 안 하면 청소일 한다”며 으름장 놓는 모습이나, 언론에도 보도됐듯 대학교 청소노동자가 교수에게 인사했더니 “인사하지 말라”며 차갑게 말했다는 현실 말이다.

해도 뜨기 전에 첫차를 타고 출근해서 모든 공간을 안전하고 청결하게 만들고 있는 청소노동자에 대한 사회의 태도가 분노스럽다. 그런데 이게 비단 청소노동자들뿐일까? 요양보호사, 가사노동자(가사도우미), 간병인 같은 직업도 다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속에서도 멈출 수 없는 필수적인 돌봄 노동이건만 무시와 열악한 노동현실이 일상인 건, 이 노동을 담당하는 게 모두 저학력 중고령 여성들이기 때문일까.

#사회를 떠받치는 중고령 여성노동자

이토록 중요한 노동을 담당하면서도 존엄을 인정받지 못하는 한국의 중고령 빈곤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사회단체 ‘다른몸들’에서 2019년부터 50-70대 돌봄노동자들과 생애사 쓰기 모임을 해오고 있는데, 구성원 모두의 삶이 닮은꼴이다. 10대에는 학교를 계속 다니기 어려웠다. 가난해서 혹은 아버지가 딸이라고 공부 많이 할 필요 없다고 해서, 그렇게 학교를 그만두었다. 13살 15살 나이에 봉제 공장 같은 곳에서 일하며 남동생 학비를 보내거나, 병든 할머니 약값을 부치며 가족을 부양했다.

  청소노동자들이 우리의 노동은 존중받아 마땅하다며 학교 앞 선전전을 진행 중이다.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20대에 있던 공장에서 남자들은 재단사가 되지만 여성들은 계속 시다로 남아서 월급이 적었다. 게다가 결혼을 했으니 그만두라는 말에, 쫓겨나듯 그만두기도 했다. 결혼 이후 남편, 아이, 시부모를 돌보며 쉼 없이 집안에서 일하는데, 사회는 전업주부에게 ‘집에서 논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 임금노동을 완전히 멈출 수는 없었다. 아이 육아를 포함한 가사노동을 하면서도 동시에 인형 눈을 달거나 옷에 단추를 다는 가내 수공업을 했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거나, 고령의 시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다시 전일제 노동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저학력, 경력단절 현실은 취업을 어렵게 만들었고, 대부분 소위 여성직종에 취업하게 된다. 그리고 ‘반찬값 버는 청소 아줌마’, ‘집안일 해주는 요양보호사 아줌마’ 같은 이름으로 불리며 불안한 고용상태로 저임금 노동을 한다.

한국 사회는 바로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유지돼 왔다. 한국 경제는 1970, 80년대 경공업과 수출로 성장했는데, 바로 이 여성들이 10대 때 학교 대신 공장에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장년기에 집 안에서 모든 가사돌봄 노동을 무급으로 하고, 노동자 재생산을 맡고 사회를 유지시켰다. 아버지가 돈을 벌어와서 가족을 부양한 게 아니라,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돈을 벌러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초고령화와 돌봄 빈곤 사회를 다시 중고령 여성들이 떠받치고 있다.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육아 도우미 등의 이름으로 돌봄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청소노동은 모든 공간에서 필수적이지만, 직업 위계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고 새벽부터 출근해야 해서 기피되는 노동이다. 그 노동을 다시 중고령 노동자들이 무시와 저임금을 감당하며 비정규직으로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을 이 사회의 피해자, 약자로만 호명해서는 안 된다. 여성들은 언제나 부당한 현실에 맞서 싸워왔다. 특히 여성노동자가 만들어온 저항의 역사는 유구하다.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이 다가오면 그 유래가 된 미국이나 러시아 여성노동자들의 집단행동과 뜨거운 역사가 주로 회자 된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근현대 역사도 여성노동자들의 싸움으로 진전시켜왔다.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과 투쟁을 지지하는 학생들 [출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여성이 진전시킨 역사

일제강점기 정미업 여공들은 임금인상과 관리직 남성들의 폭행이나 성폭력 근절을 요구하며 파업했다. 평양고무공장 총파업은 체공녀 강주룡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그는 임금삭감에 항의해 최초로 고공농성을 벌였다. 이후에도 1950년대 조선방직 투쟁, 1960년대 제일모직 여성노동자 단식, 1970년대 동일방직 알몸 시위와 똥물 탄압, YH무역 김경숙의 죽음, 1980년대 인천지역 해고 여성노동자들의 블랙리스트 철폐투쟁, 여성전화교환원의 43세 정년 차별에 맞선 싸움까지 다 나열하기 숨찰 만큼 다양하다. 현재까지 여성노동자 차별에 맞서는 법적 버팀목이 되고 있는 ‘남녀고용평등법’은 여성전화교환원 정년 차별 싸움 이후 만들어진 성과이기도 하다. 그리고 2022년 3월 8일 덕성여대 청소노동자들이 다시 한번 역사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청년 여성들이 우리의 저항을 기억하며 부당함에 맞서길

지난달 덕성여대 캠퍼스가 있는 서울 동북권 지역 페미니스트 단체들과 함께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었을 때, 청소노동자 윤경숙 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덕성여대 학생들도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면 차별이나 부당한 현실을 마주할 일이 많을 텐데요. 그때 빨간 조끼를 입고 부당함에 맞서 싸웠던 우리 청소노동자들을 기억하면 좋겠어요. 덕성의 학생들이 참지 않고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여성으로 살길 바래요.”

그 말을 듣던 많은 이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장기화되면서 지지하는 학생들도 많지만, 청소노동자를 비난하는 학생의 대자보도 붙었다. 그 대자보 앞에서 윤경숙 님이 무척 마음 아파하며 한참 울었던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 여성들도 자신들처럼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삶을 살기 바란다는 고령의 청소노동자, 순응하고 물러서기보다 끝까지 싸움을 선택한 덕성여대 청소노동자! 2023년 3월 8일 덕성여대청소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 샤워실 설치, 휴게실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 청소노동자들의 싸움이 패배하지 않도록 페미니스트들의 지지와 연대가 필요하다.


덕성여대청소노동자 싸움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연명 함께하기(개인/단체)
https://bit.ly/3mmjbrK


*필자 소개
조한진희(반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저자, ‘다른몸들’ 활동가, ‘덕성여대청소노동자투쟁을 지지하는 페미니스트연대’에서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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