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와 3.8 세계 여성의 날

[여성, 노동의 기록]


곧 3.8이다. UN이 지정한 공식 기념일인 세계 여성의 날.

1908년 3월 8일 1만 5,000여 명의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벌인 것을 시작으로 올해 115주년이 됐고, UN이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한 뒤 1977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명명했으니 그것으로만 따져도 46주년, 우리나라에서 법정 기념일이 된 것도 2018년부터 5년째가 된다.

민주노총은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며 진행하던 ‘전국 여성노동자대회’를 2019년부터 ‘전국노동자대회’로 확대해 진행하고 있다. 올해로 4년 차이지만 아직도 3.8 전국노동자대회는 ‘여성’노동자들이 모여 기념대회를 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3.8 전국노동자대회를 조직하면서 어렵지 않게 듣는 이야기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당사자인 여성들의 참여를 조직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왜 여성의 날만 있냐는 것이다.

여성들이 다수인 사업장도 임원이나 간부는 남성이 대다수인 경우가 많다. 내가 있는 세종충남지역의 민주노총 조합원은 6만 명인데 그중 여성조합원이 10%를 넘는 사업장이 5개 사업장이 되지 않고 1,000명 이상 사업장 중 여성조합원이 5% 미만이거나 단 한 명도 없는 사업장이 절반 이상이다. 그러다 보니 여성조합원들은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전국노동자대회’인데도 개인의 휴가를 써야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시간 할애가 되거나 전임인 여성간부가 거의 없다 보니 상근간부를 모아도 여성들이 거의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당사자인 여성조합원들의 참여를 조직하는 게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닐까. 11월 전국노동자대회를 조직하는 것처럼 3.8 전국노동자대회를 조직하고 있는 것인가는 차치하고서라도.

또 하나의 질문인 왜 여성의 날만 있는가는 오래된 질문이다. 이 질문은 왜 여성국만 있는가, 왜 여성가족부만 있는가, 왜 여성 할당만 있는가 등과 이어진다. 빵과 장미를 상징으로 하는 115년 전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세계 여성의 날이 처음 지정됐을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환경은 남성들에 비해 턱없이 열악했지만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등 기본적인 권리도 없을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

미국 여성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 이후로 지금까지 전 세계가 여전히 곳곳에 남아있을 여성차별을 경계하자는 의미에서 매년 같은 날을 기념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 투쟁의 대표라 얘기되는 미국의 독립선언서나 프랑스 인권선언에서조차 ‘모든 사람’은 ‘All men’, ‘man’이었지 지금의 ‘Human’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말 그대로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람’의 의미를 가진 것은 1948년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지고 난 후였다.


여성이 남성과 완전히 평등해지면 여성의 날은 더 이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더 차별받는다면 UN이 세계 남성의 날을 공식으로 지정해서 매년 기념하지 않을까? 전 세계가 약속하고 지정한 UN의 공식 기념일은 무작위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모두가 평등한 지구가 되길 소망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세계 여성의 날 뿐만 아니라 ‘세계 장애인의 날’,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이 존재하는 것도 그 이유이다.

1908년, 1977년과 2023년은 달라졌다고 반론한다면 수많은 자본과 인력을 동원해 생산되고 있는 통계자료를 내보일 수밖에 없다. 좌우를 막론하고, 정부와 민간을 막론하고, 국내와 국외를 막론하고 나와 있는 여전한 차별의 지수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에 막혀있는 여성대표성과 블라인드에 가려진 채용 차별, 수년째 바뀌지 않고 등장하는 성별 임금 격차 지수, 너무나 자주 언론을 도배하는 각종 여성폭력들이 여전히 누군가는 성별을 이유로 차별당하고 있다고 보여주고 있다. 또 그 차별만큼 지독한 여성들의 투쟁이 있다.

노동절이 자본과 정권에 맞서 지난하게 싸워온 노동자들의 투쟁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날인 것처럼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들이 사회, 경제, 정치 전반적으로 얼마나 많은 것들을, 얼마나 간절하게 거리에 나와 싸워서 쟁취했는지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인 것이다.

여담으로 이야기하자면 왜 남성의 날은 없냐고 묻는 이들의 속내와는 다르지만 ‘남성과 남자아이들의 건강에 집중하고, 여성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성평등을 추구하며, 긍정적인 남성 롤모델을 주목한다’는 의미를 가진 세계 남성의 날도 존재한다. 1990년대에 시작된 이날은 UN이 지정한 공식 기념일은 아니지만, 영국을 포함해 약 60개국에서 11월 19일을 세계 남성의 날로 기념한다고 한다.

2023년 대통령 윤석열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3월 8일은 어떤 모습일까. 분명한 건 1908년 여성노동자들과 2023년 여성노동자들이 원하는 건 장미꽃 한 송이와 빵 하나의 선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분홍빛 꿈이나 황금마차도, 옜다 하는 선심도, 헛된 동정이나 시해처럼 주어지는 배려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채용에서 퇴직까지 계속되는 지독한 차별과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폭력에 맞서는 이들이 있다는 것, 완전한 평등의 세상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 모두가 평등하거나 안전하지 않으면 누구도 평등하지도, 안전하지도 않다는 것을 아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그런 이들과 함께 어깨 걸고 싸우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115년 동안 줄기차게 싸워서 찾아온 것들을 빼앗기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2023년 대통령 윤석열이 존재하는 대한민국의 3월 8일. 3월 8일의 여성노동자들은 여전히 그리고 더 강하게 이미 시작된 불평등의 균열을 더 크게 만들어 반드시, 결국 우리가 이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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