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OP과 K-콘텐츠 시장의 독점을 놓고 왕좌의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연예기획사의 원조격이며, K-POP 아이돌의 대표 기업인 SM(에스엠)에서 경영권 분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는 이성수 SM엔터 대표 등 기존 경영진이 지난 2월 4일 영상을 통해 멀티프로듀싱 체제와 함께 글로벌 IP 업체로서의 발전 전망인 ‘SM3.0’을 발표하며 시작됐다. 이어 SM엔터 경영진은 이사회를 열어 주주행동주의 펀드이며 SM의 소수주주인 ‘얼라인 파트너스’,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등을 통해 SM엔터 지분 9.05%를 취득한 ‘카카오엔터’와 손을 잡았다.
이런 결정은 SM 운영에 핵심이었던 이수만 1인 프로듀싱 체제와의 단절은 물론이며, 이수만의 대주주 지위까지 위협해 이사회에서 완전히 축출하는 결정에 다름 아니었다. 때문에 이수만 진영은 SM엔터 경영진의 이런 움직임을 ‘이수만 내쫓기’로 규정, 주주행동주의 펀드와 공룡기업인 카카오엔터와 손잡고 SM을 망치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곧이어 이수만은 SM엔터 경영진의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카카오엔터에 주식을 배정한 이사회 결정의 무효와 효력정지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하고 업계 최대 기업인 하이브에 자신의 주식을 매각했다. 또한 이렇게 SM 경영권 분쟁에 개입하게 된 하이브는 SM엔터 주식 공개매수를 공식화하며 경영권 인수를 본격화했다.
그러자 SM엔터 경영진은 다시 2월 16일 영상에서 이수만 1인 프로듀싱 체제의 문제, 라이크기획과 홍콩 CT플래닝(CTP) 등 이수만 개인회사를 통한 사익편취와 역외탈세 의혹 등을 폭로했고, 하이브의 경영권 인수 시도를 ‘적대적 M&A’로 규정하며, 대항하고 있다.
이번 SM사태는 대주주인 이수만 1인 중심의 비민주적, 독단적 운영과 대주주의 사익편취 문제가 발단이 됐다. 특히 SM 발전 전망과 관련해 1인 프로듀싱 체제와 사익편취 등이 글로벌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판단이 있었다. 이에 따라 현 경영진은 멀티프로듀싱 체제와 글로벌 투자 확대 등 SM3.0의 전망을 가시화하기 위해 이수만의 퇴진을 공식화하며 경영권 교체에 나섰다.
이 때문에 SM사태의 원인을 짚어 보는 데 있어 먼저 지배구조의 문제를 돌아보게 된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며 원인인 대주주의 전횡 문제를 기업소유지배구조 상 감시 구조를 통해 극복하지 못하고 경영권 교체까지 갔다. 기존 경영진까지 대주주에 반기를 들었는데, 대주주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이 있는 이사회나 감사를 통해서도 대주주의 전횡을 막지 못해 결국 카카오엔터라는 다른 대기업을 끌어들여 지분 경쟁을 벌여야 했다.
주식회사는 이사회, 사외이사, 감사를 통한 내부감시와 외부 회계법인, 주식시장 등을 통한 외부감시를 받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대주주와 경영인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이사회, 사외이사, 감사 등이 거꾸로 대주주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거나, 외부 회계법인도 대주주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대로 된 회계감사를 하지 못하고 대주주의 불법행위 등을 눈감아 준 일도 허다하다. 별도로 정확한 기업 실사를 하지 않으면 사태 파악조차 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기업 매각 때 이뤄지는 기업 실사 과정에서 기업의 부실, 대주주의 불법 등이 새로 밝혀지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번 과정에서도 SM엔터 경영진은 하이브에 기업 실사도 없이, 대주주의 불법과 사익편취 현황도 모른 채, 경영권 인수에 나섰냐고 비판했다. SM사태가 경영권 분쟁으로 치달은 것은 그 자체로 기업지배구조의 실패를 보여주는 사례다.
대기업의 엔터 산업 독점 경쟁
결국 대주주 견제는 직접적인 지분 대결 이외에는 문제 제기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다시 드러났다. 이수만 대주주의 사익편취 문제는 이번에 처음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여러 주주들을 통해서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런 문제 제기는 그동안 대부분 무시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졌다. 그럼에도 이번에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확대된 것은 지분인수로 카카오엔터의 2대 주주 등극이 예고되면서 대주주 진영과의 표 대결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기업지배구조 상 내·외부 감시가 작동하지 않아 시작된 SM엔터 사태가 지분대결로 넘어가면서 다른 문제가 나타났다. 기존 경영진이 끌어들인 카카오엔터와 이수만이 끌어들인 하이브가 각각 공룡기업, 업계 최대 기업인 탓에 이제 대기업 간 본격적인 경영권 인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SM엔터의 문제는 대주주 견제와 민주적 운영 문제에서 대자본 간 경영권 인수 경쟁, 그리고 그 결과인 연예·엔터 산업의 독점 문제로 진화했다.
당장은 이 인수 경쟁이 K-POP 시장을 놓고 ‘카카오 대 하이브’의 대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에는 ‘카카오와 네이버’, IP·콘텐츠 플랫폼 공룡기업의 엔터 산업 장악 경쟁으로 볼 수 있다. 카카오엔터는 최근 사우디와 싱가포르 국부펀드로부터 1조 2천억 원 규모의 투자를 받고 스토리-미디어-뮤직 부문을 아우르는 글로벌 IP 업체로의 전망을 가시화하고 있다. 한편, 네이버와 하이브는 엔터 산업에서 서로 동맹관계를 맺었고, 네이버는 지난 2021년 하이브 자회사인 위버스컴퍼니 지분 49%를 취득해 지분참여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하이브-네이버 동맹에는 게임회사인 넷마블과 암호화폐 업계의 강자인 두나무까지 엮여 있다.
SM사태의 가장 큰 문제는 결론이 어떻게 되든 SM의 경영권이 IP 플랫폼 공룡기업으로 넘어가 연예·엔터 산업의 독과점 문제가 확대할 거란 점이다. SM엔터 현 경영진과 카카오엔터가 경영권을 가져오더라도 카카오엔터가 주요 주주(2대 주주 또는 상황에 따라 1대 주주)로 등극해 K-POP과 연예 산업에서 독점과 장악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당장 SM이 카카오엔터의 계열사로 편입할 전망이 크진 않지만, 최소한 하이브-네이버 동맹체제와 같은 SM-카카오 동맹체제가 형성되며 시간이 지나 통합·재편될 것이다.
하이브와 네이버 동맹이 SM엔터를 인수하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 K-POP 시장 업계 1위 하이브와 2위 SM의 결합이기 때문에 독점 문제가 즉시 발생한다. 시장 점유율로도 66% 이상 차지할 뿐만 아니라 매출액 기준으로도 3위 YG나 4위 JYP에 비해 8배~10배 차이가 난다. 법적으로도 하이브가 SM 주식을 15% 이상 인수하거나, 하이브 임원이 SM 임원으로 되면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심사를 받아야 한다. 1위와 2위 기업의 결합에 따라 연예 산업에 거대 공룡기업이 나타나게 되면, 이수만 개인 독점 때와는 질적으로 다른 폐해와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엔터 산업의 자본독식과 독점…글로벌 성장주의로 흑화
문화예술 특히 대중문화 영역의 연예·엔터 산업은 민간 대자본의 놀이터와 마찬가지다. K-POP은 물론이고 웹툰, 영화, 예능, 웹드라마 등 IP 콘텐츠 생산과 유통 영역은 민간 대자본의 투자와 콘텐츠 생산자들에 대한 가혹할 정도의 착취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미국 연예전문지 버라이어티(Variety)는 한국 연예계를 영화 ‘헝거게임’에 비유하며 “한국 연예계는 높은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잘 알려졌다. 노동환경에서 모든 동료가 경쟁자고 강한 자만 살아남는다”고 꼬집기도 했다. K-POP은 10대 청소년 아이들을 계획적인 훈련과 통제로 빠른 시간 안에 아이돌로 육성하는 시스템을 통해 세계적인 성과를 일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0대 청소년을 도구화하고 아티스트들의 창의성을 훼손해 자본주의적인 소비문화를 조장했다. 아이돌을 포함한 대다수 아티스트는 물론 업계의 많은 종사자(노동자)들까지 저임금-장시간 노동 착취를 통해 이윤을 축적하고 규모를 키워나갔다.
이젠 K-POP과 K-콘텐츠들이 일종의 국뽕 산업처럼 되면서 아이돌의 K-POP과 영화, 웹툰, 예능 등 콘텐츠들이 해외에서도 성공하고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연예·엔터 산업에 막대한 자본이 투여되고 글로벌 투자가 확대하면서 이를 정당화했다. 투자된 금액이나 규모에 비례해 더 짧은 시간에 더 큰 성과를 내야 하는 성장주의도 심해졌다. 연예기획사 소속 아이돌과 아티스트, 종사자(노동자)들은 이제 글로벌 경쟁 체제에 내몰리고 있다.
연예 기획사의 증시 상장과 엔터 산업 내 공룡기업들의 동맹 또는 결합, 글로벌 투자가 이어지면서 실적 압박이 아이돌과 아티스트에게로 전가된다. 이런 K-POP의 자본화, 산업화, 글로벌화는 아이돌의 창작 활동과 자율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은 지난해 6월 활동 중단 소식을 전하며, “K팝 아이돌 시스템 자체가 사람을 숙성하게 놔두지 않는다.(...) 계속 뭔가를 찍어야 하고 해야 하니까 내가 성장할 시간이 없다”라고 말했다. RM은 “‘다이너마이트’까지는 우리 팀이 내 손 위에 있었던 느낌인데 그 뒤에 ‘버터’랑 ‘퍼미션 투 댄스’부터는 우리가 어떤 팀인지 잘 모르겠더라”라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언론에서 “케이팝 아이돌 시스템은 기획사 주도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콘텐츠 산업의 정점”이라며, “방탄소년단은 음악과 산업을 양립하려 했으나 하이브가 성장하면서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어 내적 갈등이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SM엔터 경영진의 문제 제기는 이러한 글로벌 경쟁과 성장을 강화하는데 더 이상 이수만 1인 체제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진이 대안으로 제출한 ‘SM 3.0’의 한계 또한 명확하다. 멀티프로듀싱을 통한 양질의 IP 제작, 글로벌 IP 확장, 글로벌 음악 퍼블리싱 사업, 레이블의 인수, 팬덤 이코노미 비즈니스, 메타버스와 같은 신규 사업 투자 등 투자 확대와 성장 전략이 전부다. 또한 이러한 사업 확장과 투자 확대 때문에 카카오엔터가 필요했다. 이수만 대주주와의 지분 대결만이 카카오엔터 참여의 목적이 아니란 얘기다.
SM엔터 경영진은 “소속 아티스트를 5+1개의 제작 센터로 구분, 아티스트 전담 제작 및 핵심 기능을 배치해 독립적인 의사결정 보장 및 창작 자율성을 존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투자 확대, 카카오엔터 참여 등 자본의 개입이 커질수록 이윤 압박과 성과에 대한 압박이 더 거세질 텐데, 이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일까. “투자 확대를 통한 글로벌 성장”과 “독립적인 의사결정 보장과 창작 자율성 존중”은 서로 모순일 뿐이다.
현상적으로 SM의 위기는 이수만 1인 프로듀싱 체제나 사익편취 등 대주주의 전횡이 이유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글로벌 경쟁 아래에서 아이돌 양산 시스템의 문제, 콘텐츠와 IP 수익성의 위기가 본질적인 이유다. SM엔터 경영진은 카카오엔터와 손잡고 기존 아이돌 시스템과 IP 생산 시스템을 강화, 다양화, 글로벌화해서 수익성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다. 하이브 진영도 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현재의 구도에서 카카오와 네이버 중 어느 쪽 중심인가의 차이이다. 그러다 보니 양쪽 진영이 서로 ‘적대적 M&A’라고 비판할 뿐, 정작 현행 아이돌 시스템의 한계가 무엇인지, 글로벌 투자 확대와 글로벌 경쟁이 무엇을 말하는지 등은 입에 올리지도 않고 있다.
SM의 사회화, 대중문화 사회화의 계기로
한편, 이 위기는 어느 정도 성공해 (초식)공룡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위기이다. 그 성공의 한계 때문에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한 그런 상황이다. 때문에 이는 SM만의 위기도 아닌 하이브, YG, JYP 등 주요 연예기획사들과 전체 연예·엔터 산업 모두가 겪고 있는 한계이자 문제다. K-POP 뿐만 아니라 K-콘텐츠 등 글로벌 IP 생산 영역 전반에 야기되고 있는 위기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SM 경영권 쟁탈전에 돌입한 세력들은 모두 글로벌 투자를 더 많이 받아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고, 국내적으로는 독점을 심화해 산업 장악력을 더 키우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다시 말해 공룡이 되었기 때문에 나타난 문제를 더 큰 육식 공룡으로 진화해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엔터 산업에 투자 경쟁이 벌어지고 SM경영권 인수가 핵심 전장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이브는 물론이고 카카오엔터에서도 SM 경영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 이른바 ‘쩐의 전쟁’이 본격화하는 모습이다. 그럴수록 이 전쟁이 조기에 끝나리란 전망이 없다. 여러 법적인 공방 속에 한쪽이 우위에 서더라도 다른 쪽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경영권 공방과 위기는 지속될 수 있다. 그러면 SM엔터는 장기간 표류로 인해 결국 힘이 빠지고 무너지게 된다. 카카오나 하이브, 네이버 입장에서도 SM은 경쟁기업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아닌 다른 쪽에서 SM의 경영권을 잡는 것보다는 차라리 SM이 망가지는 쪽이 시장 장악에 더 유리하다.
따라서 SM엔터의 미래 가치나 전망, 연예 산업의 미래를 고려하면, 지금 등판한 어떤 세력도 대안이 되지 못한다. 어떤 쪽이든 산업 독점과 글로벌 성장 전략을 가시화할수록 SM엔터와 연예 산업의 IP 생산(아이돌 시스템)의 모순과 한계 그리고 투자 확대에 따른 수익성-성과(압박) 문제가 더 불거질 테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쟁의 판을 바꾸어야 한다. 대기업, 주주들 간의 경영권 분쟁, 독점 공룡 대기업의 지배가 아닌, SM과 연예·엔터산업의 미래를 위해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기업지배와 운영구조를 마련하는 문제로 판을 넓혀야 한다. SM엔터 종사자(노동자)와 업계의 다양한 종사자 참전은 필수이며, 팬 및 관련 문화예술계 등 핵심 이해관계자 집단이 자본주의적 소비주의가 아닌 글로벌 문화주의에 걸맞은 콘텐츠 생산 시스템과 자율적, 창의적, 민주적 운영구조 마련에 결정권을 갖고 나서야 한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SM(에스엠)의 사회화’라고 부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