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 되면

[INTERNATIONAL2] 슬픔, 절망, 분노, 희망의 팔레스타인 ‘땅의 날’

희망 또는 희망 비슷한 것

시간은 흐르고 인생도 흐르고 그래서 인간의 언어로 어제와 오늘을 나누고 작년과 올해를 나누고 봄과 여름을 나누는 것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새해가 되면 작년보다는 더 나아질 것을 희망하고 봄이 되면 괜히 희망찬 마음을 가지곤 한다. 몸이 쇠약해져 삶의 의욕마저 희미해지다가도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를 보며 저 해의 밝은 기운을 받아 오늘은 개운해질 것 같은 예감을 느끼기도 한다. 힘든 날들이 계속 이어지더라도 새벽이 오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며 애써 곧 희망의 아침이 올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만약 매일매일이 깜깜한 밤이고 매일매일이 추운 겨울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희망은 고사하고 희망 비슷한 것도 잡기가 어렵다면. 해마다 봄이 오는데 그 봄이 겨울처럼 춥기만 하다면?

2020년 2월 6일. ‘이렇게까지나’ 싶게 좋은 날에 ‘마즈달 샴스(1)’ 마을에 있었다. 집짓기를 끝내지 않은 벼랑 쪽의 집에서 건너를 바라보았다. 겨우 50m쯤으로 보이는 산과 산 사이에 철조망이 처진 구릉지가 있었다. 2011년 5월 15일 시리아 ‘야르무크 난민촌(2)’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국경을 건너왔던 현장을 우리는 묵묵히 바라보았다. 그 작은 구릉지를 무사히 건너는 것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 그 길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하는 삶.

마즈달 샴스 마을 사람들은 구릉지를 건너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안전을 걱정하고, 무사히 그 구릉지를 건너왔을 때 함께 기쁨의 포옹을 하고, ‘이것이 해방이다’라는 말을 그 자리에서 들었다고 한다(3). 일상이 불안하고, 그 불안이 일상이 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팔레스타인 난민들이다(4).


해마다 봄이 되면

2022년 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3월 30일)
아부 무함마드 살라(Abu Muhammad Salah, 65세)는 매년 ‘땅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고 하며 “매년 고향으로의 귀환이 가까워지고 있고 이스라엘 점령의 끝이 가깝다는 믿음이 커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5).

2018년 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3월 30일)
한 남성이 ‘땅의 날’ 시위 때 심을 올리브 나무를 들고 있다(6).

2018년 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3월 30일)
‘땅의 날’ 시위로 팔레스타인인 최소 18명이 사망했고, 1400여 명이 부상당했다. 이스라엘군은 실탄과 최루가스를 발포했다(7).

2012년 봄
(대한민국 이스라엘 대사관 앞, 3월 30일)
팔레스타인평화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와 대학생 단체, 외국인 활동가 등이 모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영토점령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학살에 항의하며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위한 연대 발언과 ‘분필 시위’, ‘1인 시위’ 및 행진 퍼포먼스를 진행했다(8).

1985년 봄
(‘땅의 날’ 기념으로 제작된 포스터, 3월 30일)

1976년 봄 (팔레스타인)
3월 11일, 이스라엘은 유대인 정착지 확장을 위해 팔레스타인 갈릴리 지역의 토지를 강제수용하겠다고 발표한다. 3월 29일, 팔레스타인은 토지 강제수용에 저항하는 총파업을 결의했다. 3월 30일, 북쪽의 갈릴리에서 남쪽의 네게브에 이르기까지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시위가 발생했으며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난민들도 총파업과 시위에 합류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경찰과 헬기 탑재 부대를 동원해 무자비하게 시위를 진압했으며 시위대를 향한 발포로 팔레스타인 시위대 6명이 숨졌고, 1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수백 명이 연행됐다. 이날의 일은 각국 언론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 이후 3월 30일을 팔레스타인 ‘땅의 날(Land Day)’로 지정했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법점령에 항의하는 시위가 매년 벌어지고 있다.

2023년 봄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들, 3월 30일)
해마다 봄이 되면 ‘땅의 날’을 기념하는 다양한 시위와 연대 행사가 이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언제까지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옷에 맨 허리끈이 저절로 느슨해지니
가느다란 허리를 위함은 아니라오

동방규 ‘소군원(昭君怨)’(9)


봄이 왔지만 봄이 온 것 같지 않고, 매번 힘겹더라도 희망을 만들어야 하고, 억지로라도 희망을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은 고통스럽다. 봄이 오는 것도 자연스럽고, 희망이라는 말이 오히려 필요 없는 그런 팔레스타인을 바란다. 그렇지만 올해 3월 30일에도 팔레스타인 각 지역과 세계 곳곳에서는 ‘땅의 날’과 관련한 집회가 열릴 테고, 또 어쩌면 다치는 사람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은 3월 30일 하루가 아니라, 슬픔과 절망과 분노와 희망이 섞인 일상일 것이다.

왕소군은 한나라가 아닌 흉노의 땅에서 매년 오는 봄이 봄 같지 않아도 그곳에서 여인들에게 길쌈을 가르치고 고국을 그리워하다가 죽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슬픔이 쌓여 절망하고 절망이 반복돼 분노만 가득한 채 살아가게 해서는 안 된다. 희망을 가지라고, 희망을 잃지 말라고 말만 하는 것보다 우리가 옆에 있다고, 함께 하다 보면 희망이 만들어질 거라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땅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해마다 오는 봄이지만 2023년 봄에 우리가 하면 좋을 것들을 제안한다.

2023년 봄 (대한민국, 3월 30일) 팔레스타인 ‘땅의 날’ 함께 하기

1. ‘땅의 날’과 관련된 글 읽고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2. 한국에서 ‘땅의 날’ 관련 행사 찾아보고 참여하기
3. 세계 각국에서 진행하는 ‘땅의 날’ 행사에 소셜미디어로 연대하기
4. ‘땅의 날’과 관련하여 팔레스타인에서 진행된 상황 뉴스로 시청하기
5.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해 계속 관심 두기

<각주>
(1) 마즈달 샴스(Majdal Shams)는 이스라엘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는 시리아 골란고원의 최북단 산기슭에 있는 시리아 드루즈족 마을이다.
(2)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 1957년에 설립된 시리아에서 가장 큰 팔레스타인 난민 수용소
(3) Dramatic video shows Palestinians, Syrians entering Israeli-occupied Golan Heights, THE ELECTRONIC INTIFADA, 2011. 5. 15. Ali Abunimah
(4) Going home to Majdal Shams-Nakba 2011 영상을 사진으로 저장.
(5) Palestinians in Gaza call for right of return on Land Day, ALJAZEERA, 2022 3.3 0, Maram Humaid
(6) Palestine Land Day: A day to resist and remember, ALJAZEERA, 2018. 3. 30. Yara Hawari
(7) ‘피의 금요일’ 또 우려…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위에 강력대응", 연합뉴스, 2018. 4. 5. 노재현
(8) 2012 팔레스타인 땅의 날 연대 행동, 팔레스타인평화연대, 2012. 3. 30.
(9) 한소군의 마음을 당대의 동방규가 읊은 시

<참고자료>
-https://electronicintifada.net/blogs/ali-abunimah/dramatic-video-shows-palestinians-syrians-entering-israeli-occupied-golan-heights
-https://www.youtube.com/watch?v=50eSv60Z_No, Going home to Majdal Shams-Nakba 2011,
-https://www.aljazeera.com/news/2022/3/30/palestinians-in-gaza-mark-land-day
-https://www.aljazeera.com/opinions/2018/3/30/palestine-land-day-a-day-to-resist-and-remember
-https://www.yna.co.kr/view/AKR20180405177700079
-https://pal.or.kr/xe/action/158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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