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 노조를 만들다. 현장을 바꾸다.

[기획연재①] 건설노동자들은 현장을 바꾸기 위해 어떻게 싸워왔나?

[편집자 주] 최근 윤석열 정부의 노동조합 탄압은 건설노동자를 타깃으로 삼고 있다. 지난 2월 21일 ‘건폭(건설현장 폭력)'이란 신조어까지 만들며 건설노조에 폭력 집단 프레임을 씌우고, 불법행위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역시 건설노조에 대해 '분양가 상승의 주범', '경제에 기생하는 독', '조폭노조'와 같은 표현을 쓰면서 건설노조를 범죄 집단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부는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건폭 검거 실적 올리기에 한창이다. 지난 1월부터 건설노조에 대한 압수수색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다. 수백 명의 조합원이 채용 강요 등의 혐의로 조사받고 있고, 이중 일부는 구속까지 된 상황이다. 이 와중에 경찰은 건폭 잡은 경찰관을 특진 임용해, 건폭 잡기 경쟁을 부추긴다.

전방위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설노동자 중 건설기계장비를 소유하고 직접 운전하는 특수고용노동자를 탄압하는 데엔 공정거래위원회가 동원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노조와 화물연대를 사업자 단체로 규정하고 조사를 진행 중인데, 건설노조에 대해서는 ‘담합 행위’를 이유로 수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30대 건설사 CEO들은 한자리에 모여 “수십 년간 ‘건폭’에 시달렸다”며 우는소리를 해 댄다. “지금이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골든타임”이라며 정부의 건폭 때려잡기 행보를 부추긴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하나로 뭉쳐 노동자 집단을 공격하고 있고, 이들의 일방적 주장은 언론을 통해 여과 없이 실린다. 건설현장에서 천문학적 이익을 쌓아 올린 건설 자본이 수십 년째 피해를 보고 있다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의 전말을 알기 위해 연재를 시작한다. 정부와 건설사는 왜 건설노조를 때려잡고자 할까. 건설노동자들이 바꾼 건설현장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권력이 찍어 누르고 있는 반대편의 이야기에 집중해 보려 한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1. 노가다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노조가 뭔데?

·타워크레인 노동자들: 2001년 타워크레인 노조를 만들었다. 즉시 협동사(타워 임대사들의 조직)를 통한 중앙교섭을 진행했고, 그 결과 전국의 임금을 통일하고 단체협약을 만들 수 있었다. 이후 건설현장을 바꾸는 모든 부분에서 선두가 되었다.
·건설기계 노동자들: 2001년 건설운송 노조를 만들었고, 정부가 건설노동자를 개인사업자라고 이야기하자 차량을 이끌고 상경하여 ‘우리도 노동자’라는 투쟁을 벌였다. 2004년에는 덤프노동자들이 덤프연대로 모여 ‘차라리 죽여라’라고 투쟁한 이후 건설운송노조로 합류했다.
·외선 전기 노동자들: 1989년 전북지역에서부터 ‘인간답게 살고 싶다, 우리도 8시간만 일하고 싶다‘고 외치며 지역 노조를 만들었다. 이후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토목건축 노동자들: 1989년 서울지역에서 건설일용직노동조합을 만들었다. 일당 노가다들이 무슨 노동조합이냐며 노동부에서도 설립신고를 반려시켰다고 한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노동자들의 투쟁을 통해 조합원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건설현장에서 각각 다른 노조로 시작한 건설노동자들이, 2007년 한데 모여 하나의 노조를 만들었다. 그 이름이 바로 ‘전국건설노동조합’이다.

2.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하다.

전국건설노조를 만든 첫해에 건설노동자들은 무려 4개의 법안을 만들고 바꾸었다. 그중 제일 핵심적인 것이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한 ‘건설산업기본법’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후 만들어진 시공참여자제도는 건설노동자들을 옥죄는 근원이었다. 건설공사의 정상적인 단계는 발주처-원청-하청 구조이다. 그런데 하청에서 또 직종별로 도급을 내리는 게 현실이다. 그래 놓고 제일 말단 하도급인 ‘오야지, 십장, 시다오케’가 시공에 참여한다고 해서 ‘시공참여자제도’라고 이름을 붙이고, 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합법화했다. 이후 임금체불이나 위험한 작업환경,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은 건설사의 책임인데, 능력도 없는 시공참여자, 즉 오야지나 십장 등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구조가 형성됐다.

우리 건설노조가 단일노조를 만들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이 건설현장 만악의 근원인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건설현장에서 무슨 일을 하건, 시공참여자가 아니라 원청회사에 책임을 물어야만 현장의 변화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절박했고 절실했기에 단일노조 출범 원년인 2007년 총파업을 통해 시공참여자제도를 폐지할 수 있었다. 뛸 듯이 기뻤다. 금방 뭐가 확 바뀔 줄 알았지만, 역시 오랜 기간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었던 현장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법이 바뀌었다고 건설현장이 저절로 바뀌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그 당시 1만 5천 명 조합원 중 70%를 차지하고 있었던 건설기계노동자들이 먼저 투쟁에 나섰다. 전국의 현장을 돌면서 법이 바뀐 것을 알리고 ‘이제 중간업자(일명 똥쟁이)가 현장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들을 빼고 직접 장비를 써야 한다’고 미친 듯이 외치고 다녔다. 또 당시 건설기계노동자들은 손바닥만한 작은 종이에 날짜와 현장명, 작업했다는 사인이 들어간 작업일보(일명 만보지)를 계약서 대신 받았는데 그것을 잃어버리면 일을 했다는 근거가 사라져 돈을 못 받기도 했다. 그래서 더 이상 만보지를 작성하지 말고, ‘표준임대차계약서’를 직접 써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나아가 정부 수급조절위원회와 장비 수급에 관한 사항도 합의했다. 물론 그 대상은 당시에 조직으로 모여있던 덤프, 레미콘에 한해서였다. 이 많은 것들을 단일노조 건설 원년인 2007년에 다 바꾼 것이다. 새 세상을 맞이한 듯했다. 현장이 바뀌는 것을 확인하고 무엇이든 함께하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넘쳤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건설현장은 시공참여자제도 폐지 전과 후로 나뉠 만큼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3. 보따리를 내던지고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시공참여자제도의 폐지가 현장을 완전히 바꾸었지만, 구체적으로 살피면 직종별 편차가 있었다. 아직 대다수가 조직으로 들어오지 못했던 토목건축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과 불법다단계 구조 밑에서 고통받고 있었다. 그 당시 토목건축노동자 조합원은 전국적으로 겨우 2천 명 남짓이었다. 타워크레인이나 건설기계 노동자들과 달리 조직률이 너무 낮았다. 그 과정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 하나가 바로 법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조직적 힘이 없으면 그 법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도 건설노조 전체는 해마다 총파업과 현장투쟁을 거치며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직종별 분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조금씩 하나가 되어갔고 현장 투쟁도 함께 진행했다. 처음부터 중앙교섭을 진행했던 타워분과가 만들어 낸 ‘일요 휴무, 8시간 노동’ 등이 조금씩 자리 잡기 시작했고, 정부가 ‘노동자가 아니’라고 했던 건설기계노동자들의 임금 체불을 해결하는 방안도 만들어져 갔다.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던 토목건축노동자들도 현장 투쟁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시공참여자제도 폐지를 근거로, 조합원 직접고용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별 차이는 있었지만 한번 흐름이 만들어지니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직접고용 투쟁은 건설현장에 변화의 큰 획을 그었는데, 감히 일당 노가다들이 건설사와 맞섰기 때문이다.

예전엔 자기 오야지가 전부였던 그들이 건설사와 교섭을 하며 당당해졌다. 내 지역에서 내가 일해야겠다고 요구했다. 한편 오야지들도 ‘나도 이제 오야지 그만하고 직접고용 되어야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현장이 끝나면 보따리를 싸서 다른 현장에 기웃대던 오야지들이, 회사를 정해놓고 쫓아다니며 일하던 그들이 자기들을 통해 건설사 배만 불리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노조로 모였다. 팀으로 일하는 형틀목수를 주축으로 조합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철근공들도 합류했다.

4. 중앙교섭! 건설현장의 혁명을 만들어내다.

2017년, 토목건축분과가 드디어 중앙교섭을 요구했다. 조합원들이 일하고 있는 200개가 넘는 건설사에 공문을 보내 교섭에 나오게 하고, 쟁의권을 확보해 동시에 투쟁도 벌이고 현장도 멈췄다. 안 해 본 것 없이 투쟁한 결과 전국적 임금이 정해졌고, 단체협약이 만들어졌다. 그동안 현장별로 찍었던 한 장짜리 협약서 말고 임금과 각종 노동조건이 적힌 제대로 된 단체협약을 손에 쥐었다. 정말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쁘고 눈물이 났다. 평생 무시당하고 사람 취급받지 못했던 노가다들이 비로소 노동자가 되고 현장의 주인이 됐다. 그것은 진짜 혁명이었다. 그저 비 오는 날을 휴일 삼았던 우리가 빨간 날 돈을 받고 쉬기 시작했다. 연차가 생겼고, 주말엔 일찍 퇴근했다. 임금은 두 배 가까이 올랐고,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이 혁명이겠는가!

지금도 건설현장은 건설노조로 인해 계속 바뀌고 있다. 죽음의 현장에서 일해 볼 만한 현장으로, 그리고 젊은 청년들이 들어오는 현장으로!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지난날 우린 함께 현장을 바꿨고 지금도 나아가고 있다. 전 조합원의 10%를 차지하는 청년 조합원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게 성장한 우리를 윤석열 정부는 눈엣가시로 치부했다. 예전에 주면 주는 대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부려 먹던 노가다들이 그리운가 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 건설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주기 위해 정부와 자본이 ‘원팀’이 되었다. 아파트 지어서 떼돈 벌고, 비리 자금 만들어 정치자금을 주고받던 그들이 우리를 하루아침에 공갈 협박, 갈취, 갑질, 조폭, 생떼 쓰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지금껏 노조를 했던 우리에게, 사업자가 무슨 노조냐며, 사회적 공정거래를 위협했다며 거액의 과태료를 물리고 있다.

어이가 없다. 누가 누구에게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십수 년 동안 내팽개친 현장을 누가 바꾸고 투명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정녕 모른단 말인가! 건설 현장엔 건설노조가 있어야 한다. 저들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우린 이제 예전의 노가다가 아니라 당당한 건설노동자라는 것을. 아무리 우리를 탄압하더라도 노조를 몰랐던 시절로 절대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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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밤

    노조없는 시절로 절대 돌아가지 않는다는 글...
    고맙습니다.
    힘내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