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시장번영회의 주먹구구식 운영은 직원 탓이 아닙니다.

[연속 기고①] 서면시장에서 생긴 작은 노조가 말하는 희망에 대하여.

  서면시장 [출처: 비주류사진관(정남준 작가)]

서면시장번영회에 총무 직원으로 입사한 김태경 씨의 의문

부산진구 부전동에 있는 서면시장은 서울 명동 시장을 능가할 정도로 유동 인구가 많고 땅값이 비싸기로 소문난 곳이다. 부산 서면 일번지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다. 1960년대 초 상인들이 부산시에 보증금을 내고 목조건물을 지어서 장사를 시작했다. 그 후 현재의 4층 건물을 지어서 시장을 개설했다.(1) 1972년 시장 상인들의 모임은 사단법인 서면시장번영회를 설립하였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지만 서면 번화가 한복판에 있는 시장을 거대한 자본이 가만둘 리가 없다.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시장상가에 지분이 있는 점포주들에겐 재개발은 초미의 관심일 수밖에 없고, 재개발과 재건축을 둘러싼 이권 다툼과 온갖 모략이 서면시장번영회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시장을 흔들고 주도권을 잡기 위한 알력 다툼과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

사단법인 서면시장번영회는 점포를 소유한 상인들을 회원으로 하고 있다. 점포주 90%가 점포를 임대해 놓고 떠나있는 실정이고, 대다수 상인은 임대 상인으로 채워져 있지만 점포주가 아닌 임대 상인은 번영회의 회원이 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번영회 회장단과 이사회는 모두 점포를 소유한 상인이 차지하게 되었다. 사단법인 서면시장번영회는 회장 1인과 부회장 2인으로 구성된 회장단과 상가건물 층마다 이사를 두 명씩 선출해서 이사 6인을 두고 통틀어서 9명의 집행부를 구성한다.

김태경 씨가 서면시장 번영회 사무실로 처음 출근한 날은 2020년 7월 2일이었다. 번영회는 서면시장의 관리사무소 역할을 하는 곳이고, 태경 씨는 시장관리 총무 업무를 맡게 되었다. 입사할 당시 번영회는 시장 상가건물을 지키는 경비노동자 3명, 청소노동자 2명, 시장 도로변에 주차 관리하는 노동자 6명 그리고 번영회 사무실에서 총무와 경리, 행정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직 노동자 2명 해서 모두 13명의 노동자가 번영회에 고용되어 있었다.

번영회의 총무는 관리사무소 소장역할이었다. 전기검침을 하고 소방과 도시가스 관리 등의 업무를 한다. 전기가 불시에 끊기거나 방송이 안 나올 때, 물이 샐 때, 시장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리하고 적절한 조처를 하고 해결하는 업무를 했다.

출근하는 첫날부터 번영회 사무실은 어수선했다. 김태경 씨가 입사하기 전에 일했던 전 총무가 업무에 관한 기록과 자료를 없앴다면서 경찰이 사무실에 와 있었다. 신입사원인 김태경 씨가 업무를 인수-인계받을 자료가 사라졌다.

“번영회가 한 달에 한 번은 회의하게 되어 있어요. 공사를 하면 회의를 거쳐서 결정하니까 회의록에 어떤 공사를 얼마나 들여서 하는지 다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데 2년 동안 시장에서 어떤 공사를 했는지 비용은 전반적으로 얼마나 썼는지 이런 자료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번영회의 총무가 하는 업무 중엔 전기검침이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사단법인 서면시장번영회에서 사용한 전기 총사용량 요금을 부과하고, 번영회가 전기세를 선 납입하면 서면시장은 개별 상가마다 전기검침을 해서 상가가 사용한 전기사용량만큼 요금을 부과하고 수납한다. 230여 개 상가 전체의 전기사용량의 합이 한전에서 부과한 총 전기사용량과 맞아야 한다는 뜻이다.

  김태경 지회장 [출처: 비주류사진관(정남준 작가)]

김태경 씨의 의문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전산 데이터를 보니까 오류가 30%~40%가 있었어요. 그 당시 5년까지 기록이 남더라고요. 5년 동안 계속 오류가 있었던 거죠.”

없어진 자료를 대신해서 전산 데이터로 업무를 파악해 볼 수 있을 거라는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번영회를 거쳐 간 직원들이 전산상의 오류를 5년이나 바로잡지 않고 놔둔 이유가 뭔지 의문만 생겼다. 회장단은 전산상에 오류가 있다는 걸 과연 몰랐을까.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어느 가게는 보통 전기세가 한 달에 3만 원이 나오는데, 상인이 몸이 아파서 한 달을 쉬었는데도 전기세가 3만 원이 나온 거죠. 그럼, 상인은 문을 닫을 때나 열 때나 전기세가 똑같이 나왔으니까 따질 거잖아요. 그런 일이 되게 많았어요.”

김태경 씨가 입사할 시기는 코로나19 감염병이 유행할 때였고, 상가들은 영업시간을 단축하거나 문을 닫고 쉬는 날이 많았지만, 종전과 비슷한 전기세가 부과되어 전기세를 둘러싼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전기세를 납부하지 않는 상가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번영회는 한 상가만 전기를 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이었다.

김태경 씨는 2004년에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서면시장에 오기 전까지 병원 등에서 시설관리 업무를 했다. 젊은 시절에는 건설 현장에서 인테리어 전기기사로 오랫동안 일해온 베테랑이다. 전기검침을 하려면 상가마다 계량기의 위치를 파악하고 전기사용량을 꼼꼼하게 확인해서 수기로 작성해야 하지만, 문제는 계량기가 상가와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거나 공용계량기에 전기선이 연결된 상가도 있고, 하나의 상가에서 여러 대의 계량기가 연결된 문제도 발견되었다. 아예 계량기가 없는 상가도 있었다. 계량기가 있어도 안 돌아가는 곳도 있었다.

“더 큰 문제가 뭐냐면, 월요일인 오늘 전기요금 고지서를 나눠주면 며칠이라고 기간을 줘야 하는데 내일까지 돈을 못 내면 연체료를 부쳐요. 번영회가 상인들을 위해야 하는데, 연체료를 받는 건 문제잖아요. 연체료가 쌓이면 돈이 상당하거든요. 연체료 때문에도 싸우는 거죠.”

김태경 씨가 입사했을 때부터 상인들은 번영회에 대한 불신을 감추지 않았다. 전기세를 부과하는 날만 되면 상인들이 사무실로 올라와 화를 냈다. 번영회 직원들은 상인들의 욕받이가 되기 일쑤였다. 회장단은 직원을 탓했고, 상인들도 눈앞에 보이는 직원만 들볶았다. 번영회의 문제점은 전기뿐 아니었다. 꽤 큰 돈을 들여서 화재감지기 공사를 한 직후에는 기기 오작동으로 소방서가 출동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부실공사에 비용을 쓰고 보수공사에 또 비용을 쓰게 만들었다. 태경 씨 눈에는 상인들이 다달이 내는 관리비가 엉뚱하게 쓰이고 있었다.

경리직원 허진희 씨 이야기

경리직원 허진희 씨는 2015년 6월 번영회에 입사했다.

번영회 사무실은 상가건물 4층 외딴곳에 떨어져 있었다. 건물로 들어서서 계단을 오를 때면 벽면에 페인트는 다 벗겨져 있고, 천장에는 ‘고양이도 떨어질 거 같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1층 상가에는 주로 식당이 널려 있었는데, 에어컨도 없고 난방시설도 안 되어 있었다. 한여름에는 음식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4층에서 1층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쓰레기봉투를 배달해 주고 재산세와 관리비, 전기세를 수금하러 다니는 동안 옷에는 늘 소금꽃이 피어있었고, 몸에서 쉰내가 펄펄 풍겼다. 부산진구에서 현대화사업을 추진할 거라는 말을 믿고 ‘희망 고문’을 당하면서 옷이 흠뻑 젖도록 일하며 두 번의 여름을 보냈다. 이후 시장 현대화 사업이 추진되었다. 1층 상가에는 50대가 넘는 에어컨이 설치되었다.

“시원한 데서 수금하고 돈을 만지니까 천국 같더라고요.”

무더운 여름날에 시장은 시원해졌지만, 세월이 흘러도 점심시간은 여전히 지켜지지 않았다. 밥을 먹다가 불려 나갈 일이 많았다.

“상인이 지금 병원 가야 하는데 너 안 오면 나중에 돈 못 준다고 해요. 그럼 또 연체금을 물어야 하니까 밥숟가락 내려놓고 돈 받으러 가는 거죠.”

관리비, 재산세, 봉툿값 등 거둬야 할 돈의 종류가 많다. 밥을 먹으면서 수금할 계획을 세웠다. 업무가 많을 때는 집으로 장부를 들고 간다. 사무실과 집을 오가면서 일이 계속되었다. 번영회 회장과 부회장 그리고 이사들이 사무실에서 술판을 벌이는 날에는 퇴근도 못 하고 책상에 앉아있어야 했다.

  허진희 조합원 [출처: 이인우 사진가]

“아침은 상쾌하게 출발하고 싶은데 술병과 음식 찌꺼기가 뒹구는 게 보이면 머리가 어질어질하잖아요. 술 냄새가 싫어요. 싹 치우고 가는 게 편했어요.”

회장단이 술을 마시는 동안 진희 씨가 밤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밀린 업무를 처리했지만. 그 시간은 잔업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야간수당은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다.

회장단은 노조를 만들기 전부터 직원들에게 예의가 없었다. 하지만 시장에서 장사하는 할머니들은 인정스러웠다. 만나면 물이라도 한잔 대접해 주려는 마음, 수고 많다는 말 한마디에도 고단한 마음이 살살 녹았다. 번영회 직원은 상인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처리해 주는 사람이라는 걸 상인들이 누구보다 알아주었다.

다 부서진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장사하는 할머니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짠했다. 사무실에서 쓰는 사무용품 하나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뭐 한다고 사무용품을 비싼 걸 사나 싶었어요. 마우스가 끽끽거려서 총무님이 맨날 귀에 거슬린다고 잔소리했어요.”

구닥다리 컴퓨터는 성능이 현저히 떨어졌지만 바꿔 달라고 하지 않았다. 상인들이 내는 관리비로 운영하는 사무실 살림이라 아끼고 아꼈다.

그러나 진희 씨가 회장단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늘 “직원들이 문제”라고 했다. 직원들을 탓하는 말들이 들릴 때마다 진희 씨는 흠 잡히고 싶지 않았다. 회계업무는 더 꼼꼼하게 살폈다. 실수하지 않으려고 집요해졌다. 완벽하게 해내겠다고 일을 죄다 집으로 가져가서 머리를 싸매야 했다. 그 사이 총무를 맡았던 남자 직원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직원들이 바뀌는 걸 보면서 처음에는 난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총무가 전기를 검침하고 관리세를 부과해야 경리가 수납업무를 할 수 있었다. 총무를 탓하던 목소리는 경리를 질타하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전 총무가 자료를 없애버리고 떠난 후에 김태경 씨가 입사했지만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아서 상인들에게 전기세와 관리세는 두 달 치가 한꺼번에 부과되었고, 상인들은 한 번에 많은 돈을 내라는 번영회에 항의했다. 그럴 때마다 상인들은 당장 사무실로 찾아왔고, 눈앞에 맞닥뜨린 경리직원을 야단쳤다. 회장단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직원 탓만 해댔다.

“나를 마녀사냥 하는데 억울했어요.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난 맨날 늦게까지 장부 정리하고 주말에도 잔업을 하고 법 같은 거 모르지만 시키면 심부름하러 다니고 열심히 했는데 저 사람들은 맨날 내 탓을 허거나 아니면 총무 탓을 하는 게 답답했어요.”

진희 씨는 2015년부터 서면시장 번영회에서 경리업무를 도맡아 했지만, 시설의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태경 씨가 짚어준 전기검침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 6개월이 걸렸다. 6개월이 지나서야 서면시장 시설관리가 엉망진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진희 씨는 태경 씨의 지적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전 총무가 해야 할 일 중에는 이사회 회의록 작성이 있는데, 회의록이 없었어요. 저는 분명 전기검침하고 수기로 작성한 자료를 옆에서 봤어요. 그 앞에 총무가 있었잖아요. 잘못했든 잘했든 그 자료가 다 있어요. 그 친구가 그걸 없애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전 총무가 다 없애 버렸다는 거예요. 회의록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러다 김태경 씨가 의혹을 제기하고, 시설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시장에서 공론화시키기 시작하자, 허진희 씨도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 총무가 왜 자료를 다 없앴을까? 허진희 씨는 회장단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직원이 문제’라는 말을 곰곰이 되짚어 보았다. 진희 씨는 직원이 문제가 아니라, 회장단이 문제였다고 반박하고 싶었다. 직원을 위해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의지가 싹텄다.


<각주>
(1)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출처


# 기록노동자 시야
- 싸우는 노동자를 기록하는 사람들, 싸람
노동자가 담대해지는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취재하고 노동자를 편들고 싶어서 기록한다. 제30회 전태일문학상을 수상했다. 함께 쓴 책으로 <들꽃, 공단에 피다>, <회사가 사라졌다>, <숨을 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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