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라는 직업이 가장 원망스러울 때는 취재원이 인터뷰를 거부할 때다. 기자란 자기 생각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논리를 통해 사태의 진실을 드러내는 사람이므로, 인터뷰 상대자가 사라지면 기자는 진실을 드러낼 방법이 없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개 심사방식의 ‘비문학성’
지난 7월20일치 <한겨레>에 특별기고한 글을 통해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동인문학상 후보작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뜻을 밝힌 작가 황석영(58)씨는 이 문제와 관련해 모든 언론과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한번 의사를 밝혔으면 됐지,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시시콜콜 고쟁이에 이 잡듯 자기가 주석을 다는 건 보기가 좋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어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의 생각을 최대한 충실히 드러내려면 인터뷰를 생략할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취재진은 지난 7월22일 토요일 충남 예산에 자리한 그의 집을 물어물어 무작정 찾아갔다. ‘연산재’(然山齋)란 당호가 붙은 그의 집에서 세 시간을 기다린 끝에, 저녁 여덟시께 폭우를 뚫고 귀가한 황석영씨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차고에서 나오면서 대뜸 “인터뷰는 안 해!”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불청객을 박대하지는 않았다. 이런 까닭에 이 글은 공식 인터뷰가 아니라 기자의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한 취재록으로 읽혔으면 한다.
운무에 머리를 담근 가야산이 멀리 내다보이는 언덕에 자리한 연산재는 풍수학으로 볼 때 터가 센 곳에 해당한다고 한다. “난 이렇게 터가 센 데 사는 게 맞대.” 아마도 그럴 것이다. 유신정권 때부터 90년대 말까지 20여년 동안 수배와 투옥과 망명의 험난한 길을 걸어온 그가 처음 정착한 터전이라면 좀 드센 곳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지난 97년 석방 이후 20여년 만에 비교적 안정된 집필의 여유를 허락받은 그이지만, 세상은 여전히 그를 그냥 놓아두지 않는다.
“평소 <조선일보> 잘 안 보는데, 그날따라 목욕탕에 갔어. 빨가벗고 이발 의자에 앉아 머리를 깎는데 이발사가 신문을 갖다 주더라고. 그런데 하필 그 동인문학상 종신 심사위원들의 ‘독회’ 내용이 눈에 쏙 들어오는 거야. 누구는 탈락, 누구는 잔류. 이걸 보니까 그냥 꼭지가 확 돌아버리잖아. 무슨 경품 뽑기도 아니고 말야. <조선일보>가 또 요따위로 가난하고 배고픈 문인들 줄 쫙 세우려고 드는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고.”
‘잔류’니 ‘탈락’이니 하면서 많은 작가들을 ‘욕보이던’ 동인문학상의 공개 심사방식은 이미 문인들 사이에서 ‘비문학적’인 심사방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거야. 특별기고에서도 썼지만, ‘왜 또 내가 해야 하나’하는 푸념이 절로 나오지. 그렇지만 누군가는 뭐가 문젠지 얘길 해야 된다고 생각했지.”
그는 동인문학상 심사방식의 변경을 포함해 <조선일보>가 최근 문화면에 진보적 작가나 지식인들을 대거 등장시키기 위해 애쓰는 까닭을 <조선일보>의 위기감에서 찾는다.
“<조선일보>의 안보 상업주의 따위가 이젠 안 먹혀들어가거든. 장사도 예전처럼 잘 안 되고. 그러니까 문화면만이라도 좀 참신한 얼굴들로 치장해서 옛날의 영광과 권력을 회복하자는 거지. 거기에 아무 생각없는 작가 지식인들이 들러리를 서고 나서는 거지. 좀 먹고살만하면, 더 욕심내지 말고 그냥 살면 되잖아. 조금 쪼들리더라도 말야. 글쓰는 사람이 그렇게 흔들리면 안 되거든.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을 할 수 있어야지 말야.”
‘말년 친일파’ 김동인에 대하여
특별기고에서 그는 “문학상이 세계관의 한 표현일진대 나는 <조선일보>쪽의 ‘동인문학상’뿐만 아니라 현대문학에서의 동인의 위치에 대하여도 이견이 있는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작고한 문인의 이름을 따서 만든 문학상의 경우 그 문인의 문학적 성취나 세계관을 인정할 때 비로소 수상을 받아들일 수 있게 마련일 것이다. 그는 만년에 친일파로 전락한 작가 김동인을 그다지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동인문학상은 본디 장준하의 <사상계>에서 만든 상이거든. 장준하 함석헌 등 60년대 민주 인사들이 모두 서북 계통이야. 그래서 같은 서북인인 김동인의 이름을 빌려 문학상을 만든 거지. 이게 <사상계>가 폐간되면서 잠시 동서문학사로 갔다가 조선일보사로 넘어갔어. 그런데 난 김동인을 뭐 대단한 작가라고 인정하지 않거든. 재미있는 거는, 평양에서 김일성 주석을 만났을 때, 김 주석이 김동인의 ‘발가락이 닮았다’란 단편을 기억하고 있더군. 항일 빨치산들은 국내에 잠입하거나 진격했을 때 인쇄물이라고 생긴 건 무조건 다 걷어왔다더군. 읽을거리가 전혀 없었으니까 무조건 반가운 거지. 김 주석이 그때 ‘발가락이 닮았다’란 작품을 읽었다는 거야. 작가가 김동인이란 건 기억하지 못하고, 작품 제목만 기억하더군. 어떤 젊은이들은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얼어죽고 굶어죽고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만주벌판을 헤매고 있는데, 국내에 있는 문학청년이란 것들은 고작 쓴다는 게 누가 누구랑 자고 또 누구랑도 잤는데, 아이를 낳고보니 발가락이 닮았다? 한심하지 않았겠어?”
워낙 문단에서 오래 떠나 있던 그인지라 오랜만에 발표한 장편 <오래된 정원>은 동인문학상 이외에 다른 문학상에서도 자주 거론이 되고 있다.
“문학상은 기본적으로 젊은 작가들, 신인들을 줘야 해. 난 70년대 말부터 그런 주장을 했어. 상에 대한 내 ‘절개’가 깨진 건,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창비에서 주는 만해문학상을 가족들이 수상하면서지. 내가 가족을 전혀 보살필 수 없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그거 받는 걸 반대할 순 없었지. <조선일보>가 주는 ‘동인문학상’ 따위야 내가 받을 수 없지만, 뜻을 같이했던 이들이 주려는 걸 거절하긴 참 어려워.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문학상은 신인 중심으로 주면 좋겠어. 그게 내 지론이야.”
그는 <조선일보>에 대해 누구보다 비판적이지만, 이른바 ‘안티조선’쪽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나는 이번에 <조선일보>에는 글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인터뷰까지 하지 않기로 확실하게 마음을 굳혔지만, 이른바 ‘안티조선’이 하는 방식의 운동에 완전히 동의하는 건 아냐. 언론 개혁을 하려면 본격적으로 해야지, 그런 식의 운동은 내부 분열로 보일 수도 있거든. 정말 문제가 있는 수구 언론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야지. 그리고 언론 개혁을 하려면 언론 자본가에게는 경영권만 주고 편집국의 편집권과 인사권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못하도록 뭔가 구조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고 봐.”
보수를 꼬집는 ‘삼식이론’
좌중을 쥐락펴락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입심은 그날도 새벽 다섯시 먼동이 푸르게 깨어날 때까지 이어졌다. 이날 이야기의 압권은 아마도 ‘두 삼식이가 죽을 때 남긴 말’일 것이다. 세상이 다 알 만한, 줄기차게 수구적인 논리를 펴온 어떤 문인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그의 유장한 이야기는 79년으로 거슬러올라갔다.
“대구에서 문인들 모임이 한번 있었지. 스무나뭇이 모였는데, 말석에 어떤 ‘지방 문인’이 하나 끼여들어 앉더라구. 그의 맞은편에는 김지하씨가 앉았고. 그 ‘지방 문인’이 김지하씨한테 이러는 거야. ‘김부식은 명문장이고, 이완용은 명필이다!’ 듣다못해 내가 냅다 소릴 질렀지. 아니 그럼 동학농민혁명 때 삼식이가 일본군 총에 맞아 죽으면서 ‘이완용은 명필이다!’하고 죽냐? ‘이완용은 매국노다!’하고 죽지! 이완용이 명필이란 얘긴 뭐냐? 문학의 사회성을 떠나서 순수 문학만으로 가치가 있다는 얘기거든. 뻔한 얘기지. 김부식이고 이완용이고 다 반동 아냐? 사회적으로 볼 때 그런 반동도 글씨 잘 쓰고 글 잘 지으면 다 훌륭한 예술가 아니냐는 거지.”
그때 그 말석에 앉았던 ‘지방 문인’은 지금은 제법 유명세를 타면서 수구적 논리를 줄기차게 펴고 있는 ‘어떤 문인’이다.
“지금도 똑같아. 뭐 다를 게 있어? <조선일보>의 수구반동 논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니까 극우 파쇼적인 논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아니 그럼 광주학살 때 삼식이가 총맞아 죽으면서 ‘<조선일보>의 극우 파쇼적인 논리도 존중해야 한다!’라고 외치면서 죽어야 하냐? ‘<조선일보>는 우리를 폭도로 몰았다!’고 외치면서 죽지!”
이상이 ‘두 삼식이가 죽을 때 남긴 말’의 전말이다. 한국 최고의 리얼리스트답게 그는 복잡한 논리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하는 탁월한 직관을 지녔다.
그는 기고 발표 뒤 여기저기 인터뷰를 하는 품위없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먼길을 찾아온 불청객을 박대하는 매정함을 보이지도 않았다.
<한겨레 이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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