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 권영길 대표 선출

"선거 공영제 민주노동당 싹 자르려는 시도"

민주노동당은 9월 8일 경희대학교 노천극장에서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선출대회를 갖고 지난 8월 21일부터 9월7일까지 인터넷과 지부/지구당 투표소등을 통해 당원 총투표를 진행한 결과에 따라 민주노동당 대통령후보에 단독 출마한 권영길 대표를 16대 대통령선거 민주노동당 후보로 결정하였다.

이날 투표 결과는 총당원 22321명/ 당권자 12877명 중8032명(투표율 62.8%)이 투표를 진행해 7297명의 찬성과 719명의 반대로 권영길 후보가 당선자로 확정되었다. 권영길 후보가 선출되자 이날 선출 대회에 모인 1000여명의 당원들은 '권영길'을 연호하며 권후보의 당선을 축하했으며 "대선투쟁 승리하자"등의 구호를 외치며 대선 승리를 결의했다.

권영길 후보는 후보자 수락 연설을 중앙선거 관리위원회의 선거 공영제에 관한 내용에 대해 특별연설로 바꾸고 "민주노동당의 축제와 같은 이날에 중선관위는 선거 공영제를 실시한다며 원내 교섭단체의 후보만 선거에 참여하게 했다"며 "50년 간 이 나라를 지배해 오던 보수 정치권들이 민주노동당의 싹을 자르려는 시도"라며 강한 규탄 연설로 말문을 열었다.

권 후보는 이번 중선관위의 결정에 대해 "보수 정치권의 야합을 민주노동당은 결코 수용하지 않을 것이며 폭거에 맞서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 할 것"이라 밝혔다. 권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써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이 목숨을 바쳐 외치는 저항의 목소리를 담아낼 것"이라며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 투쟁을 온몸으로 받아 안고 투쟁해 썩을대로 썩은 보수 정치를 갈아엎겠다"고 밝혔다.

권후보는 이날 연설을 통해 △재벌 해체 △국가보안법 철폐 △평등, 복지, 평화, 통일 세상 건설 △700만 비정규직 철폐 △무상 교육, 무상의료 실현 △여중생 죽음에 대한 부시의 사과 촉구 △모병제 추진 △남북간 민족 통일 기구 설치 등을 정책으로 제시했다.

이날 대회에서 민주노총 유덕상 직무대행은 축사를 통해 "지난 6.13 지방선거 이후 민주노동당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고 민주노동당의 위삳이 높아 졌다"며 "이 땅 민중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했던 보수 정치를 민중들의 힘으로 심판하고 노동자 정치 세력의 토대를 만들어 내자"고 말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선출대회전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2002년 임시 당대회를 개최하고 △민주노동당 대통령 선거 기본 방침 △2002 대선 최소 예산 △선거대책위 구성 등을 확정하려 했으나 의결 정족수 미달로 의결하지 못하고 당대회를 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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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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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7년 가을 권영길 후보 부부가 함께 산책하는 모습. 부인 강지연씨는 삼성생명의 전신인 동방생명 창업주 강의수씨의 무남독녀였지만, 권 후보와 결혼하면서 ‘재벌가의 외동딸’에서 ‘박봉 기자의
    아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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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격적 권력 만들겠다" 진보정치 큰 실험
    "조직 통합능력 탁월"…진보진영의 구심
    파리특파원서 마흔일곱에 노동운동 투신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를 설명하기 위해 ‘신중하다’는 말보다 더 적절한 것은 없다. 심지어 권 후보의 단점을 꼽으라는 질문에 “지나치게 신중하다”고 답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권 후보의 삶을 되짚어보면, 지나칠 정도의 신중함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신중함이 그를 진보진영의 대통령 후보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정부기관지 출신의 언론운동가, 농민운동을 꿈꾸었던 노동운동가, 말많은 조직을 이끄는 말없는 지도자…. 일면 모순되는 두 가치들을 자신의 삶에서 융합시킨 힘도 거기에 있었다.


    ◇ 빨치산 아버지의 그늘=권 후보가 경남 산청 사람이라는 말은 절반은 맞지만 절반은 틀리다. 그는 1941년 11월 일본 도쿄의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권우현(작고·1915년생)은 결혼 직후인 1938년 일본에 밀항해 그 곳에서 권영길을 낳았다.


    권우현은 1945년 광복과 함께 다시 안동 권씨의 집성촌인 경남 산청군 단성면으로 돌아와 구장 일을 맡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자 지리산에 들어갔다. 전쟁이 끝나고 대대적인 빨치산 소탕작전이 펼쳐지던 1954년 12월, 권우현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친척집에 들렀다가 군경에 발각돼 총살당했다.


    어머니 하영애(81)씨는 지금도 남편의 이야기를 극도로 꺼린다. 지리산 자락에서 황토밭을 일구며 숨죽여 1남2녀를 키운 기억은 맏아들 권영길의 가슴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 대학과 기자생활=경남고 재학시절 독서회 활동을 하며 넝마주이들을 모아 야학을 했던 그는 농민운동가가 되겠다며 61년 서울대 농대 잠사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시절 그는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비밀서클을 조직하고 야학과 농촌 봉사 활동을 계속했지만,
    학생운동은 그에게 큰 결실을 안겨주지 못했다.


    권 후보는 71년 <서울신문>에서 기자의 길을 시작했다. 사주가 있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보다는 정부가 만드는 이 매체가 ‘공공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게 당시 그의 판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부인 강지연(60)씨는 “남편이 밤늦게 만취해 들어와 엉엉 우는 일이 많았다”고 말한다. 유신정부의 나팔수 노릇을 하는 처지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1979년 프랑스로 떠난 것은 그 일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노력이었다. 신문사를 그만두려 했지만 좌익전력의 아버지 때문에 출국이 어렵게 되자, 파리 통신원이라는 직함을 회사로부터 얻어내 유학을 떠났다. 그가 정식으로 파리 특파원이 된 것은 1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 노동운동가로의 변신=전세계를 뒤흔든 ‘68 혁명’의 진원지인 파리에서 그는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을 보고 배웠다. 권 후보가 지향하는 대부분의 진보적 가치관도 이때 확립됐다.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1988년 1월 귀국할 때만 해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4·19혁명, 80년 광주항쟁, 87년 6월항쟁 등 현대사의 현장에서 권 후보는 언제나 비껴 서 있었다. 그러나 마흔 일곱의 나이에 그는 언론인의 길을 접고 노동운동에 뛰어든다. 귀국한 지 석달만인 88년 4월, 권 후보는 서울신문사 노동조합 건설에 참가했다. 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위원장의 사임으로 위원장 직무대행에 올랐고, 같은해 11월 역사적인 언론노련 창립대회에서 초대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 진보진영의 구심으로=그가 언론개혁 운동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애초 쉰을 바라보는 그의 나이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그는 속에 감춰두었던 뜻과 능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은 권 후보를 “조직을 만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합집산과 정파투쟁에 익숙한 ‘운동권’의 병폐를 극복하고, 진보진영의 역량을 하나로 통합하는 데 놀라운 수완을 보였다.


    “모든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게 나의 일”이라고 말하는 권 후보의 평상시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권 후보의 결단에 권위와 추진력을 심어줬다.


    언론노련 초대~3대 위원장(88~94년), 전국노조대표자회의 초대 공동대표(93~95년),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95~97년), 국민승리21 대표(97~98년), 민주노동당 초대~2대 대표(2000년~현재) 등을 거치며 그가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운동의 명실상부한 구심으로 서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97년 그는 민주노총, 전국연합 등 재야단체의 연합체인 국민승리21 후보로 대선에 출마해 30만6026표(1.2%)를 얻었다. 2000년 4·13 총선에서는 경남 창원을 지역구에 출마했으나 원내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각종 진보적 정책을 바탕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정당지지율 8%로 자민련을 제치고 제3당의 반열에 뛰어올랐다.


    “인격적 권력의 창출이 정치다. 상실된 인간성을 되찾는 것, 이것이 내가 정치를 하는 이유다”라고 그는 말한다. 너무도 신중해서 말수가 적은 노동운동가 권영길은 이제 진보정치의 새로운 실험을 향한 의미있는 도전장을 내밀었다. 안수찬 기자 href=mailto:ahn@hani.co.kr>ahn@hani.co.kr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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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은 어제 당 대회를 열어 권영길 대표를 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 권영길 후보는 민주노동당 대선후보 경선에 단독 출마해 지구당별 찬반투표를 거쳐 이날 후보로 확정됐다. 그는 5년 전 진보진영인 ‘국민승리 21’ 후보로 1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1.2%(30만 표)의 낮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꾸준한 활동을 펼쳐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8·13%의 정당 지지율을 얻어 자민련을 젖히고 일약 제3당으로 뛰어오르는 전기를 마련했다. 권영길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얼마나 득표할 지 모르지만, 대선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중요한 변수가 되리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분석이다. 대선 결과는 다음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1차 목표인 원내진출 여부를 가름하게 될 것이다.


    권 후보는 평등사회, 서민복지, 평화구축, 통일준비, 신과학시대 등 5가지를 대선 공약의 기조로 내걸었다. 기존 정당들과 확실히 대비 되는 진보적 정책 제시를 통해 지지층을 넓히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남북과 미국이 참여하는 ‘3자 평화협정’체결이나 주한미군 철수, 단계적 감군, 군 복무기간 18개월로 단축, 예비군제 폐지 공약 등이 대표적이다. 주택·의료·교육에 대한 국가의 무상공급체계 단계적 실시나 주 5일 근무제 전면 실시 등도 같은 맥락이다. 공약을 실현할 방안들로 10억원 이상 자산보유자에 대한 부유세 부과, 고소득·고자산 계층으로부터 신규 세원 발굴 등을 내세우고 있다.


    권영길 후보를 앞세운 민주노동당이 올해 대선에서 얼마나 선전하느냐는 부패한 정치, 그들만의 정치에 실망한 국민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다가가 유력한 대안 정치세력으로 인정 받느냐에 달려 있다. 민주노동당이 상당한 지지를 얻어 진보정당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굳힐 수 있다면 보수 일색인 우리 정치권에 충격을 주고, 진보와 보수가 국민지지를 놓고 경쟁하는 진일보한 정치를 구현하는 데 큰 몫을 하게 될 것이다.



    4~8% 지지율…또다른 중요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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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선에 어떤 영향


    올해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가 당선되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권후보쪽은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했던 1997년과 달리, 2년여 동안 전국적 정당 조직을 바탕으로 꾸준히 표밭을 일궈온 점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권 후보는 평균 4~8%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11일 한겨레 조사를 보면, 권 후보는 이회창-정몽준-권영길 가상대결 때 8.0%, 이회창-노무현-권영길 가상대결 때 7.5%의 지지율을 각각 얻었다.


    이런 정도의 득표율이라면 올해 대선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변수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어떤 식으로 대선 구도가 짜여지건 1, 2위 간의 득표율 차이가 최대 10%포인트를 넘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민노당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받았던 전국 득표율 8%를 이번 대선에서 넘어서겠다고 벼르고 있다. 대선 득표율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진보정당의 원내진출 여부를 가름할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권 후보의 득표율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이 강한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불리할 것으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민주당과 민노당의 ‘연립정부’‘후보단일화’ 등등의 이야기가 정치권에서 끊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건 후보 사퇴는 절대로 없다는 게 권 후보쪽 얘기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연립정부 제안을 받을 정도로 우리 당세가 성장했으면 좋겠다”며 “그런 날을 위해서라도 이번 대선에서는 독자적인 득표력을 반드시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선후보 선출 style="margin-top:30;" >


    부유세 신성등 공약 제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표가 8일 민노당의 16대 대선 후보로 공식선출됐다. 권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모두 2만3천여명이 참가한 지구당별 당원 찬반 투표 결과, 찬성 90.8%, 반대 9%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후보로 확정됐다.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된 당내 경선에 단독출마한 권 대표는 후보수락 연설에서 “부패하고 타락한 보수정치를, 땀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꿈과 희망의 정치로 바꿀 도전자가 되겠다는 것을 선언한다”며 “‘3김정치’가 만들어낸 금권·패거리·지역주의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말했다.


    권 후보는 이날 10억원 이상 자산보유자들에 대한 ‘부유세’ 신설 등 대선 공약의 뼈대도 발표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 권 대표는 남·북·미 평화협정 체결, 주한미군 철수, 과감한 군축과 군복무기간 단축 등을 주장했다.


    또 정치개혁을 위해 △전국단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 △기탁금제도 폐지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선거공영제 전면 도입 △노동·복지·여성·환경 부총리제 도입 등도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밖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법제화 △주5일 근무제 전면도입 △공무원노조 합법화 △재벌기업 소유지배구조 개혁 △유아교육 공교육화 △중등교육 무상실시 △대학평준화 등의 정책 공약도 함께 제시했다.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주택·의료·교육 무상공급 단계 실시 style="margin-top:30;" >

    ■ 대선 정책 공약


    권영길 후보의 대선 정책은 기성 정당의 공약과 뚜렷이 대비된다. 80년대 이후 진보진영에서 논의돼온 각종 정책기조를 체계적으로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권 후보는 평등사회, 서민복지, 평화구축, 통일준비, 신과학시대 등 5가지를 대선 공약의 기조로 내걸었다. 핵심은 빈부격차 및 남녀·지역·학벌·세대 등 모든 영역의 차별을 철폐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진 분야의 진보적인 공약들도 적지 않다. 유럽식 대학평준화, 주택·의료·교육에 대한 국가의 무상공급체계 단계적 실시, 군복무 기간 단축(18개월) 및 예비군제 폐지 등은 서민들을 겨냥한 정책들이다.


    남북관계에 대한 상세한 정책을 내놓은 것도 눈길을 끈다. 남북은 물론 미국이 함께 참여하는 ‘3자 평화협정’ 체결에 이은 단계적 감군을 통해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고, 정부와 민간 합동의 ‘남북간 민족통일추진 기구’를 구성해 통일방안을 논의한다는
    것이 뼈대다.


    특히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한국의 정치경제 체제 문제 개발기구’를 설치한다는 공약도 내걸었다. 남한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를 넘어서는 통일 이후의 체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하자는 것이다.


    97년 대선에서 실현성보다 당위성을 중요시하는 구호들을 전면에 내걸었던 권 후보는, 이번엔 나름대로 공약을 뒷받침할 실천 방안들도 제시했다. 사회복지 확대를 위해 고소득·고자산 계층으로부터 신규 세원을 창출하고, 10억원 이상의 자산 보유자들에게 ‘부유세’를 신설 부과하겠다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대기업 초과이윤의 일부를 노동자기금으로 적립하겠다는 ‘연대임금제’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밖에 선거공영제 전면도입, 대통령 4년 중임제 및 대통령선거 결선투표제 도입, 부정축재 재산몰수, 주5일 근무제 전면실시, 호주제 폐지 등 각 분야에서 진보적인 공약들을 내놓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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