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봉기 1주년: 어디서 어디로?

특별기획// 격동의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봉기 1주년: 어디서 어디로?

들어가며 -- "모두 다 물러나라!"

2001년 12월19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발생한 민중봉기는 델라루아 정권을 타도하였다. 12월3일 정부가 예금인출동결(corralio) 조치를 발표하자 노자들의 파업과 실업자-도시빈민의 식량폭동, 격렬한 가두시위가 시가전의 수준으로 폭발하였다. 전투경찰과의 시가전에서 28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델라루아 정권에 비상사태를 선포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말았다. 40%가 넘는 살인적 실업과 전체 인구 절반의 고통에 몰아넣은 빈곤, 더 이상 잃을 것이없는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은 물러서지 않았다. 1999년 10월의 선거에서 페론주의 메넴정권의 신자유주의 노선과 극도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낀 아르헨티나 민중은 델라루아를 후보로 내세운 중도좌파 선거연합인 동맹(Alianza)에 투표하였다. 그러나 정권교체에 성공한 급진시민연합(UCR) 델라루아 은 IMF의 요구에 굴복한 채, 선거공약과는 달리 전임 메넴정권의 노선을 되풀이했다. 또한 선거연합의 파트너였던 조국연대전선(FREPASO)의 부통령 카를로스 알바레스가 상원부패사건에 대한 정부의 소홀한 대응에 항의하여 사임하자, 델라루아의 급진당 정권은 정치적으로 고립되었다. 그 결과 올해 10월의 상하원 선거에서 페론주의당에 패배했다.특히, 메넴정권 하에서 경제장관으로 악명높았던 카바요를 다시 경제장관으로 불러들인 것은 페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시민급진연합(UDP)에 표를 준 아르헨티나 민중에 대한 정치적 기만이자, 정치적 실수였다. 카바요의 고정환율제와 신자유주의적 처방은 이미 메넴정권 하에서 외채-경제위기와 그에 이은 정치적 위기의 씨앗을 뿌려놓았다. GDP의 절반을 넘는 막대한 외채의 누적, 무차별적으로 진행된 민영화는 달러-페소 고정환율제와 더불어, 아르헨티나의 경제주권을 사실상 IMF와 국제금융자본에게 넘긴지 이미 오래였다.따라서 2001년 300억 달러가 넘는 자본이탈이 발생하면서, IMF의 우등생으로 칭송받던 아르헨티나의 신자유주의는 사상 최악의 경제위기로 귀결되었다. 자본유출을 막지 못했던 델라루아 정부는 비상조치로 예금인출을 동결함으로써, 사회적-계급적 양극화 속에서 빈곤층으로 내몰리던 중간계급을, 냄비를 두드리는 거리의 투사로 변모시켰다. 실업자와 노동자, 도시빈민과 함께, 모든 것을 잃은 중산층이 반체제투쟁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한 것이다.

경제위기에서 정치위기로 -- 신자유주의의 파산

1940년대 군부쿠데타를 통해 등장한 패론주의는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근로계급을 시혜적 사회복지와 높은 임금, 더 나은 노동조건으로 포섭함과 동시에, 강력한 통제하는 포퓰리즘/코포라티즘 체제를 구축하였다. 국가의 강력한 개입과 사회복지를 중심으로 한 남미판 케인즈주의가, 수입대체산업화 전략과 결합하여 일정한 대중적 기반을 장악한 기묘한 정치체제가 바로 아르헨티나의 페론주의 체제였다.그러나 페론주의는 반적 군부의 쿠데타로 수차례 탄압을 받았지만, 1990년대 메넴 정권을 통해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1976년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좌파와 민주화세력에 대한 악명높은 "더러운전쟁"을 벌여, 3만여명의 "실종"으로 드러난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하였다. 그러나 대중의 저항을 민족주의적 호소를 통해 1982년 말비나스/포클랜드 전쟁으로 돌파하려는 시도는 군부의 퇴각으로 귀결되고 말았다.그러나 군부의 퇴각 이후 등장한 알폰신 급진당정부는 한편으로 군부에 면죄부를 주어 민주주의를 결정적으로 왜곡함과 동시에, 군부독재가 도입한 신자유주의 노선을 계승하였다. 1986년 살인적 인플레와 대중적 불만폭발로 알폰신정권은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사퇴해야 했으며, 메넴정권 10년집권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메넴은 일시적으로 인플레를 억제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여전히 민영화와 시장개방, 규제완화로 구체화된 신자유주의 노선을 답습함으로써 2001년 경제위기의 씨앗을 뿌렸던 것이다.

사실, 페론주의는 외견상 민중에게 정치적으로 호소하고, 사회복지 등 민중지향적 노선을 취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계급적 좌파의 정치적 성장을 제어하기 위한 우익적, 심지어 파쇼적 정치운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서유럽에서 사회당, 사민당, 노동당 등 제도좌파가 수행한 역할과 유사한 정치적 역할을 남미에서는 포퓰리즘/민중주의가 수행해 왔다. 따라서 페론주의는 아르헨티나 노동자계급에게 암과 같은 존재이다.그러나 한국의 부르주아 언론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아르헨티나의 위기는 민중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번 파국은 1976년 군부쿠데타 이후 군부정권만이 아니라, 이후의 민간 정권에 의해 집요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 정책의 최종적 결과이다. 특히, 메넴 정권은 사실 신자유주의적 페론주의 정권이었다. 대중의 불만과 저항을 무마하는 데에는 민중주의적 술책을 썼지만, 기본적 경제기조는 IMF의 모범생으로 신자유주의 모범답안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수행한 것이다. 가장 완벽한 민영화, 달러-페소 고정환율제, 시장 및 금융개방, 규제완화와 노동유연화 등, 아르헨티나는 국제 금융자본에게 낙원이었다.그리고 1999년 급진당-동맹 정권의 출범은 메넴주의에 대한 아르헨티나 민중의 정치적 심판이었다. 현대통령 두알데가 바로 델라루아에게 패배했던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민중에게 희망을 주면서 당선된 델라
루아는 대통령이 된 이후, IMF의 감시 하에서 그가 비판했던 전임자와 똑같은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민중의 힘에 밀려 타도되는 운명을 맞이했던 것이다.

노동조합의 분열과 투쟁

전통적으로 아르헨티나의 노총인 노동총동맹(CGT)은 페론주의의 영향 하에 있었다. 따라서 1999년 델라루아 급진당 정권이 출범한 이후, 정권측이 신자유주의적 기조 하에서 노동유연화 공세를 전개하자, 페론주의 세력과 연계하여 이에 맞선 투쟁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국가의 강력한 지원과 통제 하에서 성장한 노동조합운동이기에, 페론주의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에 적절히 맞서지 못했지만, 급진당정부가 신자유주의 노선을 견지함에 따라 투쟁의 대열에 동참한 것이다.그러나 1990년대 신자유주의 공세는 노동조합을 분열시켰다. 그 결과 노동조합은 식품노조 다에르(Daer) 위원장이 주도하는 페론주의 우파 CGT, 트럭노조 모야노(Moyano) 위원장이 주도하는 또다른 CGT-Rebelde, 그리고 공공부문과 교원노조 중심으로 드 헨나로(De Gennaro) 위원장이 이끄는 "좌파" CTA 등 3대세력으로 분열되어 있다. 두 CGT는 여전히 페론주의의 영향 하에 있으며, 급진당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의 논리로 다분히 형식적인 총파업을 조직한 바 있다.반면 CTA의 경우, 반페론주의적 입장에서 중도좌파 연대세력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투쟁하고 있다. 물론, 내부에서 다양한 좌파세력이 활동하며, 다른 노총과는 달리 실업자운동과의 연대를 강조하며, 독자적인 실업자운동 조직도 가지고 있다. 특히, 위원장인 헨나로는 브라질의 PT와 같은 노동자대중정당의 건설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ARI와 같은 중도세력과의 연대에 중점을 두는 한계를 갖고 있다.아르헨티나 노동운동은 외견상의 투쟁적 모습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구조
적 위기에 처해 있다. 이는 신자유주의 공세 하에서 대규모 산업구조조정으로 산업노동자의 숫자가 급격히 감소하였고, 또 실업률의 급격한 증가로 공식부문 노동자들의 상대적 지위로 인해, 계급적 단결을 위한 노력은 취약하다. 특히, 조직노동자 전체적으로 볼 때, 관료화된 페론주의 노동조합이 다수파의 위치를 점하고 있어, 자주적-민주적 노동조합운동, 계급적 지향의 노동운동의 재구축은 핵심적 과제이다. 특히 고용노동자와 실업노동자의 연대와 단결은 당면한 정치상황에서 긴급한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봉기 이후 -- 새로운 민중투쟁의 확산

12월봉기 이전에도 강력한 민중투쟁은 존재했다. 1990년대 브라질의 MST(무토지농업노동자운동)와 더불어, 아르헨티나의 실업자운동은 노동조합운동의 상대적 취약성을 뛰어넘는 새로운 계급투쟁의 형태로 주목받았다. 일부 좌파의 경우, 관료화된 노동운동을 뛰어넘는 새로운 주체, 민중운동의 전위로 실업자운동을 규정하고 있다."피케테로" 운동으로 알려진 실업자운동은 공장노동자들이 파업을 통해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중단시키는 것처럼, 도로와 교량, 고속도로의 점거와 봉쇄를 통해 자본주의의 유통과정을 봉쇄하는 투쟁을 조직하고 있다. 현재 실업자운동은 CTA와 연계한 FTV( ), 마오주의 좌파가 주도하는 CCC(계급투쟁경향), 좌파 노동자당(PO)이 주도하는 전국피케테로블록(BPN) 등의 세력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페론주의 노동조합의 영향 아래 있는 실업자운동도 있다. 이와 같이 분열된 실업자운동은 2002년에 들어, 전국실업노동자대회를 조직하여, 실업자운동의 단결, 더 나아가 고용노동자와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모색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실업자운동은 투쟁형태의 전투성과 고도의 정치화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요구에 있어서는 실업급여나, 무료식권 지급 등 주로 경제적 요구에 머물고 있으며, 이러한 요구의 경우, 지방정부를 장악한 페론주의 세력의 정치적
공작에 의해 무력화되는 구조적 문제점을 안고 있다.12월봉기 이후로 또 주목을 받고 있는 운동이 바로 빈곤화된 중산층의 냄비시위(caceroleros)와 지구 민중회의이다. 12월봉기는 실업자와 도시빈민 중심의 민중투쟁에 중산층이 대거 가담함으로써, 도시봉기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 때 중산층 시위대는 냄비와 주전자를 두드리면서 '카세롤레로스'라는 이름을 얻어, '피케테로스'와 함께, 아르헨티나 봉기를 상징하는 이름이 되었다.이들은 또한 주거지역인 바리오(bario)에서 직접민주주의의 일종인 주민의회
또는 민중회의(asambleas populares)를 자발적으로 조직하였다.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중심으로 3백여개의 민중회의가 조직되어, 빈곤문제 해결을 위한 일상투쟁의 기획과 집행 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관한 정치토론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그리고 경제위기 하에서 늘어나는 도산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의 공장점거-자주관리 운동이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기업의 폐쇄에 맞서, 공장을 점거한 후,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과 연대하여 자주관리를 조직하고 있으며, 실업의 위기에 처한 다른 노동자들에게 투쟁의 모범을 제시하고 있다. 네우켄 지역의 사논(Zanon)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부르크만(Brukman) 공장이 대표적인 사례이며, 수평적 연대를 통해 '공장점거 전국운동'이라는 전국적 조직을 건설하였다.이와 같이, 아르헨티나의 12월봉기는 단지 부패한 신자유주의 정권을 타도했을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의 정치위기로 발생한 공간에 진출하여 새로운 투쟁과 조직의 경험을 축적하고 있다. 물론, 12월봉기가 민중권력의 쟁취에 기반한 사회변혁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또 이런 새로운 운동들이 1917년 러시아의 경우처럼 이중권력 상황을 창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정치체제의 실질적 붕괴 속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정치적 의식화와 조직화, 투쟁은 과거의 지평을 뛰어넘는 새로운 계급정치의 전형들을 창출하고 있다.

새로이 재편되는 정치세력 -- 혁명과 개량 사이에서

급진당 정권의 공중분해 속에서 대중적 분노와 증오에도 불구하고, 다시 집권에 성공한 두알데 페론주의정권은 정치경제적 위기를 돌파할 해법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11월에는 세계은행에 대해 모라토리움을 선언했다. 그러나 페론당의 여러 정파는 내년 3월의 대선을 앞두고 내부투쟁에 골몰하고 있다. 심지어, 이번 위기의 주범이자 부패혐의로 기소중인 메넴마저 출마를 선언하였다.급진당은 사실상의 공중분해로 다음 대선에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틈을 노려 과거 동맹의 한 축을 담당했던 조국연대전선(FREPASO)의 다수가 알리시아 카리오(Alicia Carrio)의 ARI(평등공화국 동맹)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다. 이들은, 페론주의가 강력한 조직적 기반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분노의 직접적 대상인 만큼, 새로운 세력으로 주목받고 있다.그밖에 유일한 트로츠키 의원인 루이스 사모라(Luiz Zamora)는 기존 좌파세력과 거리를 두면서 독자행보를 추진하고 있다. 제도정치권에서 강력한 카리스마와 청렴한 이미지로 "좌파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AyL(자결과 자유)이라는 소규모 정당을 가지고 있지만 주로 개인적 영향력에 의존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비제도좌파의 경우, 공산당은 온건한 좌파연합(Izquierda Unida)을 이끌고 있는 공산당(PCA)과 1960년대 분명한 마오주의 혁명적 공산당(PCR)으로 나뉘어 존재하고 있다. 전자가 주로 합법공간 내에서의 선거전술에 집중하는 반면, 후자는 CCC를 통해 노동조합운동(CTA)과 실업자운동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반면 MAS(사회주의운동), MST(사회주의노동자운동), PTS(사회주의노동자당), PO(노동자당) 등의 트로츠키주의 세력은 소수 정파로 존재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좌파의 경우, 과거 1980년대 나누엘 모레노(Nahuel Moreno)의 지도하에 강력한 좌파조직 MAS를 조직한 독특한 경험이 있었지만, 1987년 모레노가 사망한 후 20개 이상의 정파로 분열되어 있다. PO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파는 MAS에서 분열된 세력들로서, 각각의 정치노선에 따라 실업자운동이나 주민회의, 노동조합운동에 개입하고 있다.이와 같은 좌파의 분열은 12월봉기와 그 이후의 과정에서 대중적 계급투쟁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좌파 내부적으로는 분열과 반목, 종파주의와 교조주의를 극복하고, "통일전선"과 "노동자계급정당"의 건설에 대한 일정한 정치적 합의가 존재하지만, 당면한 정세에서의 전략과 전술에 대해서는 상당한 차이를 노정하고 있다. 특히, 내년의 선거에 대해서는 국민연합에서 보이코트까지, 특히 트로츠키 그룹들의 경우 제헌의회를 요구하는 등 상당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은 논쟁의 핵심은 한편에서 중도세력과의 무원칙한 연합에 대한 원칙적 비판과, 당면한 혁명적 정세를 노동자-민중의 혁명적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정치적 전략-전술의 문제이다.그리고 동시에 정세적 요구에 의해, 공동투쟁과 공동대응을 위한 다양한 수준의 정치적-조직적 제안들을 상호 제기하고 있으며, 과거의 편협한 종파적 이해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내년의 대선을 둘러싼 정세 속에서, 기존 정치세력의 구조적 위기를 이용하여, 노동자-민중의 계급적-대중적 기반을 가진 강력한 변혁적 좌파세력의 등장은 주어진 정세와 상황에서 갖는 결정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우리는 피케테로스, 민중회의, 노동조합 모두 다 연결해야 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혁명적 당을 건설할 수 있다. 좌파정당과 계급투쟁적 정파들을 통일전선으로 단결시킴으로써 혁명적 지도력을 건설하는 데로 전진할 수 있다."(한 좌파 지도자의 발언)

아르헨티나와 라틴 아메리카 정세 --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새로운 단계를 위하여

1995년 멕시코의 경제위기를 시발로, 남미대륙은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병행발전이라는 "워싱턴 컨센서스"의 허구성을 증명하듯이, 연이은 경제위기를 가져왔으며, 21세기에 들어서는 대륙전체에서 경제위기가 확산될 뿐만 아니라 경제위기가 정치위기로, 신자유주의적 지배체제의 총체적 위기로 폭발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 12월의 아르헨티나 봉기는 바로 그 정점이다.1997년 베네수엘라에서 차베스 정권이 등장할 때, 이것은 다소 우연적이고 돌발적인 사건으로 보였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브라질의 룰라, 에쿠아도르의 구티에레스 등 이른바 좌파정권이 등장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남미 전역에서 전투적 게릴라운동을 포함한 사회변혁적 운동이 퇴조하면서, 특히 이들이 제도정당이나 NGO를 통해 체제내화되면서, 새로운 사회변혁의 전망이 보이지 않던 시기가 불과 5-6년 전이었다.그러나 21세기 초 남미대륙은 꿈틀거리고 있다. 브라질의 무토지 농업노동자(MST) 투쟁, 아르헨티나의 실업자투쟁,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봉기, 에쿠아도르의 인디오 원주민 봉기, 페루의 반민영화투쟁 등 신자유주의에 경제적 파산과 민중주의의 정치적 몰락에 마침표를 찍는 대중적 계급투쟁이 폭발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르헨티나의 봉기는 IMF의 지휘하에 신자유주의 노선을 고
집하던 정권을 타도하는 데까지 나아갔다.브라질에서 열렸던 세계사회포럼은 현재 반세계화운동에서 구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반세계화운동은 전세계적으로 불균등하게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운동은 일차적으로 변혁적 사회운동을 자극하여, IMF나 WTO, G8과 같은 제국주의의 국제기구들에 대한 투쟁을 일상화-정례화했다. 그리고 더불어 다양한 조건에 있는 각국의 변혁운동을 자극하는 중요한 기폭제로서 작용하였다.이 운동은 과거의 운동에서 나타난 폐해를 뛰어넘는 새로운 실천과 풍부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작년 9.11 테러로 위기를 맞았지만 올해 새로운 반전운동, 반제국주의운동으로 확대-강화되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의 12월봉기는 반세계화 투쟁이 국제행사 중심의 운동이 아니라, 일국적 차원의 대중운동과의 연결고리를 발견하는 전형을 창출하였다. 이제 아르헨티나 노동자-민중은 누구나 IMF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고 있으며, 1994년 1월 사파티스타
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ADT)에 맞서 봉기를 일으켰을 때 외로운 메아리로 울렸지만, 이제 미국제국주의가 주도하는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에 대한 반대투쟁은 대륙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와 정치적 폭발은 일국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전세계적 차원의 반신자유주의 운동과 일국적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변증법적 상호작용의 좋은 예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올해의 선거에서 룰라나 구티에레스의 승리는 간접적으로 아르헨티나 봉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선거의 기제에 갇혀 제국주의 및 국제자본과의 타협을 추구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반면 IMF와 WTO, FTAA 등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제금융기구와 초국적 자본의 체, 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이제 전세계 민중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그리고 전대륙적으로 노동자-민중의 상황은 너무나 절박하다. 기본적 생존과 생활을 위한 투쟁은 반신자유주의, 반제국주의 투쟁으로 전화된다. 한국의 노동자계급도 아르헨티나의 민중과 더불어, 신자유주의를 뛰어넘는 대안을 향해 함께 투쟁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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