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참이슬은 누가 다 먹었을까?

진로 파업 뒤에 감춰진 진실

불경기가 되면 다들 매출이 떨어진다고 울상을 짓지만 나 홀로 호황을 구가하는 품목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동자 서민의 벗 소주이다. 소주의 대명사 격으로 불리는 진로, 그 진로가 술렁이고 있고 곧 소주 대란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가운데 진로는 20일을 기해 부분파업 투쟁에 돌입했다.

(주)진로는 지난 97년 부도를 냈고 현재 법정관리 상태에 있다. 그러나 진로의 경영상황을 들여다보면 어리둥절하기 짝이 없다. 30년 이상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98년부터 현재까지 일본시장 점유율 1위, 03년 전국시장 점유율 54.6%, 수도권 점유율 92%, 04년 7월 참이슬 누적판매 70억 병 돌파, 매출액 6433억, 매출 이익 1675억...화려한 경영성과를 나타내는 지표는 이 외에도 무수하다. 이 정도쯤이면 초우량 기업 아니면 시장 지배적 독점기업이라는 칭호를 내려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하다. 그러나 03년 영업외 비용 1조 1093억, 당기순손실 9190억 그리고 부채는 1조9112억 원에 달한다. 이 상반된 지표 뒤에는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부실경영,정경유착 결정판

지난 88년 진로 창업주의 차남 장진호는 경영권을 둘러싼 치열한 분쟁 끝에 진로그룹 회장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진로그룹은 바로 다음 해 서초동 남부터미널 인근에 아크리스 백화점을 개점하고 전자, 건설, 금융, 레저, 케이블 방송 등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거듭했다. 95년에는 막대한 초기투자를 무릅쓰고 미국 쿠어스와 합작으로 두산-하이트 양강체제가 수십년 간 굳건했던 맥주시장에 뛰어들기도 했다. 이 와중에 재무구조는 악화일로를 걸었고 계열사 수가 늘어나는 것과 비례하여 그룹의 속병은 깊어져만 갔다. 결국 진로는 수조 원의 차입금을 짊어진 채 IMF로 치명타를 얻어맞고 말았다.

물론 한국의 다른 재벌들과 마찬가지로 진로의 급격한 사업 확장 뒤에는 엄청난 규모의 정경유착이 자리잡고 있었다. 96년 8월 당시 진로회장 장진호는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정치자금 100억을 지급하여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그는 김현철 사단의 일원으로 재벌 2세 사조직에서 이웅렬 코오롱 회장 등과 함께 활동했다고 알려지기도 한다. 그 후 97년 대선 당시에는 신한국당 이회창 후보에게 반대했던 박찬종 전 의원의 탈당을 막기 위해 박 전 의원에게 1억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른바 북풍 사건의 재판기록에도 그의 이름은 발견되고 있다.

결국 장진호 전 진로회장이 이사회 승인 없이 진로건설등 4개 계열사에 (주)진로의 자금 6300억을 부당 지원하고 분식회계를 통해 금융기관에서 5500억을 사기 대출 받은 사실이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98년 3월 화의인가 이후에도 진로의 자금 680억을 부실기업에 부당지원하고 부동산 매각과정에서 이중계약서를 작성하는 방법으로 비자금 15억원을 조성 유용한 혐의가 드러나 04년 2월 징역 5년6월을 선고받고 마침내 교도소로 직행했다.

무능력하고 비도덕적인 재벌2세가 회사에 심각한 손해를 끼쳐 97년 4월 [부실징후기업의 정상화 촉진과 부실채권의 효율적 정리를 위한 금융기관협약]에 의거 정상화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어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로는 노동자들의 신상품개발, 임금동결, 상여금 반납, 생산성 향상 등의 공헌에 힘입어 매년 막대한 영업이익을 거두며 정상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골드만삭스만 배 불려

그러나 부실기업의 굴레를 썼지만 내실은 탄탄했던 진로는 초국적자본을 피해 갈 수 없었다.97년 11월 진로는 부실기업의 굴레를 탈피하기 위해 골드만삭스의 경영컨설팅을 받을 준비를 했다. 경영자문을 받기 위해서는 당연히 영업비밀들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 비밀들을 달리 이용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양측은 비밀유지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협상과정에서 진로와 골드만삭스의 자문계약은 맺어지지 않았으나 비밀유지 계약은 2년 간 유효했다. 그 2년 간의 비밀유지 계약기간 중에 골드만삭스는 진로의 부실채권 수천억 원 어치를 형편없이 싼값에 구매할 수 있었다. 당시 진로의 채권자였던 국내 시중 은행들은 IMF 협약 사항에 따라 BIS 비율을 맞추는데 급급해 부실로 분류된 채권들을 형편없는 조건으로 털어 내고 있었다. 결국 골드만삭스는 IMF의 강제에 의한 국내 금융권의 요동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문계약 체결 협상 과정에서 취득한 정보를 가지고 알짜 채권을 싼값에 손에 쥘 수 있었던 것이다.

진로의 경영진은 뒤늦게 골드만삭스의 속내를 눈치채고 법정 다툼을 벌였으나 당시 그들의 능력으로는 골드만삭스를 당해낼 재주가 없었고 결국 법원은 골드만삭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골드만삭스는 초국적자본의 속성을 나타내 진로재팬 상표권 가압류, 진로홍콩 파산 신청등을 통해 진로의 자산매각과 외자유치를 가로막은 끝에 마침내 진로의 법정관리 신청을 주도했다. 골드만삭스는 정리계획안 통과 이후 원금의 대부분을 변제 받아 투자 대비 5~6배 이상의 이익을 거두었고 그와 별도로 구입가격이 아닌 채권액면가의 10%에 달하는 이자를 매년 꼬박꼬박 챙겨왔다.

현재 진로의 대표 채권자는 'Sena Investment(Ireland) Limited'이며 이 회사는 골드만삭스의 페이퍼 컴퍼니로 알려졌다. 그리고 진로의 매각예상 가격은 약 2조 원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골드만삭스가 지금까지 진로에서 얼마의 수익을 거두었는지는 앞으로 얼마의 수익을 거둘지는 어림짐작조차 불가능한 상황이고 진로의 노동자들이 매출과 이익을 높일수록 골드만삭스의 주머니만 두둑해지고 있다.

사측에선 중재안조차 거부해

한편 1,912 명의 직원중 1,466 명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진로노조는 올해 임단협에서 사측과 열세 번의 협상을 벌였으나 타결하지 못해 지난달 26일 쟁의발생 신고를 했고 뒤이어 지난 5일 노사 양측은 중노위로부터 조정안을 받았다. 그 조정안은 임금 7% 인상(부대비용 포함, 통상임금 수준으로는 5% 정도)과 본봉기준 150%의 성과급 지급, 영업이익이 2000억 원을 넘길 때는 인센티브로 50% 추가, 주5일제는 노사 합의된 조건으로 시행할 것를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노조측은 이 조정안을 받아들였으나 사측이 이 중재안을 거부했다.

결국 지난 13일 전체 조합원 96.9%의 찬성으로 노조는 파업을 결의하였고 20일 현재 노조측은 준법투쟁에 뒤이어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부분파업의 결과로 진로 이천공장의 하루 생산량은 약 40% 정도의 감소가 예상된다. 그리고 각 언론에서는 이번 사태의 본질의 도외시 한 채 '사상 초유의 소주 파동' 이라며 '경기도 안 좋은데 소주도 마음대로 못 마시게 될 지경' 이라며 진로노조의 투쟁을 왜곡된 시각으로 전파하고 있다.

봉필원 진로노조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지금 여러 언론들이 떠드는 성과급 문제는 투쟁의 중요사항이 아니고 핵심적 요구사항은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5일제의 도입이다. 또한 우리는 법정관리인이 시행중인 정리계획안을 인정하고 있으며 이번 투쟁은 정리계획안을 뒤집어엎고자 하는 투쟁은 아니다. 그러나 사측(법정관리인)은 주5일제 문제는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르라고 하며 근기법 이상의 조건에 대해선 대화 의지가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뿐더러 그들은 우리의 요구사항은 들은 체도 않고 M&A 이후에나 이 문제를 제기하라고 강변하고 있다. 또한 우리 노조측에서는 성과급과 임금에 관해서 당초 우리의 요구안보다 대폭 후퇴한 중노위의 중재 안까지 감수할 용의가 있으나 사측(법정관리인)에선 그것도 수용할 수 없다고 한다. 사측에서 제시하는 안 자체가 아예 없는 상황이고 예년 기준으로 성과급 50% 정도는 가능하고 임금은 동결하자는 정도의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사실 법정관리인 조차 실권이 없고 그 사람을 파견한 서울 중앙지법 파산 3부가 실권을 가지고 있는데 법정의 속내를 알 수 가 없다"며 격앙된 목소리로 현 상황을 전했다.


한편 진로 채권단 중의 주요멤버인 모건스탠리 인터내셔널 서울지점의 박준영 차장은 파업에 돌입하기 직전 "현재까지는 준법투쟁이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특별한 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다" 는 반응을 나타냈다.

역시 주요 채권자인 농협측의 채권관리실 특수관리팀 담당자는 다음과 같이 입장을 내비쳤다. "일단 이런 문제가 제기되는 것은 부정적이다. 아무래도 우리 쪽에서는 파업이든 준법투쟁이든 노조측의 목소리가 높아져 외부로 표출되는 것은 부정적으로 판단 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진로의 영업실적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이번 일에 이해가 가는 측면이 없진 않지만 채권자 측에선 일단 부정적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진로의 내재적 가치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에 M&A 진척 상황이 그럭저럭 긍정적이었는데 진로 법정관리인 측에서 세나 인베스트먼트(골드만삭스의 페이퍼 컴퍼니)와 진로홍콩 문제로 충돌을 보이고 있다. 아직 이 문제가 수면위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M&A 진행 상황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이번 노조 사태는 아직 별 영향이 없고 오히려 이런 문제가 더 중요하다. 주요 상황이 발생하면 채권단 회의를 거치지만 이번 준법 투쟁을 가지고 채권단이 모일 계획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채권단이 노조의 요구와 노동자들의 사정에는 얼마나 무관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준법투쟁의 수준으로서는 사측이나 채권자들에게 특별한 영향을 미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로의 부분파업 돌입 뒤에는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진로 노동자들은 매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영업실적을 올리고 올해 영업이익이 2000억 원이 넘을 전망을 보이고 있음에도 임금 7% 인상, 성과급 150~200% 지급이라는 중노위의 조정안 조차 거부당하고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리 뛰어난 실적을 거두어도 노조가 임금인상 자체를 요구할 수 없는 이 상황은 도대체 누구의 책임일까? 무능력하고 비도덕적인 재벌2세, 외환위기 이후 IMF와 한국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등에 업은 초국적 투기자본 그리고 초국적자본의 불법적 행위는 제어하지 못하지만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에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대한민국 법원 이들 셋중 과연 우열을 가릴 수 있을런 지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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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 진로 , 골드만삭스 , 참이슬 , 투기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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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헉.

    저곳은!!

  • 동동이

  • lets

    ㅋㅋㅋ

  • 곰돌이

    !!

  • 감각있는데..

  • 노동자

    외국 자본에 우량기업을 팔아도 한국 땅에 있으니
    우리것이라고 우겨대던 넉빠진 넘들,,,,,
    노동자의 미래가 깜깜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