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그들은 과거사 청산 못 한다

신기남 의원 당의장 사퇴를 계기로 제1, 제2 지배정당간 과거사 청산과 국가정체성 논란을 둘러싼 2라운드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신기남 의원은 사퇴 성명에서 '민주평화세력'이 다수가 된 지금이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물러날 거면 무릇 조용히 물러나야 하거늘, 자신의 진퇴 문제를 '역사바로세우기'의 소재로 써야 한다고 주문함으로써 과거사 청산 문제에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한나라당이 맞불을 놓았다. 박근혜 대표는 과거사 청산 대상에 친북. 용공 문제도 포함시켜야 한다며 공세를 취했다.

제1, 제2 지배정당은 어제 특별기구 구성과 그 조사대상 범위 등에 대한 협상을 진행했다. 박근혜 대표가 과거사 규명 작업의 전제조건으로 '조사 기구의 중립성과 조사 대상의 확대'를 제시한 데 따라 열리게 된 자리였다. 박근혜 대표는 일제시대의 친일행위, 한국전쟁 전후의 친북·용공 활동, 5·16과 산업화 과정의 공과를 포함하자고 주장함으로써 과거사 청산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주지하듯 지배세력의 과거사는 분단과 전쟁, 쿠데타와 독재, 착취와 억압으로 점철되어 있다. 분단은 친일세력 청산은커녕 그들의 독재 지배를 재생산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친일세력과 군부세력은 쿠데타와 장기집권으로 2세대 반공-개발세력에게 부와 영화를 선사하였다. 반공-개발세력은 우익 반공 이념으로 무장하고 산업자본과 결탁함으로써 재벌공화국을 만든 주역이 되었다.

동서 냉전의 종식과 숨가쁘게 전개된 자본의 지구화(세계화)는 한국 사회 지배질서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을 추동하였다. 이 재편 과정에 재벌은 능동적으로 합류했고, 보수세력과 개혁세력으로 대별되는 현시기 지배세력들은 신자유주의지배연합의 큰 틀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분단과 전쟁, 쿠데타와 독재, 착취와 억압을 통해 재생산해온 지배세력의 과거사의 진실이다. 진정한 과거사 청산은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지배세력의 역사를 통채로 다루는 것이어야 한다.

현대사를 이끌어온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에 대한 친일, 친북 여부를 사실대로 확인하는 것은 비뚤어지고 일그러진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정리한다는 점에서 정당한 일이다. 그리고 그 행위가 민중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도 객관화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 제1, 제2 지배정당 세력이 추진하고 있는 과거사 청산은 실패하거나 해프닝이 될 소지가 높다. 이들은 과거사의 행적 그 자체를 문제삼고 있는데 그 기준 잣대의 최소한의 합의조차 못해내고 있다. 과거 정치세력과 정치인의 행적에 대한 연좌제적 접근 또는 연좌제적 효과를 정략으로 삼으려는 계산이 지배적인 한, 그리고 과거 이력에 대한 흠집내기식 공방과 지배세력 안의 헤게모니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청산 잣대를 들이대는 이상, 과거사는 결코 온전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제1, 제2 지배정당은 과거로부터 면면히 이어져온 지배질서의 주류이자 수혜자이다. 친일이냐 친북이냐 공방은 지금 누가 무엇을 어떻게 지배하고 있는가 라는 사실을 비껴가고, 한국 현대사의 권력이 어떻게 재생산되고 유지되어왔는가의 문제를 은폐한다. 친일 행각을 사실대로 파헤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친일 행각을 파헤치자고 주창하는 세력들이 친미를 하고, 한-미동맹을 숭배하고, 반공-개발 세력과 맞싸웠던 세력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전도사 역할을 하는 현실과 결부해서 과거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 행적으로 공방을 다투는 지금도 바로 그 세력들이 파병과, 한-미동맹과, 노동유연화 강화와, 사회적 합의주의 추진에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편 과거사 청산 공방을 자제하라는 보수언론의 사설, 과거사 논의가 무모하고 소모적인 무한정쟁에 싸일 수 있으므로 이를 자초하지 말라는 주문, 과거사 규명 기구에 있어 여야가 조금씩 열린 자세로 접근해서 포괄적으로 합의해 나가라는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들 목소리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정확히 짚는 것도 반드시 살펴볼 일이다.

제1, 제2 지배정당에 의한 과거사 청산 논란과 역사바로세우기 공방이 거듭할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질문이 하나 있다. 그것은 누가 나서야 비로소 온전하게 이루어지겠는가 라는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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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남 , 역사바로세우기 , 친일 , 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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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꼭두각시

    글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