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명예회장님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재벌 선전장으로 변질된 올림픽 중계방송

최근 아테네 올림픽 중계방송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정 재벌기업과 총수들에 대한 과도한 홍보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재벌사 선전장 되어버린 중계방송

한국 올림픽 대표팀이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우승한 직후 한 공중파 방송의 해설자는 ‘정몽구 명예회장님의 성원에 감사드린다’는 발언을 반복했다. 이 해설자는 정몽구 양궁협회 명예회장의 현대차 그룹의 한 계열사 소속이다. 역시 배드민턴 남자복식에서 한국이 금, 은메달을 휩쓴 직후 해설자는 삼성전기가 배드민턴에 끼친 공헌에 대해 장황한 찬사를 늘어놓았다. 이 두 종목 뿐 아니라 재벌총수가 경기협회장을 맡고 있는 종목들의 중계에서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아테네 올림픽 금,은,동메달

해설자들이 각 회사의 대표로 나온 것도 아니고 공영방송의 아마츄어 스포츠 중계를 돕기 위해 출연했을 뿐인데 최소한의 방송 윤리와 중립적 자세를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직장인 김방호 씨는 "'전두환 대통령 각하와 이순자 여사께 감사를 전하며....'로 시작하던 80년대 초반 복싱 세계 챔피언들의 승리 소감이 떠오르기도 한다"며 실소를 보이기도 했다.

방송사, 방송위 둘다 무대책으로 일관

이에 대해 KBS 심의실 담당자는 "스포츠 중계에서 간접광고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해설자 각자의 양식에 맡길 따름이다. 방송 들어가기 전 몇 가지 주의를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잘 지켜지지 않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며 스포츠 중계시 해설자에 의해 나타나는 간접 광고에 대한 아무런 규제나 기준이 없음을 스스로 시인했다.

지상파 방송의 광고 관련 규제를 담당하고 있는 방송위원회 평가심의국 담당자로부터는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담당자는 "걸면 걸리는 문제라고는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관행상 용인했던 문제고 명확한 규정도 없다. 미니스커트 단속한다고 무릎위에 자를 들이댈 수 있나? 그리고 사실 비인기 종목의 경우에는 경기연맹의 예산이나 선수들의 처우는 결국 재벌 총수 개인에게 달린 게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제도, 법규로 풀어나가기 보다 해설자 각자가 일정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 현재로선 공식적인 권고안이나 주의사항을 내려보낼 계획은 없다. 전화상으로 방송사와 업무협의를 자주 하니 의견을 전달하겠다. 솔직히 나도 스포츠 중계보다가 짜증날 때가 많은데 이런 문제가 언론 등을 통해 이슈화가 되면 방송위원회에 상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라며 속사정을 전했다.

해설자보다 방송사가 문제

이에 대해 축구칼럼니스트 정윤수 씨는 "방송해설자들은 영상에 즉각적으로, 별 고민없이 말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간접 광고 문제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경기인 출신 해설자들에게 어떤 속셈이 있는 거라고 비판하긴 힘들다. 하지만 해당사 로고가 노출되는 정도도 아니고 해설자가 회장사나 총수 개인에 대해 칭송을 하는 건 시청자에게 직접 다가가기 때문에 더 위험한 문제다. 간접 광고를 논하기 이전에 이런 문제는 시청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는 의견을 전했다.

그리고 "사실 이런 문제는 해당 방송사의 책임이다. 공중파 방송은 그야 말로 공기(公器)가 아닌가? 좀 더 근원적 문제를 짚어 보자면 경기인 출신, 스타 출신이라고 해서 해설 라인업에 포함시키는 관행이 문제다. 스타 출신이라고 해서 검증받은 해설자라고 할 수 있나? 해설자의 명망을 이용해 시청률을 올릴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맥락을 잡고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것을 풍부하게 전달할 수 있는 해설자를 발굴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덧붙혔다.

시민들의 반응 역시 싸늘하다. 대학원생 황선웅 씨는 "메달을 딴 선수가 자연스럽게 소속사에 감사를 표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건 너무 한 것 아니냐? 얼마전 간접광고 논란을 일으켰던 '파리의 연인'보다 더 심하다. 짜증나서 중계를 못 볼 지경이다"고 지적했다.

스포츠 영역에 대한 공공적 통제 시급해

이런 문제는 이번 올림픽에 한정된 것이 아니며 간접 광고에 국한된 것도 아니다. 각 경기연맹과 체육인들이 소속연맹 회장의 홍보나 개인적 문제에 동원된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 2000년 총선시민연대가 선정한 낙천 낙선 대상에 축구협회 회장인 정몽준 의원이 포함되었다. 당시 축구협회 전무였던 조중연 축구협회 부회장과 허정무 현 국가대표 코치를 비롯한 유명 축구인들이 정몽준 회장을 낙선 대상에서 제외시키라며 피켓 시위를 벌이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축구평론가 정윤수 씨는 "선수 출신 임원이나 지도자들은 각 경기협회 회장사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수직계열화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그들에게 공인 의식을 기대하기 힘들다." 며 " 특히 회장 개인에게 많은 혜택을 입은 스타 출신이나 협회 간부들은 더 심하다" 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편 오늘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겸 양궁협회 명예회장이 이번 올림픽 양궁선수단에 6억 원 상당의 포상금을 지급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며 아테네 올림픽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지친 하루를 마치고 눈을 비비며 티비를 볼 때까지 재벌 기업과 총수에 대한 선전에 일방적으로 노출되어야 할까? 많은 전문가들은 엘리트 스포츠가 권력이나 자본의 영향을 받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한 입으로 말한다. 그러나 역시 최소한의 제어와 공공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덧붙인다. 여러모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아테네 올림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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