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만 있으면 됩니다

극심한 경쟁과 사업주 횡포에 신음하는 퀵서비스 라이더

작년 서울시내 이륜특송(이하 퀵서비스) 산업의 추정 매출액은 7,000억이고 종사자는 최소 2만에서 최대 3만에 달한다. 또한 퀵서비스 오토바이들은 교통 혼란과 난폭 운전의 주범으로 심심찮게 언론과 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이면에 존재하는 업주의 횡포와 사고의 위험에 대한 무방비, 극심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퀵서비스 종사자'(라이더)들의 현실이 드러나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보도방과 다를바 없어

KBS뉴스의 한장면
퀵서비스 회사들은 자체 기사와 오토바이를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다. 대외적으로 운송업체라고 선전하는 이 업체들이, 실은 배달 물량만을 확보하여 라이더들에게 물량을 배정하고 정액제로 소개료를 챙기고 있는 것이다. 퀵서비스 배달알선 업체들의 연합모임인 '서울특별시이륜특송협회'의 홍성호 관리부장은 서비스 업종은 세율이 높기 때문에 일부 업체가 '운송업체'로 사업자 등록증을 발급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러한 사실들을 인정했다.

현행 운수업법에 따르면 자체 운송수단과 기사를 자체 보유하고 있지 않으면 운수업체로 등록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퀵서비스 알선압체가 라이더들에게 징수하는 소개료는 정률제가 아닌 정액제로서 심지어 하루에 한 건의 배달 물량을 배정 받더라도 50만 원 정도를 매달 선불로 꼬박꼬박 납부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업체 광고비, 할인쿠폰 비용 등 각종 부대비용까지 라이더들에게 전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업주가 사세 확장을 위해 일방적으로 운임을 낮추어도 라이더들은 어떠한 대응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물량 배정을 위한 PDA, TRS 단말기 까지 강매당하고 있다.

과당 경쟁에 과장 구인광고까지

이런 현실에서 '전국민고통분담 퀵서비스 가격파괴' 라는 거창한 명목을 내걸고 파격적 가격인하를 광고하고 있는 업계 최대 규모의 회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는 초보자 월 급여 200만원 이상 보장, PDA사용 공정배차, 재택근무, 상해보험 가입 등을 내걸고 구인광고를 낸 이 회사에 구직 문의를 해보았다. PDA는 개인 구입, 재택근무란 말은 사무실로 안 나오고 바로 현장으로 출근한다는 말이었고, 상해보험은 라이더 개인이 가입하는 것인데 가입 절차를 알려준다는 것이었으며, 월 급여 200만 원은 월수입 200여만 원 이상(부대비용 포함)이란 말이었다. 심지어 오토바이와 면허증만 있으면 경력과 상관없이 아무라도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마구잡이로 쉽게 구인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이 업체가 라이더에게 부담 전가를 하며 공격적 마케팅에 나설 수 있게 한 것이다. 과장광고의 실상을 확인 한 후 다시 연락해 기자 신분을 밝히고 인터뷰 요청을 하자 이 회사의 한 간부는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며 많은 사실을 시인했다. 그는 '불경기인데 오토바이하고 면허증 가지고 와서 일하겠다는 사람을 어떻게 돌려보내냐'며 '가격 인하에 대해선 라이더들에게 고지를 했다'고 그 물량을 받기 싫은 기사들은 안 받으면 된다고 강변했다.

가격 인하가 되면 물량 확보를 한 건이라도 더 하기 위해 라이더들이 과당경쟁을 벌이게 되고 결국 난폭운전으로 이어지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요즘은 물량이 별로 없어서 난폭운전을 할 이유가 없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어놓았다. 명목상으로는 지입관계이고 대등한 사업자 관계이지만 알선업체 측이 일방적으로 라이더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내막이다. 물론 다른 업체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심각한 건강 위협, 보험은 꿈도 못꿔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사고의 위험에 항상 노출된 라이더들이지만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산재보험 가입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반 민영 보험회사들에서는 라이더들의 보험신청은 받아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오직 책임보험에만 가입이 가능한데 이것 또한 라이더 본인들이 전액 부담해야 한다. 만일 인명사고라도 나는 날이면 라이더 개인 뿐 아니라 집안까지 풍비박산이 나는 실정이라고 한다. 매연에 상시적으로 노출된 라이더들의 건강 문제 또한 심각하다.

지난 6월 9일 방영된 KBS 추적60분 '2004 서울 탈출 개시' 편에는 서울시내 2만여 라이더들을 놀라게 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상시적으로 매연에 노출된 라이더들의 정자를 검사한 결과 현저한 활동성 저하를 보였고 정자수도 작을 뿐더러 형태도 기형적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속 이혜은 의사는 "안전장치도 미비한 채 지속적으로 매연에 노출되면 위험한 결과를 낳는 건 불을 보듯 뻔하다"며 "기관지, 폐질환을 비롯한 각종 호흡기 질환과 불임의 위험이 있으며 인과관계가 직접적으로 증명되진 않았지만 여러 질환들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서울에만 수만 명의 사람들이 이런 열악한 현실에 처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퀵서비스 업계의 문제점은 전혀 수면위로 노출되고 있지 않다. 언론과 정부의 무관심 뿐 아니라 업주들의 교묘한 압력과 개인적으로 움직이는 퀵서비스 업종의 특수성이 그 요인이 되고 있다. 또한 지속되는 경기침체 속에서 오토바이 한 대와 면허증만 있으면 당장이라도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환경 또한 한 몫을 하고 있다.

싹트는 조직화의 씨앗

다음까페에서 '나그네' 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며 '퀵라이더 연대(http://cafe.daum.net/qsv)의 임시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는 현업 라이더로부터 업계의 생생한 실상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현재 이 라이더는 퀵서비스 업계의 실태를 온라인상에 폭로했다는 이유로 업체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된 상황이다. 또한 '퀵라이더 연대' 까페의 주요 게시판들은 사이버 가처분 신청을 받아서 사용조차 정지된 상황이다.

이 라이더에 따르면 현재 업계는 주5일제 실행, 알선업체의 난립, 실직자들의 퀵서비스 업종 진출등으로 인해 극심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우리는 아무 보호도 못 받고 목숨을 담보로 해서 돈을 버는데 업체들은 온갖 명목으로 부담을 다 떠넘기고 있다" 며 "우리는 인생 막장이다"라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기도 했다.

까페뿐 아니라 라이더연대(http://onquick.ce.ro)를 결성해 조직화에 나서고 있는 이 라이더는 "열악한 현실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루 벌어 하루 먹기 바쁜 현실이라 선뜻 나서려는 사람이 드물다" 며 조직화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러나 법으로도 안 되고, 읍소해도 안 되는 상황이라면 단결된 힘을 보여주는 길밖에 더 있겠냐고 반문하며 "화물연대도 했듯이 우리도 뭉치고 말 것" 이라고 굳은 결의를 나타내며 자리를 떴다.

퀵서비스 산업은 탁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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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 건교부 , 퀵서비스 ,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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