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웠지만, 연대의 경험은 소중한 기반 될 것

[WSF특별기획](3) - 구용주 대우증권노동조합 정책국장 세계사회포럼 참가기

내가 속한 민주노총 참가단은 24일 오후 인천공항을 출발해 꼬박 이틀을 걸려 Porto Alegre 공항에 도착하였다. 지구의 정반대편 땅에 온 것만으로도 가슴 벅찬 일이었지만 일 년밖에 안되는 짧은 경력의 단위 노조 상근자로서 참가하는 세계사회포럼의 의미가 버겁게 느껴졌다. 더구나 출발 당일 노조 간부의 금품수뇌설을 들었고 노사정위 참가 안건을 둘러싼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가 곧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에 무거운 마음으로 출국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장에 걸려 있던 부시 반대 포스터
1월 26일, Porto Alegre 시청 광장에서 Guiba 강까지 20만명(현지언론)/12만명(조직위)이 참가한 개막행진은 6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브라질)노동조합총연맹(CUT), 무토지농민운동(MST), 집권당인 PT, PT에서 축출당한 사회주의와 자유당(P-SOL), 통합사회주의노동당(PSTU) 등 큰 규모의 브라질 정당 및 단체들과 함께 근접 라틴아메리카국가에서 온 많은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 칠레, 쿠바 참가자들, 그리고 인도, 대만, 홍콩, 일본, 타이, 베트남 등 아시아참가자들, 그 밖의 세계 곳곳에서 온 참가자들로 인산인해였다. 세계화와 이라크침략전쟁 반대의 구호는 온 도시를 뒤덮었다.

행진은 질서 정연함보다는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PT와 공산당 그리고 소수 NGO들이 자신들이 행진을 주도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미리 행진하였다고 하였다. 남아프리카 참가자들은 07년 사회포럼을 유치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고 동성애자 깃발, 아라파트 추모 배너, ‘다보스 NO, 삼바 YES'라는 피켓, 컨테이너크기만한 MST 배너 등이 눈길을 끌었다. 물론 브라질 참가자들이 가장 많았는데 활동가들의 행진은 가장 열정적이었다. 이들은 행진이 모두 끝난 후에도 행사장 주변에서 멤돌며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룰라는 자신을 당선시킨 노동자를 배신했다”

행사기간 계속 지속된 룰라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분위기는 토지분배, 빈곤구제 프로그램과 같은 개혁적 성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연금 개악, 노동조합법 개악, 은행노동조합 파업에 대한 대응이 신자유주의적 인데다가 03년 PT당에서 축출한 세력과 외부의 비판그룹들의 논제들이 대중들의 실망감에 결부하여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27일 포럼 개막식 행사에 초청된 룰라대통령의 연설에서는 만 명 정도의 청중이 운집했는데 100명 정도가 룰라 반대를 외쳤고 체육관 밖에서는 500명 규모의 항의집회가 있었다. 다수의 룰라 지지 세력은 소수의 야유를 잠재우기 위해 파도타기를 연출하기도 했고 소수에게 야유와 종이뭉치를 던지기도 하였지만 연설을 가로막는 소란행위는 없었다.

이와는 반대로 29일 열린 유고 차베스 대통령의 연설은 룰라 대통령이 했던 바로 그 체육관에서 열렸는데 2만명이 넘는 젊고 활기찬 지지세력들이 모여들었다. 인터내셔널가, 미국의 쿠바봉쇄에 항의하는 뜻으로 관타나모 해변을 뜻하는 ‘관따나모네’, 70년대 군부에 저항하던 노래의 중간에 ‘차베스는 떠나지마라’ ‘개혁을 중단하면 브라질도 중단된다’ ‘브라질-베네주엘라-아르헨티나 제국주의 반대’와 같은 구호가 계속되었고 P-SOL의 ‘부시-우리베(콜롬비아 대통령)는 베네주엘라에서 손을 떼라! FTA와 룰라 반대!’ 배너 아래 지지자들의 함성이 체육관을 뒤덮었다. CUT, PT 간부들의 연설은 야유 때문에 들을 수조차 없었고 오로지 차베스대통령만을 기다리는 사람들뿐이었다. 4시 예정이었던 연설은 7시가 되어서야 시작되었고 차베스대통령은 역시 대단하게도 3시간이 넘는 연설 속에서 거의 모든 쟁점들을 언급하였다고 한다. 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현지 참가자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은 반제국주의 블록으로 볼리바르혁명을 완수하겠다는 연설도 있었다고 한다.

  민주노총 참가단 행진 모습

자유무역 대응전략 아시아 활동가 원탁회의 보고

포럼은 오전 8시 반부터 6시 반까지 3교시가 일반적이지만 저녁 7시 반부터 시작하는 소수의 포럼도 열렸다. 대부분은 3교시 이후 다양한 문화행사에 참가하거나 연대회의에서 의견을 나누는 사례가 많았고 밤이 깊어서야 숙소로 돌아와 평가를 하고 잠자리에 들곤 하였다.
많은 포럼 가운데 다음날 포럼을 선택하는 것도 매일 밤 고민거리였다. 민주노총 참가단으로서 참여한 ‘세계 사회운동 총회’, ‘반전반세계화 아시아 민중, 사회운동 회의’, ‘FTA 대응전략 아시아 활동가 원탁회의’를 제외한 나머지 포럼은 나름대로 370페이지 분량의 프로그램 타블로이드에서 선택하여 다음날 참가하였다.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사회운동 전략회의’ 포럼에서 사유화 반대 투쟁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멕시코 발제자, 12월 홍콩에서 열릴 WTO 각료회의 반대투쟁을 준비하고 있으며 반덤핑정책과 제 3세계 규제 반대의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네덜란드 발제자에 이어 콜롬비아와 페루 참가자가 발표를 하였다. 북반구 초국적 기업의 이익에 복무하는 WTO 반대투쟁을 해오고 있으며 정부는 FTAA 조직화에 극심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페루정부는 FTA를 의제로 삼고 있으며 활동가들은 국민투표를 요구하고 있고 450만명의 서명을 받았다. 국영기업이 사유화되고 초국적기업에 매각되고 있지만 세금부과도 안되고 있고 극심한 빈곤층 대다수는 도시에서 거주할 수도 없다고 전한다.

‘FTA 대응전략 아시아 활동가 원탁회의’에서 아시아 각국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이 발제하였다.

일본참가자: 고이즈미 대통령이 중국, 일본, 한국 3개국간 EPA를 공식화하였고 향후 EU와 같이 성장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공산품 관세를 철폐하고 서비스업의 관세율을 인하할 것을 요구한다. WTO, FTA는 시장개방 압력을 강화하고 있는데 제도적 방어장치가 없이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심각성이 있다. 한일 FTA 외에 한-필리핀 협상은 11월 즈음에 거의 완료될 것이다. 일본에 체류하는 필리핀 노동자가 30만명에 이를 것이고 3년간 체류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한국 노동자들과 연대하여 일본에서 집회를 하였고 지속적인 연대투쟁을 벌여가고 있으며 한국과 필리핀 노동자들의 연대 협력이 절실하다.

홍콩참가자: 3년전 뉴질랜드 노동자들이 홍콩으로 와서 FTA 반대투쟁을 벌였으나 홍콩 활동가들의 연대투쟁이 거의 전무하였다. 현재 홍콩의 모든 상품은 외국 생산품이므로 수출입이 안되면 경제가 마비될 정도의 대외의존성 구조를 가지고 있다. 홍콩과 중국간 FTA의 도입으로 홍콩의 자본이 중국으로 확장하고 있고 홍콩의 민주주의 요구는 막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중국 정부관료가 “앞으로 홍콩의 민주적 선거는 없다”라고 하였고 홍콩의 의료, 보건, 금융, 민간서비스업체가 중국으로 진입하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정부와 싸워본 경험이 부족하여 다른 나라 활동가들의 연대가 절실하다는 점이다.

태국참가자: 96년부터 FTA 협상이 시작되었는데 인도, 중국간 부분적 FTA가 존재한다. 중국과 부분 타결 후 농민들의 피해가 매우 크다. 총리는 국회 동의 없이 FTA 체결이 가능하다고 공언하였으나 운동 단체들은 국회의 동의가 필수불가결하다고 주장하며 투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인도 외에 미국과 협상을 준비중이다.

브라질 ASC 곤잘레스: FTA의 협상초안과 주요내용은 절대 공개하는 법이 없다. 반면 브라질과 베네주엘라의 경우 정부의 협조를 얻어 협상의 내용을 얻을 수 있어 용이하다. FTA에 대한 철폐 투쟁을 벌이는 것과 동시에 반대 대안을 창출하여 선전하여 FTA 찬반투표에 천만명이 참가할 수 있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는 참가단 모습

연대의 경험과 지식은 소중한 기반이 될 터

30일까지 포럼 일정은 모두 마무리하고 31일에는 폐막 행진 행사가 있었다. 35도를 넘는 고온 속에 5일간 행사를 마친 탓인지 개막식만큼 열정적인 행진을 볼 수는 없었지만 한국 참가단, 특히 ‘아래로부터 세계화’는 더욱 멋지고 화려한 행진을 선보여 개막식에 이어 세계 참가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폐막식을 끝으로 오후에는 그 동안 둘러 보지 못했던 포르투알레그레 시내를 볼 수 있었는데 이미 라틴아메리카 참가자들 대부분이 도시를 빠져나간 상태여서 한적하기만 했다.

세계사회포럼은 반전, 반세계화 운동의 국제적 연대를 강화하고 공동투쟁 전략을 수립하는 장으로서 이해된다. 규모와 외형의 성장성 또한 매우 급격하게 발전하였다. 반면에 참가자들의 자발적, 자율적 판단과 참여를 수평적, 개방적으로 유지하고 있으나 여전히 정당배제의 원칙과 같은 부분에서는 합의하지 못하고 있고 더구나 두 대통령의 간접 참여로 원칙 고수와 훼손의 모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조직위원회의 개량성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4차 WSF 뭄바이 조직위는 달리트들을 조직하였으나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고, 31일 세계운동 총회도 공식 프로그램에 포함시키지 않았으며, 행진로를 제대로 지정하지 않아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 못하게 된 점이 그러한 이유이다. 포럼 운영의 비효율성 문제도 여전히 문제인데 다국어가 섞이는 규모가 큰 포럼에서는 통역수신이 안되었고 주제별 영역에 따라 공간이 분리되는 바람에 반세계화 포럼에 집중한 참가자는 문화나 환경 포럼 참가자와 거의 만날 기회가 없게 되어 다양성을 잃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사회포럼에서 배운 연대의 경험과 지식은 미래에 소중한 기반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참가기를 써주신 구용주 대우증권 노동조합 정책국장님은 민주노총 참가단으로 사회포럼에 참가하셨니다.

태그

기획 , 세계사회포럼 ,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구용주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