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상생!

[특별기획 : 굿바이 한겨레](4)-구조조정 전도사 한겨레, 삼성과 '상생'하라

금융자본에 대한 경고로 시작해 밀레니엄 홀 소개로 끝맺은 한겨레 새천년 기획

IMF 구제금융의 파고가 한창 몰아치던 98년, 창간 10년을 맞이한 한겨레는 50회에 걸친 대규모 연중기획을 통해 새천년을 가늠하기 시작했다. “새천년, 새 세기를 말한다”라는 제목의 이 기획에서는 ‘새로운 세계질서’ ‘정보와 과학이 지배한다’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새로운 문명의 탄생’ 이라는 4개의 주제 아래 다양한 꼭지 들이 배치됐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빙햄턴대 교수의 인터뷰까지 포함해 98년 5월 20일 보도된 첫 꼭지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한다’에서 한겨레는 새천년의 디스토피아를 “복지 축소에 대비한 베이비붐 세대들이 금융자산 불리기에 나서고, 이 금융자산 유치로 거대화된 금융자본들은 이익 극대화를 위 해 기업에게 항상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하며 바로 자신들에게 금융 자산을 맡긴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복지를 축소하는 악순환 구조가 새로운 밀레니엄을 연결하는 국제금융자본의 고리이다”라고 통찰력 있게 내다봤다.

그러나 99년으로 접어들면서 이 기획은 ‘미국, 유럽에 부는 동양의학 열풍’등을 소개하며 모호해져가기 시작했고 ‘새로운 문명의 탄생’이라는 마지막 주제의 마지막 꼭지에서는 어이없게도 ‘새천년의 상징’으로 런던 밀레니엄 홀을 소개했다.

금융자본의 전횡에 대한 경고로 출발한 한겨레의 새천년 기획이 런던의 관광명소인 밀레니엄 홀로 마무리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자신들이 경고한 ‘항상적 구조조정’을 자신들이 주문하는 이율배반적 행보


2000년 들어서 한겨레 경제 기획의 화두는 구조조정이었다. 한겨레는 7월에는 은행구조조정을 특집으로 다루었고 가을에는 고유가 시대 삶의 지혜, 11월에 접어들어서는 부실기업 퇴출을 기획 기사로 다뤘다. 부실기업 퇴출 기획 이후에 바로 이어진 경제 기획은 아이러니컬 하게도 ‘빙하기를 살아가는 생존전략’이었다.

2000년 11월 2일 한겨레는 ‘마지막 구조조정이라는 각오로’ 라는 사설을 게재했다. 이 사설에서 한겨레는 “이런 일괄적인 구조조정이 더이상 필요하지 않도록 정부와 채권단이 이번에 철저하고 확실하게 해주길 거듭 당부”했다. 또한 “지난 98년 5월의 1단계 구조조정 때에는 55개 기업이 퇴출됐으나 눈에 띌 만한 대기업은 거의 없고 대다수가 작은 기업들이었다. 더욱이 이들 기업들도 청산되거나 매각된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 합병됨으로써 사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며 “법정관리나 워크아웃 합병은 회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만 적용해야 할 것이다”라고 과감한 퇴출을 주문했다.

앞선 98년 5월 20일 자신들이 “거대화된 금융자본들은 이익 극대화를 위 해 기업에게 항상적인 구조조정을 강요하며 바로 자신들에게 금융 자산을 맡긴 사람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복지를 축소하는 악순환 구조”라고 경고한 내용을 그대로 주문한 셈이다.

2002년 접어들며 ‘상생’으로 방향타 고정

이러한 이율배반적 행보를 보이던 한겨레는 2002년 1월로 접어들면서부터 자신들의 방향타를 ‘상생’으로 확실히 고정시킨다. “2002한국 새틀 짜야한다”라는 신년기획에서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원의 좌승희 원장의 말을 빌어 “자동차, 반도체의 고부가가치화로 우리 경제의 중추로 계속 남도록 하면서 모든 부문에서 지식기반을 확대해 부가가치를 높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정부가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제시한 한겨레는 같은 기획에서 곧바로 “사회갈등 구조를 바로잡는 일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노사간 갈등은 조금도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진단한 한겨레는 ”정부와 경영계는 노동자들의 희생과 인내를 강요하고, 노동계는 경제현실과 동떨어진 요구를 하며 서로 한발도 물러서지 않는 대치국면이 지속되고 있다“고 구제 금융 이후 극심한 구조조정을 통과한 노동자들에게 정부나 사측과 동등한 책임을 지웠다. 이 정도면 같은 기사에서 이어지는 “이성과 논리보다는 힘으로 해결하려는 풍조가 만연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는 개혁정책이 이익집단의 반발로 휘청이는 데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나라의 십년대계를 위해 추진하는 각종 개혁정책들은 이익집단간 마찰로 벽에 부닥치기 일쑤다”라는 구절 속의 ‘이익집단’이 누구를 가르치는지는 아주 이해하기 쉬워진다.

전경련의 말을 빌어 한국 경제를 진단한 후 노동계가 경제현실과 동떨어진 요구를 하고 있다고 2002년 새해 첫날부터 훈계한 한겨레는 바로 그 다음날부터 ‘2002 다시 뛴다’라는 특별 기획을 편성해 보도했다.

2002년 새해 벽두, ‘구조조정 모범’ 사업장 소개

  2001년 한해동안 대우조선에서는 11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이 기획에서 한겨레는 옥포 대우조선, 의류회사 신원, 중대형 컴퓨터 업체 한국컴퓨터,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 대우건설, 영창악기, 일동제약을 다시 뛰는 모범 사업장으로 소개했다. 일곱 군데의 사업장에 임직원이 피와 땀을 흘려 힘을 합쳐 어려움에 빠진 회사를 구했다고 공통분모를 부여한 한겨레는 옥포 대우조선에는 “워크아웃 2년반만에 전성기 눈앞, 채권단 주주 희생+노동자 땀방울, 경쟁력 신뢰관계로 세계1위 실적” 평택 만도에는 “만도는 국내 자동차부품회사 가운데 드물게 세계적으로 기술력을 인정받는 회사다” 등의 비슷비슷한 찬사를 보냈다.

한겨레가 ‘다시 뛴다’에서 소개한 회사들의 ‘성공요인’으로 지목한 부분도 대동소이하다. 신원에 대해서는 “최고 2400명에 이르렀던 직원은 이제 1천명도 안된다. 90년대 중반 확장일로에 있을 때 13개까지 늘어났던 브랜드 수도 지금은 5개만 남았다. 채권단이 “너무 줄이는게 아니냐”고 만류할 정도였다. `죽느냐 사느냐'가 문제라는 인식이 이런 아픔을 견뎌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라고 비장하게 소개하고 있고 한국 컴퓨터에 대해서는 ”1000명 가까이 되던 직원 수도 700명선으로 줄였다“ 라고, 영창악기에 대해서는 ”위기를 맞은 영창의 처방은 간단하면서도 강력했다. 창업주 김재섭 회장이 물러나고 2세인 김재룡 전무와 현 대표이사인 정낙원 이사가 경영일선에 나서면서 대대적인 인원감축이 시작됐다“라고 소개했다. 회사 이름과 감원 숫자만 바꾸면 어디가 어디 이야기인지 구별이 안될 정도다.

그런데 한겨레가 ‘다시 뛴다’고 소개한 사업장들의 현실을 지난 2002년 당시에도 한겨레의 보도와는 달랐고 ‘다시 뛰는’ 사업장들의 직후 행보도 ‘구조조정 전도사’한겨레의 장밋빛 전망과는 달랐다.

김정곤 전 대우조선 노조 위원장, “한겨레를 이용한 사측의 선전이 먹혔다”

한겨레는 “세계 조선회사 가운데 1위의 실적”인데다가 “”혹한의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옥포 앞바다에는 훈훈한 바람이 감돌고 있다“고 2002년 정초의 대우조선을 설명했지만 2001년 에 이미 대우조선 노동자들의 근골격계 질환 유병율은 82.37%에 달했고 비정규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2002년 정초부터 대우조선 노동조합은 대대적인 근골격계 투쟁을 전개했고 사측은 조합원 가정방문등을 통한 회유와 압박으로 맞대응했다.

결국 2002년 2월 76명의 조합원이 근골격계 질환을 이유로 산업재해 신청을 했고 다음 달 전원이 산재 승인을 받는 이례적 사태가 발생했다. 같은 해 4월 4일 사측은 600여명의 구사대를 동원해 인력부를 점거하고 농성중이던 노조 집행부를 폭행, 해산시켰고 이에 맞서 서울로 올라와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김정곤 당시 노조위원장은 긴급 체포되어 구속됐다. 이 모든 일들이 한겨레의 찬사로부터 불과 3달 이내에 벌어진 일들이다.

“당시에는 조합원들이 한 달에 한명씩 죽어나가던 상황이었다”며 “2002년 국감에 대우조선 사장까지 불려나갔을 정도”라고 회상한 김정곤 전 위원장은 “그 때 각 언론에서 대우조선에 대한 선전이 어마어마 했다”고 덧붙였다. 김정곤 전 위원장은 “사측에서 발행하는 ‘함께가는 배’라는 사보가 있는데 회사 선전하는 언론 기사들을 그대로 복사해서 실었고 한겨레의 그 기사도 실렸었다”며 “게다가 한겨레는 노조에 가까운 신문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한겨레를 이용한 사측의 선전이 먹혀들어가 투쟁에 걸림돌이 됐었다”고 2002년을 돌이켰다.

“만도가 단시간에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기술에 대한 집념을 꺽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성공 이유’를 설명하며 “(98년에)상여금 반납, 급여삭감에 인원도 30% 가량 줄였다”고 한겨레는 간단히 덧붙였지만 만도의 구조조정은 글자 그대로 피가 튀었다. 97년 12월 구제금융 정국의 신호탄으로 한라그룹 부도가 발표된 이후 화의를 거친 만도는 노동자들에게 일방적 정리해고를 통보했다. 정리해고의 첫 케이스로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됐던 현대자동차에는 그나마 ‘중재단’이라도 나섰지만 만도의 경우는 달랐다. 정부는 98년 9월 3일 아산과 평택등 만도기계의 전국 7개 사업장에 헬기와 중장비로 124개 중대 1만4000명의 경찰병력을 투입해 2482명의 조합원을 연행했다. 검찰은 이 가운데 200여 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100여 명에 대해서 무더기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모든 구조조정 끝났다던 영창악기의 이후 행보는

“경기침체에 허덕였던 지난해(2001년)에도 매출액 1460억원, 경상이익 30억원의 실적을 올려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99년까지 이어지던 3년 연속 적자에서 완전히 탈출했다”며 “외환위기로 회사가 휘청거렸던 1997년 이후 영창악기는 올해 가장 가벼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고 있다”라는 영창악기의 이후 행보는 비극에 가깝다.

한겨레는 “경영진은 지난해(2001년) 10월 인력감축을 마지막으로 ‘모든 구조조정을 끝냈다’고 선언하고, 올해를 `결실의 해'로 설정했다“고 사측의 발언을 중계했고 영창악기 사측은 노조와 2002년 1/4분기 노사협의회를 열어 ‘고용안정협정서’를 작성했다. 그러나 영창악기 사측은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2003년 2월에 460명을 정리해고 하겠다는 정리해고 계획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노조의 파업으로 2003년 2월의 정리해고는 막았지만 결국 영창악기 사측은 2003년 12월 절반에 가까운 노동자들을 정리해고했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에 대해서 2년간 고용안정을 유지하겠다는 고용안정합의서를 제출했으나 2004년 3월에 48%가 넘는 지분을 삼익악기로 넘겨 회사에서 손을 털었고 결국 2004년 9월 영창악기는 최종 부도처리 됐다. 충실한 구조조정의 비장한 결말인 셈이다.

"노사 새시대“

같은 해인 2002년 10월 부터는 “갈등과 대립의 노사관계가 계속돌 경우 기업과 노동자는 물론, 사회 전반적이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바람직한 노사관계는 어떠해야 하며 그를 어떻게 추구해나갈 것인가를 시리즈로 살펴본다”는 명분 하에 ‘노사 새 시대’라는 기획이 시작됐다. 이 기획은 2005년 3월 말까지 진행되고 있다.

‘변하는 세상, 안 변하는 노사관계’라는 첫 꼭지에서 한겨레는 “우리 노사관계가 만성화된 대립과 갈등, 불신의 구도를 가지고 있”다며 국책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 간부의 “87년부터 2001년까지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차질 규모를 32조원, 수출 차질 금액 86억달러, 노동손실 일수는 3830만일”이라며 “파업이 끝난 뒤 노사갈등 심화, 노동자의 애사심 저하, 근무기강 이완, 우수인력 퇴직, 도산기업 발생 등 간접비용까지는 계량화하기도 어렵다”는 말을 전했다. 또한 한겨레는 “세계경쟁력연감(IMD)에 따른 한국 노사관계 국제경쟁력 순위는 조사대상인 48~49개국 중 2000년에는 44위, 2001년 46위, 2002년 47위로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고 덧붙였다.

“민노총위원장 선거·총선 ‘변수’”, “대기업 최고 경영자 ‘노사안정이 최대과제’” “김종창 금통위원 ‘중립’ 노조에 확약뒤 정상출근” “40년 무쟁의 도요타를 보면” “하투 속 ‘노사상생의 길’핸들 놓칠라” “정부 법치 어겨 강성노조 더 강성”...노사 새시대라는 기획하에서 3년에 걸쳐 나온 기사들의 위와 같은 제목만 봐도 내용은 거의 짐작이 된다.

물론 한겨레는 2001년 언론사 가운데 거의 최초로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기획을 진행하기도 했고 빈부격차, 재벌 총수의 전횡등에 대해서도 지속적 비판보도를 펼쳤다. 그러나 그 비판 뒤에 대안은 꾸준히 구조조정 혹은 노사 화합이었던 셈이다.

2003년 5월, 창간 15주년을 맞이한 한겨레는 “금융자본 '제국'”이라는 주제의 특집 기사를 실었다. ‘국경없는 불가사리 헤지펀드 투기 세계화 첨병’라는 기사에서 한겨레는 “헤지펀드는 자본의 국경을 무너뜨리며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통일시킨 주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세계 각국의 자립경제와 안정적 성장기반을 파괴하는 야만성을 드러내기도 한다”고 규정했다. 창간 10주년이던 98년 5월 나온 ‘금융자본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기사가 5년만에 다시 변주된 것이 흥미롭다.

2004년, ‘상생’의 등장
  삼성은 자신들의 경영철학을 '나눔과 상생'이라 밝히고 있다

한겨레의 상생은 2004년부터는 단순한 구조조정이나 노사화합의 수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상생’이라는 두 글자가 한겨레 지면에 부쩍 자주 등장한 것도 바로 2004년 부터다. 또한 한겨레는 ‘상생’ 구호와 더불어 대기업의 ‘밝은 면’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월부터 시작해 2월까지 진행된 한겨레의 2004년 첫 기획의 제목은 ‘상생의 기업경영’ 이었다. 한겨레는 이 기획의 첫 순서로 미국의 종업원 소유기업 SAIC을 소개했다. 이 기획의 세 번째 순서에서 한겨레는 영국의 ‘사회적 기업’을 소개했다. 이 때부터 ‘사회적 기업’에서 더 확장된 개념인 ‘사회적 일자리’가 일자리와 복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대안으로 선전되기 시작했다.

같은 기획에서 스페인의 몬드라곤 그룹, 네덜란드의 필립스, 한국의 유한 킴벌리등 ‘모범적 기업’들이 상생 사례로 소개됐다. 공교롭게도 2004년 2월 정부와 사용자측 그리고 한국노총은 ‘임금 안정’을 전제로한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을 체결했다.

2004년 6월부터는 ‘상생의 기업 경영’과 단어 배열만 바뀐 “기업-사회상생 ‘지속가능’의 길”이라는 기획 기사가 나왔다. 1월의 기획에 비해 훨씬 더 구체적 사례가 한겨레 지면을 통해 소개됐다. 3부로 나뉜 이 기획의 1부는 ‘공존하는 기업이 강하다’이고 첫 기사는 ‘사회 공헌은 필수투자’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모범사례로 제시된 글로벌 무노조 기업들, 삼성·월마트·MS

이 기획의 첫 기사와 함께 실린 관련 사진이 삼성전자가 제공한 삼성전자 직원들의 해외봉사활동 모습인 것, 그리고 모범 사례로 삼성 간부의 인터뷰를 사진과 함께 실어놓은 것이 눈길을 끈다. 한겨레와 인터뷰한 삼성 간부는 “사회공헌은 최고경영자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우리사회는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 하여튼 기업의 사회공헌에 관한 이 기사에는 ‘삼성’이라는 단어가 16회 등장한다.

‘공존하는 기업이 강하다’에서 공존해서 강한 사례로 소개되는 기업들의 면면은 아주 ‘화려’하다. 삼성과 더불어 ‘글로벌 무노조 기업’으로 유명한 월마트가 동네 구석구석에 맞춤 지원을 하는 지역사회와 모범 결합 사례로 소개됐다. 한겨레는 역시 글로벌 무노조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꿈의 세계를 현실로’ 만드는 기업이자 ‘빈곤해결의 전도사’로 규정했다.

상생의 대표주자는 역시 삼성

‘공존하는 기업이 강하다’의 첫 기사인 ‘사회공헌은 필수투자’에서 집중적으로 거명된 삼성은 '사회공헌도 경영전략‘이라는 일곱 번째 기사에를 통해 다시 한 번 개별 기사로 한겨레 독자들을 만났다. “삼성 ‘전략적 공헌’ 돌아보면 기쁨 두배”라는 부제가 붙은 이 기사를 읽으면 ‘역시 삼성’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한겨레는 삼성 관계자가 전했다며 “연인원으로 따지면 43만5천여명이 120만2천 시간의 봉사활동에 참여했다고 한다. 또 같은 기간 공익사업과 기부협찬, 봉사활동 지원 등에 들인 예산은 무려 3554억원이나 된다. 최근 대기업들이 앞다퉈 사회공헌 활동에 나서고 있지만, 삼성의 봉사 조직과 물량은 현재까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중계했다.

이 기획의 첫 기사인 ‘사회공헌은 필수투자’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한 삼성 간부는 ‘사회공헌도 필수투자’라는 기사에 또 등장해 “이제는 기업 사회공헌이 보편화하는 추세인 만큼, 백화점식 사업을 하기보다는 특화된 영역에 역량을 집중할 필요가 있는데 삼성의 위상 때문에 어디 한 군데서도 발을 빼기 어렵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또 “삼성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일반 어린이집 사고 때보다 훨씬 심한 질책과 항의가 쏟아진다”며 “삼성의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때로 너무 부담스럽다”고 ‘고충 아닌 고충’을 전했다.

한겨레의 집중 소개에 힘입어 스타가 된 발렌베리

  사브자동차도 발렌베리 그룹의 주요 자회사중 하나다

한겨레가 전하는 상생은 이런 미담이나 미시적 사례 전파 수준에 그치지 않고 전사회적 협약, 국가발전 전략에 까지 미친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지난 2003년 7월 스웨덴의 발렌베리 그룹의 지주회사인 인베스터와 핵심 자회사들을 방문한 바 있다. 구체적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발렌베리 그룹의 자회사들이 스톡홀름 증권 시장의 40%를 차지 하고 있는 점이나 발렌베리 가문이 5대에 걸쳐 회사를 지배하고 있는 점, 게다가 발렌베리 가문은 1938년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고율의 세금을 납부하는 대신 가족 지분에 대한 차등의결권을 인정받아 기업 지배를 공고히 한 점 들을 감안하면 방문 이유는 자명하다는 설명이다.

한겨레는 이건희 회장의 스웨덴 방문으로부터 7개월이 지난 2004년 2월 외부 고정 필자의 ‘경영·통제 분리의 중요성’이라는 칼럼을 통해 “스톡홀름 주식시장의 40%에 달하는 거대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발렌베리 가문은 5대에 걸쳐서 ‘가문의 영광’을 지키고 있다” “경영과 통제의 분리는 현실적으로 대주주 가족들이 고도의 자제력을 발휘할 때에만 성공할 수 있다. 군림하되 직접 통치하지 않는다는 영국 왕실의 얘기는 남의 얘기만은 아니다”라며 이른바 발렌베리 논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로부터 약 세 달이 지난 2004년 5월에는 ‘재벌-사회 대타협통한 공존모색’이라는 창간특집 기사를 통해 발렌베리가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됐다. 이 기사에서 한겨레는 “이런 재벌가(발렌베리)의 엄청난 경제력 집중에 대해 정작 스웨덴 국민들의 정서는 부정적이지 않다”며 “대기업 오너들이 국가 경쟁력을 위해 투자하고,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스웨덴 총리의 발언을 덧붙였다. 발렌베리에 대한 한겨레의 설명을 좀 더 들어보자. “발렌베리의 부와 경영 세습은, 고율의 소득 누진세와 노조의 경영 참여를 수용하고 불황기엔 적극적인 고용 투자에 나서는 등 사회와의 ‘공존의 약속’을 충실히 지킨 대가인 셈이다”

같은 달 한겨레가 발행하는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 21은 아예 발렌베리 이야기를 커버 스토리로 실었다. '발렌베리는 삼성의 미래다?‘ ’발렌베리는 어떤 곳인가‘ ’‘프레드릭 린드그렌 인베스터(발렌베리 그룹의 지주회사) 부사장 인터뷰’로 구성된 이 커버스토리에서 그려진 발렌베리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회사 경영자들이 단기 실적에 좌우되지 않고 소신껏 장기 전략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이른바 ‘오너 경영’의 장점을 잘 발현하는 모범적 기업이다.

물론 이코노미 21은 ‘발렌베리는 삼성의 미래다?’에서 발렌베리가 채택한 지주회사 제도를 삼성이 도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계를 지적하는 것도 잊지는 않았다.

삼성,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안으로 우뚝 서다

그러나 이미 발렌베리는 한국 사회에서 스타가 되버렸고 대재벌의 경영세습을 인정한 살트셰바덴 협약은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투기적 속성을 지닌 해외자본을 우려하며 설립된 ‘진보적 단체’인 ‘대안연대회의’는 재벌의 지배권을 인정하자는 ‘급진적 주장’을 내놓기도 했고 월간 `말'지 2004년 6월호는 `대안없는 한국경제 "삼성만 잡으면 된다"'라는 기사를 통해 "정부가 이제 이들을 풀어주고 양보와 화합을 끌어내야 할 때"라며 정부와 한국 사회가 이건희 일가의 지배권을 인정하자고 주장했다.

급기야 삼성은 미국식 주주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2005년 1월 31일 한겨레는 ‘희망 앞으로’라는 삼성그룹 전면 광고를 시작으로 ‘대한민국 희망 만들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한겨레식 상생이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특별기획 : 굿바이 한겨레]

(프롤로그) - 88년의 운동권 신문, 2004년 업계 4위로
1회 - 한겨레, 그 벅찬 전사(前史)
2회 - ‘민주화’의 도래 그리고 시작된 변모
3회 - 새로운 이너서클
4회 - 상생? 상생!
5회 - 인간의 얼굴을 한 신자유주의 가능한가?
6회 - 노동운동을 순치시켜라!
7회 -‘그들’과 ‘우리’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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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 구조조정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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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남철

    한겨레가 삼성을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내세웠다는 주장은 좀 나아간 듯...웹에 삼성광고는 많지만 한겨레는 삼성에 그나마 비판적이지요. 오히려 기사중 어떤 경우엔 삼성도 주주자본주의를 제대로 하라고 비판하는 것 같긴 하지만...삼성이 주주자본주의의 대안이 되기엔 2% 이상이 부족하지요. 뭐 거의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데...삼성이 준 주주 배당금만 해도 아마 국내 아니 세계에서...

  • 에공

    가르치는 --> 가리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