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장 노동운동의 위기, 비정규직 연대가 관건

[특별기획 : 2005년 한국의 노동자](8) - 대공장 노동운동의 현주소①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은 점차 관료화, 개량화 되어가고 있다’, ‘조합원들은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는 실리주의에 빠져있다’, ‘수천만 원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임금투쟁을 하는 것은 집단 이기주의다’,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하고 연대투쟁에 나서지 않는다’, ‘금품비리, 채용비리 등 노동조합 간부들의 도덕성 수준이 심각하다’는 말들은 최근 대공장(대기업) 노동운동, 노동자들에게 쏟아지고 있는 비판의 목소리들이다.

대공장 노동운동에 대한 정권과 자본의 공세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특징은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이와 비슷한 내용의 비판이 제기되며 ‘노동운동의 위기’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1987년 울산에서 촉발돼 전국적인 노동자 대투쟁을 불러일으켰고 90년대까지 노동운동사에 남을 전투적 투쟁을 해왔던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은 2005년 현재 자타 공히 ‘변화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이미 전체 노동자 수의 절반을 훌쩍 넘은 비정규직 문제, 누구나 ‘위기’를 말하고 있는 현재 조건에서 대공장 노동운동에게 주어지는 역할과 과제는 뭘까.

대공장 노동운동의 명암, ‘투쟁의 주역’에서 ‘위기의 주범’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중투쟁으로 기록되는 87년 7,8,9월 노동자대투쟁부터 96,97년 총파업의 10년간 대공장 노동조합이 해온 역할은 남달랐다. 87년 7월 울산 현대엔진에서 노조를 결성하며 일으킨 파업투쟁은 구로와 마창 지역, 운수와 사무직 노동자들로까지 확대되며 그야말로 전국적, 전산업적 투쟁을 형성했다.

9월 4일 울산 현대중공업과 부평 대우자동차에 공권력이 투입되며 소강을 맞기까지의 기간 동안 3,300여 곳의 공장에서 3분의 1 이상의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에 참여했고 1,300여 개의 노조가 새로 생겨났다. 이로써 대기업의 남성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이 자연스레 노동운동을 주도하게 됐다.


이 투쟁의 성과로 그전까지 공장 내 군대식의 폭압적 현장통제가 상당부분 무력화됐고 20-30%의 임금이 인상됐다. 89년에는 5월 1일 노동절을 되찾았고 민주노조에의 열망과 노동자 의식 향상은 90년 전노협 결성으로 이어진다. 곧 이은 현대중공업 골리앗투쟁과 전국총파업, ‘연대를 위한 대기업노조회의’ 결성, 박창수 강경대 열사투쟁, 93년 현대그룹노동조합총연합(현총련) 공동 임투, 94년 전지협(철도) 투쟁, 95년 한국통신 투쟁, 95년 민주노총 창립과 96,97년 총파업에 이르기까지 대공장 노동조합은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를 겪고 김대중 정부가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공세를 펼치면서 자본의 대응도 본격화됐다. ‘정규직’이라는 단어조차 자주 쓰이지 않았던 노동시장엔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으로 급격히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해졌고 이들의 자리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채워졌다. 1998년 현대자동차와 2001년 대우자동차에 수백, 수천 명의 정리해고가 단행되었고 이에 저항하여 투쟁한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에 의해 수많은 부상을 겪어야 했다.

전 산업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 광풍은 공공부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공기업 인력감축과 민영화에 저항하는 철도, 발전 노동자들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착실한(?) 공공부문 구조조정 계획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정신없이 각 사업장에 몰아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투쟁은 전국적인 투쟁전선을 채 형성하기도 전에 무력화됐고, 죽고 다치고 해고되고 구속되는 과정을 거치며 노동조합 지도부는 조금씩의 후퇴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강화된 현장통제는 현장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으며, 불안정한 미래와 해고에 대한 불안감은 잔업, 철야, 특근을 좀 더 해서 많은 돈을 벌어놓자는 심리를 낳았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조건에 놓여진 정규직 노동자들에겐 어느 순간 절반을 넘어선 비정규직과의 연대투쟁도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5년 불거진 노동조합 간부의 금품, 채용비리 사건으로 대공장 정규직 노동조합의 도덕성마저 의심받고 있다. 거칠게 다루었지만 내외부에서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기까지의 대공장 노동운동의 경과는 대강 이렇다.

“기획된 비리 폭로, 민주노조 운동을 공격하는 무기로 쓰였다”

보다 구체적이고도 극명한 사례가 ‘현대중공업노조’에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진원지인 울산, 그곳에서 현대중공업노조는 88년 128일간의 파업투쟁, 90년 골리앗 파업, 94년 68일 파업, 95년 양봉수 열사 투쟁, 96년 임단투 투쟁까지 노동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

2002년 민주파 집행부 사무국장의 금품비리 사건을 기회로 세력을 잡은 어용 집행부는 87년 이후 역사에서 앞장서 싸우다 해고된 12명의 해고자를 ‘청산’했다. 지난 해 초에 발생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박일수 열사의 분신 사건에 대해서는 연대투쟁이 아니라 오히려 사내하청노조의 투쟁에 자제를 촉구하는 등 물의를 빚다가 상급단체인 금속연맹에서 ‘제명’됐다. 지난 6월에는 ‘노사가 상생하기 위해 기업 경쟁력 강화에 힘쓰자’는 내용의 ‘신 강령’을 선포하는 등 협조주의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이에 반발하며 기자회견을 연 현장조직 활동가들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까지 했다.

현대중공업 해고자인 조돈희 울산해고자협의회 의장은 ‘신경영전략이라는 노동자 착취구조가 2002년에 비로소 완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파 집행부 시절에도 사측은 이미 대의원 등 의결단위를 장악해 들어갔고 한편으론 현장 통제를 강화하면서 기회를 엿보다 비리 사건이 터지자 권력을 완전히 접수해 버렸다는 것이다. 조돈희 의장은 “현대중공업의 노동조합 운동은 민주파가 서서히 맛이 가면서 개량화, 우경화된 과정이라기보다 사측의 준비 끝에 급격하게 어느 시점에서 자본에게 완전히 넘어갔다는 측면에서 다른 대공장 사례와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올해 초 한꺼번에 폭로된 대공장의 채용비리 사건들도 자본에 의해 기획, 의도된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하부영 현대자동차노조 정책개발연구위원회 팀장을 비롯해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활동가들은 “취업비리 폭로는 자본의 불순한 의도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지적해 온 바 있다. 조돈희 의장도 “묵인돼 오던 비리가 자본과 정권에 의해 폭로되면서 민주노조 운동을 공격하는 기제로 이용됐다”며 “실제로 이런 현상이 드러나고 있는데 ‘정권과 자본의 프로젝트는 아니다’고 말한다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같은 비리 사건으로 대공장 노동운동이 일정한 타격을 받은 것이 사실인 만큼, 내부에서도 반성과 자정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해당 노동조합들의 해명이나 사과, 재발 방지 노력의 의지를 담은 성명서나 기자회견은 물론 민주노총 조직혁신안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를 다뤘다. 하지만 이를 노동조합 활동가 개개인의 도덕성 문제로 치환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많은 문제제기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기아자동차노조에 이어 전직 노조간부의 취업비리 연루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현대자동차노조는 지난 6월 21일 ‘채용비리 문제와 노조활동 혁신방향’에 대한 공개토론회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채용비리에 징계 등으로 엄중히 대처하고 노동조합을 혁신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았지만 채용제도의 낙후성과 전 근대적인 노무관리 등 채용비리가 일어나게 된 구조적 원인을 짚기도 했다. 한편으론 비리로 인한 정권과 자본의 전방위적 공세가 향후 투쟁을 압박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덧붙여졌다.

이에 앞서 1월에는 현대자동차노조 승용1공장 대의원회가 솔선수범, 언행일치, 비방금지, 규율준수, 비리척결, 불의배척 등 총 10개 항으로 이뤄진 ‘행동강령’을 제정하기도 했다. 행동강령에는 ‘거짓말을 절대 하지 않는다’, ‘인사청탁과 수수행위, 향응제공을 단호히 배척한다’, ‘4시간 이상의 조문과 사행성 도박을 근절한다’, ‘사적 업무를 위한 차량 이용과 불필요한 외식을 금지한다’는 등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들이 적시돼 있다.

행동강령 제정의 발단에는 기아자동차 입사비리 사건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숨겨진 치부가 드러난데 따른 위기의식이 있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론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라는 기득권층, 그 속에서도 권력화 되어가고 있는 대의원들의 각성을 촉구하고자 한 것이었다.

1공장 대의원회는 행동강령 제정의 배경으로 ‘87년 이후 노동조합이 한국사회에 또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하며, 민중과 노동자 대중이 쥐어 준 힘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일부 기득권층을 양산하여 계급간의 분열을 조장한 부정적 결과도 낳았고, 현장으로 들어가면 노사관계, 대의원과 조합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불의에 담합하고 타협하면서도 잘못을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대공장 노동운동과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이제 한편으로 자본의 대공장 이데올로기 공세에 맞서며, 다른 한편으론 위치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성실히 하여 인정받는 내부 혁신을 요구받게끔 된 것이다. 관련해서 제기되는 과제로 크게 두 가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연대기금, 대공장의 ‘사회적 책임’인가 ‘양보와 희생’인가

가까이는 지난 7월 투쟁을 시작하여 결국 노동부의 직권중재라는 초유의 사태로 막을 내린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에서 작년 여름 궤도 3사의 공동파업, LG칼텍스노조의 파업 과정이 보여주듯 자본과 언론의 ‘고임금 정규직노조의 집단이기주의’ 공세는 이미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대표적인 완성차 공장인 현대자동차에서, 밖에서 인식하듯 6천만 원의 연봉을 챙기려면 OECD 국가들의 평균 연 총노동시간의 두 배인 2,500시간 이상을 노동해야 하고 이마저도 모자라 잔업과 24시간 특근 철야를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로도 위의 고임론을 쉽게 반박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은 기본적인 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을 정도의 지독한 저임금과 선택이 아닌 강요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상존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같은 극심한 노동시장의 양극화는 결국 노동운동 내부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어 자체적인 활로를 모색하게끔 되었고, 더불어 상대적 고임금과 안정적 일자리를 향유하고 있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로서의 ‘사회적 책무’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의 한 방안으로 제기된 것이 2004년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연대기금’(혹은 사회공헌기금)이다.

‘연대기금’은 말 그대로 대공장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겠다는 것이고 ‘사회공헌기금’으로 지역사회발전에 기여하겠다, ‘산업발전기금’을 조성해 자동차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등의 몇 가지 형식이 제출됐지만 기본적으론 대공장 노사가 공동으로 그만큼의 ‘사회적 책임’을 나누어 맡겠다는 의도에서 기인한다. 이는 사측은 물론 노동운동 내부의 비판에도 직면한 바 있으며 2004년 대공장 노조의 임단투에서도 완전히 반영되지 못했다.

통칭 ‘연대기금’ 조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 이유에는 자본의 논리인 ‘정규직의 임금 양보’를 수용하게 되는 것에 대한 우려, ‘임금 동결’에 대한 두려움, 비정규직 양산에 대한 자본의 책임 축소 반대, 시혜적 접근 비판 등 다양하다. 그러나 연대기금을 주장해온 대표적 활동가인 조건준 금속연맹 정책국장은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기관지를 통해 ‘영세부품업체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에서 보자면 완성차 대공장의 이윤은 실제로는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와 비정규직을 수탈한 결과’라며 순이익을 ‘비정규직과 중소영세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더 합당’하다고 반박한 바 있다.

조건준 국장은 또 ‘노동자 군대에서 한편은 군량미도 많고 대우도 나은데 적군은 군량미가 적고 대우가 나쁜 한편과 끊임없이 이간질을 시키고 있다’고 비유하고 ‘대공장 노동자들의 연대를 위한 노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한 우려와 반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기금’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자는 발상이 ‘정규직의 기득권 때문에 비정규직 처우개선이 되지 않고 있다’는 정권과 자본의 논리를 정면투쟁으로 무력화시키지 못한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이정현 노동자의힘 경제분석팀장은 “연대기금은 노동자 살해 프로젝트다”라고까지 비판한 바 있다. ‘고임금’이란 사실 자본측이 조장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일뿐더러, 무기력한 노조운동에 대해 깊은 패배의식과 함께 비정규직에 대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자본의 전략에 대한 단호한 투쟁이 아닌 ‘연대기금’으로 활로를 찾자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또 노동자가 자본가에 ‘기금’이라는 공세를 취한다면 노동자에 대한 수백 배의 자본측의 공세가 들어올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한다. ‘대공장 고임금론’ 자체를 거부하는 활동가들은 고임금 이데올로기는 자본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대공장 노동자 스스로의 양보가 아닌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실질적인 연대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과제라고 주장한다.

여전히 큰 몫인 비정규직 투쟁

결과적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남는 것은 비정규직과의 연대 문제다. 최소한 정규직 대공장 노동운동의 중요한 역할이 비정규직과의 연대라는 점은 부인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투쟁이 노동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부각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수많은 비정규직 노조들은 이미 규모는 작아도 전국에서 어려운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아직도 인지하고 있지 못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 수준의 한계, 조합원들의 바램을 좇아 실리만을 추구하게 된 노동조합 집행부, 이로 인한 현장 투쟁력과 집행력의 약화 및 내부갈등, 투쟁하고자 하는 현장활동가와 조합원간의 괴리 등 악순환은 지역에서 투쟁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는 커녕 자기 사업장의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하기도 어려운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노조의 2005년 임단협 잠정합의안이 12일 찬반투표에서 95%의 투표, 64%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임단투가 마무리된 데 대해서는 다른 이유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지만 합의한 내용에 대해 굳이 의미를 부여하자면 완성차 업종에선 최초로 2009년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게 된 점이라는 평가가 있다.

여타 대공장의 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일 테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도 결코 덜하지 않을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장시간 노동의 현장에서 심야노동을 철폐했다는 것은 중요한 진전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자동차노조의 이번 임단투 마무리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바로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돼 있었기 때문이다.

계급적 노동운동을 지향해 온 민투위에서 집행부를 배출하며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걸었던 남달랐던 기대는 노동조합 집행부와 함께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긋나거나 삐걱이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최근까지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대한 공동의 요구, 원하청연대회의를 통한 공동투쟁에의 믿음으로 유지돼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최근 고 류기혁 열사의 자결을 둘러싸고 현차노조에서 보였던 소극적 태도에 실망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돈희 의장은 “현차노조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공동투쟁을 시작할 때 ‘임단협과 연계해서 힘있는 불파투쟁을 벌이겠다’던 스스로의 약속마저 저버렸다”고 평가했다. 그나마 대중투쟁 동력을 끌어모을 수 있는 임단투 기간을 서둘러 단축한 것은 열사투쟁에 따르는 부담에서 회피하고자 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조돈희 의장은 “기대하고 싶진 않지만 ‘1개월 이내에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하겠다’는 합의에 실낱같은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도 말했다.

비정규직 투쟁, 사내하청 노동자 문제에 정규직 노동조합이 얼마나 크고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위기 인식’이 있으면 해법도 있다

올해 초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이 노동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73.5%가 ‘대공장 정규직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9.3%가 ‘동력이 되는 일부 연맹 또는 대공장 의존도가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직 내부의 문제점으로는 ‘현장조직력 약화’와 ‘단기적 이익 중심의 조합원 실리주의’, ‘기업별 노조 체계의 한계’ 등을 지목했다.

노동조합 간부들이 인식하고 있는 이와 같은 문제점과 서두에 제시한 대공장 노동운동에 대한 비판 지점들은 역으로 대공장 노동운동이 해 나가야 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전투적인 투쟁으로 노동 현장을 바꿔낸 이력이 있고 현재도 잠재력과 폭발력이 상당한 대공장 노동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정권과 자본이 치밀하게 준비해온 시나리오가 서서히, 그러나 제대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대공장 노동운동은 비판의 목소리들 중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 공세는 뭔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분할하고자 하는 시도는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제대로 가려내어 대응하는 한편 비정규직과의 공동 투쟁으로 이를 무력화시켜야 할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이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결과는 전체 노동자의 고통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작고 부족하더라도 (금호타이어 정규직 노동조합과 철도노동조합 서울지방본부가 각각 금호타이어 비정규직노조의 투쟁과 새마을호 여승무원 정규직화 투쟁을 함께 만들었던 사례처럼) 꾸준한 시도들을 기억한다면 변명과 자숙, 양보와 타협에 급급해온 대공장 노동운동의 전망에 시사해 주는 바는 훨씬 클 것이다.

[기획취재지원] - 한국언론재단

특별기획 '2005년 한국의 노동자' 순서

1회차(8월 22일) 시장화! 유연화!
2회차(8월 23일) 양극화와 사회통합
3회차(8월 25일) 고령화의 진실
4회차(8월 30일) 세상을 바꾸는 이수호 집행부
5회차(9월 1일) 노사대립과 노사정위원회
6회차(9월 6일) 노동운동 위기 논쟁의 촉발
7회차(9월 8일) 위기, 그후
8회차(9월13일) 대공장 노동운동의 현주소
9회차(9월15일) 산별은 정말 대안인가
10회차(9월20일) 정규-비정규직 차별, 해답은 없나
11회차(9월22일) 해외 공장 이전(1)
12회차(9월27일) 해외 공장 이전(2)
13회차(9월29일) 노동운동을 움직이는 사람들
14회차(10월4일) 절망의 현장, 일어서는 노동자(1)
15회차(10월4일) 절망의 현장, 일어서는 노동자(2)


특별기획취재팀
- 유영주 편집국장
- 최하은 기자
- 문형구 기자
- 최인희 기자
- 라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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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세상 영상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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