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대공장 기업주의적 체계 벗어나야

[특별기획 : 2005년 한국의 노동자](10) - 정규-비정규직 차별, 해답은 없나①

절반의 임금, 사회보험 가입률 20%대, 퇴직금 상여금 시간외수당 유급휴가는 10%대. 10명 중 7명은 저임금 노동자(OECD 기준). 평균 근속년수는 2년 미만. 수치로 본 비정규직의 현주소다.

2004년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사회의 비정규직은 816만명, 전체 임금노동자의 55.9%로 전년보다 31만명(0.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유연화 정책이 본격화 된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증가하기 시작한 비정규직은 IMF 사태를 계기로 임금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여전히 증가세에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권이나 노동권의 문제를 벗어나, 내수위축에 따른 경제난·근로빈곤층의 확대·사회양극화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총체적 위기의 원인으로도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비정규직은 왜 확대되었고 여전히 확대되고 있을까?

세계화, 비정규직 고용이 불가피하다?

비정규직 확대와 관련한 가장 많은 오해는, '세계화 내지는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비정규직 고용이 불가피해졌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고용에 관한 여섯 가지 신화'(노동사회 2004년 11월호)에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비정규직의 증가 원인과 관련해 제기되어 온 6가지 가설들을 검증하여 그 중 <인사관리전략 변화 가설> <노사간 힘 관계 변화 가설>만이 유의미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비정규직 증가는 '경제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 기업의 인사관리전략 변화, 노조의 조직률 하락 등 행위주체 요인에 기인"한다는 것.


실제로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2004년 8월 현재 광공업(40.0%)과 민간서비스업(72.9%)의 비정규직 비율은 전년과 동일하고 농림어업건설업(77.6%)은 2.0% 감소한데 비해, 공공서비스업(40.0%)은 2.4% 증가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나 노무현 정부가 거듭 주장해 온 '비정규직 보호'라는 수사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비정규직 증가를 주도한 것인데, 이런 이중성은 비정규직을 대폭 확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정부의 이른바 '비정규보호입법'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실효성 여부를 떠나 현 정부의 비정규법안은 낮은수준의 '차별해소'를 위한 조치들과 함께, 기업이 비정규직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과거 김영삼 정부나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96년 겨울의 노동법 날치기로도 이루지 못한 파견법은 정부발표 그대로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1998년 2월 중에 정리해고제와 파견법의 입법을 추진하기로 IMF측과 합의"하면서 시행됐는데, 그 취지는 '파견법의 제정이 불법파견을 규제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를 보호하는 방안'이라는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0월 노동부가 발표했던 '비정형근로자보호대책'은 특수고용노동자를 준 고용자로 규정하고, 근로계약 최장기간을 3년으로 늘리는 기간제 확산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문민정부가 국민정부로 다시 참여정부로 바뀐 것과는 관계없이, 국가는 '비용절감'이라는 기업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해 온 것이다. 그런데 '비정규직화가 기업의 경쟁력을 높인다'는 그동안 당연시되어 온 전제를 뒤엎는 연구결과들이 나온 바 있어 흥미롭다.

비정규직화는 노동계급 무력화의 수단

분명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의 증가로 인해, 기업의 인건비 비중이 대폭 하락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비정규직화가 기업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동생산성 하락이나 영업이익율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비정규직 고용과 기업의 이익', 권순식 고려대 노동대학원 강사, 노동사회 2004년 5월호)

신장섭·장하준 교수도 <기업경영분석, 한국은행 2003년>에서 '외환위기 이후의 인건비 비중 감소가 영업이익률의 향상으로 이어져 기업 경쟁력을 향상시켰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3년 1천43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서 보듯이 이는 '기업업무몰입도의 부족·높은 이직률·비정규직의 낮은생산성'(77.6%)등에 기인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화를 비용절감이나 경쟁력 강화의 측면에서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드 라토 국제통화기금(IMF)총재와 노무현 대통령 [출처: 청와대 홈페이지]
김두한 노동사회과학연구소(노사과연) 연구위원장은 "직접적으로는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해당 노동자의 비용절감을 발생시키고 또한 값싼 비정규직과 실업자를 통해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평균임금 수준을 하향평준화시킨다"고 말한 뒤 "또 하나는 노동자 계급을 분리·통제하는 수단이 바로 비정규직화인데, 미국이 흑백 인종간 대립을 통해 노동계급간 연대를 못하게 만들었듯이 노동자를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취업자와 실업자를 포함한 산업예비군으로 분리하는 것은 전통적인 분리통제와 체제안정의 수단"이라고 밝혔다.

비정규직화는 노동조합의 무력화 내지는 노동계급의 연대를 막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노동기본권을 중심으로 계급적 노동운동을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에 관해서는, 그 열쇠가 노동자 계급의 투쟁에 그리고 일차적으로 당사자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에 달려있음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했다. 비정규직 양산 등 노동유연화의 추진 주체가 자본을 대리하고 있는 정부인만큼 법-제도적인 접근이나 협상을 통해서는 비정규직 문제가 해소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정부 비정규법안에 대한 소위'1+1'이라 불리는 민주노총 집행부의 태도에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이수호 위원장이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듯, 민주노총 집행부는 정부의 비정규법안에서 개악적인 요소가 제거되고 비정규직의 처우가 일부라도 개선되는 내용이 담긴다면 법안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이수호 "대안없는 안티 운동 넘어 사회공공성 투쟁으로", 참세상 특별기획-2005년 한국의 노동자 4회 참조)


이와 관련, 구권서 전국비정규연대회의 의장은 " '권리보장'이 아닌 '보호입법'이라는 말이 내부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구심인 지도부가 비정규 문제를 옳게 바라봐야 한다"며 "1 플러스 1이 아니라 대중적 수준에서 노동기본권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비정규직 투쟁의 목표와 관련, 여전히 '보호'라는 관점을 차용하는데 대해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며 비정규직 투쟁을 주도하고 있는 활동가들이나 노동관계 전문가들의 견해는 '노동기본권 보장'에 모아지고 있다.

윤애림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국장에 따르면 '비정규직화를 추진하는 자본의 이해'란 "노동조건에 대한 최소한의 규제도 철폐하여 노동착취를 극대화하면서 노동조합을 통한 단결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므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노동기본권의 보편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단순히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잔여'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남한 노동조합운동이 투쟁을 통해 쟁취해 온 권리를 자본과 정권이 회수하려 한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

임시·일용직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

다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주체로 세워내기 위해서 민주노조운동진영에 요구되고 있는 것은 기존 정규직-대공장 중심, 기업주의적인 노조 체계의 변화(산별체계로의 이행과는 별개로) 등이다.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비정규직 특히 임시·일용직 노동자들이 노조가입에서 배제되고 있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출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노사연에 따르면 11%대에 머물던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2004년 증가세로 돌아서며 12.4%로 올라갔는데 정규직은 13만명, 비정규직은 7만명이 각각 증가했다. 그런데 새로 조직된 비정규직은 '풀타임 상용직'인 기간제근로(3만명), 특수고용형태(2만명), 용역근로(1만명)였고, 임시일용직이거나 시간제근로자는 거의 없었다. 비정규직의 96.9%가 임시근로자이거나 임시근로를 겸한다는 점에서 노동운동의 조직화 영역에 있어 여전히 큰 구멍이 뚫려있는 것이다.('비정규직 고용과 노동운동-임시근로가 노조가입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중심으로', 김유선 2005)

물론 이같은 문제는 한국만이 아니며, 전 세계의 노동조합들이 거의 예외없이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 증가에 대응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다.

1995년 파트타임 노동자를 위한 태스크그룹을 출범시키고 최대 노조인 TGWU를 통해 링크업 캠페인(파트타임과 임시직을 조직하기 위한 캠페인)을 벌였던 영국노총을 비롯해, 미국 일본 등의 기업별노조체계 내지는 기업주의적 성향이 강한 노조들은 비정규직의 끊임없는 증가에 대해 높은 이직률 등으로 인한 조직화의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산별체제를 토대로 한 유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지만, 참고할 만한 사실은 기업별체제인 나라의 노조들보다 조직률이 높고 비조합원에게도 단체협약이 확대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비정규직 조직화를 위한 외국의 논의' 박영삼 현 한국노총 기획조정국장, 2002 / '외국 노동조합의 조직활동', 정이환 서울산업대 교수, 2000 참조)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와 관련해 김유선 한노사연 소장은 위의 글에서 "기업별 노조를 극복하고 산별노조로 조직형태를 전환해야 하며, 노조가입 방식 또한 기존의 '기업(또는 사업장) 단위 가입' 방식보다는 산별노조 지역지부, 지역노조, 직종노조 등을 통한 '개별 가입'방식을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한다.

정규직-대공장 기업주의적 체계 벗어나야

박종식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차장도 "결국 기존의 노조에서 조직을 하건 아니면 독자조직화 되건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안의 분단을 극복하는 연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이러한 연대를 현실화시키기 위하여 기존의 산별노조운동을 내용적으로 강화하는 것과 아울러 독자 조직화되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조직과 투쟁이 유지될 수 있도록 책임 있는 연대와 지원이 조직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지역노조 혹은 업종노조로의 조직과 관련, "다양한 시도들이 고립, 분산되지 않고 현실투쟁에서 하나의 흐름 속에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2004년 비정규운동대토론회 발제문 '비정규노동자 운동의 평가와 전망' 참조)

비정규직 노동자를 투쟁의 주체로 세워내고 계급적 노동운동을 복원하기 위해서 기존 정규직-대공장 중심, 기업주의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식들이 고민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한편, 산별노조와 관련해서도 많은 비판들이 제기된다. 김유선 한노사연 소장은 대기업노조가 기업별 체제를 고수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는 것과 함께 "산별노조를 건설했다 하더라도 노조가입은 여전히 '기업(또는 사업장) 단위 가입' 방식을 유지함에 따라 비정규직 가운데 특히 임시일용직을 체계적으로 배제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산별노조라는 전망 자체에 대한 비판 역시 존재한다. 여기에는 사회적 분위기나 노동운동의 경험 등에서 큰 차이가 있는데다, 산별이라는 모델을 따라갔던 유럽국가들의 노동운동이 이미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산별노조 모델이 현재 '사회적 교섭' '사회적 합의주의'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사회 협약'(Social Pact)과 큰 개연성을 갖고 있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김두한 노사과연 연구위원장은 "지금 구도에서는 산별에 대한 논의 자체가 노동자 계급 내 기회주의와 협조주의의 전형이며 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비정규직을 놓고 처우개선 협상이나 벌이기 위한 산별체제는 비정규 철폐의 대안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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