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긴 해도 2005년 노동자 투쟁에 있어 이상욱 위원장의 발언과 행보와 실천은 남달리 주목받았다. 노동조합운동의 계급적 노선을 가진 주체여서, 정치조직의 회원이어서, 최대 대공장노조의 위원장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이상욱 위원장의 발언과 행보와 실천에 대한 지지와 비난의 여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점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상욱 현대자동차노조 위원장은 인터뷰 말미에 "요즘 많이 지쳤다"고 언급했다. 자본이나 권력의 탄압에 의해서라기보다 일 때문이라고 했다. 2005년 한국의 노동자의 한 상징인 대공장정규직노동조합 위원장이 겪는 이 '피로'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인터뷰 중 유독 귓전에 남는 몇 대목이 있다. 불법파견 투쟁을 이야기 나누던 중 "현차노조이기 때문에 다 해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얼마 안 남은 내 임기 끝나면 내려가겠지만, 다음에도 또 현차노조만 보고 불법파견 투쟁을 할 거냐"라고 되물어왔다. 또 하나, 현차노조에 대한 민주노조운동의 기대치를 언급하자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서 현중노조와 비교하면서 제2의 현중노조라느니 하는 비판은 정말 수준 이하가 아닌가"라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할 만큼 최선을 다했고,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에도 그렇게 하겠다는 분명한 어조였음에도 불구하고, 힘든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채용비리, 관료화, 빨간조끼, 조합주의, 류기혁 열사, 비정규직 불법파견 투쟁으로 이어지는 질문 하나하나가 덮어두었던 피로들을 더 자극한 건지도 모르겠다.
이상욱 위원장은 채용비리가 터져나왔을 때 "언론사에 신경질적으로 문제제기 하였다"고 말했다. 정부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쏘아 부쳤고,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맞받아 쳤다고 했다. 관료화 문제에 대해서는 회사의 관료화 공작에 맞서는 한편 노조혁신위원회를 구성해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빨간조끼가 노조권력의 상징으로 회자된다는 이야기를 건네자 "빨간조끼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화의 상징"이므로 "지금까지 빨간조끼가 자본에 맞서 투쟁해왔던 노력들을 함께 질문해야" 온당하다고 다그쳤다.
자본의 비정규직 분할 관리를 묻는 질문에는 "하나는 노동자의 노동유연성이고, 하나는 임금 착취"라고 간명하게 대답했다. 따라서 시종일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와 단결을 강조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활동가 모두가 계급적 단결과 변혁의 주체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의 최대 현안인 불법파견 철폐 투쟁에 대해 '1개월내 불법파견 특별교섭 실시'를 합의한 것은 주간연속2교대와 함께 중대한 성과라고 했다. 다만 "류기혁 동지 운명에 대응하는 데 있어 제대로 못해서 그런지 표시가 안 나는 듯 하다"며 서운함을 내비쳤다. 물론 잠정합의안 반대 입장을 표명한 비정규직노조의 입장에서 보자면 애시당초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상욱 위원장은 몸 담고 있던 노동자의힘에 사퇴서를 제출했다. 노동자의힘이 낸 성명과 관련해서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하나는 내가 비록 노동자의힘 회원이고 위원장이지만 노동자의힘 전체가 사과하고 그럴 성질이 못된다"는 것이고 "하나는 노동자의힘 상집 논의에서 현차노조가 류기혁 동지의 죽음을 덮기 위해 잠정합의를 빨리 했다는 기조로 정리한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이다. 인터뷰 말미에 이상욱 위원장 자신이 소속된 "민투위 동지들과 노동자의힘 동지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해 미안하다"는 심경을 피력하기도 했다.
'2005년 한국의 노동자'의 한 상징인 대공장정규직노동조합의 이상욱 위원장, 그에 대해 누가 어떻게 온전한 평가를 내놓을 지 아직은 단정하기 이르다. 자본으로부터 위로부터의 공세에 맞서고, 동시에 노동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문제제기를 받으며 지금도 민주노조운동의 한 복판에 서 있기 때문이다.
준비한 마지막 질문은 거두었다. "이러저러한 대기업노동조합운동의 문제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과 경로로서의 정치조직 운동을 어떻게 보는지..." 다소 가혹한 질문일 터이다.
노조나 노동자에 대한 정치권이나 회사 측 이데올로기 공세는 정말 드세다. 한 예로 임단협 하는데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H사를 거론하면서 임금이 높다고 하고 노동조합이 부도덕하다는 걸 공공연하게 말했다. 대통령의 말은 보수언론들의 노조 죽이기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현차 노조원들이 연봉 7천만 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렇게 보도한 4개 언론사를 상대로 언론중재위에 중재를 요청해 놓았다. 중재위에서는 정정보도를 하라고 하는데 우리가 안 받고 있다. 정정보도 만으로는 안 된다. 또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법적으로 계속 싸우고 있다.
내가 86년에 입사해서 만 19년차를 경과하고 있는데 기본급 130만 원 정도 받는다. 아시다시피 현차는 주야 2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2천5백시간(OECD 국가들의 평균 연 총노동시간의 두 배) 이상을 일하고 잔업과 24시간 특근 철야를 반복해야 한다. 심지어 3천시간이 넘게 일하는 노동자도 있고 1년 열두 달 노는 날 없이 특근 철야 주야 10시간씩 일한다. 그래서 받는 임금이 평균 5천만 원 정도이다.
3천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의 결과로 수령받는 액수로 보지 않고 비정규직노동자의 임금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정부, 자본, 언론이 고임금 공세를 펴는 데 대해서는 전체 민주노총이나 연맹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상반기에는 정권과 자본이 채용비리 문제를 폭로했다. 자본은 대기업노조의 도덕성을 질타하고, 민주노총의 지도부가 고개를 숙이는 해프닝도 있었다. 기아차비리에 이어 현대차비리 문제도 제기되었다. 이것이 설령 자본의 기획이라 하더라도 노동조합 주체로서의 반성의 측면도 중요할 텐데, 노조 채용비리가 생긴 원인을 어떻게 보나
현대차에도 채용비리가 제기되었다. 노조 활동가 중 극히 일부가 채용을 미끼로 돈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지금 형사재판이 거의 마무리 되어가고 두 사람 정도가 남았다. 일단 짚고 갔으면 하는데 '노조 채용비리'라는 말은 타당하지 않다. 이건 정부나 자본에서 대기업 노동자를 죽이는 차원에서 표현된 것이다. 채용 문제 놓고 금품 오고가는 것을 바람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다. 내부 스스로 자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 발생 배경을 보자면 정부한테 책임이 있다. 산업공동화가 심각하고, 일자리 줄어들고, 비정규직 늘리고, 상대적으로 후생복지가 나은 대공장 신규 노동자 일자리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책임이다. 산업정책을 잘못해서 일자리는 없고, 실업자는 늘고, 따라서 의식주 때문에 신규 일자리 찾으려는 사람 입장에서는 돈을 주고서라도 일자리를 가지려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조 파괴 기획공세다 아니다 따지기를 떠나서 빌미를 줘서는 안 되고, 정부와 언론이 그런 일부 문제를 가지고 전체 문제인양 부도덕하다고 떠드는 공세에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노조 채용비리'라는 단어가 부당하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채용비리 관련한 노조의 대응은 어떠했는지
채용 관련한 비리 문제는 노조 활동을 했던 극히 일부의 사람들일 뿐이다. 이걸 놓고 민주노총이나 지도부가 사과를 하는 것은 과도하다. 각계 각 분야가 죄다 비리 천국인데 그에 비하면 노동조합은 깨끗한 편이다.
현차노조 채용비리 라고 할 때 나는 언론사에 신경질적으로 문제제기 하였다. 노조 채용 비리가 아니다. 관리자, 브로커 다 연결되어 있는데 그걸 특정 단위만 집어서 강조하는 건 상당한 의도가 있었다고 본다. 당시 검찰 쪽에도 정확히 조사해서 사법처리 할 것 있으면 하고, 노조 차원에서도 징계를 반드시 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기업노동조합의 관료화, 관료주의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오늘날 관료화 문제는 대기업노종조합 뿐 아니라 민주노조운동 전반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차노조 조합원이 입고 다니는 빨간조끼를 두고 노조권력의 상징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노동조합운동의 관료화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노조는 회사와 항상 대립한다. 대립 속에서 성장도 하고 발전도 한다. 그런데 회사는 한 축으로 노조 활동가들을 관료화하기 위해 끊임없는 공작을 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진행중이다. 현자노조는 노조혁신위원회를 구성했고 여기서 이 문제를 어떻게 대처할지 논의해왔다. 빨간조끼가 노조권력의 상징이라고 못을 박는 것은 객관성 없는 질문이다.
▲ 2005년 단체교섭 상견례 [출처: 현대자동차노동조합] |
질문이 제대로 되려면 '빨간조끼가 권력의 상징이라고 하는데 조합원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식으로 물어야 한다. 돌아보면 빨간조끼는 권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민주화의 상징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빨간조끼가 자본에 맞서 투쟁해왔던 노력들을 함께 물어야 한다. 노조 내부의 관료화 문제는 혁신을 통해 극복하고 잡아가야 할 과제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이 안고 있는 포괄적인 문제라 생각한다. 나부터 포함해서 모든 노동자들이 혁신의 대상이다. 민주노총 차원에서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현차노조는 민주노조운동의 계급적 노선을 견지하는 노조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정규직노조의 한계를 지적하는 데서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관료화 문제와 함께 대공장 이기주의 문제도 시시때때로 도마에 오른다
현차노조를 비롯해서 많은 노조들이 민주노조운동을 주도하고 만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많은 노동자들이 대공장 이기주의를 이야기하는데 일면만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세계적으로 조직노동자 감소하는 시기가 있다. 우리도 98년에는 그랬다. 그때를 제외하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양적인 것 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운동을 강화 발전시키는 데 있어 대공장노조의 역할이 상당히 컸다고 본다.
현장으로 내려가면 현장조직의 난립으로 인한 단점도 있지만, 이런 현장조직들이 있어서 노동조합운동을 바로 세우는 모태가 될 수 있었다. 계급성을 잃지 않고 힘을 모으고 투쟁해온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
질문이 비정규직노조운동과 연관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 산업공동화에 따른 문제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원청과 하청과 부품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문제가 모두 맞물려 있다. 이 문제는 가장 계급적으로 접근할 때만이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건 주체들간의 합의와 단결이다. 어떤 투쟁이든 조직하고 만들어가는 데 있어 전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선언적으로 뭔가를 하고 파업을 조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료화 문제든 이기주의 문제든 더디더라도 전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합의와 단결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2007년 복수노조와 전임자임금지급 문제가 예고되고 있다. 산별 문제와 연관된 문제이기도 한데
아시다시피 두 문제는 올해 정부의 노사관계로드맵 추진에서 핵심적인 문제로 연동되어 있다. 민주노총과 전체 노동운동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결단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를 놓고 다른 방식으로 해결 방안을 찾으려고 하면 소탐대실로 이어질 것이다.
금속노조가 출발 2년이 흘렀는데 상당히 어렵게 활동하고 있다. 복수노조라든가 전임자임금지급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산별노조만이 해결방안이라고 보는 것은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 딱 이것이다 라고 하기 어려운데, 지금 산별에 대한 한계와 문제점을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별 전환 형식이든 산별 건설이든 그 논의가 깊이 있게 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 유럽 몇 나라의 산별을 모범사례로 두고 보다 보니까 오히려 더 큰 고민과 깊이 있는 논의가 안 되기도 한다. 산별 과제는 다양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소산별이나 업종같은 방식은 아닐 것이다. 지역산별도 잘 되면 결속력을 높일 수 있을지 모르나 산별 정신에는 맞지 않다고 본다. 정세와 민주노조운동의 목표와 방향을 보면서 가장 실천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자본은 노동자를 분할해서 관리한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그렇고 비정규직 안에서도 2,3차 하청으로 나누어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를 이간질한다. 제2 제3 하청 구조와 하청노동자 탄압, 간접고용 체계를 통한 중간착취, 원청의 사용자성 불인정을 통한 비정규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말살 기조를 갖고 있다. 현차 비정규직노조의 고용 실태와 사측의 관리가 어떻게 전개되고 있나
현차 같은 경우는 1차가 있고 만도나 아폴로 같은 2차 하청이 있다. 2차 하청은 20개 내외 정도 된다. 회사는 두 가지 이유로 비정규직노동자를 고용한다. 하나는 노동자의 노동유연성이고 하나는 임금 착취 문제이다. 이미 모든 하청에 대해 노동부가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바 있다. 회사에는 협력업체를 관리하는 부서가 있다. 현장지원팀을 통해 관리하는데 협력업체 사장단들은 소사장 형식으로 인센티브를 준다. 여기서 임금 착취를 당한다. 그런 식으로 하청 비정규 노동자가 존재하고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3차 협력업체도 있다. 2차 하청인 아폴로나 만도나 이런 데 소속된 하청노동자들인데 임금 구조가 1차 하청노동자들에 비해 약 70%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다. 노동자 내부를 분리함으로써 노동유연화와 임금 착취를 계속하고 있다.
▲ 6월 비정규직노조 집단가입운동 [출처: 현대자동차비정규직노동조합] |
2003년 후반에 민주노총과 연맹의 방침으로 릴레이 불법파견 진정 들어가는 게 확정된 적 있다.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확정이었다. 그런 결정이 없더라도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 투쟁은 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생각이었다. 작년 8-9월 즈음, 불법파견 진정 들어가고 비정규노조는 한 달 정도 미리 들어갔다. 지난해 계획으로는 올 3월 경에 현대 자본과 싸워야 한다고 보고 조합원 비정규직 교육도 진행한 바 있다.
그러던 중 5공장 비정규직 투쟁이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였다. 정규직, 비정규직 서로가 의견의 차이라기보다 사업 흐름 속에서 엇박자가 나는 경우가 생겼다. 이래서 안되겠다, 양극화와 불법파견 문제 풀어야 할 과제이므로 새롭게 준비해서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단결하면서 갈 수 있겠느냐 고민했다. 그래서 원하청연대회의를 결성하게 되었다.
원하청연대회의 구성은 1월 임시대의원대회에서 결의했다. 현차노조 비정규지회는 아산, 전주, 울산 등 3개 주체가 있다. 원하청연대회의 구성 당시에 울산의 경우 조직력이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어 있었다. 원하청연대회의는 임단협과 맞물려 특별교섭을 진행하고, 임단협은 임단협 대로 분리해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임단협을 매개로 해서 이 기간에 원하청공동투쟁 실천단 구성으로 조직 확대를 결정했다.
한편 임단협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비정규직노조는 공동투쟁과 함께 독자파업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정규직노조 판단에 독자파업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보았다. 현차노조는 임단협 하면서 정규직만의 지회나 사업을 하지 않았다.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하는 집회와 파업을 벌였다. 다만 비정규직노조에서는 비정규직의 독자 파업 시도를 많이 했는데 무산되거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불법파견 투쟁에서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가 진행해온 모든 실천은 여러 각도에서 심도있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그러니까 류기혁 열사 국면과 맞물리면서 현차노조가 투쟁을 회피하고 임단협을 조기 타결했다는 지적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임단협 흐름이 잠정합의로 가는 즈음, 9월 4일 류기혁 비정규직 동지가 운명하셨는데 정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임단협 잠정합의를 두고 당시 류기혁 동지의 죽음을 덮으려고 그리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는데 분명히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류기혁 동지가 누구인지 모를 때부터 추석 전 타결을 놓고 교섭에 임한다고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노동조합에서 임단협이 잠정합의를 한다는 것은 노조 수준의 요구 내용을 회사에서 받아들인다는 건데, 회사에서 받아들이면 노조로서는 더 이상 어쩔 수가 없다. 류기혁 동지의 죽음을 덮으려고 임단협을 서둘러 타결했다는 주장은 밖에서 임단투 상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다.
노조는 대중조직이다. 대중조직은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받아 안지 않으면 대중투쟁 못한다. 잠정합의도 집행하는 몇 사람이 잠정합의를 한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 노조는 8차례 회사측에 불법파견 특별교섭 요구를 했다. 임단협 마지막까지 남은 것도 특별교섭 건이었다. 사용자성 인정을 받아낸다는 것은 노동자 분할 관리의 고리를 잡아내는 의미가 있었다. 회사도 만만치 않았다. 힘겨루기를 하면서 13-4회 휴회와 정회를 거듭했다.
원하청연대회의가 구성되고, 불파 판정을 받아내고, 임단협에서 특별교섭을 이끌어낸 것 등은 그 자체로 성과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차노조의 불법파견 투쟁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류기혁 열사 국면에서 보인 실천과 임단협 타결 시점 문제가 맞물려 비판 여론이 고조되었다. 열사 명칭 문제에서부터 류기혁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전국적인 투쟁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임단협 잠정합의를 했다는 부분 두 가지가 핵심인 듯 하다
처음 소식을 접하고 노조에서 병원으로 달려갔다. 비정규직 단위에서도 이 죽음을 어떻게 볼까 논의가 이어졌다. 다음 날인 5일 새벽 아산지회가 처음으로 열사라고 표명했다. 당시 가장 중요한 것은 '열사냐 아니냐'로 보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음을 택한 것, 바로 비정규직이 착취와 모순의 사회 한복판에 살고 있다는 데 대한 인식이 중요했다.
상급단체에서 왔을 때도 '열사냐 아니냐'가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을 확대할 것인가 여부에 집중하자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 비정규직에서 열사라고 하면 열사다. 정규직에서 그렇다 아니다 라고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보았다. 주체별 판단은 다를 수 있지 않는가.
현차의 경우는 양봉수 열사가 있다. 최경철 동지는 유인물을 배포하다 돌아가셨지만 열사로 불리지 못하고 있다. 최경철 동지는 열사라 봐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안 부른다. 현차노조에는 열사 규정에 대한 엄격한 문화가 있는데 그게 뭐 중요하냐 싶었다. 현차노조에 열사에 대한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열사에 대한 역사성이 있다. 열사냐 아니냐를 규정하는 데 대해 완전한 필요성을 못 느꼈고 비정규직 투쟁을 확대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보았다.
임단협에서 불법파견 특별교섭 건을 8차례 요구했다. 임단협의 핵심 사안이었다. 그리고 회사로부터 특별교섭 받아냈다. 잠정합의 전에 류기혁 동지가 운명했다. 이건 잠정합의와 무관하게 정리되어야 한다. 열사투쟁이든 현차노조에 대한 기대치 차원에서든 좀더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은 여러 이견이 있다고 본다. '열사다 아니다'는 것은 수준 낮은 논쟁이다. 요즘 촛불집회 하는데 상집과 함께 참여한다. 누구든 나서서 불법파견 투쟁을 공세적으로 조직하면 된다. 그런데 현차노조이기 때문에 다 해야 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얼마 안 남은 내 임기 끝나면 내려가겠지만, 다음에도 또 현차노조만 보고 불법파견 투쟁을 할 거냐.
현차노조는 계급적 노동조합운동을 표방해왔고, 대공장노조로서의 힘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 투쟁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운동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기대치를 충분히 충족하지 못했다. 많은 반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했다고 해서 현중노조와 비교하면서 제2의 현중노조라느니 하는 비판은 정말 수준 이하가 아닌가.
조금 더 들어가보자.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 주체들간에 임단투 전술논의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여러 견해가 있었다. 정규직노조는 '임단투에서 특별교섭까지는 이끌어낸다'는 입장이었고, 비정규직노조는 '임단투에서 불법파견 투쟁을 끝장내야 한다'는 견해와 '임단투에서 비정규직노조를 강화하고, 이를 통해 불법파견 투쟁을 지속한다'는 견해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술 논의 과정이 어떠했나
임단협 요구안 만들 때 원하청연대회의와 같이 이야기했다. 김태곤 수석부위원장이 의장으로 회의를 주재해서 진행해왔다. 수련회에서도 비정규직 동지들과 정규직 동지들이 한 참에 정규직화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실적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는 할 수 없다는 게 대부분의 판단이었다. 사용자성 인정받는다는 것은 비정규직 불법파견 투쟁을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거듭 강조하지만 특별교섭을 마지막까지 요구했고...
따라서 임단투에서 불법파견 끝장내야 한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요구안 확정 시기에도 그렇고 비정규직 불법파견 투쟁과 임단협은 분리한다는 것이 이미 결정된 바 있다. 다만 임단협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지만 이것이 방침은 아니었다.
비정규직 불법파견 투쟁은 임단협이 끝나든 안 끝나든 정규직으로 한 번에 안 되는 이상 계속 싸워야 할 과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의 분할 공세에 맞서 원하청 노동자가 하나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하고, 계급적 단결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임단협 전술 배치에 있어, 쟁의를 하게 되면 쟁대위를 구성하게 되는데 쟁대위에는 사업부 대표들, 본부장들, 상집 일부 임원, 감사 등이 참석한다.
비정규직노조는 독자파업을 시도했는데, 독자파업으로는 불법파견 투쟁 승리하기 어렵고 계급적 단결도 깨진다고 보았다.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 정신이 훼손되는 아쉬움도 있었다. 계속 이렇게 가는 것은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저께 원하청연대회의를 했다. 거기서 실무 책임자를 구성하고 특별교섭 임한다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30일 오늘까지 비정규직노조 선거기간이다. 선거가 끝나면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노동자의힘이 늦었지만 성명을 발표했다. 앞에서 지적한 부분과 비슷한 맥락인데, 현차노조가 "열사규정을 유보하는 오류를 범함으로써 불필요한 열사논쟁을 촉발"했고, "열사의 죽음을 계기로 비정규직 철폐 투쟁과 불파투쟁을 적극화해야 할 시기에 임금 및 단체협약을 잠정합의함으로써 전선을 확대 구축해야 할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요지의 성명이다. 회원으로서 여러 심경이 있을 텐데
참고로 신상 관련해서, 최근 노동자의힘 회원 탈퇴 의사를 밝혔다. 노동자의힘 정치방침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내용에 있어 크게 두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하나는 내가 비록 노동자의힘 회원이고 위원장이지만 노동자의힘 전체가 사과하고 그럴 성질이 못된다고 본다. 또 하나는 노동자의힘 상집 논의에서 현차노조가 류기혁 동지의 죽음을 덮기 위해 잠정합의를 빨리 했다는 기조로 정리한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 이 이야기는 노조 상집과 우리 활동가들을 무시한 처사라 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보였는지 몰라도 노동자의힘이든 어디든 그렇게 보는 것이 우리 내부 정서이다.
나는 노동자의힘에 대한 애정에 변함이 없고 지금도 그렇다. 그리고 노동자의힘 회원게시판에 올라온 회원들의 글도 보았다. 비판하는 내용의 전체를 부정하기는 어렵지만 현차노조의 현실을 정말 모르는 동지도 있고, 또 한 측면만 놓고 전부로 바라보는 동지도 있어 보였다.
노동자의힘이 이런 문제에 대해 좀더 발빠르게 움직이고 방침을 결정해야 한다. 회원이 모두가 똑같은 입장이어서는 아닐 것이다. 때문에 중앙이 입장을 신속하게 내고 바로바로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 정치조직으로서의 노동자의힘이 더 잘해서 이 땅에 희망으로 우뚝 섰으면 좋겠다.
올해 임단투 합의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번 임단협에서 현차노조는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주간연속2교대와 불법파견 특별교섭을 끌어냈다. 이것은 대단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류기혁 동지 운명에 대응하는 데 있어 제대로 못해서 그런지 표시가 안 나는 듯 하다.
어떤 분은 전원 정규직화를 왜 못했냐고 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1만 명이나 되는 전원 정규직화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특별교섭이 된 것은 사용자성을 받아낸 것인 만큼 이제 여기서부터 투쟁하면서 풀어가면 될 것이다.
조합원의 요구가 임단협에 어느만큼 반영되었다고 보는지
잠정합의 후 노조에서 선전물을 하나 내었다. 성과에 대해 잘 설명 하지도 못했다. 현장에서 극히 일부는 잘못 선전하는 사람도 있다. 조합원 64% 찬성이 나왔는데 내가 느끼기에 조합원들이 임단협 내용에 대해 100% 만족은 아니지만 예전보다 노조 임단협에 대해 만족한 걸로 보인다.
예전에는 잠정합의가 되면 가결율을 높이기 위해 선전물을 배포하기도 하고 신경을 쓰는 모습이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회사 측에서는 오히려 가결율 높아질까 전전긍긍했다. 64% 결과는 노조원들이 대체로 성과를 인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특별교섭을 따냈다고는 하나 선거를 앞두고 제대로 된 불법파견 투쟁을 전개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많다. 지금 특별교섭 준비와 향후 불법파견 투쟁을 어떻게 가져갈 계획인가
10월 13일이 되면 회사와 합의한 한 달이다. 그 전에 특별교섭을 해야 한다. 회사 측이 어떤 태도를 보일 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입장은 명확히 해야 한다. 첫째는 불법파견에 대해 전체 정규직화 요구이다. 둘째는 원하청 노동자의 계급적 단결과 통일을 높여야 한다. 회사가 만만하게 나오지 않을 거다. 조직력을 강화해야 하고 이를 통해 특별교섭을 해야 한다. 회사에서 똥배짱으로 나오면 조직화를 통해 또다른 국면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바램이 있다면 비정규직 불법파견에 대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출발하자는 것이다. 비정규직은 절박하다. 벼랑끝이다. 다른 걸 다 포기하더라도 그건 가져가야 한다. 급하고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규직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규직 활동가들과 함께 조직화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어떤 투쟁을 배치하더라도 같이 논의해서 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원하청이 하나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활동가 모두가 계급적 단결과 변혁의 주체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이 이해와 요구를 같이 모아가야 한다.
어용과 실리 위주 노선을 갖는 현장조직들은 계급적 노조운동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저께 공장을 둘러보니 현차 내에 있는 현장조직 일부도 그런 유인물을 배포하고 있더라. 민주노조운동의 여러 노선의 차이가 있을 텐데
어용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하면 된다. 민족주의 노선도 인정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민족주의 노선을 갖는 측도 계급적 노선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운동의 주류가 누구인지, 누가 장악했는지가 아니라 주체와 주체로서 사업을 펼쳐가야 한다.
올해 금속연맹 선거를 하면서 특히 노동자의힘 내부에서 여러 비판이 있었다. 그러나 때에 따라서는 전술적으로 같이 하고, 어떤 입장의 동지든 끌어안고 조직해야 할 대상으로 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극히 일부지만 자기 입장과 다르고 자기 생각과 다르다고 칼로 두부 자르듯 짤라버리고, 어용으로 몰아버리고, 운동하는 사람 만신창이로 만드는 것은 좋지 않는 사업풍토다. 그걸 바라는 것은 정권과 자본이다. 동지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 다양한 의견이 없으면 운동도 발전이 없는 것 아닌가.
정규직, 비정규직 연대를 통해 자본의 분할 관리와 공세에 맞서는 투쟁은 현차노조 뿐만 아니라 전계급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여기서 조합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조합주의 경향은 전반적이긴 하지만 특히 현차노조의 주요 활동가의 실천을 놓고 조합주의 한계가 제기되기도 하는데
그런데 노조의 이러한 집단적 조직화 시도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내부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치성을 부여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조합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게 말로서만 되는 건 아니지 않는가
위원장으로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아쉬움이 있다. 현장 활동도 그렇고 비정규직 활동도 그렇고. 좀더 잘 할 수 있는데 부족했다고 본다. 그런데 관점에서 잘못 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 편이다. 요즘 많이 지쳤다. 지친 게 자본이나 권력의 탄압에 의해서라기보다 일을 하면서 많이 지쳤다. 임기도 다 되어가고 이후 활동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다.
무엇보다도 민투위 동지들이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 미안하고, 노동자의힘 동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격려해준 만큼 잘 했으면 노동자의힘도 더 빛이 날텐데 무척 아쉽다.
[기획취재지원] - 한국언론재단
특별기획 '2005년 한국의 노동자' 순서
1회차(8월 22일) 시장화! 유연화!
2회차(8월 23일) 양극화와 사회통합
3회차(8월 25일) 고령화의 진실
4회차(8월 30일) 세상을 바꾸는 이수호 집행부
5회차(9월 1일) 노사대립과 노사정위원회
6회차(9월 6일) 노동운동 위기 논쟁의 촉발
7회차(9월 8일) 위기, 그후
8회차(9월13일) 대공장 노동운동의 현주소
9회차(9월15일) 산별은 정말 대안인가
10회차(9월20일) 정규-비정규직 차별, 해답은 없나
11회차(9월22일) 해외 공장 이전(1)
12회차(9월27일) 해외 공장 이전(2)
13회차(9월29일) 노동운동을 움직이는 사람들
14회차(10월4일) 절망의 현장, 일어서는 노동자(1)
15회차(10월4일) 절망의 현장, 일어서는 노동자(2)
특별기획취재팀
- 유영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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